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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 27] 죄는 자기 영혼을 망하게 하기에

날짜 2011년 4월 22일 금요일 출처 크리스챤 신문 조회수 1671
뉴스▲ 불을 품으면 화상을 당하듯이 죄를 짓는 사람은 일러스트 ㅣ 김동호


1.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사람이 불을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잠 6:27-28)

사람이 불을 품고 있으면 옷이 탈 수밖에 없고 이글거리는 숯불을 밟으면 발에 화상을 입게 됩니다. 아픔과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불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사람이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면 고통과 슬픔이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일에 예배를 빠지는 것이나 매일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를 쉬는 것도 불을 품은 것과 같습니다. 마귀에게 빈틈을 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쯤 예배를 빠지는 것이 무슨 큰 일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번이 두 번 되고, 세 번이 되니 시간이 지나면 주일 성수를 하지 않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또 기도를 하지 않으면 세상의 죄,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기도를 매일 습관처럼 하던 사람이 기도를 한 번 두 번 쉬게 되면 세상 유혹이 틈탑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위로부터 능력이 오지 않기에 세상을 이길 만한 힘이 없습니다. 어둠이 사로잡아 사망의 길로 끌어가고 결국 마귀의 먹잇감이 됩니다. 이럴 때 몸에 질병이 틈타고 가정이나 직장 등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하여 원수 마귀 사단에게 한 치의 빈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매사에 빈틈을 준 적이 없고 모든 일을 정확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여러 가지로 빈틈이 있었지요. 주님이 잡히시던 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할 때 제자들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하와도 에덴동산에서 빈틈을 내 주었기에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렇게 빈틈이 있으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쉬고 싶을 때나 괴로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빈틈을 주지 않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전문가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하지만 결과가 좋으면 지난 힘든 일들은 다 잊어버립니다. 달리기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 힘든 훈련받았다 할지라도 다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전혀 힘들지 않은 때가 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한 마음이 되면 위로부터 능력이 임하므로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잠을 조금만 자고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을 신속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악을 행하면 숯불을 밟은 것처럼 큰 고통을 얻게 될 뿐 아니라 구원받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간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공의의 하나님이 항상 지켜보실 뿐 아니라 원수 마귀도 사냥감을 노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그 순간은 넘어간 것 같아도 반드시 보응이 따르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2. 여자의 옷자락만 만져도 죄가 되기에

6장 29절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남의 아내와 통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가 되며 나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가정이 파괴될 수 있으며 가족들은 큰 상처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간통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상대의 입장은 생각하지도 않는 무례한 사람이며, 추하고 무지하며 악이 가득하여 멸망을 자초하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진리 안에 살아가는 것이 곧 아내와 남편이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진리를 벗어나 어둠 속에 살면 남편이나 아내가 자기 위치를 떠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사망의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부른다고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가 천국에 들어가리라. 이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나는 너를 모른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남편이 다른 여인과 통간한다면 아내의 심적 고통이 얼마나 크겠으며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내가 다른 남자와 통간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리에서 떠나 빛 가운데 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바로 세상과 통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이는 신랑 되신 주님을 배신하는 것이므로 엄청난 죄를 짓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적으로 주님의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은 흠도 티도 없는 거룩하신 분이니 신부인 우리는 어둠과 짝하지 않아야 하며 진리인 빛의 세계로 나와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마귀의 사냥감이 되고 시험과 환난과 질병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자가 통간하여 남편을 배신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님 자녀가 죄를 지어 예수 신랑을 배신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비진리를 행할 때 신랑되신 주님이 얼마나 고통을 많이 받으시는지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남자가 여자를 만지기만 해도 죄가 된다고 하셨으니 간음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라고 못을 박고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일상 생활 속에 우리는 말 한마디와 행실 하나하나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녀 사이에 특히 언행을 조심하므로 간음하는 마음이 아니라 깨끗하고 정결하게 대해야 할 것입니다.


3. 죄를 지으면 예수 신랑을 배신한 것과 같아

6장 30-32절에 "도적이 만일 주릴 때에 배를 채우려고 도적질하면 사람이 그를 멸시치는 아니하려니와 들키면 칠 배를 갚아야 하리니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것을 다 내어 주게 되리라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도적질했다면 얼마나 사정이 딱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불쌍한 처지라도 들키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배가 고파 도적질한 것은 동정을 받을 여지가 있어 멸시를 당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죄에 대한 벌을 받습니다. 하물며 통간한 경우에 얼마나 큰 형벌을 받아야 할지를 비교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와 악은 변명이 필요 없이 다 버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7은 완전수입니다. 따라서 칠 배를 갚아야 한다는 것은 상대가 요구하는 대로 다 갚아줘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지으면 자기 영혼까지 망하게 될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죄에서 떠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아직 악의 모양이 있어도 구원은 받을 수 있습니다. 믿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는 믿음의 행진을 할 수 있는 것이며 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거꾸로 퇴보하는 사람은 구원받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덥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람은 버림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계 3:15). 데살로니가전서 5:19에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았을지라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소멸되면 자동적으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집니다(출 32:33, 계 3:5).

부부가 타인과 간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죄를 지은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그 죄를 따지자고 한다면 상함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함 받는다는 것은 들켰을 때의 과정을 말해줍니다. 들키지 않았어도 죄를 짓고 있기에 그에 따른 어려움과 고통을 겪습니다. 들킬 경우엔 상함과 능욕을 받고 또한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이제는 죄 없다고 인정해주실 때에는 모든 것이 회복되겠지만 세상에서는 부끄러움과 수치와 죄로 남습니다.

본문은 간음이라는 한 예를 들어 모든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게 됩니다. 비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이렇게 간음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34-35절에 "그 남편이 투기함으로 분노하여 원수를 갚는 날에 용서하지 아니하고 아무 벌금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많은 선물을 줄지라도 듣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여자는 남편의 많은 것을 용납하며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입니다. 남자는 외도를 해도 약간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지나가지만 아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용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아내를 때리거나 죽이고 싶도록 미워합니다. 아내도 그런 마음을 충분히 가질 수 있지만 연약한 입장이기에 참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일수록 용서해야 할 것이고 그런 일 자체가 있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아내가 외도를 했을 때 남편이 용서해 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간음하며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적국의 포로로 잡혀가게 하거나 연단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는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과 주님께서 어떤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안다면 결코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거나 세상과 짝하며 간음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011년 04월 22일 (금) 09:57:40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