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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1-12-31 제53과팔복(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0~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5:10~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10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0:30
교육목표 : 주님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하늘의 큰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에 핍박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해 핍박받는 것이 참되고 영원한 복이라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0장 30절에는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에 대해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와 선과 빛을 좇아 살아갈 때 받는 핍박을,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하신 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거나 애매히 핍박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면 왜 주님을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이는 물과 기름이 하나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합니다(요일 1:5).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엡 6:12).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은 빛의 자녀들을 싫어하지요. 빛을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빛이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영역이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주를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시작하면 여러 모양으로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기 전에는 친구들과 만나면 술도 마시고 비진리의 말과 행동으로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술도 끊고 거룩하게 행동하려고 하니까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싫은 소리를 듣게 되지요.
   주일에 직장에서 친목회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회사생활 하면 승진하기 어렵다.”며 압박을 가하지요.
   복음화 되지 않은 가정에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핍박을 합니다. 또 남들은 적당히 속이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하니, 속여서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윗사람이 있을 때는 섬기고 비위를 맞추다가도, 자리를 비우면 험담하고 자기 유익에 따라 잘 변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진실히 행하고 자기의 유익에 따라 변하지 않지요.
   처음에는 이런 경우들이 핍박거리가 될 수 있지만, 결국은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을 봅니다. 선과 사랑으로 승리해 가기 때문에 핍박이 물러갈 수밖에 없지요. 핍박을 이겨 나감으로 믿음이 더 장성해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으니 영육 간에 축복인 것입니다.
   
   2) 자신의 잘못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핍박받는 경우
   의를 행함으로 핍박받는 경우 외에 지혜가 부족하거나 본인의 잘못으로 핍박받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해서, 주변에 덕이 되지 못해 욕을 먹거나 어려움을 겪는 일도 발생하지요.
   가령, 여 성도님이 게을러서 집 안 청소나 식사 준비를 해 놓지 않고, 교회 일로 바쁘다면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때 집 안을 돌보지 못한 것이 문제인데 정작 핍박받은 당사자는 하나님 일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교회 간다면서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실수를 잘하며 불성실합니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전도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요. “교회 갈 시간에 자기 일이나 잘하지.”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면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승리하시되, 혹여 자신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다면, 신속히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천국을 소유하는 길이기에 복되다 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믿음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축복을 크게 받아갈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팔복의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과,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전자는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천국을, 후자는 각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은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진리로 인내함으로 어린아이 믿음에서 점차 청년의 믿음으로, 아비의 믿음으로 장성해 가기 때문이지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있는 비진리까지도 발견하여 버리니, 온유함과 화평함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의를 행하여 마음을 변화시켰느냐에 따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4. 주를 위해 받은 핍박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의를 온전히 이루었다 해도 모든 핍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를 위해 받는 핍박’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꾼 된 사람들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하시지요.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흠도 티도 없는 분이셨지만 죄인들의 형벌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온갖 조롱과 멸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요.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생명까지 드렸던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담대히 고백하였습니다(딤후 4:7~8).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 핍박받은 사람들의 충성과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천국에서 큰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밝히 교통해 주시며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함께하시지요.
   그러므로 혹여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을 바라봄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고린도전서 15:41)
   
   - 해의 영광 : 아비들의 믿음으로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
   - 달의 영광 : 청년들의 믿음으로 2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
   -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 : 아이들의 믿음으로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
   
   이처럼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은 각각 큰 차이가 난다.
   또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의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별마다 영광이 다르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행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영광이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1-12-26 2차 영혼육 (8) - 이재록 목사 고린도후서 10:3~6
지난 시간에 이어 혼의 작용을 진리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혼이란 ‘사람의 두뇌에 있는 기억장치’와 ‘그 안에 저장된 기억 내용들’, 그리고 ‘이 내용들을 재생해서 활용하는 생각’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보고 듣고 배우면서 느끼고 기억하는 것, 또 기억을 떠올려 생각하는 것은 모두 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용들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혼의 작용을 진리 안에서 해야 합니다. 선입관을 가지고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 정죄하고, 미워하고 시기하며 감정을 품는 등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진리의 혼의 작용을 해야 하나님을 닮은 참자녀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할 수 있는 방법 첫째, 둘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려면
   
