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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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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2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45:25-46:7 등록일자 2006.07.21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45장 27절부터 46장 6절까지 중략]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만약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어떤 일로 인해 잃었는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그 잃었던 자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어떠시겠는지요? 더구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자녀가 아직 살아있고 아주 훌륭한 인물이 되어서 부모를 간절히 찾고 있다면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벅차오를 것입니다.
야곱도 이렇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거기다 애굽의 총리까지 되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그런데 야곱이 처음에는 아들들이 전해주는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 요셉이 자신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고하며 아버지를 태우라고 보내온 수레를 보여 주지요. 그제서야 야곱은 아들들의 말을 믿게 됩니다. 야곱은 지혜 있고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므로 하나님께서 요셉을 먼저 애굽에 보내신 섭리에 대해 설명해 주는 말을 듣자 그것이 빈말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지요. 거기다가 아들들이 가져온 수레를 보면서 이 일은 분명히 누군가 높은 권세자가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아들들의 말을 믿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다는 말에 확신을 가지게 된 야곱은 기운이 소생하여 말하기를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지요.
어느 아들들보다 더 지극히 사랑했던 아들 요셉이 그동안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살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이처럼 수레와 길양식까지 보내어 아버지인 자신이 애굽으로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벅차올랐겠습니까? 야곱의 마음은 요셉이 살아있다는 기쁨과 요셉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으로 가득했지요. 이제 야곱은 애굽의 바로가 보내 준 수레를 타고 당장 아들 요셉이 기다리고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선뜻 그렇게 할 수가 없었지요.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가나안 땅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 야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곳이었지요.
창 17:8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로 이어졌고 창 26:24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시며 그 언약을 변함없이 이루어 주실 것을 말씀하시지요.
또한 창 35:12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말씀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약속을 야곱에게도 변함없이 확증해 주고 계십니다. 지금 야곱이 살고 있는 땅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이 담긴 곳이었고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마음에서 단 한 번도 잊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보고 싶다 해도 선뜻 가나안 땅을 떠나 애굽으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더욱이 가나안 땅은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터를 잡고 번성해 온 곳으로서 그곳에 뿌리 내리고 있던 기반을 다 접은 채 애굽으로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나안 땅에 계속 있는다 해도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생명을 부지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일단 애굽으로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때 야곱이 완전히 애굽으로 이주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지요. 요셉도 만나보고 지금 당장은 기근도 피하기 위해 잠시 애굽으로 옮겨가는 것이지만 다만 얼마동안 머문 후에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새로운 터전을 잡고 정착하여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내리라고는 생각 못했지요. 이렇게 해서 야곱은 아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처럼 중대한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여쭈지 않을 리가 없지요. 브엘세바에 이른 야곱은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립니다. 본문 창 46:1에 “이스라엘이(즉,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 아비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니” 했지요. 야곱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다시 한 번 지내온 시간들에 대해 정리를 했던 것이고, 하나님의 뜻과 의중에 대해 알고자 했습니다.
지금 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을 향하는 것은 그의 일생에 있어서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기가 되는 중대한 사건인데, 야곱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 지나온 날들을 회상해 보았던 것이지요. 그동안 자신과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과 은혜를 회상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형 에서를 피해 아버지 이삭의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보냈던 시간들, 그곳에서 라반의 집을 위해 밤낮 쉬지 않고 봉사하며 보냈던 시간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큰 부를 일구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시간들, 또한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환도 뼈가 위골되기까지 철저히 자신을 깨뜨리며 지렁이 같이 낮아지고 낮아졌던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지내왔던 모든 시간들을 회고하며 야곱은 자신의 삶을 정리해 보았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인도해 오신 시간들을 회상하며, 이번에도 자신이 지금 애굽으로 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과 섭리 가운데 가(可)한 것인지를 여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야곱이 아예 애굽을 향해 출발하기 전에 미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의중을 여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야곱이 이렇게 굳이 브엘세바까지 와서야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린 데에는 그만한 영적인 이유가 있었지요.
브엘세바는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 이삭과 함께 거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삭이 이곳에 터를 잡기 전에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랄이라는 곳에 거했지요. 그런데 그곳에 함께 거하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이 번성해 가는 것을 시기하여 이전에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막는가 하면 이삭의 종들이 파는 우물마다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삭은 이에 요동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자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그곳에 우물을 팠지요.
그러다가 세 번째로 우물을 판 곳에서는 더 이상 블레셋 사람들과 다투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이삭은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말씀해주시는데, 그 장소가 바로 브엘세바였지요.
