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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10-07 제40과처소와 면류관 요한계시록 21:1~2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21:1~2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9:2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예비하신 천국의 여러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본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모두가 똑같은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세상과 짝하며 죄를 버리지도 않은 채 살다가 겨우 구원받은 사람과, 주님의 마음을 닮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이 장차 천국에서 똑같은 영광과 상급을 받는다면 공평하지 않지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며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이 일군 믿음의 분량에 따라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상급, 면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낙원
   
   영원한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은 신앙생활 하면서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인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영접하기만 했을 뿐, 죄를 버리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고 주를 위해 행한 것도 없습니다. 천국의 처소와 상급은 각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충성하고, 심은 대로 주어집니다. 하지만 낙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만한 행함이 없이 간신히 구원에 이르렀기 때문에 상급이나 면류관, 집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낙원의 삶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고 자연환경도 아름답습니다. 낙원에 들어가면 개인 소유의 집은 없지만, 마냥 잔디밭에서 생활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요. 천국에는 악이 없기에 공동생활을 해도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2.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지는 1천층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1천층에 들어가면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지만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력을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1천층의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라고 할 수 있고, 집 안에는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집 외에는 1천층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종하는 천사도 없지요. 그러나 놀이공원이나 정원, 골프장, 수영장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데 천사들이 이러한 시설을 관리하며 시설물의 이용 안내를 도와주기 때문에 조금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3.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이들에게는 독립된 주택을 주는데,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 들어온 사람들은 아름다운 호수든, 수영장이든, 산책길이든, 무도회장이든 가장 원하는 부대시설을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습니다.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는데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요.
   2천층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처소에 들어가면 자신이 행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주심에 감사드리는 한편, 온전히 성결되지 못한 점을 민망히 여깁니다.
   
   
   4.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3천층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께서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십니다. 이때부터는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이들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는 3천층입니다.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는 개인적으로 시중드는 천사가 없지만,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면 각 사람에게 천사가 주어져 수종합니다. 더 하나님을 닮고 순종과 행함으로 기쁘시게 한 사람에게는 수종하는 천사의 수도 많지요.
   3천층에서는 교통수단으로 구름자가용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름자가용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려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야 하지요.
   3천층의 집은 복층으로 되어 있으며 산책길, 호수, 골프장, 수영장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부대시설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새 예루살렘의 집에 비하면 규모와 아름다움, 영화로움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만 이 땅의 억만장자라도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화려합니다.
   3천층에서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들은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했을 뿐 아니라,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렸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였기에 아름다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5. ‘금 면류관’,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새 예루살렘 성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처소로 중앙에는 하나님 보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며, 열두 진주 문을 통해 믿음의 5단계에 속한 사람이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정육면체 모양입니다(계 21장).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마련된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고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은 모두 갖춰져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면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 면류관(계 4:4)이 주어지며 이 외에도 화관, 진주관, 크리스털관, 온갖 보석이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있어 각종 연회에 맞춰 사용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천사가 그림자처럼 시중을 들어 줍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이곳에서는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가 열리면 각자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기는데 그 행복과 영화로움은 가히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한 소망 가운데 죄악을 온전히 벗어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할 뿐 아니라, 마음에 선과 사랑을 가득 채움으로 영광의 성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믿음의 경주를 하여 ( )에 들어가면 ( ) 면류관이 주어진다.
   
   2. ( )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게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인 ( ) 모양이다.
   크고 높은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 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되어 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천국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의 문양’
   
