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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2-18 제7과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갈라디아서 3:13~14
읽을말씀 : 갈라디아서 3:13~14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3:14 | 참고 말씀: 이사야 53:4~6
교육목표 :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사람들이 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던 이유를 알아본다.


   나무 십자가는 참혹한 사형 도구요, 영적으로 볼 때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십자가는 저주의 의미가 아닌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지요. 인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한 몸에 지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손들 또한 죄인이 되어 저주받아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신 21:2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놓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이 열렸습니다.
   레위기 17장 11~14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말씀했습니다. 육체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피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영의 생명을 얻으려면 피 흘림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 합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자 예수님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깨끗한 피를 흘려 주심으로 단번에 모든 사람이 온전히 죄를 용서받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필요가 없이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이 선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에 아브라함이 크게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말씀하셨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명하시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실 때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순종했지요.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9).
   이처럼 아브라함은 확고한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면,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같이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마다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 롬 8:16).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며 능력인 성령이 마음 안에 오시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안에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어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도와주시지요.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시험 환난과 온갖 고통을 당하며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아야 했지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과 영생,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예수님 당시 죄인들의 처형법은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십자가 처형법은 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아 여러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참수형을 당한다면 죽음의 고통이 그나마 순간에 끝날 수 있지만 십자가 처형은 숨을 거둘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그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호흡 곤란으로 인한 고통과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기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뜨거운 햇볕 아래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벌레들은 예수님의 상처 난 몸에 달라붙어 물어뜯었지요. 그뿐 아니라 악한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욕하였습니다(마 27:40).
   이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작 고통스러워하신 것은 육체의 괴로움이나 사람들의 희롱과 멸시가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담당했건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으므로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게 될 불쌍한 영혼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고 그 은혜와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 죄를 속량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심정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율법의 ( )에서 우리를 ( )하기 위해서이다.
   ② ( )의 복을 ( )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믿음으로 ( )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2.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피는 생명과 일체라 말씀합니다. 관련된 성구를 모두 고르세요.
   
   ① 레위기 17:11 ② 히브리서 9:22 ③ 레위기 17:14 ④ 요한복음 1:1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이고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는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표현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완성형의 표현이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 예수’라 칭하는 것이 옳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2-13 3차 영혼육 ( 1 ) - 이재록 목사 요한일서 2:24~25
오늘은 3차 영혼육 첫 시간으로,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루기 위해 먼저 몸과 몸의 행실, 육신과 육신의 일 등 육에 관련된 용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차 영혼육은 주로 사람의 육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한 내용이었고, 다음으로 2차 영혼육은 “진정한 자신을 아는 것”에 중점을 두어 증거했습니다. 오늘은 3차 영혼육 중에서 육의 분야 첫 번째 시간입니다. 3차 영혼육은 1차, 2차보다 더 심도 있는 말씀으로 먼저 육의 분야, 다음에는 혼의 분야, 영의 분야로 진행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자기 곧 자신의 영혼에 대해 알아야 인생의 참된 가치를 바르게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지고 몸이 썩어 없어진다 해도 영혼은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이 땅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결정됩니다.
   3차 영혼육의 주제는 바로“영원한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에 속한 영혼육”을 이루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하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곧 우리가 주님과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되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요일 2:24~25).
   
   
   1. 본성 속의 악까지 벗어 버려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어
   
   지난 시간에 사람의 마음에는 명백한 진리와 명백한 비진리, 그리고 양심과 본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양심과 본성은 둘 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고,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양심은 각 사람이 선악을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마음입니다. 악한 것을 보고 듣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만큼 점차 양심이 악하게 물들어서 악한 것을 보아도 악한 줄을 모르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마음에 심는 만큼 양심이 선하게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결되기 위해서는 명백한 비진리의 마음을 벗어 버리고, 양심의 악도 벗어 버리며 더 깊은 악, 본성 속의 악까지도 발견해서 버려야 합니다.
   본성이란 흙으로 비유하면 토질과 같은 것으로, 부모의 기를 통해 전해질 뿐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깊숙한 곳에 형성된 마음이지요.
   본성 속의 비진리는 자기 스스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이나 다윗처럼 의로운 사람들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심으로 깊은 본성 속의 비진리를 발견케 하셨습니다.
   사람이 행함이나 마음으로도 범죄하지 않으며 선한 양심을 이루고 본성 속의 악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릴 때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2. 육에 관련된 용어들
   
