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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06-17 제24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마태복음 7:24~25
읽을말씀 : 마태복음 7:24~2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5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4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특징과 이 믿음에 이른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행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든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면 마침내 하나님 말씀대로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릅니다.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믿음의 3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짓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육체의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가령, 애매하게 욕을 먹고 책망을 들어도 묵묵히 참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기뻐하려고 애씁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고 섬기려 노력하지요.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의무감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면 축복받고 지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가족의 눈치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잡념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지요. 심고 행한 후 본인의 생각만큼 빨리 축복이 오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불평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중심에서 믿는지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되지요. 죄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할 수 없기 때문에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도 사람마다 그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의 3단계를 1%에서 100%로 나눌 때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4단계에 가깝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고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싸우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고난을 겪을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해 불평불만을 쏟아버립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서는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운 일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아니야,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마음을 진리로 다집니다.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만큼 죄성을 버리고 믿음의 4단계에 가까이 온 증거이지요.
   이때는 갑자기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감사와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를 의미합니다.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들어선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상대에 대해 순간 불편한 생각이 든다고 해도 즉시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하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믿음의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며,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육신의 일을 하나하나 버려나가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더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이때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할 때 길에서 돈지갑을 줍는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 줄까.’ 갈등하지 않고 바로 주인을 찾아 줍니다.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즉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간신히 구원받은 성도의 천국 처소는 ‘낙원’이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배워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는 낙원보다는 좋은 ‘1천층’에 들어간다고 했지요.
   그러면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1천층보다 좋은 ‘2천층’입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독립된 주택을 줍니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부속 시설 한 가지를 자신의 소유로 받습니다.
   만일 아름다운 호수가 갖고 싶다면 호수를, 수영장을 갖고 싶으면 수영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없는 부속 시설은 다른 사람의 집에서 함께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사람의 집에는 문패가 있고 거기에는 천국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에게 예비하신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가령,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교회에 다니더니 착하게 변했다.”고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칭찬받습니다. 언행이 선하게 바뀌면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빛으로 비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마 5:16).
   이렇게 사명 감당과 선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다가 천국 2천층에 들어가면 자신이 행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빛나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칩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성결을 이루고,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 )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 )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온다.
   
   2.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 )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된다. ( )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된다.
   
   3. 믿음의 3단계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신’과 ‘육신의 일’
   
   ‘육신’이란 ‘진리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한 것’이다.
   즉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 교만, 판단,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 속성들의 총칭이다.
   그리고 이러한 죄성을 하나하나 분류해 놓은 것이 ‘육신의 일’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06-12 성령의 역사 - 이재록 목사 행 2:1~4
오늘은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 성령의 역사 중 세 가지 중요한 분야를 알아보겠습니다.

   성령강림 주일은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이 임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7절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말씀하셨습니다. 곧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오시면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 곁에 계신 것보다 더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보혜사 성령이 우리에게 유익 되는 이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활동하시는 이스라엘 지역을 중심으로 근방에 사는 소수의 사람만이 예수님께 나와 은혜를 입을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직접 나와야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예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성령은 본체로만 사역하시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영으로 분리되어 각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온 세상 어느 지역에나 모든 성도에게 동시다발적으로 역사해 주시지요. 지금도 여러분 각자의 마음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우쳐 주시기도 하고, 각 사람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며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게도 하시는 등 바쁘게 사역하고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붙좇았던 베드로조차 막상 죽음의 위협 앞에서는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는 예수님을 붙좇으며 듣고 배운 것들이 자기 안에 온전히 능력으로 임할 수가 있었습니다. 큰 권능의 사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순간까지 두려움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었지요.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약속받은 제자들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뒤에도 날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오순절이 이르자 급한 바람 같고 불같은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여러 가지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지요.
   바로 이때부터 성령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천국에 이르는 순간까지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성령의 역사 중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세 가지 분야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참으로 많은 분야에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시며 장래 일을 알려 주셔서 예언하게 하시고, 질병과 연약함을 고치시기도 하지요. 방언과 환상의 은사도 주시고,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항상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시며 각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 천국에 이를 때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시지요.
   이렇게 수많은 성령의 역사 중에서도 오늘은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세 가지 분야를 설명하겠습니다.
   
