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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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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41:46-57 등록일자 2006.04.28
“요셉이 애굽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절부터 55절까지 중략]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일에 있어서 ‘누가 머리로 세워지고 머리가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머리된 한사람의 판단과 결정으로 인해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축구팀을 예로 든다고 할 때 똑같은 선수들이 동일한 조건 하에 있다 해도 어떤 사람이 팀의 감독을 맡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팀의 실력은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감독이 어떤 전략과 계획을 가지고 팀을 훈련시키고 선수들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가정에서도 살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규모 있고 지혜롭게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예산을 가지고도 가족 전체의 삶이 전혀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는 육적인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지요. 머리된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아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너무나 큰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머리로 세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셨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머리를 세워주셨다 해도 사람들이 그를 믿고 순종하여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약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모세 선지자를 전폭적으로 믿고 순종하여 따라만 주었다면 그들은 그 오랜 세월 광야에서 방황할 필요도 없었고 결국 광야에서 죽는 일도 없었겠지요.
그러므로 머리가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머리로 세워진 사람을 전체가 얼마나 믿고 순종하느냐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지금 계속 설명되고 있는 본문의 내용이지요.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이라는 인물을 만났을 때 그를 믿고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단번에 애굽 전역을 치리하는 총리로 삼아 다가올 풍년과 흉년의 때를 대비하게 하였지요. 이것을 명한 사람은 물론 바로였지만, 신하들 중에도 누구 한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요셉을 믿고 신뢰했으며 요셉의 말에 순종하여 행했지요.
이는 그들이 비록 요셉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들의 자존심이나 유익을 좇기 보다는 나라와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선하고 넓은 마음씀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한번 바로의 입장이나 또는 바로의 신하들의 입장이 되어서 ‘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신다면 여러분 스스로의 마음이 점검될 것입니다. 나보다 아랫사람이 더 인정받고 사랑받을 때, 나보다 아래 있던 사람이 더 먼저 되었을 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타나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는다고 생각될 때, 과연 이러한 경우에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마음이 되어야 하며,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더더욱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마음이 상하여 상대를 배척한다거나 낙심하고 좌절하여 물러나 버리고 만다면 이는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과 자존심으로 인해 자칫 헤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모두가 함께 마음을 모아야 할 때는 그것이 비진리가 아니라고 하면 설령 자신에게 불이익이 온다 할지라도 기꺼이 함께 모아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잠 18:1에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는 말씀처럼 자기 생각이나 뜻과 맞지 않는다하여 무리에게서 나뉘는 것은 결국 자기 소욕과 유익만을 좇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나 바로 주변의 신하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요셉을 따라주었기에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명철 가운데 마음껏 일을 할 수가 있었지요. 그리고 그로 인한 축복이 결국은 바로와 신하들과 그 나라에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인정하여 순종했기 때문에 공의 가운데 받게 되는 축복이었지요.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했을 때 받는 축복이고요.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그가 아브라함과 함께 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얼마나 컸습니까? 육으로 볼 때는 더 기름지고 좋은 땅을 취하여 그곳으로 들어갔으니 당연히 더 축복받고 형통해야 할 것 같은데, 결과는 오히려 반대였지요. 아브라함의 곁을 떠나는 순간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고 그 후로 온갖 시험과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는 빛이신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오늘 금요철야 은사집회에 많은 분들이 문제들을 가지고 나왔을 텐데 여러분 자신이 한번 스스로 자신의 문제의 원인을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러한 갖가지 문제들이 찾아왔을까요? 분명히 하나님을 멀리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고 빛이신 하나님과는 반대되는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진리가 아닌 비진리 가운데 살았고 말씀을 떠나 세상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지킴받지 못한 것이고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되고 만 것이지요. 여러분이 빛 가운데 거하면 즉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여러분을 지켜 주십니다.
출 15:26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분명히 약속해 주셨지요. 빛 가운데 살지 못하고, 말씀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이런 저런 문제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또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창 12:3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하신 말씀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아무라도 저주해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 하나님의 보장받는 사람을 저주했을 때는 공의 가운데 반드시 보응이 따르게 되지요.