   “육”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몸”을 말하고, 두 번째 의미는 “썩어지고 변질되는 것, 비진리에 속한 모든 것”으로 영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영이란 영원한 것, 신령하고 온전한 것, 진리, 생명 등을 의미하지요.
   3차 영혼육 중 육의 분야에서는 비진리의 육을 다 벗어 버림으로 영원하고 신령한 영에 속하는 길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비진리의 육에 대해 알려면 몸, 몸의 행실, 육신, 육신의 일, 육체, 육체의 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의 용어들을 알아야 하지요.
   영적인 의미를 배우기 전에는 몸이나 육신, 육체가 다 비슷비슷한 것 같고, 또 몸의 행실,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도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런 용어들은 분명히 각각의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그 의미들을 정확히 알고 성경을 읽을 때라야 구원에 대한 개념도 더 정확하게 알 수 있고 성결되는 방법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3. 몸과 몸의 행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말씀합니다.
   여기서 몸이란, 우리의 신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영의 지식이 빠져 나간 뒤에 남겨진 육을 의미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아담의 영은 죽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러자 점차 그의 마음에서 진리의 지식이 빠져 나가고 대신 원수 마귀 사단이 심어 주는 비진리가 채워지게 되었지요.
   어떤 액체가 든 컵을 사람에 비유하면, 컵이 우리의 몸이고 컵 안에 있는 액체는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컵 안에 깨끗한 물이나 음료수가 담겨 있다면 컵은 가치가 있지만 더러운 오물이 담겨 있다면 더러운 컵이 되지요.
   아담의 몸도 진리의 지식을 담고 있을 때는 곧 생령이었을 때는 가치 있는 몸이요 불멸하는 몸이었습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으며 빛나고 아름다운 영적인 몸을 갖고 있었지요. 그 행실 또한 이 땅의 어떤 왕족과도 비할 수 없이 가장 고귀하고 기품이 있었지요.
   그러나 아담에게서 진리의 지식이 빠져 나가고 그 안에 비진리가 채워지니 늙고 병들며, 죽고 썩어져 소멸되는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한 육으로 변질된 후에 몸의 행실은 몸 안에 가득 담겨 있는 비진리를 좇아 나오게 되지요.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면 주먹부터 올라간다거나 화가 나면 문을 쾅쾅 닫으며 물건들을 집어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욕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이성을 대할 때 단정한 행실이 아닌 정욕적인 눈빛과 표정, 몸짓이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랫사람을 대할 때 어깨에 힘을 주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어조로 거만하게 말하지요. 자기 안에 비진리가 채워져 있기 때문에 몸의 행실도 그러한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명백한 범죄의 행동뿐만 아니라 온전하지 않은 모든 행실들도 바로 몸의 행실에 포함됩니다.
   혹자는 대화하면서 습관적으로 상대를 툭툭 치거나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합니다. 열중해서 말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져서 마치 싸우는 것처럼 들리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것은 어찌 보면 사소한 일 같기도 하고, 이런 것들을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사망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이런 모습들도 다 비진리가 몸에 결합되어서 나오는 행실이지요.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악은 모양도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 기품 있고 온전한 행실을 가지게 됩니다. 앉음새나 걸음걸이, 말투나 표정조차도 진리 가운데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어서 매 순간 그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향으로 올라가지요.
   베드로전서 1장 15절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말씀하셨고, 빌립보서 4장 8절에는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성결을 이룸과 함께 몸의 행실 또한 거룩하고 정결하여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아름다운 행실로 변화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육신과 육신의 일
   
