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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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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06)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41:1-13 등록일자 2006.03.24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하숫가에 섰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하숫가에 섰더니
[4절부터 11절까지 중략]
그곳에 시위대장의 종된 히브리 소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고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하고 그는 매여 달렸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이 없다고 할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더욱이 그 부탁이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면 말입니다. 차라리 “된다. 안 된다” 말이라도 확실히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말도 전혀 없이 감감 무소식인 것이지요. 이런 경우 여러분은 혹시 그 사람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거나 원망하지는 않겠는지요? 또는 기다리다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지는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 나름대로는 열심히 기도를 쌓아왔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응답이 오지 않을 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의심하며 믿음이 약해지지는 않았는지요? 아니면 ‘나는 안 되나 보다’하고 낙심하여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약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고, 막 11:24에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하셨는지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요셉의 신앙은 어떠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옥에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시중을 들던 요셉은 어느 날 두 관원장으로부터 꿈 이야기를 듣습니다. 요셉이 그 꿈의 내용을 들어보니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게 되지만,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게 될 꿈이었지요.
그리고 결국 요셉이 꿈을 해석해 준대 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었지요. 창 40:14-15에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 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 했던 것입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 애굽으로 올 때도 또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요셉은 억지로 그 상황을 벗어나 보려고 하지 않았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명을 썼을 때도 자기 주인 보디발에게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인의 가정을 지켜 주려는 선한 마음이었지요. 그렇다고 요셉이 마음에서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만약 희망을 버렸다면 그는 노예로 팔려오면서부터 이미 자신의 삶을 포기했겠지요.
그러나 요셉은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기회가 온 것이었지요. 자신이 수종들고 있던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 이제 곧 복직하게 될 텐데 그가 복직하게 되면 자신을 지금의 상황에서 건져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요셉 스스로가 자기 지혜나 방법을 동원하여 억지로 만든 기회가 아니었기에 요셉은 이 기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었지요. 그래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복직이 되고 나면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 왕에게 고해서 풀려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술 맡은 관원장은 흔쾌히 요셉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말하지요. 자신이 삼 일 안에 복직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부탁인들 들어주지 못하겠는가’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요?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말대로 복직이 되었지만 23절에 보니“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 했습니다. 철썩 같이 약속을 했지만 막상 복직이 되고나니 요셉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만 2년 후가 되었을 때, 애굽의 왕 바로가 오늘 본문 1절 이하의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이고요. 그렇다면 요셉은 과연 이 2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원망하며 보냈을까요? 아니면 절망 가운데 포기해 버렸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술 맡은 관원장을 믿고 부탁을 했건만 그가 기대를 저버리고 연락조차 끊어졌을 때, 요셉은 낙망하고 좌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며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았지요. 감사를 잃지 않았고 여전히 자신의 삶에 성실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요셉에게 꿈으로 축복의 언약을 주셨지요. 현실을 볼 때 꿈의 내용과는 오히려 반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실히 믿었습니다.
더욱이 두 관원장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해석대로 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요셉은 예전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꿈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들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마음에 더욱 굳게 믿었던 것이지요.
물론 아무리 큰 축복의 언약을 주셨다 해도 사람 편에서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 뜻을 저버린다면 언약이 성취될 수 없겠지만 사람 편에서도 신실하게 언약을 믿고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면 그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만 그 성취의 시점에 있어서는 사람이 생각하는 때와 하나님께서 섭리해 놓으신 때가 서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도 이러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편에서 생각한 때가 맞지 않았다 해서 실망하고 낙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잠잠히 기다렸지요. 요셉이 만약 절망과 좌절 속에 있었다면 2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겠지만 요셉은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 가운데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의 시간 역시 요셉에게 있어서는 값진 연단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고요.