출애굽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해 한 것이라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람을 축복하고 섬기는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 가운데 갚아 주십니다. 막 9:41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셨지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사람에게 행한 것은 더더욱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애굽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도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요셉을 인정하고 신뢰하여 그를 선대하였기 때문에 그로 인한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나라의 존립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는 엄청난 재앙이 몰려왔지만 애굽은 요셉을 머리로 세워 대처하게 함으로 인해 오히려 이 일이 바로와 그의 나라에게 있어서는 더 큰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앞으로 설명이 되겠지만 주변의 모든 나라들은 7년의 흉년으로 인해 큰 재앙 가운데 빠졌으나 요셉이 나라를 치리하던 애굽은 그 반대로 더욱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지요. 바로와 신하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인정하며 함께 했을 때 이와 같은 축복이 오더라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은 그의 나이 삼십에 애굽이라고 하는 크고 강대한 나라의 총리가 됩니다. 그렇다 하여 요셉이 이제부터는 부와 명예와 권세를 누리며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요셉은 곧바로 애굽 온 땅을 순찰하며 앞으로 다가올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대비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몸과 마음이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의 해석대로 애굽에는 7년간의 큰 풍년이 오지요.

47-49절에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성에 저축하되 각성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중에 저장하매 저장한 곡식이 바다 모래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해 풍년에 이어 일곱 해 흉년이 올 것을 몰랐다면 이처럼 큰 풍년 동안에 거둔 수확을 쉽게 허비해 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다가올 일곱 해 흉년을 알고 있는 요셉은 정확한 계획에 따라 곡물을 저장하지요.
이렇게 한창 풍성한 수확을 누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두 아들을 허락하십니다. 아직 흉년이 들기 전에 이처럼 아들들을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축복이지요. 흉년은 아무래도 국가적인 재앙인데 그러한 시기에 자녀를 낳는 것보다야 당연히 풍년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때에 자녀를 낳는 것이 더 복되지 않겠습니까?
요셉은 므낫세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이제 지난날의 모든 고난을 잊게 되었으며,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그가 애굽에 행한 모든 수고가 창성하게 열매를 맺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두 아들들까지 얻은 요셉은 영육 간에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받았으며 이때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장차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는 조상이 되지요.
즉 요셉은 자신의 후손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 두 지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잃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드렸으며,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행해 왔던 결과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꿈을 해석했던 대로 7년의 풍년이 끝나고 나자 7년의 흉년이 시작되었는데 애굽에만이 아니라 주변나라에도 기근이 심하여 온 세상에 기근이 심했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애굽 백성들은 물론이고 주변 나라의 백성들까지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왔지요. 요셉이 7년의 풍년 동안 거둔 수확을 잘 저장하고 관리하였기 때문에 큰 흉년을 맞아서도 온 애굽 땅에는 먹을 식물이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아니었으면 너무나 근심과 고통 가운데 어찌할 줄을 몰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요셉 한사람으로 인해 아무런 근심 없이 평안을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요셉이 이미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보여 주었던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섬세함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하며 난국을 헤쳐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요셉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사실 요셉이 아무리 지혜 있고 명철하여 모든 일을 깔끔하고 완벽하게 처리한다 해도 그것만으로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너무 뛰어나게 잘 하다 보면 주변으로부터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렇지가 않았지요. 누구와도 원수를 맺는다거나 화평을 깨뜨리는 일이 없었고, 주변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훗날 요셉이 자신의 아버지 야곱과 야곱에게 속한 가족들을 애굽으로 불러들여 바로가 그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 라암세스를 주었을 때도 그것을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또한 요셉의 아비 야곱이 죽었을 때도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장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장로가 함께 야곱을 장사하러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고는 하지만 이와 같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총리로서 어떻게 행해왔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지요. 요셉은 매사에 정확하고 분명했지만, 그렇다 하여 덕과 사랑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품어 줄 수 있는 넓고 큰마음이었지요.
자신이 왕 다음가는 치리자가 되었다 하여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고 자신의 권세를 휘두르려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억지로 힘들게 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이나 교만의 모습이 없었지요.
요셉은 예전에 형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과 상대의 과실을 지적하려는 마음으로 인해 얼마나 화평이 깨어졌는지를 체험했고, 결국은 그러한 일들로 인해 자신이 형들의 손에 의해 노예로까지 팔려오게 되었음을 뼈저리게 느끼며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았던 것이고, 더욱이 요셉은 이미 연단을 통해 자기의 의로움과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들을 다 깨뜨리고 변화시킨 후였지요.
