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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기도제목(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딤전 2:4 등록일자 2015.1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딤전 2:4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인간 경작 6천 년 동안 우리 하나님의 이 간절한 바람은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이 바람을 이루시기 위해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보내 오셨지요. 저와 여러분은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영혼 구원에 목말라 하시는지 압니다.
이에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해도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와 수고를 쉬어본 적이 없지요. 2016년 새해에도 이 제단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무수한 영혼을 깨워 구원으로, 진리를 아는 데로 이끌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신년 기도 제목 두 번째, ‘만민을 구원으로 이끄는 제단’이 되기 위해 우리가 행해야 할 바에 대해 증거 합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과 그 동역자들의 사역을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모든 말씀이 여러분 자신의 기도 제목이 되시기를, 그래서 만민을 구원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제단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과 믿음의 선진들의 사역을 표본으로 삼아 영혼 구원에 힘써 왔습니다. 그중 사도 바울이 세계 선교의 문을 열던 당시의 폭발적인 영혼 구원의 역사는 이 제단을 통해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지요. 즉 권세 있는 말씀 곧 성결의 복음과 놀라운 권능을 통해 많은 영혼이 구원에, 더 나아가 진리를 아는 데 이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포하는 말씀에는 권세가 따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를 만나기 전에도 철저하게 율법대로 살았고 참 진리시며 참 빛이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주의 말씀대로 더욱 거룩하게 살았지요.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주님의 뜻대로 마음에 할례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기를 힘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거룩한 삶을 살았기에 주님과 늘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그가 기도하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할 때에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고 걷는 역사, 악한 귀신이 나가는 역사도 일어났지요.

그랬기에 바울이 전도하면 우상이나 ‘사람의 지식’을 신봉하는 이방의 헬라인 중에서도 주 앞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선민이라는 자존심, 의와 틀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 중에서도 회심하고 주를 믿는 이들이 나왔지요. 이처럼 말씀의 권세는 영혼 구원에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저와 이 제단도 사도 바울이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를 힘입기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오랫동안 금식과 기도로 살았지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 결과 이 성결의 복음이 세계 각지에 선포될 때 많은 영혼들이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창조주 하나님은 누구이신지 증거 할 때 우상을 섬기던 이들과 복음을 핍박하던 이들도 주를 영접했습니다. 지식인들도 단단한 틀을 깨뜨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지요. 더 나아가 참 믿음을 갖지 못했던 목회자와 성도들이 뜨거운 눈물로 회개하고 성결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였습니다.

또 권세 있는 말씀을 보장하는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자 강퍅한 심령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 것을 보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요 4:48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 인도한 열두 번의 해외 연합 대성회는 권세 있는 말씀과 권능의 힘을 확실히 입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지요. 이 대성회들을 통해 우선 세계의 주요 거점들에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기를 꽂은 후 본 제단은 복음의 땅 끝,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이스라엘 전역에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전했습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후 지금도 영혼 구원의 사역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방 종교나 권세자들의 위협도 있었고, 끊임없이 동족 곧 다른 선교사들의 위협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사도 바울을 통해 이방 선교의 뜻을 창대히 이루셨듯이 더 많은 영혼을 구원케 하셨습니다.

바울 일행이 감옥에 갇혔을 때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미하자 뜻밖의 지진이 나서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로마로 갈 때는 바울 일행이 탄 배가 풍랑에 파선했음에도 승선한 사람들이 다 살았지요. 이 제단도 갖은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힘쓸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역사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바로 이 권세 있는 말씀 곧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의지하여 만민을 구원으로 이끌 주역들이십니다. 이처럼 제3도약기에 여러분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제단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신뢰’로서 목자와 온전히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목자에게 주신 권세 있는 말씀과 권능의 역사를 온전히 힘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바울과 신뢰로 하나 된 동역자들로 인해 복음전파 사역이 창대히 이뤄졌지요. 그런데 그 신뢰의 정도에 따라 바울에게 있는 말씀과 능력을 힘입는 정도는 각각 달랐습니다.