   천국에서는 사람마다 입은 옷의 문양만 보아도 그가 이 땅에서 어떻게 행했는지 알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였다면 감사의 문양과 기쁨의 문양이 새겨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중심의 찬양을 올린 사람의 옷에는 찬양의 문양이 새겨진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 다해 기도한 사람의 옷에는 기도의 문양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영광 돌린 사람에게는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다. 영광의 문양이 새겨진 옷을 입으면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 자라 할 수 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10-02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7) - 이재록 목사 롬 8:12~16
육신의 생각은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 단계가 나뉘는데, 그 첫째 단계에 이어 둘째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고백합니다.
   여기서 어렸을 때란 육을 입고 이 땅에 살 때를 뜻합니다. 우리가 장차 거룩한 영체를 입고 영의 세계인 천국에 거할 때 비하면 지금 우리의 말이나 생각은 어린아이 수준이지요. 영과 육은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마음을 영으로 일군 정도에 따라서 말이나 깨달음, 생각의 수준이 다르지요. 어린아이도 초등학생, 유아, 영아 등 각 단계에 따라 말과 생각이 다른 것처럼 영적으로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하고 생각하는 수준이 다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싶어도 밝히 들을 수가 없지요. 육신의 생각이 성령의 음성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사단의 음성을 듣게 되지요. 그래서 자신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해 깨뜨려야 합니다.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육신의 생각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느 정도 단계가 나뉩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를 간략히 정리해 본 후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신의 생각 중 가장 초보적인 단계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주로 세상 지식과 이론에서 비롯되지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에는 출석하지만, 아직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갖지 못 한 사람들도 바로 이 상황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성경은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전하셔서 각 사람 생각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이 세상 지식이 고상하고 주를 아는 지식, 곧 복음이 미련한 것으로 생각하지요. 전도하는 여러분을 보고 ‘어리석다. 거짓말한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복음이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이론에 비춰보면 도무지 맞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눈앞에 보여 달라.”고 했던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질병이나 가난, 가족 문제 등 막상 인생의 문제 앞에 서니 너무나 막막했고 세상 지식은 무용지물일 뿐임을 느끼셨지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오셨고 하나님을 만나신 것이 아닙니까?
   이처럼 심령이 가난해졌을 때 마음의 문을 열면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 후로 늘 함께하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지요.
   그런데 인생의 갖가지 문제를 만나기 전에 천지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만 보고도, 또 주님의 십자가 사랑만 전해 듣고도 생각의 문, 마음의 문을 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성도님들 모두 이 헛되고 무익한 육신의 생각을 다 깨뜨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 속에 참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다음으로 살펴볼 육신의 생각은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 첫째 단계, 곧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렸다는 것은 이제 갓 성령을 내 안에 모신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 안에 들어오신 것이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훈련은 이렇게 성령을 내 안에 모신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육신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도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거나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말씀한 대로 행하고 싶지만, 육신의 생각 때문에 원하는 대로 행하지를 못하지요.
   물론 초신자라도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주님을 영접하고 통회자복을 하면 마음이 후련하고 기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지요. 이때는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성경 말씀대로, 설교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도 잘 받고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이 첫사랑을 잃어버립니다.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지요.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다시 육신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자신의 마음에 일궈진 진리만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지요.
   
   그러면 먼저 주님을 영접한 직후의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의 1단계는 마음에 진리보다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영육 간에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들어도 순종을 잘 못 합니다. ‘하루라도 더 일을 해야 더 많이 벌지.’, ‘휴일은 즐기면서 보내야지.’ 하면서 주일 성수를 힘든 일로만 생각하지요.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분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어린아이 같은 생각입니까? 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주일을 지킬 때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맛본 사람은 이런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요.
   이처럼 믿음의 1단계는 세상에 사는 동안 입력된 지식이 아직 그대로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도 적습니다.
   
