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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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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1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42:1-9 등록일자 2006.05.05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 만하느냐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절부터 7절까지 중략]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이르는 계보를 거치면서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인 야곱의 아들 요셉을 택하여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본격적인 준비를 해나가시지요.
때가 되어, 야곱과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환경과 조건이 필요할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인도하셔서 그 ‘때’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기 때문에 큰 흉년의 때를 맞았을 때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피할 수가 있었고 요셉의 보호막 안에서 좋은 환경 가운데 큰 민족으로 번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400여 년이라고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하나의 커다란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요. 지금까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으로 이어지는 개개인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오셨다면, 이제 하나의 커다란 민족이 형성된 후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를 펼쳐 가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한 것인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샘플을 세워주신 것이지요. 물론 개개인의 인물들을 통해서도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어가시며 훌륭한 본이 되도록 해주셨지만 온 세상에 하나님의 섭리를 펼치기 위해서는 이제 한 민족을 택하셔서 그들을 인간 경작의 모델로 삼으실 필요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선택받은 민족이 이스라엘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들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기 위해 먼저는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로부터 시작해서 이삭과 야곱의 세대를 거쳐 마침내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세대에 이르러 민족 형성의 기틀을 마련하게 하셨지요. 이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시작부터가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성까지도 미리 염두에 두시고 그들의 조상을 택하여 세우셨지요. 아브라함의 성품과 이삭의 성품, 그리고 결정적으로 야곱의 성품을 이어받으면서 그들만의 곧고 끈질긴 민족성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날까지도 그들 민족의 고유성을 보존하고 있으며 그러한 민족성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 경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지요.
과연 이 세상에서 어느 민족이 이스라엘이 겪었던 그러한 핍박과 박해를 무릅쓰고 이처럼 민족의 고유성을 유지하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이러한 중심을 보셨던 것이고, 그래서 그들을 택해 인간 경작의 중심에 세워 지금까지 역사해 오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택하여 그를 미리 애굽에 들어가게 하시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게 하신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며 요셉이라는 인물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민족도 이루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민족이 형성된 후로는 이전에 개개인을 통해 역사하시던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까지 창세기 강해를 통해 들어오셨듯이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 개개인의 신앙을 보시고 그들을 인도해 가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신앙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었지요. 그들에게 속한 가족들까지도 함께 영향을 받았던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고 출애굽을 하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지요. 일단 애굽을 빠져나올 때까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세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즉 모세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이스라엘 전체를 인도하셨지요.
그러나 출애굽 이후로는 모세 개인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큰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푸셨지만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의 믿음과 순종 여부에 따라 그들의 앞길도 결정되었지요. 모세를 통해 인도해 가시기는 하지만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민족 전체의 신앙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수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좀 더 일찍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의 믿음을 내보였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도 그만큼 앞당겨질 수가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억지로 주관하여 믿고 순종하도록 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셨고 마침내 전체의 믿음이 합당한 수준이 되었을 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주 안에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에는 머리된 한 사람만이라도 믿음이 있고 또는 함께하는 몇 사람만이라도 믿음으로 마음을 모으면 형통함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일이 점점 커지고 조직도 커지다 보면 이제는 머리된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믿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몇 사람의 마음만 하나 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일에 관련된 구성원 전체의 믿음과 하나된 마음이 필요하게 되지요. 그렇지 않을 때 처음에는 잘 되던 일도 중도에 어그러지는 일이 생기는 것이며 더 이상 형통함을 받지 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는 더욱 그러하지요. 전체가 얼마나 화평함 가운데 하나 된 마음을 이루어 믿음을 내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나’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이 지연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전체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오래 참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내 믿음으로는 당장에라도 이룰 것 같은데 아직 그만한 믿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의 일이 지연되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믿고 바라봐 주어야 합니다. 한 영혼도 잃지 않고 모두가 다 함께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와서 마침내 총리에 오르게 된 사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셉 개인적으로는 연단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을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부어주신 축복입니다.