   첫째로, 각 사람이 마음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게 합니다.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태어난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기에 우리가 이를 믿을 때 죄 사함을 받습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있지요.
   그러나 복음을 듣고 아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했지요. 물, 곧 복음을 들어서 거듭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과 성령으로 함께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습니다. 먼저 복음을 듣고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으면 그다음에는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고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마음에 성령을 주시고 이때 회개의 영이 임하게 되지요.
   ‘내가 참으로 죄인이구나. 내 죄가 이렇게도 더럽고 추한 것이구나.’ 하고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철저히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찢는 듯한 아픔 속에 진정으로 지난날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나면 그 후에는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시원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의 짐이 덜어지고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죄가 씻어진 마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이 마음에서부터 믿어지고,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주어지지요(고전 12:3). 이처럼 성령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처음 영접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을 믿고 회개했다 해도 온전한 믿음의 분량이 차기까지는 행함으로나 마음으로나 죄를 짓게 마련이므로 죄를 범할 때마다 돌이켜 회개해야 하지요. 죄의 담을 헐어야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고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개하는 것도 죄를 범한 사람 편에서만 회개한다고 해서 죄의 담이 헐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의 영을 보내 주셔야 하지요.
   만약 입술로만 회개하고 마음에서 돌이키지 않으므로 같은 죄를 계속 쌓아 나가거나 아예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 가운데 거하면 나중에는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의 영이 임할 수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을 심히 서운케 하므로 그에게는 이미 성령의 역사가 끊긴 것이지요.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그때그때 회개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마음이 되어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는 차원에까지 신속하게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 자녀들에게 악을 뽑아 버릴 수 있도록 능력을 힘입게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 자녀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게 하신 후에는 점점 더 큰 믿음으로 자랄 수 있게 하십니다. 곧 하나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참과 거짓, 선과 악을 분별하게 하심으로 마음에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시지요(요 14:26).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려고 할 때 “미워하지 말라, 사랑하라” 이런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계속 미움을 버리지 않고 상대를 미워하여 악을 행할 때는 그 마음속에서 성령이 애통하며 탄식하시지요. 그러면 사람의 마음은 답답함과 곤고함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의 역사 속에 선을 행하게 되면 성령이 기뻐하시므로 마음에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이 채워집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자기 악을 발견하면 단순히 회개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악이 나오게 된 근본 뿌리, 곧 죄성 자체를 마음에서 뽑아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이 자기 마음의 악을 깨닫거나 마음에서 악을 버린다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는 능히 발견할 수도 있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여 버리게 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심을 다해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하지요. 이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고 감동함을 입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 속에서 전에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되며, 성령의 불로 태움 받아서 죄성의 뿌리까지 뽑아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육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피조물로서는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 속에 감동함을 받으면 영이신 아버지의 마음을 능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이 커질수록 점점 더 깊은 마음까지도 느끼며 깨달을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독생하신 아들의 생명을 주신 것은 사실 상상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높고 크며 깊은지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면 감사의 눈물이 그칠 수가 없으며 아버지를 사랑하여 죄를 버리는 것이나 생명을 드리는 것조차도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리 초신자나 심령이 강퍅한 사람이라 해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그 사랑이 마음에 깨달아지는 순간에는 마음을 찢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닫지 못할 때는 십자가의 보혈을 찬양한다고 해도 감동이 없고, 눈물 한 방울 흘릴 수가 없지요.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도 그러합니다. 육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는 사랑과 선이 가득하며 온전하고 거룩하신 분”이라고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주어도 그저 막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는 사랑 자체요 선 자체이신 아버지의 마음이 자기 안에 직접적으로 느껴지지요.
   또한 구체적인 하나하나의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일까?’ 갈등할 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마음에 주관을 받게 하시기도 합니다.
   영계의 깊은 비밀들을 깨닫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해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한 일이지요. 이렇게 여러분이 성령의 역사 속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야 아버지의 마음을 닮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온전히 진리로 채워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역사 속에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더 밝히 알고 깨우칠 수 있도록 사모함으로 기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이 내주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에 대해 중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결코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고 신속하게 마음을 할례하여 온전케 되므로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천여 년 전,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불같은 성령의 역사가 오늘 이 시간도, 내일도,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06-12 욥기강해(16) - 욥의 오해 - 이수진 목사 욥기 7:12~21
오늘은 하나님을 향한 욥의 오해와 원망, 탄식과 조롱을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욥의 오해
   
