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목표 :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선의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날이 갈수록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빈곤해져 갑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 간에 훈훈한 정이 오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자신의 삶에만 급급할 뿐 다른 사람에게는 무관심하지요. 자기 유익을 위해 상대가 어떤 해를 입어도 상관치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1. 죄로 인해 극심한 가뭄을 겪게 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아합 왕이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멀리하자 백성들도 따라서 우상을 숭배하며 온갖 죄를 행했습니다. 열왕기상 16장 30절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 나오지요. 이는 아합 왕이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역대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가정과 일터, 사업터 그리고 국가적으로 왜 시험 환난이 오는가 하는 점입니다. 집안의 가장이나 기업의 머리가 바로 서지 못하면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지요. 국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재앙을 내리시기 전, 엘리야를 통해 아합 왕에게 예언하게 하십니다. 즉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였지요. 비를 내리지 않음으로 아합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섬겼던 풍요와 비의 신인 바알이 헛된 우상임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지요.
그런데 아합 왕은 회개는커녕 하나님의 뜻을 전한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지요. 극심한 가뭄으로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과부에게 “내가 내 종 엘리야를 보낼 테니 이렇게 공궤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인의 마음을 주관하여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시겠다는 뜻이지요.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선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2.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
엘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된 그릇이었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을 받을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종이었지요. 그래서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숭배하던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수백 명을 모으고 단신으로 대결하였습니다. 단에 번제물을 놓은 후 각자 섬기는 신에게 기도하여 어떤 신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우는가 하는 것으로 참 신을 가리고자 했지요. 결국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아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참 신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엘리야이기에 까마귀를 통해서도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고,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사르밧에 이른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합니다. 이때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향해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부탁하지요.
오랜 가뭄으로 물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음식까지 달라고 하니 참으로 염치없는 부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조금도 화를 내거나 감정 상해 한 것이 아니라, 엘리야를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히 여기며 설명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하지요.
즉 엘리야가 여인에게 구한 것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양식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엘리야처럼 사르밧 과부에게 부탁을 하러 갔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면 그 남은 음식을 달라고 하는 자체가 얼마나 민망하겠습니까. 만일 엘리야가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여 사르밧 과부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그 여인의 선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드러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에게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합니다. 금덩이를 가지고 와도 곡식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가뭄 속에서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만큼 남은 곡식을 달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엘리야의 요청에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만일 자기 말대로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왜 나처럼 가난한 과부에게 양식을 달라고 청할까?’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즉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고 마음이 선한지를 알 수 있지요.
3.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마음 중심을 아셨기에 많은 사람 중에 사르밧 과부를 통해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그런데 아무나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여인의 마음이 선하고 또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기에 그 믿음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축복을 받게 된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지요.
열왕기상 17장 15~16절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하였습니다. 즉 극심한 가뭄이 다할 때까지 조금도 양식을 걱정하지 않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르밧 과부의 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베풀어졌다는 점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이 같은 선의 행함을 보일 만한 중심이었지만 상대가 엘리야였기에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기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엘리야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엘리야를 먹이실 수 있었지만 사르밧 과부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하나님의 보장받는 엘리야를 여인에게 보내셨습니다.
만약 과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이기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엘리야의 말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상대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순종이 나올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달라는 대로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가 한 쪽뿐인 콩을 다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고, 달라 하지 않아도 마음에 주관받을 때에 그대로 순종하여 줄 수 있는 선한 마음의 행함인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와 같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마지막 양식으로 다른 사람을 공궤할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의 마음만으로는 축복해 주실 수 없기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마음의 선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마음에 참된 선을 이루며 그 선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아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역대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심히 악을 행했던 왕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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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르밧 과부는 어떠한 마음을 지녔기에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양식을 선지자에게 공궤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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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르밧 과부가 마지막으로 먹고 죽을 양식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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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엘리야를 먹이실 수 있었는데 왜 유독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셨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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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책자 279~30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적인 의미의 우상’과 ‘영적인 의미의 우상’
육적인 의미의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낸 것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형상을 말한다. 나무, 돌, 쇠붙이, 금, 은 등으로 사람, 짐승, 곤충, 새, 물고기, 해, 달, 별 등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자기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혹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영적인 우상이 된다. 또한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곧 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