   첫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즉 진리의 기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어릴 때부터 배운 가르침이 다르고 자라난 환경과 문화 속에서 서로 다른 교양과 가치관을 만들어 왔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주장하여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은 진리, 곧 66권 성경 안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둘째, 느낄 때도 진리에 합당하게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대하든지 진리의 느낌을 가지려면 처음 입력시킬 때부터 진리에 합당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느꼈는지에 따라 이후의 느낌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부모님이 아이를 꾸짖으면서 “목사님한테 혼난다” 하고 자신이 섬기는 목자를 무서운 분으로 입력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자라면서 목사님을 보면 무서워하여 피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아이에게 느낌을 어떻게 심어 주었느냐에 따라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어떤 일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을 보고 비진리로 혼의 작용을 하면 ‘저 사람은 너무 들렌다, 잘난 체한다’ 하면서 감정이 생깁니다. 이렇게 비진리의 느낌이 한번 입력되고 나면 이후로도 그 사람을 볼 때는 계속해서 안 좋은 감정이 생기기 쉬운 것이지요.
   반면에 진리로 혼의 작용을 하면, 똑같은 사람을 보고도 ‘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참 열심이 있구나,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느낌이 한번 심어져 버리면 그 느낌을 없애려고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선 가운데 받아들임으로 처음부터 진리로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미 비진리로 잘못 입력된 느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때는 비진리의 느낌을 진리의 느낌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귀신이나 악한 영들에 대해 무서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은 공포스러운 느낌으로 입력이 되어 있습니다.
   공포 영화를 보고 나서 어둠 가운데 혼자 있으면 오싹오싹하기도 하고 별일 아닌 것에 놀라기도 하지요. 이럴 때 ‘안 무섭다’고 스스로 부인해 보기도 하고, 무서운 것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써 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강하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조건 두려움을 잊으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서 깨달으면 느낌이 바뀝니다. 악한 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두려워하므로 믿음 있는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명하면 물러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빛 가운데 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므로 악한 영들은 우리를 만질 수도 없고, 오히려 영적인 빛으로 인해 두려워서 떠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영들의 정체를 밝히 알면 두려운 느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은 느낌으로 바뀌지요.
   오래전 성지 순례를 갔을 때, 유럽 박물관의 조각상들 앞에서 얼굴을 붉히며 민망해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또한 느낌이 잘못 입력된 경우입니다.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입력된 느낌을 바꿔 버리면 전혀 민망하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없지요. 범사에 진리로 생각하면서 진리의 느낌으로 받아들일 때, 비진리의 느낌을 진리의 느낌으로 바꿔 나갈 때 혼의 작용 또한 진리로만 하게 됩니다.
   
   셋째, 범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듣거나 상황을 볼 때 자신의 입장과 경험, 사고방식 가운데 받아들이면 여러 가지 비진리의 혼의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생각에 맞춰 상대의 말을 가감하기도 하고 판단 정죄하거나 오해하여 감정을 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가 이번에 금강산에 다녀왔는데, 경치가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말했다고 합시다. 이런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산에 대한 자료들이 즉각 떠오릅니다. 예전에 산에 가 본 경험이나, 금강산에 직접 가 보지는 않았다 해도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금강산에 대한 자료 등이 떠오르는데, 대부분 이런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지요.
   그러다 보면 “산을 보고 눈물이 날 정도라니, 너무 과장해서 말한다”라며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전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보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은 일이 없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이 화상을 입어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한다고 합시다. 그런 고통을 겪어 보지 못했거나 인내심이 더 강한 사람이 볼 때는 ‘엄살이 참 심하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기 입장과 경험에 맞춰서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면 비진리의 혼의 작용이 나오게 되지요.
   하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면 ‘내가 산에 갔을 때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지만, 저 사람이 볼 때는 아름다웠나 보다’ 하고 이해하려 하고 믿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상대가 엄살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이해해 줍니다.
   