   믿음의 2단계는 다릅니다. 말씀을 들어서 진리를 어느 정도 알고 진리대로 살고자 노력도 하지요. 믿음의 1단계에 비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고 애쓰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성령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 때도 있고 사단의 음성을 좇아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막혀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4장 12절에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 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고 했지요.
   사람의 중심은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남의 겉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되지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단계이므로 ‘판단, 정죄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 가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말을 들었지요. 들리는 말이야 어쩌다가 들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거기서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자세히 들으려고 귀를 기울입니다. ‘정말일까?’ 하고 궁금해하지요.
   그 사람의 행실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남에게 전합니다. 자신의 느낌과 추측까지 보태기도 하지요. 이렇게 행하고는 ‘내가 판단한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탕으로 분별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가려져서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안에 악이 있으니 남도 악하게 보고 오해하는 것이지요. 또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쉽게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선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선하게 봅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그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지요.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육의 부모만 해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으면 대부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아이가 얼마나 착한데.’ 하고 선한 쪽으로 생각을 돌리지요.
   무엇보다도 판단, 정죄는 교만이라는 비진리에서 비롯됨을 알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함부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두려워서라도 감히 판단, 정죄하지 못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판단, 정죄합니다. ‘저 말씀은 나 들으라고 하시는구나.’ 하고 판단하여 자신을 책망하고 무안을 준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지요. 순전히 자기 육신의 생각 속에서 서운함을 갖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저 이야기는 누구 이야기이다.’ 하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엉뚱한 사람을 대입해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하지요.
   이 모든 일이 다 육신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 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신의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고도 자신의 악을 전혀 깨닫지 못하니 안타깝지요.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발견하는 즉시 신속하게 깨뜨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으로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의 흐름과 육의 흐름은 더 극명하게 나뉩니다. 영은 더 급속하게 영으로, 육은 더 육으로 흘러가지요. 이때 거센 육의 물결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특히 ‘나는 육이니까.’ 하고 자신을 판단, 정죄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자신을 절벽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처럼 육으로 빠져들게 하지요. 바로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통해 이렇게 만들어 갑니다. 육의 사람이 점점 소외감을 느끼고 도태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그러므로 ‘나는 안 돼. 늦었어.’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성령의 음성이 아니고 자기 생각도 아닌 사단의 음성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말씀하시지요.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이켜서 생명과 평안의 길로 가자.”고 손을 내밉니다. 이 성령의 음성에만 “아멘. 예.”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내미는 손을 잡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영의 흐름을 잘 탈 수 있습니다.
   영의 급물살을 타고 1천층, 2천층, 3천층을 신속하게 지나 새 예루살렘까지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02 욥기강해(25) - 말의 중요성, 허망한 사람 - 이수진 목사 욥기 11:1~11
오늘은 욥의 세 번째 친구 소발의 말을 살펴보면서 말의 중요성과 허망한 사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말의 중요성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욥 11:1~2)
   욥의 세 번째 친구 소발은 욥이 말이 많은 것을 지적하며 의롭지 못하다고 책망합니다. 여기서 입이 부푼 사람이란,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으며 거짓되고 허황된 말을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사람이 감정이 생기면 혈기가 나오고 말이 많아지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자연히 말이 부풀려지고 참된 말이 나올 수 없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 한마디도 진실하고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듣는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을 중심에서 신뢰하거나 인정하지는 않지요. 성경에는 말의 중요성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잠 10:19, 마 12:36~37, 약 3:2).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생겨도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긍정적인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다” “죽겠다” “피곤하다” 등 부정적인 말을 하면 점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고 더 피곤해집니다. “어렵다” “안될 것 같다”라고 고백하면 사단이 기뻐하고 춤을 춥니다. 이는 진리에 위배되는 말이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길을 막아 버리게 되지요.
   반대로 “하나님,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등등 믿음으로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길을 열어 가십니다.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네 말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 하는구나”(욥 11:3~4)
   욥은 항상 자신은 의롭고 선하다고 했으며, 친구들에게 ‘나는 너희들보다 더 낫다.’고 하며 친구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런 욥의 말을 듣고 어떻게 잠잠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자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지니라”(잠 27:2)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이러한 육적인 자랑을 버리고,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31) 말씀한 대로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욥은 자기를 자랑하며 친구들을 비웃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비웃었으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에 소발이 참지 못하고 “네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비웃으니 결국 너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말이 많고 자랑하며 비웃는다고 해서 나도 같이 자랑하고 비웃는다면 똑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흠도 티도 없이 깨끗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얼마나 많이 주장했습니까.
   그러니 소발은 “욥아! 회개하고 돌이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너만 옳고 깨끗하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네가 옳고 하나님이 틀리다는 것이냐? 네가 정녕 죄가 없다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사단의 송사를 들으셨고 너에게 엄청난 시험을 허락하셨겠는가?” 이런 의미로 따져 묻고 있습니다.
   
