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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1-07 제1과새롭게 하소서 누가복음 5:38
읽을말씀 : 누가복음 5:38  |  외울말씀 : 에베소서 5:9 | 참고 말씀: 로마서 2:13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합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며,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고자 하지요. 이렇게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행 5장). 그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지요. 하지만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합니다.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였으므로 결국 혼이 떠나 죽고 말았지요.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남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해 주었어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일은 하는데 표정이 딱딱하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망설여질 것입니다.
   이런 경우,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무섭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지요. 따라서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청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 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지요.
   
   또한 자신의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불편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하지요.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주 안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주 안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행위적으로만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섬길 때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행함이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대개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비진리를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자신은 이러한 모습이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지는 않는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행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노력하지 않고 멈춘다면 영적인 발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행군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어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1-02 2차 영혼육 (9) - 이재록 목사 고린도후서 10:3~6
오늘은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에 대해, 또한 영혼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 “나는 누구인가” 또한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들을 궁구하며 철학적인 여러 가지 이론을 만들어 왔습니다. 또 “사후 세계”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며 여러 상상과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하신 대로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아무리 생각하고 연구한다 해도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먼저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답을 들을 때라야 이런 내용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육의 말씀은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을 주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여러분은 사람의 혼에 대해 배웠습니다. 혼이란, “사람의 두뇌에 있는 기억장치”와 “그 안에 저장된 기억 내용들” 그리고 “이 내용들을 재생하고 활용하는 생각”을 다 포함하여 총칭하는 용어라 했습니다. 또 우리가 모든 혼의 작용들을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진리로 해야 한다 했지요.
   다음은 영에 대해 배울 차례인데, 그보다 앞서 참고적으로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과 짐승의 차이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하등한 생물부터 시작해서 기능과 구조가 복잡한 고등생물로 진화가 되었고, 결국 사람으로 진화되어 나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영혼육에 대해 알게 되면, 이런 설명은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과 짐승은 근본적으로 시작이 다르며, 구성 또한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입니다. 사람의 영은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육은 사람의 영과 혼을 담고 있는 그릇과 같고, 장막 집과 같습니다. 육이 썩어져 없어진다 해도 영은 소멸되지 않으며, 혼도 영과 결합되어서 그대로 남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만드실 때에 사람처럼 생기를 불어 넣으신 것이 아니므로 짐승에게는 영이 없고, 혼과 육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기나 새, 육지에 사는 짐승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머리 속에 뇌가 있고, 태어나서부터 그 안에 입력시킨 지식들과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갑니다. 결국 죽어서 육이 썩으면 혼도 소멸됩니다. 곧 뇌세포가 썩어 없어지므로 그 안에 담겼던 기억들도 소멸되고 더 이상 혼의 작용도 일어나지 않으며 완전히 무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전도서 3장 21절에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하여 사람과 짐승의 차이를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런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던 짐승이 죽으면 너무나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을 봅니다. 사실, 죽은 짐승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의 슬픔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더 많지요.
   가령, 농촌에서 밭을 가는 소의 입장에서 볼 때 죽고 나면 더 이상 매 맞지 않아도 되고 고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재산에 큰 손실을 입게 되므로 슬퍼하는 것이지요. 애완용 개나 고양이도 죽으면 그들 편에서는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없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정을 주고 사랑하던 존재가 없어지므로 허전하고 서운하니 슬퍼하는 것이고, 또 자기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짐승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불쌍히 여깁니다.
   물론 짐승들도 생명이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두려움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혼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주인이 애정을 쏟아 주면 이를 기억하고 주인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여 주기도 하고 즐거움이나 분노나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짐승이 하는 혼의 작용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짐승은 태어나면 본능에 따라 생존하는 법을 배우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때가 되면 번식하고 그러다가 죽습니다. 본능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혼의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짐승들은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거나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면서 신을 경외하거나 종교를 찾는 경우도 없지요.
   물론 짐승도 본능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습니다.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 하면 도망가기도 하고 위험을 느끼면 저항하거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위험을 느끼는 순간에만 두려워하는 것이고 눈앞에서 위험이 사라지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금세 사라집니다.
   그런데 사람은 짐승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더 복잡하고 다양한 혼의 작용을 합니다. 단지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문명을 발달시킬 수도 있고,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므로 철학과 종교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에 대한 반응도 짐승과는 다릅니다. 죽음의 고통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자체를 두려워하며, 사후 세계에 대해 더욱 큰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 아닌데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어찌하든 피해 보려고 하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몸이 안 좋아서 검사를 받았는데 뜻밖에 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입원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전까지 정상처럼 살아가던 사람이 하루 이틀 사이에 초췌해지고 병자의 모습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죽는구나’ 하는 절망감과 두려움 때문이지요.
   