   만일 늦게 퇴근한 남편이 아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해주지 않고 퉁명스럽게 대했다고 합시다.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서운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면 ?남편이 피곤해서 그러는가 보다’ 혹은 ‘오늘 무슨 힘든 일이 있었나?’ 하면서 이해하고 품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남편이 힘을 내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지요.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었다 해도 늦게까지 기다린 아내의 입장을 생각하면 아내를 서운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진리로 혼의 작용을 하면 화평이 깨어질 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모습일까? 하고 판단하고 멸시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하거나 ‘아직 온전한 것은 아니니까’ 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으면 허물을 보아도 용서할 수 있고 긍휼히 여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품어 버리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좇을 수 있으니 미워할 것도 없고 마음이 불편할 것도 없지요. 설령 상대로 인해 자신이 해를 입는다 해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는 사람은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7년간 병 중에 있을 때, 돈을 벌지 못하고 가족을 고생시킨다고 해서 저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도무지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그처럼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하고 한이 맺혔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을 치료받은 후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알게 되자, 그들에 대한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딸이나 여동생을 데려다가 심한 고생을 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미워할 수도 있었겠다고 이해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자 그들을 미워하고 싫어하던 감정이 사라지고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능히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 같은 경우가 그러했지요.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유대인들의 악함을 지적했는데 이 말에 찔림이 된 유대인들은 그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는 아무 잘못도 없이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보의 기도를 올렸지요(행 7:60).
   물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라는 것이 무조건 잘못을 묵인하여 덮어 주라는 것도 아니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보고 “선하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고, 때로는 스데반이 그런 것처럼 상대의 악함을 깨우쳐 주고 권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으로 인해 상대를 미워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잘못에 대해 책망한다 해도 상대가 회개하여 영혼이 잘되기를 원하는 참된 사랑에서 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이기 때문에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긍휼의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혼의 작용을 진리로 하려고 할 때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노력과 동시에 불같이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하지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과 행실을 늘 점검하면서 혼의 작용을 진리로 바꿔 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들어가면 생각이나 느낌을 쉽게 지배할 수 있습니다.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지배하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것을 조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싶지 않으면 즉시 차단할 수도 있고 심지어 냄새나 소리, 통증까지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차단할 수 있지요.
   모든 생각과 느낌을 지배하여 진리로만 혼의 작용을 하면 항상 기쁨과 감사로 충만하며, 생명과 평안이 넘칩니다(롬 8:6). 우리가 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을 하기 위해 계속 기도하면서 노력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들만 할 수 있고 생각과 느낌을 마음먹은 대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진리로 분별하며, 진리로 보고 듣고 느낌으로 비진리에 속한 혼의 작용들을 다 벗어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생각을 하는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1년 12월 26일 주일) 송년주일
* 사회: 조혁희 목사
개회찬송 40장 1절
성시교독 53번
찬송 459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후서 10:3~6
찬양 사랑의 주가 오셨도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9)(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33장
주일 저녁예배 (2021년 12월 26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문신현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여호수아 1:6~9
특송 김한구 장로
설교 마음을 하나로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2월 29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차난영 권사
성경봉독 창세기 41:1~36
설교 묻혔던 보석이 드러나던 날
고경아 전도사
송구 영신 예배 (12월 31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임학영 목사축복 기도 및 공연
대표기도 이복님 원장
성경봉독 마가복음 9:23
찬양 연합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불가능이 없는 믿음(신년 기도제목①)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1-12-26 2021년 12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가 이탈리아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우간다 루간다어로, 「천국(상)」이 포르투갈어로, 「십자가의 도」가 알바니아어로, 「일곱 교회」가 루마니아어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라트비아어로, 「근본의 소리를 발하라」가 리투아니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2022년 정기 사무연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위임받은 대표자들이 참여하여 온라인 비대면 회의로 있습니다. 사무연회 요람 자료는 교회 홈페이지에 인터넷으로 게재되오니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 임시 원로회가 오늘 오후 7시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송구영신예배가 12월 31일(금) 오후 11시에 있습니다.
※ 설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준비 찬양은 예배 20분 전인 오후 10시 40분부터 있습니다.

● 작정 다니엘 철야가 2022년 1월 3일(월)부터 2022년 1월 23일(주일)까지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주제: 2022년 기도제목, 은사집회를 위해
※ 준비 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있습니다.

● 우림북/ 1월 추천도서는 「영혼육(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1대대 4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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