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6
제26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