일례로 행 19:11-12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제단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성경의 이 기록을 믿고, 또 권능의 목자를 신뢰하는 분들이 저에게 기도 받은 손수건을 들고 세계 각지로 나가 이런 역사를 나타내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때 목자를 신뢰하여 하나 된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권능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손수건에 담긴 저의 권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일도 무한하지요. 권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만민의 성도들이 각종 기사와 표적을 보고 듣고 체험함으로써 목자와 신뢰로서 하나 되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더해 깊은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은혜의 기회들을 많이 주셨다고 하셨지요.

이는 바로 목자가 2010년 범죄한 영혼들 대신 아버지 앞에 매달리고, 2013년에는 징계의 칼을 대신 받는 모습을 지켜 본 시간들이라 하십니다. 이 시간들을 통해 목자와 같은 마음으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셨지요.

그러나 제3도약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앞둔 만큼 이제 우리 주의 종님들 또 성도님들 중에서 이런 분들이 더 많이 나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신뢰가 변함없는 온전한 신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바울과 끝까지 함께한 이들이 있었던 반면 중간에 신뢰를 저버리고 떠난 이들도 있었지요. 예를 들어 디모데나 디도는 바울을 사랑하고 신뢰했기에 어떤 일을 부탁하든지 어디를 가라 하든지 그대로 순종하며 끝까지 섬겼지요. 아들처럼 함께하면서 수종 들기도 하고, 바울이 명하는 대로 개척한 교회에 가서 목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반면 동역자들 중에는 자기 유익을 좇아 중간에 바울을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딤후 4:10 전반절을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하였고, 딤후 1:15에는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중에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느니라” 했지요.

이처럼 온전한 신뢰를 이루지 못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값진 사역에 끝까지 동참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의 온 영이나 영 몇몇 분들만으로는 전 세계와 민족을 감당할 수 없지요. 이제 여러분 모두가 저와 신뢰로 온전히 하나 되어 만민을 구원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민을 구원으로 이끄는 제단의 주역이 되시려면 둘째,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함으로서 1%의 공의를 채워야 합니다.

99%는 목자를 신뢰함으로 목자와 하나되면 자동으로 채워집니다. 남은 1%는 여러분 각자의 몫입니다. 즉 영육 간에 결여와 부족을 열심히 채우고 달란트를 계발해서 온전하고 능력 있는 영혼 구원의 도구가 되셔야 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어떻게 세공했느냐에 따라 그 빛의 아름다움이 천차만별이라고 합니다. 이런 것처럼 여러분이 빛의 열매를 맺되 영육 간에 자신을 아름답게 다듬는 만큼 그 빛은 더 찬란하게 빛납니다.

예를 들어, 손수건을 들고 세계로 나아갈 때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쌓은 만큼, 육으로도 덕스러운 언행과 교양을 갖추는 만큼 그 열매가 달라집니다. 이를 위해 기도와 금식, 부단한 노력을 쌓는 것이 바로 각자의 몫이지요.

혹시 성도님들 중에 ‘나는 주의 종도 아니고, 온 영도, 영도 아닌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신지요? 우리 제단이 만민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으려면 손수건을 들고 뛰실 분들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을 서포터 할 수 있는 조직과 일꾼들도 든든히 서야 합니다. 또한 이 사역의 본거지인 본 교회를 기둥처럼 떠받들 분들이 더 많아져야 하지요.

