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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6-03 제22과사랑 요한일서 4:16
읽을말씀 : 요한일서 4:1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16 | 참고 말씀: 로마서 8:26~27
교육목표 :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그 유래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를 깨닫게 한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주님을 믿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내에 있는 한 다락에 모여 날마다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드디어 오순절 날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처럼 임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성령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여 부활주일 이후 일곱 번째 주일을 성령강림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행 2:38).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달리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더 경배하며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중단하지 않으셨고, 사람들이 죄 가운데 멸망하도록 ‘나 몰라라’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중단하거나 내버려 두셨다면 대부분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때가 이르자 놀라운 구원의 섭리를 베푸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위한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롬 5:8). 그 결과 예수님께서 구세주 되심과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는다 해도 아직 마음 안에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과 같은 죄성들이 남아 있으므로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성들을 격동시키고 다시금 죄를 짓게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생각을 이미 다 아신 하나님께서는 그에 맞는 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요엘 2장 28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예언된 대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실 것을 이미 계획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말씀하셨지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으로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능력이 하나인 아들의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을 받으면 사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핍박과 고난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약한 모습이었지만, 성령을 받은 이후로는 어떤 핍박이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든든한 배경과 힘이 되시는 성령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롬 5:5).
   
   
   둘째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힘과 능력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가장 주된 사명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며, 회개시켜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돕는 영’으로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구속의 은총과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첫사랑의 감동과 은혜를 잊어버리고 유혹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여 여러 가지 죄를 짓습니다. 그럴 때 내주하신 성령은 죄를 짓는 영혼을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십니다.
   성령이 탄식하시는 것을 우리 마음에 곤고함으로 느끼게 되는데, 이때 너무 민망하고 죄송한 나머지 다시 회개하고 돌이킬 용기도 갖지 못한 채 영적으로 침체하기도 하지요. 그럴 때도 성령은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대신 간구해 주십니다(롬 8:26~27).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영혼이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성령은 항상 하나님 앞에 대신 간구하십니다. 영적으로 위기에 처한 당사자들보다도 더한 탄식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구하시지요. 그리고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통회자복할 수 있게 하시며,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힘과 능력을 주실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원하든 원치 않든 연단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심으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비유 들어 자녀의 바른 성장을 위해 아버지가 자녀에게 체벌했다면 어머니는 자녀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자상하게 설명해 주지요. “아버지가 네게 매를 댄 것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네가 계속 그런 잘못을 반복한다면 장래 희망도 이루지 못하고 후회하게 될 테니, 너무 안타까워서 그러신 거야.”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아버지의 사랑을 거듭 깨우쳐 주는 자상한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듣지 않고 무시해 버린다면 점차 성령이 소멸하여 결국 거두어지게 되지요. 성령이 소멸한 사람은 다시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구원과 상관이 없게 됩니다.
   
   
   셋째로, 사람의 능력으로 깨뜨리지 못하는 육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능히 깨뜨릴 수 있음을 성령의 권능으로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했는데, 이는 성령의 권능을 받을 때야 비로소 주님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육의 사람들을 사주해 수많은 이론과 지식을 만들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고, 심지어 대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진화론과 같이 잘못된 지식과 이론이 넘치는 세대에서 단지 말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너무도 단단한 육신의 생각과 틀이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들어갈 틈이 쉽게 나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의 증인으로서 참된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들과 사람의 방법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을 성령의 권능으로 보여 주고 체험케 해 준다면 육신의 생각은 깨지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지요.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힘이 있고 강력하지만, 아무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을 통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 등은 성결된 사람을 통해서 베풀어지므로 성령은 우리 마음 안의 미세한 악의 모양까지 신속히 버릴 수 있도록 발견케 하시고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된 자녀들을 통해 원수 마귀 사단을 제압할 수 있는 영적인 권세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합해진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욱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요(요 4:48).
   어느 시대보다 죄악이 관영하여 참믿음을 갖기가 어려운 이 마지막 때에는 더욱 크고 놀라운 성령의 권능이 필요합니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확실한 기사와 표적으로 뭇 영혼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 되심을 믿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내주하신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힘입어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마지막 때 합당한 성령의 도구로써 귀히 쓰임 받으며 크게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 )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마음에 ( )과 ( )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3. 사람의 능력으로 깨뜨리지 못하는 ( )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능히 깨뜨릴 수 있음을 ( )으로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권능’이란?
   
