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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정한 순종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빌2:6-8 등록일자 2009.04.05
부활절을 앞두고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을 맞아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진정한 순종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진정한 순종이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빌 2:6~7),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빌립보서 2장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한 대로, 예수님의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 사망으로 가던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할 수 있는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오늘날도 찾고 계시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진정한 순종’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순종’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종이 많은 일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원하는 것과 다르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맞추어 일을 해야, 진정한 순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진정한 순종을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는 온 영이 되어야 진정한 순종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온 영이 되기 전이라고 해서 진정한 순종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하면 됩니다. 다만,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에 하는 순종, 자기 의 가운데 하는 순종은 진정한 순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순종을 하셨습니다. 주어진 사명이니까 순종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순종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늘 기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기 원하지만, 때로는 순종한다 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다. 힘들게 억지로 순종할 때도 있고, 기쁨으로 순종한다고 했는데 막상 결과를 보면 불순종한 경우도 있습니다. 순종하겠다는 의욕만 가지고는 진정한 순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진정한 순종을 하려면, 먼저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마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진정한 순종을 하려면

1) 내 안에 자기는 없고 아버지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순종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일의 결과를 보면, 오히려 불순종이 되어버린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내 안에 ‘자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 일을 할 때에 내 생각, 내 지혜, 내 방법을 동원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하면서, 막상 일을 할 때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이건 이래서 이렇게 했고, 저것은 저래서 이렇게 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말합니다. 자신은 분명 말씀대로 순종해서 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깨닫지도 못하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뜻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인정받지 못하면,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이처럼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나는 이렇게 믿음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제단의 양 떼이고, 이렇게 사명도 맡아 열심히 감당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하고 생각하며 안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자기 보기에 순종일 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온전한 순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마음 안에 오직 아버지만 있으셨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대로만 행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에도 늘 기도하기를 힘쓰시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사역을 이루실 때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정확히 맞도록 순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스가랴 9장 9절에 보면,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하여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그대로 행하여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 2~3절에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6~7절에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자들이 ‘주인이 값도 받지 않고 그냥 내줄 리가 있나?’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는 ‘예수님의 위신이 있지 어떻게 나귀 새끼를 타시게 한단 말인가?’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예수님, 저희가 가서 좋은 말을 한 필 구해 오겠습니다”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랬다면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온전히 이뤄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왕들처럼 높임 받고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섬기기 위해 오셨고, 이를 나타내시기 위해 나귀 새끼를 탄 것입니다. 마태복음 21장 4절에도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신 이유에 대해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여, 십자가 구속의 섭리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셨던 것입니다.

2) 조건을 따지지 않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조건을 따지는 사람은 이유와 핑계를 댑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면 순종하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욕심과 사심에 따라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택하고, 상황에 따라 태도가 언제든지 변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순종은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처한 상황이나 현실에 따라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고, 어떤 변명과 이유도 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상황이라 해도 무조건 ‘네’와 ‘아멘’만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나와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하지만, 자신이 원하던 답을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는 답을 듣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했습니다. 비록 그 청년이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다 해도, 그는 처음부터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선까지만 순종할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한계선을 넘는 상황이 되자 진정한 순종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진정 순종할 마음이었다면, 자신이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답을 들었다 해도 기쁨으로 끝까지 순종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순종한다고 하는 것이 어떤 명예나 권세 또는 자기적인 열매를 얻기 위한 것은 아닌지’, ‘정녕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끝까지 순종할 수 있는지’, ‘내 생각과 조건에 맞는 일에만 ‘아멘’ 하고 있지는 않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어떤 영광도 구하지 않으셨고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순종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늘 보좌를 뒤로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 취급을 받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순종하셨는데, 하물며 우리가 어찌 조건을 따져가며 순종하겠습니까?

3) 영적인 사랑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위험에 처한 자녀를 위해 부모가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 불 가운데로 뛰어들기도 하고, 물 가운데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한다면 자기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던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도망갔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끝까지 그 곁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을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너무나 사랑하셨기에 아버지를 믿으셨고, 장차 천국에서 아버지와 함께 영원히 누릴 영광의 날들을 소망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천국에서 함께할 날들을 소망하게 되고, 뭐든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생명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39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고백했습니다. 진정한 순종은 이처럼 진한 영적인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께서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 구속의 사역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진정한 순종을 할 자가 누구인가’ 찾고 계십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아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09-04-06 오후 7:27:09 Posted
2018-03-15 오전 11:16:3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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