바울도 혼자 모든 사역을 감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 곁에는 각각의 역할대로 바울을 돕는 일꾼이 많았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디모데와 디도는 바울이 세운 교회들을 직접 돌아봐 주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고린도에서 바울이 어려울 때 큰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에베소나 로마처럼 바울이 앞으로 전도하려는 곳에 미리 가서 바울의 길을 예비하기도 했지요. 두 사람은 바울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처럼 틈틈이 선교 헌금을 보내거나 고린도의 디도유스도나 빌립보의 루디아처럼 자기 집을 교회로 쓰도록 제공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을 때 늘 찾아와 위로와 힘이 되던 오네시보로 같은 이도 있었습니다. 실라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더디오처럼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내는 심방 편지를 받아 적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디도나 더디오는 몇 주, 혹은 몇 달이 걸리는 먼 곳까지 가서 바울의 편지를 전하고 성도들의 답장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교회의 형편을 살펴서 궁금해하는 바울에게 보고해 주기도 했지요.

여러분도 목자와 신뢰로 하나 되고 여기에 더해 각자 1%의 공의까지 채운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받은 믿음과 달란트 대로 영혼 구원에 큰 힘이 되실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손수건 집회 시 찬양이나 통역, 안전을 맡는 분들이 달란트를 갈고 닦는 만큼 집회를 더 아름답게 이룰 수 있습니다. 영혼 구원의 본거지인 본 교회를 기둥처럼 든든히 받쳐 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한 교회, 금식과 기도로 밀어 주는 든든한 본부 안디옥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처럼 예를 들어 본 교회 기도 제물들이 기도의 능력을 받는 만큼 더 불같은 기도로 영혼 구원 사역을 힘껏 도울 수 있지요. 본 교회의 영혼을 갈무리하는 교구장, 지도교사, 지역장, 조장, 구역장, 회장, 기관장이라면 성실하게 기도와 심방, 전도에 힘쓰는 것이 1%의 공의를 채우는 것입니다.

교회 각 부서의 레위족이라면 영적 무장과 함께 자기 계발에 힘쓰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영육 간에 능력을 갖추는 만큼 영혼 구원 사업이 더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우리 성도님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가정과 일터에서 본분을 다하신다면 이것이 바로 1%의 공의를 쌓는 일입니다.

이렇게 각자의 몫을 다할 때 성결의 복음과 권능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세상 가운데 전파되어 만민을 구원으로 이끌게 되지요. 그러므로 각자가 채워야 할 1%를 성실로 채워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를 만나 로마 참수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영혼 구원을 위해 약 2만 Km 이상의 거리를 이동했다고 합니다. 이는 지구 둘레의 절반에 해당하는 거리입니다. 바울은 행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한 대로 참 열정적으로 살았지요.

여러분 중 많은 분들도 지금까지 저와 함께 자신보다는 영혼 구원이 먼저인 삶을 사셨습니다. 젊음, 시간, 물질, 자녀까지 드려 오셨지요. 많이 수고했으니 이제 좀 쉬엄쉬엄 할까요? 우리 만민은 사도 바울처럼 새해에도 변함없이 영혼 구원에 더욱 힘쓸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인간 경작 6천 년 중 단 1년도 의미 없는 해가 없으십니다. 해마다 구원 받은 자녀들이 나왔고, 어느 해에는 참 자녀가 나왔기 때문이지요. 성경에서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보면 로마서 16장같이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면서 일꾼과 성도들에게 문안하라고 부탁하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중 몇 절만 보면 7절에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했고 12절에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했던 바울이 그 공로를 하나하나 기억했던 소중한 이들의 이름입니다. 주님 앞에 기도할 때마다 ‘이들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시기를’ 간구했던 이름들이지요.

여러분은 천국의 생명책과 기념책에 어떤 이름으로 기록되기 원하십니까? ‘아버지 나라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했던 누구, 힘써 성도들을 돌아보고 생명 다해 교회와 목자를 지켜낸 누구, 주의 이름으로 받는 고난에 동참했던 누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마지막 때 세계를 이루는 성령의 사역을 도운 누구…’ 이렇게 하나하나 다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 모두 이런 영광의 반열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12-22 오전 9:46:41 Posted
2016-01-06 오후 2:26:2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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