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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25]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2) [본문: 잠 6:18-19]

날짜 2011년 4월 8일 금요일 출처 크리스챤 신문 조회수 1627
뉴스▲ 자신을 위해 수금을 연주하던 다윗에게 단창을 던진 사울 / 일러스트 김동호


4.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에스더에 나오는 하만도 악한 궤계를 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이 하만을 총리대신으로 삼자 모든 신하가 그 앞에 꿇어 절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하만 앞에 꿇지도 않고, 절을 하지도 않자 분노한 하만은 모르드개와 그의 동족인 유다인들까지 모두 죽이고자 궤계를 짰습니다.

그는 왕에게 전국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진멸하고 재산을 탈취한다는 내용의 조서를 받아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단지 자기에게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앙심을 품고 수많은 사람의 피를 흘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 집에다 높은 나무를 세우고 모르드개를 매어 달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왕후 에스더와 온 유다인들이 금식하며 간구하니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모르드개를 매어달려고 만들어 놓은 나무에 하만이 달렸고 왕이 조서를 보내어 유다인들을 보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이나 큰 일, 선이나 악 등 모든 것을 감찰하는 분입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선을 좇아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시며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셨고 선한 일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서기관 등 악한 사람들은 시기 질투하여 예수님을 잡아넣고자 기회만 엿보았습니다. 선한 사람들은 이방인일지라도 예수님께 나와 인생의 근본 문제를 질문했으며 말씀을 듣고자, 혹은 치료를 받고자 찾아왔습니다. 백부장은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려고 찾아왔고,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딸을 고침받고자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선한 사람은 옳은 일을 보면 그것을 배우려고 하지만 악인은 옳은 일을 보아도 자기 감정에 맞지 않으면 계교를 꾸밉니다. 어찌하든지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따라다니면서 꼬투리를 잡고자 했으며 계교를 부렸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시기 질투로, 혹은 자기 유익이나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악한 계교를 꾸며 상대를 모함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5.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발이 신속히 악으로 달려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인이나 사울, 이세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발이 빨리 악으로 달려가서 혈기나 모략으로 악의 계교가 나타납니다.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빨리 악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살전 5:22) 더럽고 추한 행동이 나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위하여 수금을 타고 있는데 사울이 갑자기 단창을 들어 다윗을 향해 던지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히고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또 나봇이 이세벨의 계교로 죽임을 당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있는 악이 상대를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악을 행하여 당장은 어떤 유익을 얻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썩게 되고 엄청난 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행한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6.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비류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내세워 악한 계교를 꾸몄습니다. 비루는 건달이나 깡패를 말합니다.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왕상 21:13)

비류 두 사람은 무죄한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거짓 증인으로 섰으니 이 얼마나 악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까? 망령된 증인으로 섰으니 참으로 짐승만도 못하고,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런 악한 일을 시킨 이세벨과 다름없이 큰 죄를 저지른 것이지요. 출애굽기 23장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고 했습니다. 무함이란 없는 일을 꾸며 함정에 몰아넣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거짓된 증인이 얼마나 악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생활 속에서 거짓 증인은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명목상은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상대를 위하여 진실을 알려주지 않고 얼버무리거나, 잘못 말을 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또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망령된 증인에 해당합니다. 또 조직이나 일상 생활 속에서 거짓 증인에 해당하는 일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이 결과적으로 손해를 끼치거나 불리하게 돌아갈 때 자신은 슬그머니 발을 빼며 뒤로 물러나거나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척하는 경우입니다.

성경에는 망령된 증인에 대한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였는지라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마 26:48-49)

가롯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사랑한다는 표시로 입을 맞추었으니 이 얼마나 추하고 간사한 입맞춤입니까? 예수님을 팔기 위해 입을 맞춘 것입니다. 예수님을 팔고자 작정했으니 입을 맞추지나 말았어야 하지요. 참으로 가롯 유다가 얼마나 망령된 증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솔직하고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지 않을 때 엉뚱한 제삼자가 피해를 입기도 하며,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니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가 속출하기도 합니다.


7.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형제와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것은 싸움을 붙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윗왕의 아들인 압살롬은 백성들을 왕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이간질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백성에게는 '너는 참 억울한 일을 겪고 있지만 왕은 너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내가 왕이라면 네 문제를 잘 해결해 주고 행복하게 해 줄 텐데....' 라고 친절하게 말했지요. 이렇게 하기를 4년 만에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백성들의 마음이 다 압살롬에게로 갔던 것입니다(삼하 15:1-13).

동서고금 역사를 보면 이간질해서 큰 일을 망쳐놓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중국과 겨루던 강한 나라였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나 당나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왔을 때에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활약한 지략가가 을지문덕과 연개소문입니다.

그런데 연개소문이 죽은 뒤에 아들들 사이에 불화가 생겼습니다.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 남생이 아버지의 직책을 계승하였는데 여러 성을 순찰하면서 아우 남건과 남산에게 내정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이간시키고자 어떤 사람이 계획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남건과 남산을 찾아와 "당신들의 형인 남생이 당신들을 귀찮게 여긴 나머지 해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 그러니 빨리 대책을 세우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놀라서 그럴 리가 없다고 정색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혹시 그럴 수도 있다고 의심이 생기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한편 지방 순찰을 하고 있던 남생에게 어떤 사람이 와서 은밀히 말했습니다. "당신의 동생들이 당신 자리를 탐내 음모를 꾸민다고 하니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생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음모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서 비밀 사절을 보냈습니다.

남건과 남산은 형이 보낸 이들을 잡아두고 군사를 보내 남생을 잡아 오라고 명령합니다. 이를 알아챈 남생은 당나라로 피신을 했지요. 당나라 고종은 고구려를 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차에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남생을 현도군의 장군으로 명하여 고구려를 침략했습니다. 전쟁 2년 만에 신라까지 합병하여 평양성을 에워싸니 한 달 만에 고구려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이간시키는 일은 조선왕조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고 피를 흘리는 역사가 반복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중상하고 수군거리는 것이 다 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진리만, 좋은 말만 전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말을 상대에게 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간이 되기에 큰 문제를 일으킵니다.

자칫 시험에 들기도 하며 교회를 떠나는 일도 생깁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의 모임이나 선교회 조직에서 새신자가 왔을 때 도움이 되고자 했던 말이 오히려 말을 잘못 전하여 실족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해야 할 말이 있고, 전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가 받지 못하면 찌름이 되므로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2011년 04월 08일 (금) 10:04:39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