   “내가 바다니이까 용이니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나를 지키시나이까… 주께서 꿈으로 나를 놀래시고 이상으로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 7:12~14)
   욥은 바다의 웅장함을 알고 있었으며, 용을 위대한 동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다나 용처럼 대단하지도 않고 하찮은 자신을 왜 하나님은 이처럼 상관하며 괴롭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가운데 자신을 치셨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욥은 잠이나 푹 잘 수 있다면 고통을 잠시나마 잊어버릴 텐데 잠이 오지 않아 잘 수도 없었습니다. 어쩌다 잠이 드는가 싶으면 악몽으로 인해 깜짝깜짝 놀라 깨어나곤 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잠도 재워 주시지 않고, 오히려 꿈으로 놀라게 하시며, 이상으로 두렵게 하신다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은 이유를 깨달아 회개하고 통회자복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자가 되실 수 있도록 모든 짐과 염려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시 55:22, 벧전 5:7)
   마태복음 7장에 우리가 구하면 주시겠다 약속하셨고, 찾으면 찾게 해 주실 것이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질병이 틈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부요한 자가 되고, 성공할 수 있는지 성경 곳곳에 자세히 알려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만을 약속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욥은 불면증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나마 잠시라도 잠이 들면 꿈마저도 괴롭고 편치 않았습니다.
   꿈은 영적인 꿈과 혼적인 꿈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적인 꿈은 내 영이 꾸는 꿈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가끔 영적인 꿈을 꿉니다. 비록 아담의 불순종 이후 영이 혼에 갇혀서 활동할 수 없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깊은 마음에서 영이 작동하여 영적인 꿈을 꾸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앞일을 알려 주시거나 성령님께서 알려 주시는 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하여 시험 환난이 올 것을 알려 주심으로 미리 대비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하여 꿈을 통해 답을 주시기도 하지요((민 12:6, 욜 2:28)
   다음으로 혼적인 꿈은 내 생각 속에 꾸는 꿈입니다. 평소에 ‘미국에 가고 싶다.’ 생각하면 꿈속에서 미국에 갈 수도 있습니다. 만일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꿈속에서 도둑에게 쫓기거나 나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요. 이런 생각 속의 꿈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대부분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온전히 진리의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너무 꿈에 의존할 필요는 없습니다.
   
   
   2. 계속되는 욥의 원망과 탄식
   
   “이러므로 내 마음에 숨이 막히기를 원하오니 뼈보다도 죽는 것이 나으니이다…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것이니이다”(욥 7:15~16)
   욥은 마음 중심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숨 막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앙상하게 뼈와 가죽만 남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통스럽고 힘들 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시편 50편 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으니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매달려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질병에 걸렸어도, 사업에 실패해도, 시험이 와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좇는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시며 정말로 기뻐할 만한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관하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죽기를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지 않으니, “제발 빨리 좀 내 생명을 거둬 주세요.”라고 하소연하고 있지요.
   욥은 하나님을 밝히 알지 못하고 천국 소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전혀 합당치 않는 말로 엄청난 올무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저와 여러분은 생명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하며, 결코 생명을 거둬 달라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 7:17~19)
   욥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크게 여기신다고 했는데 이 말은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게 여기시기에 늘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너무나 사랑하시고 크게 여기시기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잠시도 놔두지 않고 분초마다 괴롭힌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항상 불꽃 같은 눈동자로 감찰하고 계십니다.
   본문에서 ‘권징’이란 권선징악의 준말로 “착한 일을 권장하고 악한 일을 징계함”을 뜻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살피시다가, 만일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할 때는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사생자가 아니고 참 아들이기에 죄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빛 가운데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 환난이 왔다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발견하고 통회자복 하는 행함이 선행되어야 하지요.
   욥은 하나님께서 침을 삼킬 만큼의 잠깐 동안도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고통스럽게 하시느냐고 불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고 간섭하시며 연단하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욥은 아직 진리를 잘 알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적으로만 알았을 뿐 만나고 체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이 진리에 어긋난 많은 모습들을 깨달아 회개하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
   