성도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요셉에게 2년을 더 기다리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가장 적당한 때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과 조건이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때를 기다리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언제쯤 애굽에 풍년이 오게 되고, 언제쯤에 흉년이 오게 될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는 길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셨지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기 위해 일부러 애굽에 풍년과 흉년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언제쯤 풍년과 흉년이 올 것을 미리 아셔서 거기에 맞추어 역사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맞추어 바로에게도 꿈으로 역사하셨던 것이고요.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2년 당기시면 되지 않을까요?’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누누이 말씀드렸듯이 공의에 맞지 않습니다. 흉년이 오는 것도, 풍년이 오는 것도 하나님께서 임의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생사화복은 물론이고 천하 만물을 주관해 가심에 있어서 모든 것을 공의에 맞추어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에는 풍년이 오고 어떤 나라에는 흉년이 오며, 갖가지 재앙이 오는 것도 모두가 공의의 법칙에 따른 것이지요. 얼마나 하나님 앞에 선으로 쌓았느냐, 아니면 반대로 악으로 쌓았느냐 하는 것이 공의의 법칙에 따라 열매로 드러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애굽 땅에 언제 풍년이 들 것과 언제 흉년이 들 것을 미리 아셨던 것이고, 그래서 그 시점에 정확히 맞추어 바로 왕과 요셉이 연결되도록 역사해 가셨습니다. 그 시점이 바로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고 나서 만 2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2년을 더 감옥에서 지내도록 놔두신 것이지요.
육적으로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 같았지만 이 역시 하나님께서 그냥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술 맡은 관원장의 마음을 주관하신다면 당장에라도 요셉을 기억하여 감옥에서 꺼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성도 여러분, 만약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즉시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 주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때는 아직 ‘때’가 아니었으므로 요셉은 바로 앞에 나갈 기회도 얻지 못했겠지요. 그냥 감옥에서 풀려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요. 결국 감옥에서 풀려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겠지요. 이는 하나님의 섭리를 위해서도, 요셉 자신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애굽에서 보낸 긴 연단의 세월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한 채 그냥 허송세월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고 때를 정확히 맞추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요셉이 2년이라는 세월을 더 감옥에서 보내며 ‘때’가 오기를 기다리게 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정확히 그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 꿈을 꾸게 역사하십니다. 이것도 영의 분리를 통한 역사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마음에 품으시고 영의 분리를 통해 그에게 꿈이나 환상 또는 마음에 감동함을 입혀서 그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관해 가실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에게도 꿈으로 역사하셔서 앞으로 되어질 일을 미리 보여 주시고 결국 요셉으로 하여금 그 꿈을 해석하게 하도록 모든 상황을 이끌어 가고 계신 것이지요.
바로가 꾼 꿈의 내용이 본문 1-7절에 나오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바로가 하숫가에 섰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만 아름답고 살진 소들을 잡아먹는 것이었지요.
이 꿈을 꾸고 바로는 곧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서 또 한 꿈을 꿉니다.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는데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는 것이었지요. 바로가 깨어 보니 이것도 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꿈의 내용은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바로 왕이 하숫가에 서있었다 했는데 하숫가란 ‘시험’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으로써 그것을 잘 통과했을 때는 축복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의미가 있지요.
성경에 보면 ‘물가’나 ‘시냇가’는 영적으로 말씀을 의미하는 물과 관련이 있어서 좋은 의미를 가지는 단어들입니다. 따라서 하숫가에 서 있다는 것도 그것이 비록 당장은 시험이 온다는 의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축복으로 갚아질 것을 의미하지요.
다음으로 일곱 암소나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은 둘 다 풍성한 수확 즉 풍년을 의미합니다.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와 세약한 일곱 이삭은 흉년을 의미하구요. 암소나 이삭은 모두가 생산과 관련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암소와 이삭을 통해 풍년과 흉년의 징조를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의미가 같은 두 가지 꿈을 연속으로 꾸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정하시고 속히 행하신다는 의미이지요.
