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0
제15과부활
사도행전 1:11
읽을말씀 : 사도행전 1:11 | 외울말씀 : 로마서 10:9 l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마음에 믿음으로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게 한다.
주님의 부활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에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굳건한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그날을 더욱 사모하며 성결과 충성에 힘쓸 수도 있지요. 부활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변화된 삶을 살며, 주님의 부활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도한 제자들도 담대히 주님의 증인 된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온전히 믿을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타협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요. 그러면 부활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이 희생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기쁘고 즐거운 사건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했습니다(고전 15:19).
이 말씀대로 만약 부활이 없고 이 땅의 삶으로 끝난다면 우리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은 반드시 있고 내세는 분명히 있습니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가 가장 복 받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부활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죽음이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도 부활의 영광으로 나오시기 위해 먼저 죽음에 이르셔야 했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죽음을 맞으셔야 했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삶을 사셨지요. 죽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내어주는 희생의 삶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자체부터가 피조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이셨습니다.
또한 사역을 이루시는 동안에는 제대로 주무실 시간도, 잡수실 시간도, 잠시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도 없으셨습니다. 결국 마지막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내어주시며 자신이 주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하셨지요.
이처럼 영광의 부활이 있기까지 그 이면에는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을 생각할 때마다 이러한 주님의 희생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럴 때 부활의 의미와 가치 또한 더욱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할 것 다 취하며,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산다면 무엇을 희생했다 말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힘들게 억지로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희생하는 만큼 장차 영원한 삶이 주어지는 천국에서는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상급과 영광이 주어집니다.
둘째, 부활로 인해 영원한 삶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도했습니다. 제자들이 며칠 전에 뵈었던 예수님은 극악무도한 자들의 채찍질에 살갗이 엉망이 되고, 머리에는 날카롭고 뾰쪽한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두 손과 발에는 큰 못이 박혀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한 야윈 몸은, 앙상한 뼈에 가죽만 덮인 듯하였지요.
이러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으시다가 결국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럼에도 한 군병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와 물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세마포에 싸여 새로 판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도무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는 완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제자들 앞에 부활체의 몸을 입고 나타나 대화를 나누셨지요.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 보라 하셨고, 제자들과 구운 생선도 함께 드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본 제자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단 하나뿐인 목숨을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다 바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이제 자연히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지요. 제자들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 역시 부활과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셨던 고난의 길을 따랐지요.
맹수의 밥이 되는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품에 꼭 안긴 어린 자녀에게 “우리 곧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을 피해 평생 햇빛을 직접 보지 못하고 지하 묘지 카타콤에 숨어 살면서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슴 벅찬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먼저 잠든 가족을 그 지하 무덤에 장사하면서도 영원히 이별이 없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다졌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는 살아서 주님을 맞을 소망 가운데 오늘도 주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섭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점을 찍은 사건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3~14절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원의 도가 완성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도가 완성될 수 없었고, 우리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채로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아무 죄 없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요.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고는 결코 구원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기 시작할 당시를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의 중요한 핵심이 바로 ‘부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를 선택할 때 제자 된 자의 사명이 바로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지요. 사도행전 1장 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믿음의 굳건한 토대 위에 세워진 부활의 종교입니다. 만약 주를 믿는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서 영원히 천국 영광을 누릴 소망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게 말씀대로 살겠습니까? 부활의 소망이 있기때문에 세상에 미련 두지 않고, 어떤 핍박이나 환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 다해 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지요.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통해 얻기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장차 새 예루살렘으로 이끌어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하며 마음에 품으신 섭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변화된 삶을 살아가심으로 영광스러운 부활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주님의 부활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① 부활이 ( )의 대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② 부활로 인해 ( ) 삶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③ 부활을 통해 아버지의 ( )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 사람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부활을 직접 목격한 후 제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영적인 부활’이란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