누구도 품을 수 있고 누구와도 화평을 좇을 수 있는 마음이었으며 누구라도 무시하지 않고 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가장 낮은 위치에 있어 보았기에 아랫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들어주려는 마음이었지요. 이 모든 것이 보디발의 집과 감옥을 거치면서 받은 값진 연단의 결과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요셉과 자신의 모습을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의로움만을 내세우다보니 혹시 다른 사람과의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았는지요? 자신의 권세와 지위를 이용하여 모든 것을 지시하고 명령하려 하지는 않았습니까? 자신을 드러내기 원하고 자랑하기 원하며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눌러서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다른 사람과 화평이 깨어지고 주변의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를 상대방이 아닌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서 먼저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이 어떻게 이방인으로서 그 큰 애굽의 총리를 하면서도 사람들로부터 시기와 질투와 걸림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깨달아 여러분 자신과 비교해 본다면 거기에 바로 문제해결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은 아무래도 이방 나라인 애굽에 살다보면 자신이 어려서부터 배우고 따랐던 하나님의 법과는 맞지 않는 일들을 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섬기는 대상도 달랐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이방인의 법과는 여러 가지 차이점들이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요셉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애굽의 법이나 종교와 걸리지 않았고 두루 두루 화평했던 것을 봅니다.
이는 요셉이 결코 그들 이방 종교나 그들의 법도와 타협해서가 아니지요.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했던 요셉은 당연히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먼저였고 하나님의 법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하여 요셉은 애굽의 종교나 그들의 법을 무시하지도 않았지요. 그들의 신앙과 법도 또한 존중해 주었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그들의 법도 존중하며 따라주었습니다. 요셉이 만약 애굽의 총리로서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니 ‘내 신앙과 내가 배운 하나님의 법도만을 고집하겠다’고 했다면 결코 그들 사이에서 화평이 이루어질 수 없지요.
이는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며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발해야 하지요.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열정이 지나치다 보면 여러분의 의가 앞서는 경우가 생기지요.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세상의 다른 사람들을 정죄한다거나 그들에게 진리를 강요하다 보면 이는 오히려 그들로부터 반발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접하기도 전에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되므로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가게 되고 말지요.
예를 들어 세상 사람을 전도하면서 처음 교회에 나오는 사람에게 “교회에 나오면 술도 담배도 다 끊어야 하고 세상의 오락을 취해서도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누가 선뜻 교회에 나오고 싶겠습니까? 또는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당연히 정도를 걷고 진리대로 행해야겠지만 그렇다하여 자신만 의롭고 다른 사람은 모두가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런 사람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런데 요셉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던 것이고, 그러면서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도 화평을 깨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덕이 있는 넓고 큰마음 가운데서 교만하지 않고 섬기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자신은 과연 주변의 이방인들로부터도 얼마나 인정받고 신뢰받고 있는지, 이 또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점검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으로 인해 그의 가족들까지도 애굽 왕 바로로부터 환대받고 그 나라의 좋은 땅에 정착하여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교회 전체가 칭찬받고 사랑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요셉의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왔다가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되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았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도 신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도 사랑받았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도 사랑받았지요. 이는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늘 성실과 정직으로 행했기 때문이며 사람들 앞에서도 동일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람이라고 하면 무엇 하나 부족한 것도 없을 것이고 어떤 문제를 만날 일도 없지요.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은 여러분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신뢰받을 만한 모습이었고, 얼마나 사랑받을 만한 모습이셨나요?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 하나님과의 사이에 반드시 행해야 할 것 이러한 것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행하셨나 점검해 보십시오.
교회에도 나왔다 안 나왔다 하고, 기도도 했다 안했다 하며, 기쁘고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했다가도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오나요?” 하며 불평불만 하는 입술은 아니셨습니까? 믿고 기도한다 하다가도 이내 의심하거나 믿음으로 기도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의지하는 모습 등 이러한 모든 것이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신뢰관계를 방해하는 일들이지요.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얼마나 가족들에게 신뢰받고 있는가 내가 얼마나 내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료와 친구들로부터 신뢰받고 있는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여러분의 신앙을 말해주는 척도가 될 수 있지요. 가족의 문제,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문제, 기타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도 결국은 여러분이 얼마나 신뢰받고 사랑받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떠한 존재인가 점검하셔서 앞으로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더욱 신뢰받고 사랑받는 모습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있는 곳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5-01 오전 9:50:36 Posted
2018-12-04 오후 1:51: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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