   “사람을 감찰하시는 자여 내가 범죄하였은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욥 7:20)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시 11:5, 시 139:3, 잠 16:2, 잠 21:12, 히 4:12). 이렇게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 앞에 인생이 어찌 변명하며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자신이 범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 무슨 해가 되겠느냐고 말하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범죄하면 하나님께서는 많은 해를 받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가 허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슴 아파하십니다. 또 죄를 지은 그 자녀가 멸망의 길 곧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 아파하십니다. 범죄한 자녀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고,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없기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것이지요.
   또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주님이 흘리신 보혈이 헛되이 돌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 해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귀의 뜻대로 되어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받으십니다. 마귀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원수 마귀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효자, 효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욥은 “어찌하여 나로 과녁을 삼으셔서 스스로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말하는데, 이는 “하나님, 왜 굳이 나 같은 사람을 표적물로 삼으셔서 스스로 힘들어 하십니까” 이런 뜻이지요.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고 저주하다 못해 이제 하나님을 비웃는 말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의 원망과 조롱의 말까지 들으면서도 짐스러워하지 않으셨고 조금도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미워해서 징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해서 허락하신 연단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욥이 아름다운 의인으로 변화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모든 과정을 기쁨으로 참고 이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차 성결되어 참된 아들, 딸로 나올 것을 바라보시며 하루하루 인내와 기쁨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죄악을 제하여 버리지 아니 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부지런히 찾으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욥 7:21)
   욥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이제 그만 생명을 거둬 주세요.”라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치료해 달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아무 응답이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욥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돌이킬 때 용서해 주시는 분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지난 허물을 기억지도 아니하시지요. 중요한 것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허물과 죄가 많이 있었는데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어찌하여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적당히 눈감아 주지 않으십니까?”라고 엉뚱한 말만 하고 있으니 어떻게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겠습니까?
   욥은 시험이 오기 전에는 하나님이 두려워서 번제도 드렸었는데 악창 가운데 고통을 받다 보니 이제는 두려움도 없어졌습니다. 음부에 내려가면 그만이니 빨리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탄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성도님들 중에도 정작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으면 욥처럼 하나님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는 체험의 신앙이 매우 중요합니다(잠 8:17), 가난한 심령이 될 때라야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함이 승해지고, 또 겸손히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간절히 찾아 늘 응답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6월 12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28장 1절
성시교독 33번
찬송 404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출애굽기 20:8~11
찬양 존귀, 영광과 찬양을 주님께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3)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6월 1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오인숙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8:1~15
특송 서경애 권사
설교 욥기 강해(17) - 원인과 결과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6월 1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장길남 권사
성경봉독 야고보서 3:17~18
설교 관용의 마음
문태규 목사
금요 철야예배 (6월 1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서진범 목사없음
대표기도 조수열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6:9~17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38)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06-12 2022년 6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권능」 네덜란드어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고, 「권능」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칸스어, 「나의 삶 나의 신앙1」 스웨덴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한글(970호), 말레이시아어(5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2022년 제 1차 정기 당회가 6월 19일 주일 저녁예배 후에 온라인으로 개최됩니다.

● 맥추감사절(7월 3일)을 맞이하여 학습문답 및 학습식을 실시합니다.
학습문답 대상자는 문답 내용을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습세례문답서는 신학교 1층 우림북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 학습문답: 6월 12일(주일) 오후 2시 신학교 3층 예배실
※ 학습식: 6월 19일(주일) 오후 2시 신학교 3층 예배실

● 「환자를 위한 랜선 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있습니다.

●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 초청 호남지방회 성령충만기도회가 6월 15일(수) 오후 8시에 광주만민교회에서 있습니다.

● 2022년도 아동·학생주일학교 교사 강습회가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5시 30분에 사택 예배실에서 있습니다. (주관: 총회 교육부)

● 총회에 납부할 세례인 부담금(1인당 3천원)을 오늘까지 각 교구장(남·여선교회) 및 지도교사(학생 이상)에게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림북에서는 개역한글 성경 구매를 희망하시는 성도님들을 위해 샘플을 비치하여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성경 샘플 비치 장소: 1층 카페)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전주만민교회(담임 강승표 목사) 창립 28주년 기념예배
※ 일시: 6월 12일(주일) 오후 3시 30분
※ 강사: 박형렬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1대대 6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6-16
[주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빌 3:3]
2024-06-17
[월요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2024-06-18
[화요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2024-06-19
[수요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3]
2024-06-20
[목요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골 3:18]
2024-06-21
[금요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골 3:19]
2024-06-22
[토요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골 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