꿈에 대한 자세한 해석은 다음 시간에 이어질 본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고, 이렇게 해서 두 가지 꿈을 꾸고 깬 바로 왕은 꿈의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8절에 보니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했지요.
꿈으로 인해 놀란 바로 왕은 마음에 심히도 근심과 번민이 되었지만 스스로는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을 모두 불러 그 꿈을 해석하도록 해 보았지만 그들 중에도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었지요.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면 너무 쉬운 꿈이지만 사람의 생각과 지혜로 풀고자 했을 때는 결코 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전 2:13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말씀한 대로 이지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환상이나 꿈을 해석할 때는 결코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풀 때도 마찬가지이지요. 벧후 3:16에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과 지혜를 가지고 억지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정확히 풀어야 하며 그럴 때 듣는 사람의 마음도 영적인 갈급함이 풀어지면서 시원함과 동시에 성령의 뜨거운 역사를 느끼게 되지요.
눅 24:27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했지요.
그러자 32절에 보면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속에서 마음이 뜨거웠다 고백하고 있지요.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풀어질 때는 바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영이 기뻐 뛰니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충만함과 감동함을 입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것이고요. 이와 마찬가지로 환상이나 꿈도 영적으로 정확히 그 의미가 풀어질 때는 마음의 시원함과 함께 기쁨과 충만함이 옵니다.
그런데 바로의 경우는 누구도 자신의 꿈을 명쾌히 해석하지 못하자 마음은 점점 더 번민하게 되고 근심이 되었지요. 바로 이때 왕의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것은 2년 전 자신이 감옥에 있었을 때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이었지요.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이 자신의 꿈을 해석해 준대로 정확히 3일 만에 복직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지난 2년 동안 요셉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입니다. 바로가 꿈으로 인해 번민하며 고통 받는 것을 보자 비로소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에서 꿈의 사람 요셉이 떠올랐던 것이지요. 이처럼 정확히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때가 되자 하나하나 모든 것이 마치 짜 맞춘 듯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의를 전혀 어그러트리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물 흐르듯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맞아야 합니다. 그렇다하여 때가 오기까지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 편에서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지요. 아직 때가 아니라 하여 손을 놓고 기다리고만 있다면 그 ‘때’는 더욱 미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편에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할 것인가’ 하는 것도 이미 다 아시고 거기에 맞추어 때를 정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모든 일의 때와 시는 물론 하나님 손에 달려 있지만 우리 편에서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우리의 할 바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바로 앞에 서야 할 때가 되자 지난 2년 동안 술 맡은 관원장의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혀졌던 요셉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셨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잊혀진 기억이라도 이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다시 떠오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기억력이 거의 없지요. 그래서 사실 전화번호 하나도 제대로 외우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기억력이 없다 해도 필요한 내용이 있을 때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정확히 떠올려 주시지요. 아무리 오래전에 배우고 들었던 것이라도 또렷이 기억이 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언제, 어디서, 어떤 자세로 무슨 대화를 했는지까지도 정확히 떠올려 주실 때가 있지요. 그 당시의 상황을 지금 눈앞에서 보는 듯이 보여 주시기도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나 영적인 말씀의 내용들은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머리에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아예 영으로 새겨놓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영으로 양식 삼아 새겨놓은 것은 필요한 순간에 정확히 떠오릅니다.
이처럼 제가 비록 기억력은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제 마음을 주관하시고 묻혀 있던 오랜 기억까지도 떠올려 주시지요.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고, 말을 지어내거나 꾸며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에게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말하면서 바로의 꿈을 해석할 사람으로 요셉을 추천하지요. 이제 드디어 요셉에게 바로 앞에 설 기회가 온 것입니다. 13년 전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던 히브리 소년 요셉이 오랜 연단을 통해 그릇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쓰임 받을 때를 맞게 된 것이지요. 이후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6-03-27 오전 10:49:54 Posted
2018-12-04 오후 1:51: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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