이삭이 이곳 브엘세바에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서로 화평하기를 맹세할 때 이삭의 종들이 그곳에서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는데 이삭은 그 우물을 세바라 이름 짓습니다. 그리고 그 성읍의 이름을 브엘세바라 불렀지요.
그런데 창세기 21장에 보면 이전에 아브라함도 이곳 브엘세바에서 우물을 놓고 블레셋 왕 아비멜렉과 언약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우물을 놓고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맹세의 우물’ 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이곳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했습니다.
이처럼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었으며 우물을 통해 언약의 징표를 삼은 곳이었지요. 야곱은 바로 이러한 언약의 의미가 담긴 뜻 깊은 장소인 브엘세바에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 그리고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고하며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애굽을 향해 떠나기 전에 자신이 거하던 곳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지만 야곱은 하나님과 자신의 조상들 사이에 언약의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인 브엘세바를 택하여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과 영적인 의미에 대해 마음에 소중히 담아두고 간직했던 야곱의 신앙을 잘 알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야곱이 비록 아직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고 그래서 백퍼센트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나가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야곱은 항상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찾고 의뢰하는 사람이었지요. 또한 야곱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자신에게 주신 꿈과 비전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을 주신 후로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야곱은 자신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변함없이 마음에 담고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하신지요? 여러분도 야곱처럼 항상 마음에 아버지 하나님을 두고 의뢰하십니까? 혹시 아버지께서 주신 꿈과 비전을 의심하거나 아예 잊어버리는 일은 없었는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교회 전체적인 비전과 함께 개인적인 비전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은 이 마지막 때에 대성전을 이루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교회적인 큰 사명과 비전을 주셨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목자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영적 장수로서 장차 새예루살렘의 영광중에 거할 수 있다는 여러분 개개인적인 꿈과 비전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이러한 비전들을 얼마나 믿음과 소망 가운데 바라보며 오셨는지요? 풀이나 꽃들 중에 여러해살이식물은 겨울이 되면 잎과 줄기가 말라서 자취를 감추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살아있기에 다시 봄이 되면 무성한 가지와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웁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전들을 바라보며 나가는 과정 중에 때로는 마치 겨울을 나고 있는 풀이나 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지요.
이럴 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의심하거나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합니다. 또는 낙심하여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하고 자기 지식이나 세상의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러분 중에서는 혹여라도 이런 모습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수한 말씀을 통해 본 제단과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들으셨고,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 그 말씀이 성취되어 오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똑같이 말씀을 듣고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보았다 해서 모두가 똑같은 열매를 거두는 것은 아니지요. 과연 여러분 편에서 얼마나 말씀을 믿고 얼마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헤아려 그 뜻대로 순종하려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응답의 열매도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응답의 때와 기한이 앞당겨 질 수도 혹은 뒤로 미뤄질 수도 있으며 본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했던 열매보다 더 넘치게 받을 수도 혹은 못 미치게 받을 수도 있지요.

성도 여러분, 지금 야곱이 애굽으로 가는 데에는 아들 요셉을 보고 싶은 육적인 감정도 있었고, 그곳에서 잠시 기근의 어려움을 피해 보려는 마음도 있었다 했습니다. 애굽에 정착해 살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고 얼마 후에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지요. 어찌 보면 이 모든 것은 야곱이 아직 온전치 못했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과 자기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만이 야곱의 전부였다면 그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는 힘들었겠지요. 야곱에게 아직 온전하지 못한 가운데 나와지는 육의 모습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들어 쓰실 수 있는 큰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에 대해 흔들림 없는 신뢰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결국 응답을 받아 나가는 사람이었지요.
지금도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자신의 나갈 바를 아뢰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뜻을 알려 주십니다. 본문 2-3절에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지요.
이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아브라함과 이삭을 거쳐 야곱에게 주신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셨다” 하셨는데 ‘이상’에 대해서는 이전에 창세기 강해에서 설명을 드린 적이 있지요.
‘이상’은 1하늘의 공간 안에 3하늘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심으로 1하늘과 3하늘이 연결되면서 3하늘에서 펼쳐지는 현상을 보게 해 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물론 이상도 영안이 열려야 볼 수 있는데, 환상과는 좀 다르다 했지요.
