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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창세기 강해 (2000년~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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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 강해(228)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49:19-33 등록일자 2006.09.15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21절부터 28절까지 중략]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많은 주의 종들과 일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죽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다. [1992년 6월 14일 주일] 당시 저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아직 의식이 남아 있을 때, 몇몇 사람들에게 유언을 남겼었지요.
그 내용 중에 어떤 것은 기억이 나고 어떤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처럼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는 정말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이제 그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평소에는 해주지 못했던 말이라 할지라도 그때는 상대방을 위해 해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더욱이 상대방을 사랑하여 그의 영혼을 진심으로 위한다면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해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사람들에게 정말 간절하고 애타는 마음을 담아 유언을 남기게 되었지요. 어떤 분에게는 권면으로, 어떤 분에게는 책망으로, 어떤 분에게는 당부의 말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약 책망의 말을 들었던 분이라도 이후로 그 말을 명심해서 행하여 변화되었다면 그분이 그 당시에 들었던 책망은 결과적으로 너무나 큰 축복이 되었겠지요. 또 당부의 말을 들었던 분도 그 말대로 꼭 지켜 행해주었다면 더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을 것이고요.
지금 야곱이 열두 아들들에게 남기고 있는 유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들에게는 축복의 말이 나가고, 어떤 아들에게는 책망과 권면, 또는 저주의 말이 나가고 있는데, 이는 어떤 경우든 결국은 그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설령 저주의 말을 들었다 해도 본인들이 아버지 야곱의 유언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받아 행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축복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왜 자신이 그러한 저주의 말을 듣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깨달아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간다면 어찌 하나님께서도 그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저주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그에게는 그 저주의 말이 임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내용 중에 ‘레위’에게는 저주의 내용이 유언으로 나갔습니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는 말씀이었지요. 그런데 레위의 형제 시므온도 함께 이 말씀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따라서 시므온과 레위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저주의 내용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실제로 훗날 시므온과 레위 지파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간 후에도 독자적인 기업을 분배받지 못합니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 속하여 기업을 분배받는 처지가 되었고, 레위 지파도 자기 땅이 없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지요.
그러나 이처럼 두 지파의 결과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영적인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레위 지파는 비록 전국 각지에 흩어지기는 했지만 성전에서 봉사하게 되는 성스러운 직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열한 지파들이 공급해 주는 것으로 기업을 이어갈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똑같은 말씀을 받은 레위와 시므온 지파의 운명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요? 그것은 비록 똑같은 말씀을 받았다 해도 두 지파의 행함이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랐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경배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가 임하게 되지요.
이때 출 32:26에 보면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했습니다. 오직 레위 지파만이 모세 편에 섰던 것이지요.
또 민수기 25장에 보면 싯딤이라는 곳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모압 여인들과 더불어 음행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단순히 음행만 한 것이 아니라, 이방 여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제사할 때 그 자리에 함께 하여 먹고 마시며 이방신들에게 절까지 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염병이 퍼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게 되었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 선지자를 통해 민 25:4에 말씀하시기를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 하십니다. 그러자 모세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지요. 이방 우상인 바알브올에게 절하고 경배하며 그것에게 속한 사람들을 죽이라는 말입니다.
이때 바로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즉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인 비느하스가 담대히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지요. 앞장서서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이방 여인과 행음하던 이스라엘 남자를 그 여자와 함께 현장에서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치게 되지요.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민 25:11-13에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레위 지파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이지요. 이처럼 레위 지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 큰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행했던 지파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비록 야곱의 예언대로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지게 되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으로 바뀔 수가 있었지요.
결국 축복의 말씀이든, 저주의 말씀이든 자신이 그 말씀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받아서 이후로 행해 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며, 설령 저주의 말씀을 받았다 해도 본인이 어떻게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얼마든지 축복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모습이라면 저주가 그대로 임하는 것이고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의 입술의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장을 해주십니다. 삼상 3: 19에 보면 사무엘 선지자에 대해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했지요. 그러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축복권과 저주권이 있기 때문에 입술의 말 한 마디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은 입술의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입술에 함부로 저주나 축복의 말을 담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이라 인정해 주시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은 삼가 주의하며 늘 입술의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제 입술의 말이 어떻게 보장되어지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결코 함부로 입술의 말을 내지도 않지만 이제는 생각하거나 마음에 품는 것까지도 주의하지요. 혹여 어떤 분들은 ‘저주의 말은 주의해야 하지만 축복의 말은 얼마든지 해도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축복의 말 역시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축복의 말 역시 정확한 주관 가운데 내어야 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어찌 그 말이 보장되겠습니까?
물론 양 떼가 청해올 때는 그가 원하는 기도제목 대로 기도해 주기는 하지만 이때도 주관 받아 기도해 주는 것과 그냥 원하니까 해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도해 주면서도 마음에 주관이 오는 사람은 나중에 반드시 응답 받았다고 간증해 오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말 하나까지라도 모든 것을 정확히 주관받아 행해야 합니다.