   사람이 이처럼 짐승보다 뛰어난 혼의 작용을 할 수 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혼과 육뿐만 아니라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본성 속에서 영적인 세계에 대해 느끼며, 주를 믿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도 깊은 마음속에서는 신에 대해, 천국과 지옥에 대해 느끼는 것이지요.
   과거에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고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 중에서도 양심이 선한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하늘을 섬기며 선하게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또한 머리로 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천국 지옥이 어디 있느냐, 죽으면 그만이지’ 하고 고집 부리는 사람들도 본성 속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두려움이 없다면 사람들은 죽음을 오히려 환영할 수도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온갖 고통 속에 구차하게 살고 있다면 차라리 죽어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입으로는 죽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막상 죽을 상황이 되면 어찌하든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물론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 자포자기하거나 마음과 생각을 악한 영에게 뺏겨 버리는 경우에는 그런 두려움조차 잊어버리고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경우라면, 아무리 신을 부인하는 사람이라 해도 죽음에 직면할 때 본성 속의 두려움으로 고통받으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려고 하지요.
   
   한 예로,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유명한 무신론자로서 50년 내에 기독교를 말살시키겠다고 장담하며 많은 무신론 책자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러던 그가 임종할 때가 되자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나는 두려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했다고 하지요. 머리로는 하나님과 천국, 지옥을 부정한다 해도 임종이 가까우니 어떤 것이 참인지를 본성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 기독교를 말살시키려고 글을 써 온 볼테르의 집은 그가 죽은 지 20년 후에 성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되었고, 나중에는 외국어 성경까지 출판하는 본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사람이 부인하거나 대적하는 것과 상관없이 영원히 살아 역사하시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지요.
   
   
   2.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어야
   
   때때로 사람들은 짐승이 원한을 품고 죽으면 그 혼이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짐승은 육의 죽음과 함께 혼도 소멸되기 때문에 누구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난다 해도 혼과 육으로 된 짐승이 진화되어 영을 가진 존재로 변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영을 주셨고, 그래서 아담은 모든 것을 다스리며 지배하는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 사람의 영혼육은 아담이 처음 지음받은 당시의 영혼육과 같지 않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영이 죽고 말았는데, 이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이 활동을 전혀 할 수 없어 죽은 것과 마찬가지가 되었고, 세월이 지나 수명이 다하면 영혼이 지옥에 가게 되므로 영적인 죽음을 당한다는 뜻이지요.
   아담의 범죄 이후 영이 죽어서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없게 되자, 이제는 혼이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하며 육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혼이 주인이 되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사람은 점점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되었습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진리 가운데 거하며 혼과 육을 진리로 이끌어 갔지만, 혼은 짐승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을 추구해 나갔기 때문입니다(전 3:18). 이렇게 혼과 육으로 만들어진 짐승 같은 인생들은 그 영이 소멸되지 않으므로 결국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되찾아야 하는데 곧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위를 회복할 수 있고, 이 땅의 삶이 끝나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 세상의 부귀와 명예, 권세를 한 몸에 얻는다 해도 정작 영혼의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그 삶은 너무나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눅 9:25). 차라리 짐승들처럼 소멸되기라도 하면 낫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고 참혹한 불지옥에서 세세토록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잠시 잠깐 살아갈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영원한 내세에 소망을 두고 남은 시간을 더욱 값지게 보내야 할 것입니다. 신속하게 죄를 버리고 온전히 성결되어 장차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거룩하신 주님의 신부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월 2일 주일) 신년감사주일
* 사회: 이미경 목사
개회찬송 13장 1절
성시교독 67번
찬송 248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요한복음 3:5~7
찬양 축복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2차 영혼육(10)(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99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월 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장성식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4:3, 디모데전서 4:5
특송 서승원 집사
설교 거룩한 자녀(신년 기도제목②)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1월 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조혁희 목사
대표기도 권영남 전도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5:38
설교 새롭게 하소서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월 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8~29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19)-두아디라 교회③(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1-02 2022년 1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이탈리아어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이탈리아어로, 「깨어라 이스라엘」이 우크라이나어로, 「천국(상)」이 독일어로, 「십자가의 도」가 포루투갈어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에티오피아 암하라어로, 「나의 삶 나의 신앙1」이 슬로바키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영어(709호), 중국어(58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작정 다니엘 철야가 1월 3일(월)부터 1월 23일(주일)까지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주제: 2022년 기도제목, 은사집회를 위해
※ 준비 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있습니다.

● 우림북/ 1월 추천도서는 「영혼육(상)」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성도 소식

전진수 형제(1청년)/ 제45회 전국 대학생 레슬링대회 자유형 70kg급에서 2위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 대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1-07
[주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 2]
2024-01-08
[월요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6]
2024-01-09
[화요일]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7]
2024-01-10
[수요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8]
2024-01-11
[목요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2024-01-12
[금요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수 3:5]
2024-01-13
[토요일]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