이상은 환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의 공간을 좁게 활용하여 나타내 주시는 현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환상은 크고 넓게 보여 주시는 것이라면 이상은 작고 좁게 보여 주시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교회에 어떤 행사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본교회에 어떻게 역사해 주고 계신지 영안을 열어 그 현상들을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다면 그것은 환상을 본 것이라 말합니다. 반면에 그런 가운데서 여러분 개인에게 해당하는 내용을 보여 주시거나 들려 주셨다면 그것은 이상을 본 것이라 말할 수 있지요. 즉 이상을 통해 역사하실 때는 영의 세계의 많은 것을 보여 주시거나 느끼게 하시기보다는 주로 음성과 같은 것을 통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역사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때 이상 중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야곱에게 나타나 자신을 보이시며 음성을 들려주신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꿈을 꾸는 것과는 또 전혀 다릅니다. 이상은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꿈과는 달리 더 현실적으로 가깝게 보이고 느껴지므로 마치 실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영의 분리를 통한 역사 중에도 “이상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 있습니다.
영의 분리를 통한 역사는 꿈의 형태 또는 마음에 감동함을 입히는 형태, 그리고 환상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바로 이 환상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 중에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꿈같으면서도 꿈보다는 훨씬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질 뿐만 아니라, 마치 개인적으로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친밀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편에서는 마치 실체가 와서 여러분 앞에 보여지고 대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지요.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분리된 영이 영의 공간을 통해 여러분이 있는 곳까지 이동해서 여러분이 있는 육의 공간 안에 영의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심으로 영의 공간 안에 있는 분리된 영을 보는 현상입니다. 마치 서로 눈앞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여러분은 육의 공간에 분리된 영은 영의 공간에 각각 있는 것이지요.

이제 이어지는 4절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전에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해 가던 중에 벧엘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 곳에서도 하신 말씀을 떠오르게 하지요. 창 28:15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때 하신 약속대로 지금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에게 다시 한 번 어디를 가든지 함께 하실 것이며 결국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시며 야곱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도 알려 주시지요. 요셉을 만나서 그와 더불어 여생을 마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안후에 야곱은 드디어 애굽을 향해 출발하지요.

5-7절에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발행할 쌔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의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비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웠고 그 생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 자손들이 다 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바로가 보내준 수레는 오늘날로 말하면 이웃 나라의 대통령이 자동차나 비행기를 보내준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만큼 야곱 일가(一家)가 매우 존귀히 여김을 받고 있으며 영광스러운 대접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런데 이것도 바로 공의의 법칙대로 된 일입니다.
요셉을 통해 애굽에 먼저 심게 하셨고, 그 심은 대로 지금 거두게 하시는 것이며 또한 요셉의 형들의 회개가 있었기 때문에 공의 가운데 야곱과 그의 일족이 이러한 영광과 축복 속에 애굽으로 들어가 요셉과 상봉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제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가는 것에 대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애굽으로 가는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한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자손들과 모든 소유물을 다 이끌고 평안한 마음 가운데 갈 수가 있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가에 불과했던 야곱과 그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의 큰 민족을 이루시기 위해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섭리하셔서 마침내 든든한 기반을 바탕으로 야곱의 자손들이 번성해 갈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22년 만에 만나게 되는 야곱과 요셉의 감격적인 상봉 장면은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약속이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맺어진 하나의 계약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에서 약속한 내용을 어기게 되면 그 약속 또한 유지될 수가 없지요. 그런데 민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하신대로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는 한 번 약속하신 바에 대해 결코 변개함이 없으시며 신실히 이행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이 변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신 바를 신실히 행하시므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나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지요.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단 한 번도, 만의 하나라도 의심한다거나 하나님과의 약속을 변개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 그러면 내가 너의 길을 형통케 하겠다” 하셨으면 지금 현실은 아무리 산같은 어려움이 있다 해도 마음에 조금의 요동함도 없었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이제 다음 주면 열리게 될 뉴욕연합대성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으로 생각하면 그 짧은 준비 기간 동안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체육관에서 이와 같은 연합성회를 준비한다는 것이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지요. 더욱이 미국에 사는 여러 민족들이 함께 연합하여 하나 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그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겠다” 말씀하셨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는 사람 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지나온 연단을 거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무수히 보아왔고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나와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이 마지막 때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져 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만민의 성도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해오셨지만 우리 앞에는 더 기쁘고 행복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그 영광의 순간들을 함께 맞이하며 더욱 힘차게 달려가는 모든 만민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7-25 오전 9:38:58 Posted
2018-12-04 오후 1:48: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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