또한 애굽 왕 바로와 그 나라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인정한 결과로써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계기가 되지요.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장차 다가올 큰 흉년의 때에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길이 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지는 귀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지요. 한 가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많은 분야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라고 하는 한 개인의 입장에서만 일을 이루어 가신 것이 아니라, 모든 섭리를 동시에 다 이루기 위한 가장 알맞은 환경과 조건이 무르익은 때를 맞추어서 요셉을 총리로 세우셨던 것이지요.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선교와 대성전 건축의 사명을 이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선교와 대성전의 건축은 단순히 우리가 이루어야 할 사명 이상의 많은 의미와 섭리를 담고 있지요. 성도님들의 성결과도 관련이 있고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엄청난 상급과도 관련이 있으며 이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영혼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우리의 사역에 함께 동참하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축복과도 관련있으며,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사의 흐름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분야만 준비가 되었다고 해서 “지금이 그 때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상황과 조건들이 다 맞아서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때’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하여 혹여 ‘나는 준비가 다 되어도 다른 환경과 조건이 준비되지 않으면 결국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하며 자신이 해야 할 준비까지도 소홀히 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칫 다른 환경과 조건은 다 준비가 되었는데, 막상 여러분 자신이 준비되지 않으므로 일을 이룰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 있지요. 그러므로 그 ‘때’라는 것이 언제 오든지 여러분 편에서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서 그 때를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그가 만약 30세가 될 때까지 그릇 준비를 마치지 못했다면 막상 절호의 기회가 왔다 해도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으셨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너무나 좋은 기회가 있음에도 여러분 편에서의 준비가 부족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 여러분의 마음을 알아서 어떤 것을 부탁하기 전에 미리 해준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참 흡족할 것입니다. 그만큼 서로 간에 마음이 통하는 관계일 것이고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떤 것을 부탁할 때까지 그저 눈치만 보고 있다고 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신뢰가 가기란 쉽지 않겠지요.
일일이 지시하고 명령을 해야만이 그제서야 움직인다고 하면 일을 지시하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것입니다. 물론 말을 했을 때 순종이라도 해주면 말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맞추어 미리 알아서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얼마나 마음을 시원케 해주는 것이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야곱의 아들들은 그 아비 야곱의 마음을 시원케 해주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관망만 하느냐”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심한 기근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데 애굽에는 곡식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러갈 생각도 안한 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아들들을 보면서 야곱은 심히도 마음이 답답하여 이처럼 책망하는 어조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근으로 인해 먹을 양식은 없고, 애굽에는 곡식이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 그럼에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서로 관망만 하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이 너무나 답답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니 야곱의 이 한 마디 말만 보아도 야곱과 아들들의 관계가 지금 어떠한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야곱 편에서는 아들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했고, 아들들도 자신들이 아버지로부터 신뢰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선뜻 나서거나 당당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요.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야곱의 열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의 말에 따라 애굽으로 양식을 사러 떠나게 됩니다. 이때 야곱에게는 요셉을 제외한 열 한명의 아들들이 있었지만 야곱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면서 막내 베냐민은 보내지 않았지요.

3-4절에 “요셉의 형 십 인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을 그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이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 함이었더라” 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아들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게 되었을 때 요셉을 향해있던 사랑을 이제는 대신 막내아들 베냐민에게 쏟게 되지요. 베냐민은 요셉과 마찬가지로 야곱이 가장 사랑하던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요셉이 있을 때는 야곱의 사랑이 베냐민보다는 요셉에게 훨씬 더 갔었지만 이제 요셉이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라헬이 낳은 아들 베냐민에게 야곱의 사랑이 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야곱은 양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내면서도 베냐민은 함께 보내지를 않습니다. 혹여라도 베냐민에게까지 해(害)가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온 세상이 심한 기근으로 인해 민심도 흉흉하고 도적이나 강도를 비롯한 위험들도 얼마든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지요. 더욱이 다른 나라로 양식을 구하러가는 것이니만큼 이방 나라에서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베냐민은 보내지 않고 나머지 열 아들들만을 보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아버지 야곱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나머지 열 아들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예전에 야곱이 요셉만을 편애하고 다른 아들들과 차별했을 때는 나머지 아들들의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요셉에 대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심했지요. 그런데 지금 아버지 야곱이 동생 베냐민에 대해서 똑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다른 아들들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는 않았지요. 자신들이 요셉을 시기, 질투하여 그를 노예로 팔아버린 것에 대해 스스로 눌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베냐민은 요셉과는 달랐기 때문이지요. 예전에 요셉은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는 이유로 인해 스스로 높아져서 형들을 무시하고 그 앞에서 잘난 체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베냐민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요셉과 달리 베냐민은 심약한 성품으로 인해 형들을 자극할 만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았지요. 베냐민도 요셉처럼 들레려 하고 스스로를 높이려고 했다면 형들로부터 시기, 질투를 살 수도 있었겠지만, 베냐민은 그렇지가 않았기에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해도 특별히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 명의 아들들도 베냐민만을 남겨두고 양식을 구하러 가는 것에 대해 마음이 상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지요. 어차피 자신들이 가서 양식을 구해오지 못하면 이곳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결국 기근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베냐민을 두고 가는 것에 대해 크게 마음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간 야곱의 열 아들들은 요셉 앞에 나가게 되지요. 그리고 그들도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는 애굽의 총리인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해야했습니다. 13년 만에 만나는 요셉과 형들이었지요. 그러나 상황은 13년 전과는 너무나 달라져 있었습니다.
