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5
제11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2)
에베소서 6:10~18
읽을말씀 : 에베소서 6:10~1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6:14 ㅣ 참고 말씀: 골로새서 3:8~10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힘 있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13절)
앞서 에베소서 6장 10~12절을 통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하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악한 날에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대적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악한 날’이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이 땅에서 어두움을 주관해 가는 날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 잡은 그날부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자신들이 주관하는 악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더욱 악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더욱 깨어 근신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일을 행한 후에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하나님의 자녀들이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고 이기며 행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죄와 싸워 이김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어두움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며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생명 다해 감당해야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취해 나가야 할까요?
2.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라(14절)
먼저, 에베소서 6장 14절 전반절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하십니다. 여기서 ‘허리’는 우리 인체에 있어서 몸을 지탱해 주는 주축과 같은 역할을 하므로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허리에 띠를 하면 허리를 든든히 받쳐 주고 붙잡아 주므로 모든 행동이나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안정감을 주지요.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한다는 것은 마치 육중한 집을 떠받쳐 줄 주초를 든든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4:6),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의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임과 동시에 모든 신앙생활에 활력을 공급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반석 위에 굳게 서는 것일까요? 바로 말씀 위에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으면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함에 있어 우선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능력을 받으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영적인 힘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6장 14절 후반절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흉배’란 가슴 부위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가슴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가 필요하지요.
그러면 의로써 흉배를 삼으라고 하셨는데 과연 ‘의’는 무엇일까요? ‘의’란 하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롬 10:10).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할례하여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행할 때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롬 2:13).
따라서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의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를 행해야 하지요. 행함 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의가 없이는 자신을 지킬 수도, 어두움을 물리칠 수도 없습니다.
‘의의 흉배’는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는 말씀과도 짝을 이룹니다(잠 4:23).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슴은 곧 마음을 나타냅니다. 온몸에 생명과 일체인 피를 공급해 주는 것이 심장이고, 이 심장은 가슴에 있지요. 따라서 흉배로 가슴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의 근원이 있는 마음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며,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의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이때 영에 속한 진리의 마음을 좇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반면, 어두움에 속한 비진리를 좇는 사람은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롬 6:23). 여기서 생명의 근원이 나는 마음이란 영의 마음 곧 진리에 속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벗고 마음을 영으로 일궈 어두움의 세력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겉으로 행함이 있어도 정작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영으로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사단과의 싸움에서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입고 그 위에 또다시 흉배를 대어 가슴을 보호하듯이 우리 역시 의의 흉배를 가슴에 붙여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15절)
출애굽기 3장 5절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말씀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그 땅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더러운 곳은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인생의 마음이지만, 행위적으로 볼 때는 각종 더러운 것을 밟고 다니는 우리의 발이요, 신발이지요.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신을 신고는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므로, 그에게 나아가는 자는 깨끗하고 거룩해야 함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 안에 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는 말씀에 앞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설명한 것은, 세상에 있을 때 신었던 죄악의 더러운 신을 벗어 버려야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 하는데(골 3:8~10) 이것이 곧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을 신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는 주일을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안식일이라 한 것처럼 복음 역시 우리들에게 평안을 준다는 의미에서 평안의 복음이라 한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역경과 어려움이 따르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러나 복음으로 신을 신은 사람, 즉 진리 안에서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갈 수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평안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세상적인 평안함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넘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평안의 복음으로 신을 신어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기만 한다면 아무 문제될 것 없지요. 가시나 돌이 해할 수 없고 어떠한 길이든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안의 복음은 자신의 더러운 신을 벗고 복음으로 새롭게 신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예비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안의 복음의 예비된 것으로 신을 신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서 그들도 함께 신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의 흉배를 붙이라”는 것은 마음에 믿는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 마음에 ( )를 이루라는 것이다.
2.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곧 ( )를 상징하는 반석 위에 굳게 서라는 뜻이다.
3. 왜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하지 않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반석’
이스라엘 지역에서 반석은 종종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거나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피난처가 된다. 구약에서는 피난처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기도 했다(신 32:4, 시 18:2, 71:3).
신약에서는 구원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칭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말씀이시며(요 1:14), 마태복음 7장 24~25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그 주초를 반석 위에 지은 사람이라고 비유하신 내용도 결국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믿음의 분량이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반석에 섰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