   영적인 권세가 능력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권능이라 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했는데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내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된다.
   다음으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이 두 가지 역사를 동시에 나타내기 위해서는 권세와 능력을 모두 받아야 한다. 즉 ‘권세 있는 능력’인 ‘권능’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권능을 받으려면 먼저 온 영의 마음을 이뤄야 하고 이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5-29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 1 ) - 이재록 목사 출 20:8~11
오늘부터는 온전한 주일 성수에 대해 설교합니다. 먼저 안식일의 유래와 그 의미,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유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을 의미합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 부르지요.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나라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증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할까요?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안식일을 명하셨는지 먼저 안식일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안식일의 유래와 그 의미
   
   안식일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에 이릅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율법으로 주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신 이후입니다.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네 번째 계명으로 주셨지요.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1절에는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심으로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신 이유를 설명하시지요.
   
   이처럼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 육의 세계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곧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곧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인 것과 같은 원리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는 동안은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주셨습니다. 시험 환난과 각종 재앙에서 틀림없이 보호해 주셨지요.
   이런 영적인 원리는 오늘날도 동일합니다.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실히 하나님께 속해야 지킴 받고 축복받을 수가 있습니다. 간혹 “교통사고가 나서 다쳤습니다. 사업터에 해를 입었습니다.” 하시며 기도 받으러 오시는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이 주일을 범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출애굽 당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이라 명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라 해도 안식일을 어기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므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공의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므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이제 갓 교회에 나온 새신자나 믿음이 여린 초신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도 있고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주일을 지키지 않거나 지킨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말하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안식을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참뜻을 알면 결코 두려움 가운데 억지로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참된 안식을 주시려고 안식일을 지키라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뀐 이유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는데, 이는 주님께서 주일 곧 일요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9절에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므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곧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구약의 안식일이 왜 토요일인지 잠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일, 월, 화, 수, 목, 금, 토, 7일 중 일곱 번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요. 금요일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철저히 안식했습니다.
   그런데 왜 일요일을 한 주의 첫날로 따지는지 혹시 궁금한 분이 계신지요? 오늘날 우리가 쓰는 달력은 거의 일요일을 한 주의 첫날이자 휴식하는 날로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달력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연구하여 만든 문명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문명의 시작이요 끝이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달력에도 그 증거가 들어 있습니다. 달력의 틀을 정할 때 일주일을 7일로 한 것은 하나님의 7일 천지창조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연대를 B.C.(비포 크라이스트)와 A.D.(에노우 도미나이)로 나누어 연도를 계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왜 주님의 부활 후에는 일요일이 안식일이 되었는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 지으신 것이 바로 빛입니다(창 1:3). 이 빛은 영적인 빛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의미하지요. 곧 “빛이 있으라” 하신 이 말씀은 영적으로 빛 자체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우주 만물 가운데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했는데, 이 참 빛은 바로 하나님의 본체로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말씀한 대로 참 빛이신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창조 첫째 날에 빛이 있었듯이 한 주간의 첫째 날인 일요일 곧 주일은 바로 참 빛이신 주님께서 온 세상에 비취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날이지요. 사망과 고통의 흑암 속에 살던 영혼들에게 생명의 참 빛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이날로부터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얻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일요일을 안식일 곧 ‘주의 날’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주일이 안식일이 될 것을 이미 구약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레위기 23장 10~1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했습니다.
   일요일에 드리는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의 어린양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곡물 첫 이삭도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3.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참 안식을 주신 날
   
   주님의 부활 이후 우리는 참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인류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참된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한 대로(창 2:17) 아담의 영은 죽을 수밖에 없었지요.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평생 질병, 가난, 미움, 다툼 속에 고통받다가 영원한 사망, 곧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데 이것이 영적 부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어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땅에서의 안식은 온전한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이라는 영원하고 온전한 안식처를 예비하셨습니다. 우리는 영적 부활 외에 또 한 번의 부활을 통해 영원하고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되지요. 주님께서 공중강림 하시면 우리의 몸도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육적 부활입니다.
   영적 부활과 육적 부활을 한 후에는 영원히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일요일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참 안식을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주일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뜻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미 주의 날인 일요일을 참된 안식일로 지켰지요. 사도행전 20장 7절 전반 절에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떡을 뗀다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의 살을 나누는 것으로서 주일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는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利)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하여 매 주일 첫날 곧 주일에 헌금을 했던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주의 주가 되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함으로 사고 잦고 질병 많은 세상에서 늘 지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안식일마다 공급해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먹음으로 영생을 얻어 영원한 안식처인 천국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5-29 욥기강해(14) - 꿈과 소망을 잃지 말자 - 이수진 목사 욥기 7:1~8
오늘은 꿈과 소망을 잃어버린 욥의 말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꿈과 소망을 잃고 탄식하는 욥
   