13년 전 형들은 애원하는 요셉을 외면하고 그를 노예로 팔았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은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며 양식을 구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지요. 물론 이때 형들은 자신들 앞에 있는 애굽의 총리가 요셉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요셉이 살아 있어서 그것도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도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지요.
그러나 요셉은 언젠가 이렇게 형들을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형들을 봤을 때도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순간 요셉은 어찌해야 했겠습니까? 만약 이때 요셉의 마음에 형들에 대한 악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면 당장 형들에게 “나를 보시오 내가 바로 당신이 노예로 팔았던 요셉이요 내가 오늘이 오기를 기다렸소” 하며 그동안에 쌓인 감정이 폭발했겠지요. 자신이 당한 것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형들에게 갚아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요셉이 정말로 형들에게 뭔가 앙갚음을 하려는 것 같아 보입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면서도 모르는 체 하고 엄한 소리로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묻지요. 이에 형들은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대답합니다. 그러자 대뜸 요셉은 형들을 향해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하지요.
형들의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만약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았다면 지금 요셉이 예전의 일로 인해 자신들에게 감정을 가지고 이처럼 억지를 부려서 복수를 하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정말로 요셉이 이때 형들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이처럼 말을 했던 것일까요? 요셉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형들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었고 형들에 대한 조금의 감정도 없었지요. 이미 마음에서는 형들을 다 용서했고, 더욱이 자신을 애굽으로 보내어 이처럼 총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에 요셉의 마음에는 형들에 대한 조금의 감정이나 미움, 서운함 등이 없었습니다. 형들을 보았을 때 너무나 반가웠고 당장에라도 형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지요.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 9절에 보면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하지요. “요셉이 그들에게 즉, 형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이와 같이 행동하고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 꿈이란 바로 요셉이 예전에 꾸었던 꿈 즉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던 꿈이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던 꿈이었지요.
요셉은 이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임을 믿었고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 꿈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그 꿈대로 형들이 자신 앞에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으로 요셉의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요셉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요셉이 이때 굳이 형들을 모른 체하며 그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겠지요.
성도 여러분, 육적으로 볼 때는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하게 됨으로써 마치 요셉의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고, 요셉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지금 요셉의 형들은 단지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의 총리 앞에 엎드린 것이었지요. 그들이 요셉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을 인정하여 자신의 동생 요셉 앞에 진정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엎드려 절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요셉은 형들이 진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해서 자신 앞에 엎드려 절하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 나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요셉이 형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마음이 있거나 형들로부터 높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라,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 알았기 때문에 그 섭리대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은 방법을 취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결국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무릎 꿇으며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심히도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더욱이 연단을 통해 너무나 선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형들에 대해 얼마나 애틋한 마음이 들었겠으며 또한 아버지 야곱의 안부도 얼마나 궁금했겠습니까? 당장에라도 형들에게 자신을 밝혀서 얼싸안고 맞이하고 싶었으며 아버지 야곱에게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그런데도 요셉은 그 감정을 절제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감정이나 정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순종할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갈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정과 욕심을 내세워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즉 하나님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일이 먼저였던 것을 봅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놓을 수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임받을 수가 있었지요. 이것이 곧 막 12:3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도 항상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는다”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5-08 오전 9:56:29 Posted
2018-12-04 오후 1:47:5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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