그러니 육적인 정이나 욕심이 있어서도 안 되지요. 저는 기도원 원장이나 제 자녀들이라 해서 제 임의로 기도해주거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더 특별하게 기도해주지 않습니다. 기도원 원장과 자녀들도 영적인 법칙에 따라 늘 믿음과 정성을 내보이고 있으며 저도 그에 따라 정확하게 기도해 주게 되지요. 제가 만약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기도해 주고 축복을 빌어 준다면 어찌 하나님으로부터 이처럼 권능을 받고 보장받는 종이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보장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어야 하고 사사로운 정이나 욕심에 이끌려서도 안 되며 성령의 주관하심에 정확히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고 있는 내용들도 결코 야곱의 사적인 감정이나 욕심이 개입되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지요. 변화되기 전의 야곱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따라 아들들 각자가 심은 대로 행한대로 그에 합당한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단’에 대한 유언까지 살펴보았고 이제 일곱째 아들인 ‘갓’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절에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했지요. 이 갓 지파에 대해서는 모세 선지자도 신 33:20에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하여 그들이 매우 용맹스러운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시글락에 있을 때에 갓 지파의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와서 함께했는데 이때도 대상 12:8에 보면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다” 하여 갓 지파의 용맹함을 표현하고 있지요. 이처럼 용맹했던 갓 지파가 나아가 대적들과 싸워 이겼던 내용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이러한 갓 지파에 대해 야곱은 “갓은 군대의 박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예언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아셀’에 대해서는 20절에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 했지요. 아셀 지파는 특별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가나안 정복 후에 지리적으로 이상적인 지역에 정착하여 국가적인 일에 많이 관여되지 않은 채 비교적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납달리’에 대해서는 21절에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하였지요. 납달리 지파 역시 날렵한 전사에 비유되고 있는데 훗날 이 납달리 지파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여선지자 드보라를 도와 가나안 왕 야빈에게 고통받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합니다.
삿 4: 2에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했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사사기 5장에 보면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노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야곱이 납달리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 예언했던 대로 아름다운 소리가 발하여진 것이지요.

이제 ‘요셉’을 향한 유언입니다. 22-26절에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했지요.
가장 풍성하고 뛰어난 축복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실질적인 장자의 축복이 주어졌지요. 더욱이 요셉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통해 두 지파의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큰 축복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십니까? 여러분도 요셉처럼 행한다면 특히 연단의 모든 과정 가운데서 요셉처럼 믿음과 선으로 승리해 내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된 만큼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또한 여러분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되어보십시오. 그래서 늘 하나님 안에, 주님 안에 거하심으로 말씀 안에서 떠나지 마시고 단에서 흘러나오는 영생수의 말씀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먹고 마셔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영양분과 물을 풍성히 공급받아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가듯이 여러분도 반드시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들을 맺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막내 베냐민에게는 27절에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했지요. 육적인 정만을 생각한다면 야곱이 그처럼 사랑했던 베냐민에게 좀 더 좋은 축복의 말씀이 나가야 했겠지만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야곱의 입술을 통해 나가는 모든 말씀은 야곱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베냐민 지파의 호전적인 성품이 표현되어 있는데 베냐민 지파에는 유명한 궁수와 투석수가 많았지요. 또한 그들이 비록 큰 지파는 아니었지만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에 여리고, 벧엘, 기브온, 미스바, 예루살렘과 같은 중요한 성읍들을 많이 차지했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훗날 이스라엘 왕국이 남북으로 나뉘어졌을 때 유일하게 남 유다 왕국의 유다 지파와 연합하여 다윗의 왕가에 충성을 다했던 지파이지요. 신약시대에 가장 위대한 사도였던 사도 바울도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이었고요.

이렇게 해서 야곱은 열두 아들들에게 모든 유언의 말을 마친 후에,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당부합니다. 29-31절에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하지요.
자신을 약속의 땅에 있는 조상들의 매장지에 함께 장사해 달라고 말합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 아버지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 그리고 자신의 아내 레아가 장사되어 있는 곳, 일찍이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헷 사람으로부터 샀던 매장지에 자신도 장사되기를 원하고 있지요.