   “세상에 있는 인생에게 전쟁이 있지 아니하냐… 종은 저물기를 심히 기다리고 품꾼은 그 삯을 바라나니…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꼬, 언제나 밤이 갈꼬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욥 7:1~4)
   욥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뭇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베푸는 삶을 누리다가 막상 시험을 겪고 보니 인생이 전쟁터처럼 비참하게 보였습니다. 죽기를 바라나 죽지도 못하고, 친구들에게 위로는커녕 수모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 품삯을 바라는 노동자와, 해가 지기만을 바라는 종처럼 아무 꿈도 소망도 없이 무의미한 날을 보냈습니다. 밤이 되면 몸이 아파 잘 수가 없기에 ‘언제나 아침이 올까…’ 기다리며 새벽까지 이리저리 뒤척거릴 뿐이었지요. 악창이 나을 것 같지도 않고, 회복될 것 같지도 않으니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꿈과 비전을 잃고 나니 절망 속에 탄식만 나왔지요.
   욥은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품꾼이나 종의 심정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합당치 못한 생각입니다. 품꾼으로 일하는 사람이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시간만 때우고 있다면 어찌 합당한 모습이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힘들게 억지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고운 마음과 긍정적인 사고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 학교 어디에서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본분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어야 하지요.
   나아가 천국의 소망은 물론, 이 땅에서도 아브라함처럼 축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일의 능력과 지혜도 더하시니 점점 발전하며 머리 된 자로 축복받아 갈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자요 일꾼입니다. 그런데 삯을 바라는 품꾼처럼, 해가 지기를 바라는 종처럼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헌신한 모든 시간과 물질, 행함이 하늘나라 상급이요,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음을 믿음으로 기쁘게 충성해야 합니다.
   설령 직분자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되어 가장 영화로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금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받겠다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인생 목표를 영원한 곳에 두는 사람은 재능도, 시간도, 물질도 천국에 투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심은 것은 모두 천국에 상급으로 쌓임을 믿기 때문입니다(마 6:20). 하나님을 경외하며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은 꿈과 비전 속에 살아가기에 비록 품꾼이나 종이라도 주인 못지않게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2. 마음 안의 구더기를 버려야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 조각이 의복처럼 입혔고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지는구나”(욥 7:5)
   이 말씀에는 육적인 의미와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육적으로는 욥의 현재 몸의 상태를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온몸에 악창이 나서 살이 곪고 썩어 들어가므로 구더기가 들끓고, 제대로 씻지 못하며 흙더미 같은 데서 살다 보니 흙이 몸에 옷처럼 달라붙어 있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는 욥의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욥의 말을 살펴보면 선한 말이나 진리가 아닌 말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원망, 탄식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악한 말, 저주의 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말들을 계속 쏟아냈지요.
   이러한 말들은 바로 욥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 했고,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마 15:18)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욥의 마음이 구더기가 가득한 것처럼 더러운 상태이므로, 입을 통해 악한 말들이 나왔다는 것이지요.
   원래 욥은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순전하고 정직한 옥토의 마음 밭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으며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에, 개간되지 않은 마음 밭에서 구더기 같은 더러운 말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욥의 모습이 여러분 자신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 생각과 마음 씀 하나하나에서 마음의 구더기를 발견하고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욥은 ‘내 가죽은 합창되었다가 터진다’고 말합니다. 이는 온몸의 살이 썩어 들어가면서 진물투성이였는데 시간이 흐르니 아물었다가 다시 터지기를 반복하는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도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합창되었다는 것은 성령 충만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성령 충만할 때는 마치 자신이 큰 믿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어떤 시험 환난이 온다 할지라도 승리할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치니 믿음의 고백도 많이 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니 얼굴이 평안하고 온유와 사랑이 가득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음이 합창된 상태와 같아서 감정이나 혈기가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지요.
   그러나 막상 어려운 시험이 오면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져서 원망, 탄식합니다. 이는 합창되었던 마음이 다시 터져 버린 상태와 같지요. 이때는 감추어 놓았던 악이 드러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얼마나 마음이 괴롭고 고통스럽겠습니까? 욥은 이렇게 합창되었다가 터지는 것과 같은 심정인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마음을 진리로 일구어 사단의 송사거리가 될 만한 악의 요소들을 모두 벗어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구더기를 신속히 잡아 죽이고,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므로 먼저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자연히 겉모습도 깨끗하고 행실도 반듯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마음은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모습만 깨끗한 척 외식하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우리는 옷이나 살에 오물이 조금만 튀어도 재빨리 씻어내려고 할 텐데, 더구나 온몸에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다면 얼마나 더러우며 괴롭겠습니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치며, 쳐다보는 것도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의 죄악들을 구더기처럼 더럽게 보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3. 꿈과 소망을 잃지 말자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욥 7:6)
   욥은 온몸에 구더기로 고통을 당하면서 덧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옛날에는 가정에서 베틀을 이용하여 직접 옷감을 만들고 손수 옷을 지어 입었는데, 천을 짜는 장면을 보면 반질반질한 베틀 북이 “쓰윽” 하고 매우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런데 욥이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다’고 말한 것은 하루가 그처럼 빨리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의 귀중함을 말하고 있으며, 시간이 무료하게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움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전에는 보람 있는 일도 많이 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지금은 아무런 소망 없이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한탄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서 하루하루 헛되이 보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값있게 살아야 합니다(엡 5:16, 약 4:14). 마음의 할례에 힘쓰는 것은 물론, 이왕이면 잠도 줄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며, 더욱 모이기에 힘쓰며,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삶이 되겠습니까.
   그리하여 우리 영혼을 어느 때에 부르신다 해도 떳떳하게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7~8)
   생명이 한 호흡 같다는 것은 경각에 달렸음을 의미합니다. 욥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시험이 오기 전 욥은 귀인답게 살았으며 아무 부족할 것이 없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으며 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는 복된 것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체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찾으셔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낙담하는 고백을 하지요.
   성경을 보면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되는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나사로는 무덤에 장사된 지 나흘이 되어 썩는 냄새가 나는데도 주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과 소경 바디매오는 잠언 8장 17절에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간절히 찾으니 주님을 만나 문제 해결을 받았습니다.
   ‘왜 나는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가?’ 고민되는 분이 계시다면 진정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지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혹여 욥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면,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구더기가 없는지 살펴보고 다 제해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의를 이루고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중심,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라면 해결받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욥은 이러한 권능의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기 때문에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제 곧 죽을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단정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과 같은 처지, 혹은 그보다 더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면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 가운데도 꿈과 소망을 잃지 말고 오직 불가능이 없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5월 29일 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37장 1절
성시교독 37번
찬송 78장
기도 노영진 목사
성경봉독 출애굽기 20:8~11
찬양 내게로 와서 쉬어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2)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33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5월 29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장정미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7:9~11
특송 장선미 집사
설교 욥기 강해(15) - 음부와 양심 심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6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문신현 목사
대표기도 이형진 집사
성경봉독 히브리서 10:22, 로마서 2:14~15
설교 양심의 악과 본성의 악
조수열 목사
금요 철야예배 (6월 3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안성헌 목사없음
대표기도 박형렬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5:9~14, 6:1~2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36)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5-29 2022년 5월 다섯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가 히브리어 오디오북으로 발간되었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포르투갈어가 종이책으로, 「하나님의 법도」가 포르투갈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69호), 포르투갈어(117호), 힌디어(49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5월 은사집회를 통해 치료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 홈페이지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버지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불같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2022 만민하계수련회」를 개최합니다.
※ 기간 : 8월 1일(월) ~ 3일(수)
※ 장소 : 강원도 원주시 오크밸리 리조트
※ 주관 : 만민하계수련회 준비위원회

