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7
제20과일어나 뛰고 걸으며
마가복음 2:3~12
읽을말씀 : 마가복음 2:3~12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12 l 참고 말씀: 출애굽기 15:26
교육목표 :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처럼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세움으로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중풍병자는 이 소식을 듣고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요. 친구들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은 했지만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치료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을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믿음의 받침대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아야
우리가 응답받고 문제 해결받으려면 눈에 보이는 믿음의 받침대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짓고자 할 때 말로만 ‘아멘 믿습니다.’ 고백한다고 집이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땅을 파고 기초석을 놓듯이, 응답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받침대를 보시고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식적으로 믿는 것을 눈에 보여지도록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이 곧 믿음의 받침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단순히 예수님 앞에 나간 것만이 아닙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믿고 겸비한 자세와 적극적인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때 “여기 중환자가 있으니 길 좀 비켜 주세요.”라고 얼마나 외쳤겠습니까.
그런데도 되지 않자 ‘안 되겠다. 다음에 기도받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기 위한 최후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 광경을 보고 웃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가 치료만 받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지요. 치료만 된다면 집은 얼마든지 더 좋게 수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행함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아팠을 때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아파서 교회에 못 나갑니다.’ 하지는 않았는지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다 인정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치료와 응답이 임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우선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에 있는 질병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셨지요. 이처럼 질병은 죄로 인한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지요. 죄를 짓던 사람이 이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내 딸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바로 응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극과 플러스극이 만날 때 불꽃이 튀고 전깃불이 들어오듯이, 우리 믿음의 받침대 위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주실 때라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병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서기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뻐하기는커녕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쳐 준 후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중풍병자는 즉시 일어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갑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보장하신다는 증거이지요. 그가 치료되었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셨지요. 장애로 그동안 불행하게 살아왔다 해도 더는 불행하게 살기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시험 환난에 놓여 있기를 원치 않으시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주기 원하시며, 장래에 소망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처럼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준비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지식적으로 믿는 것을 눈에 보여지도록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이 곧 ( )를 세우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59~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막 2:1).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의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
교육목표 :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처럼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세움으로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와 친구들
가버나움에 한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이 심해 남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날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라는 분이 걷지 못하던 사람을 일으키고 귀신을 쫓아내며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지요.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도 그분을 만나 치료받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중풍병자는 이 소식을 듣고 친구들에게 자신을 예수님 앞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지요. 친구들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은 했지만 어찌나 사람들이 많은지 그 인파를 뚫고 예수님 앞까지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다면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통 가옥은 집 옆으로 계단이 있어 지붕에 쉽게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지붕은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덮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지붕을 벗겨낼 수 있었지요.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중풍병자는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행함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겸비함으로 자신을 낮출 때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습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여, 제가 움직일 수가 없어 예수님께 나가지 못하는 거 아시지요? 그러니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했다면 치료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치료받기 위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의 행함을 내보였지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 역시 믿음이 있었기에 중풍병자를 위해 남의 집 지붕을 뜯어 가면서까지 도와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믿음의 받침대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아야
우리가 응답받고 문제 해결받으려면 눈에 보이는 믿음의 받침대를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짓고자 할 때 말로만 ‘아멘 믿습니다.’ 고백한다고 집이 지어지지는 않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땅을 파고 기초석을 놓듯이, 응답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받침대를 보시고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식적으로 믿는 것을 눈에 보여지도록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이 곧 믿음의 받침대를 세우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단순히 예수님 앞에 나간 것만이 아닙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믿고 겸비한 자세와 적극적인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때 “여기 중환자가 있으니 길 좀 비켜 주세요.”라고 얼마나 외쳤겠습니까.
그런데도 되지 않자 ‘안 되겠다. 다음에 기도받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기 위한 최후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 광경을 보고 웃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을 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가 치료만 받는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니지요. 치료만 된다면 집은 얼마든지 더 좋게 수리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행함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아팠을 때 ‘마음은 원이로되 몸이 아파서 교회에 못 나갑니다.’ 하지는 않았는지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다 인정해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치료와 응답이 임해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병을 치료받으려면 우선 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란 이 세상에 있는 질병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에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셨지요. 이처럼 질병은 죄로 인한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먼저 죄 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 사함을 받으려면 반드시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지요. 죄를 짓던 사람이 이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미워하던 사람이 미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내 아들아, 내 딸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바로 응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극과 플러스극이 만날 때 불꽃이 튀고 전깃불이 들어오듯이, 우리 믿음의 받침대 위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주실 때라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권능으로 일어나 걷게 된 중풍병자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서기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뻐하기는커녕 속으로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율법의 틀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예수님을 판단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쳐 준 후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중풍병자는 즉시 일어나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기 침상을 가지고 걸어나갑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보장하신다는 증거이지요. 그가 치료되었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셨지요. 장애로 그동안 불행하게 살아왔다 해도 더는 불행하게 살기 원치 않으십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시험 환난에 놓여 있기를 원치 않으시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주기 원하시며, 장래에 소망을 주기 원하십니다. 이처럼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믿음의 받침대를 준비하여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지식적으로 믿는 것을 눈에 보여지도록 하나님 앞에 행하는 것이 곧 ( )를 세우는 것이다.
2.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기 전에 먼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권능 책자 159~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있는 가버나움은 성경에 ‘본 동네’라고도 불렸다(마 9:1, 막 2:1).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이곳을 근거지로 사역하셨으며 이곳에는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여기서 근무하던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의 하인의 병을 즉시 고쳐 주셨다. 또 열병으로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와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중풍병자와 많은 병자를 치료하셨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을 베푸셨지만 가버나움 사람들은 회개치 않으므로 소돔 땅이 이곳보다 더 견디기 쉬우리라는 심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