이는 야곱이 단순히 그 땅에 대한 육적인 정이나 미련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도 야곱은 자신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신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한번 주신 약속의 땅을 얼마나 마음에 깊이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지요. 바로 이러한 야곱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이스라엘 민족이기에 그들은 2000여 년이 지난 후에라도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나라를 세웠고 지금도 그 약속의 땅을 지키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유언을 마친 야곱은 기운이 진하여 숨을 거두게 되는데, 그가 숨을 거두기 전에 하나님 앞에 드렸던 기도의 내용이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나의 모든 삶에 있어서 내 생각대로 내가 살고자 함대로 또한 내가 원함대로 내가 갖고자 함대로 내가 취하고자 함대로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루기를 원하였으되 결국에는 그것이 아님을 느꼈고 깨우쳤으며, 정녕 나의 모든 생각과 나의 모든 마음에 있는바 욕심과 취하고자 하는 모든 마음들이 하나님 앞에 숨김이 없이 드러남으로 인하여서 깨끗함으로 나올 수가 있었고 그 마음들을 정리할 수가 있었으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요 참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내 삶을 삶에 있어서 한 순간 한 순간 모든 것이 후회 없이 살았던 것은 아니었으되, 하나님의 소중한 간섭 속에 저를 이와 같이 변화시켜 주셨고, 인도하셨으며 이제 이와 같이 많은 자손들을 이루게 하므로 그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가게 하시매 감사를 드리나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섭리 속에 있기를 원함이며 정녕 하나님의 뜻 속에서 온전한 그 길을 가기를 원함이나이다.
정녕 제가 어리석을 때에 아버지의 뜻을 거스리고자 함이 있었고 내 생각대로 이루고자 함이 있었고 내 지혜를 동원하여 이루고자 함이 있었으되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결국에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우쳤나이다.
내 하나님이시여, 정녕 내가 이와 같은 연단의 길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하나님에 대해 진정 마음에 심게 됨과 같이 저로부터 인하여서 나온 모든 자들도 하나님의 그 마음을 명심하며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자가 되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인생의 모든 삶에 있어서 폭발적인 삶과 모든 고난, 어려운 역경이 있었다 할지라도 내게 주신 은혜와 내게 주신 축복이 심히도 큼이나니 아버지여 감사를 드리나이다. 정녕 나의 하나님, 또한 내 아버지의 하나님, 또 내 할아버지의 하나님, 내 사랑의 하나님, 저를 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 곁에 있게 하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이제 저를 받아주시되 내 하나님이시여,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정녕 내가 있게 하므로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시며 이제 남은 자로 더불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되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온전히 이루실 줄 믿나이다.
저를 사랑하시어서 그 은혜 가운데 있게 하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이제는 눈물도, 마음의 아픔도, 슬픔도,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이별도, 또한 내 마음에 묻었던 모든 것들도 하나님 안에서 온전한 편안함으로 임하여짐으로 인하여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나이다.
이제 저의 이 모든 것을 인하여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것을 보게 하시고 이루게 하심에 감사하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진정 저를 사랑하시어서 그 길을 인도하시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행복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내가 있게 하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이제 다음시간에는 창세기 마지막 장인 50장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에게는 나름대로 영적인 것에 대한 사모함과 자신이 목표한 바를 꼭 이루어내는 곧은 중심 그리고 성실과 근면함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이러한 분야들이 주 안에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다면 너무나 좋은 그릇으로 쓰일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처럼 좋은 점들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자기’를 깨뜨리지 않으면 그러한 것들이 주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능력, 자기 지혜, 자기 생각, 자기 의 이러한 것들이 남아 있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무조건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될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너무나 좋은 중심과 뛰어난 점들을 가지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자기’가 강한 것도 아셨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연단하셨습니다. 야곱이 철저히 ‘자기’를 깨뜨리고 하나님 앞에 지극히 낮고 겸비해질 수 있도록 모든 환경과 여건을 주관해 가셨지요.
마침내 야곱은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고, 이러한 야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을 이루셨습니다. 야곱은 지금 임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자신이 지내왔던 날들을 회상하며 자신의 삶 가운데 섬세하게 간섭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감사의 고백을 올리고 있지요. 연단을 받던 당시에는 참으로 견디기 힘들고 막막하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그 당시를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더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려고 했던 일들, 자기가 앞서서 나가려 했던 일들, 자기가 원하고 바라던 대로 했던 일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고 그것이 결국 자신을 스스로 고통받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지요.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들이 드러나고 발견되었기에 결국 ‘자기’를 깨뜨리고 변화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고요.
그리고 그동안 이 땅에서 때로는 마음에 슬픔으로, 때로는 고통으로 때로는 아쉬움으로 묻어 두었던 모든 일들을 이제는 다 벗어내고 온전한 평안과 안식이 있는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되어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보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고 얼마나 안개와 같은 것이었는지가 마음 깊이 깨달아졌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마음에 영으로 일구었던 것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좇아 행하며 이루었던 일들만이 영원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모두도 바로 이러한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땅에서 겪어가는 모든 것들은 단지 이 땅의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결국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여러분을 가장 좋은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를 제일 잘 아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지요.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오늘도 여러분의 삶을 간섭하시며 사랑으로 인도해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입술에도 욥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는 고백이 마음 중심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정녕 정금같이 나오는 여러분이 되셔서 주님 맞이하시는 마지막 날에는 주님 품에 안겨 온전한 감사의 고백으로 올려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9-18 오전 10:35:32 Posted
2018-12-04 오후 1:48: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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