● 2022년 기도제목, 성전이전, 은사집회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에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작정 다니엘 철야 마지막 날로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시작합니다.
※ 장소: 3층 예배실, 사택 예배실, 각 지성전

● 지성전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 인도로 6월 5일(주일) 의정부 지성전부터 있습니다.
※ 시간: 오후 1시 40분~ 2시 40분(준비찬양: 오후 1시 30분)
※ 지성전별 기도회 일정은 주보 23페이지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환자를 위한 랜선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준비찬양은 오전 10시 50분).

● 제21회 말씀퀴즈대회 모의 1차 시험이 오늘 밤 12시까지 교회 홈페이지 및 모바일 홈페이지에서 진행합니다. 모의 1차 시험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님들 및 지교회 성도님들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상품권을 드립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시험범위 : 2021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365구절

●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유튜브 SNS 해외 선교 활동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각 언어권에 있는 영혼들 전도에 적극적인 활용을 부탁드립니다.

● 6월 추천도서는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교회 직원 조회 및 성전 대청소가 5월 31일(화) 오전 9시 30분에 3층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마산만민교회(담임 이성칠 목사) 창립 41주년 기념예배 및 성전이전(확장) 감사예배
※ 일시: 5월 29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특송: 김진희 권사


● 교구별 현장예배 장소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김선주, 백난영 집사 가족(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6-02
[주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2024-06-03
[월요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2024-06-04
[화요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2024-06-05
[수요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6]
2024-06-06
[목요일]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 10:23]
2024-06-07
[금요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2024-06-08
[토요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