   첫 사람 아담에게서 생명의 지식인 진리가 빠져 나가 버림으로 사람의 몸은 썩어질 육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육의 몸이 되었기에 몸 안에 죄를 담고, 행함으로 죄를 짓게 되는데 이는 바로 육신, 육체라는 단어와 연결이 됩니다.
   로마서 8장 13절을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했는데,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영원한 사망 곧 지옥을 의미합니다.
   만약 이 말씀에서 육신이 우리의 뼈와 살로 된 몸을 의미한다면 주를 믿는 성도들도 육신에 있다고 할 수 있으니 모두가 지옥에 가야 한다는 뜻이 되지요.
   또 로마서 9장 8절에는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했는데, 이때도 육신이 만약 뼈와 살로 된 신체를 의미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그러니 여기서 육신은 단지 신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적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처럼 영적인 의미를 가진 “육신”이라는 말이 아주 많이 나옵니다(롬 7:14, 고전 3:1, 고전 3:3). “육신”이란 단어의 영적인 의미는 바로 진리가 빠져나가 버린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원수 마귀가 여러 가지 죄성들을 사람에게 심어 주니 몸에 결합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육신의 일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들을 말합니다(롬 8:5).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거짓,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등 이러한 죄성들을 통틀어 말하면 육신이고, 그 하나하나를 따로 말할 때는 육신의 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성경에서 육신이라는 단어가 항상 이런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 했는데, 여기서 육신이란 단지 사람의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라 해도 문맥에 따라 영적인 의미의 육신인지, 신체를 의미하는 육신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육신이 있으면, 곧 몸에 죄성이 결합되어 있으면 생각과 마음으로 범죄할 뿐 아니라 행함으로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마음에 거짓된 속성이 있으면 상대를 속이는 말과 행동이 나오게 되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다는 것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죽어지고 썩어질 죄의 몸을 입은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영에 속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요(롬 6:6).
   죄의 몸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방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처음 들은 그대로 지켜 행하면 되지요. 그럴 때 여러분의 몸은 진리로 채워진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온전한 구원의 열매를 손에 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있는 육의 모습들을 낱낱이 해부하여 남김없이 벗어 버림으로 하루 속히 신령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2월 13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21장 1절
성시교독 44번
찬송 253장
기도 노영진 목사
성경봉독 요한일서 2:24~25, 갈라디아서 5:19~21
찬양 찬양하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3차 영혼육(2)(영상설교)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2월 13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혁희 목사
대표기도 빈금선 권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4:23~24
특송 김진희 권사
설교 영적 예배
이수진 목사(당회장 직무대행)
수요 예배 (2월 16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차경숙 전도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15:17~18
설교 진실한 마음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2월 18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문태규 목사없음
대표기도 안성헌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3:1~6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24)-사데 교회④(영상설교)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기 위하여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2-13 2022년 2월 둘째주 교회 공지
알려드리는 말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가 불어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가 스웨덴어로, 「나의 삶 나의 신앙1」이 터키어로, 「믿음의 분량」이 인도네시아어로, 「십자가의 도」가 말레이어로, 「나의 삶 나의 신앙2」가 노르웨이어로, 「권능」이 조지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영어(711호), 중국어(586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조)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대전만민교회 담임목사 취임예배
※ 일시: 2월 13일(주일) 오후 3시, 취임자: 박흥영 목사, 강사: 이미영 목사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이명규6 형제(3청년/ 19교구, 2-2남 이성엽 집사·2-1여 김효순3 권사의 자녀) . 오은화 자매(2청년/ 3교구, 1-6여 김연옥3 권사의 자녀)
※ 2월 19일(토) 오전 11시,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26길 38번지
「지타워 컨벤션 2층 단독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김종홍·정여현 집사 부부(중국 3교구)
(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2-18
[주일]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1]
2024-02-19
[월요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2]
2024-02-20
[화요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1]
2024-02-21
[수요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8]
2024-02-22
[목요일]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민 30:2]
2024-02-23
[금요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2024-02-24
[토요일]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