   
   2. 광대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임할 우리의 자세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욥 11:5~6)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이 얼마나 광대하신지,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사 40:26, 롬 11:33).
   성경에는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가 갈라져서 수백만 명이 마른 땅으로 건넌 일, 견고한 여리고성이 순간에 무너져 내린 일,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춘 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일,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통쾌하게 승리한 일 등 하나님의 능력으로 펼치신 오묘한 기적의 사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소발이 볼 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데 하나님을 대적해 나가고 있는 욥을 그냥 지켜보고만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생명을 마땅히 거두셔야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시니 소발은 욥의 죄의 무게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의 재앙이 훨씬 가벼움을 깨우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욥 11:7~9)
   욥은 교만하여 하나님 앞에 아는 척하며 자신이 옳다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오묘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부모를 저주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에게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소발은 영의 세계에 대해 밝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음부란 단지 죽은 사람들이 가서 영원히 잠들어 있는 까마득하게 깊은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높이를 알지 못하고 음부의 깊이를 알지 못함과 같이 하나님은 높고 깊으신 분이라고 설명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도량, 즉 너그러운 마음과 깊으신 생각이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도 넓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이 정확하게 운행되도록 하셨습니다. 광활한 우주는 하나님께서 관장하시는 영의 세계에 비하면 작은 점에 불과하고, 또한 이 우주 공간에서 지구는 희미한 빛을 내는 작은 점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소발은 “이처럼 광대한 우주 공간을 포용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은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으실 텐데, 욥 너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느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마음 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시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도 깨닫게 해주십니다. 믿음이 성장한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만큼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있지요. 또한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영적으로 무장되어 살아 역사하는 만큼 하나님을 더욱 밝히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응답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오묘하심을 안다면 시험 환난이 왔을 때 원망하거나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응답받아 영광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3. 허망한 사람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욥 11:10~11)
   이는 하나님의 권세에 대한 설명입니다. 개정이란 재판을 시작하려고 법정을 연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재판을 시작하신다면 누가 능히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유 없이 사람을 잡아 가두시는 분도 아니고, 마음대로 재판하시는 분도 아니며, 오직 영계의 법칙에 따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반드시 의인은 의인대로, 악인은 악인대로 공의에 맞게 치리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짓거나 불의를 행하면 시험과 연단을 허락하여 징계를 하시는데 이는 돌이켜 온전히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천국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모른 체하지 않으시고 깊이 상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망한 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고 머리털까지 다 세고 계십니다(잠 15:3). 또한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행위는 물론 마음과 생각까지도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 때로는 악한 일이든 선한 일이든 상관치 않으신 것처럼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결국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지요.
   본문에서 ‘허망’이란 거짓이 많고 망령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허망한 사람이란 거짓이 많고 망령된 사람을 말하며, 우상을 섬기는 사람, 허황되고 실없는 사람, 약속을 잘 어기는 사람 등을 가리킵니다.
   만일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덥지 않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그만큼 신용을 잃고 살아온 것이기에 허망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자꾸 변개하며 약속을 어기는 사람,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사람 역시 허망한 사람이지요. 감사의 조건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감사의 조건이 없으면 원망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그동안 한 말을 살펴보면 꿈도 소망도 없으며, 그저 불평불만과 원망, 탄식의 말, 빨리 죽기를 원하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을 허망한 자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허망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상태에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지요. 이러한 사람의 입에서는 허탄하고 실없는 말, 거짓되고 허황된 말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신앙 안에서 허망한 자,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허망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 영생이 무엇인지, 참 생명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길로 가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참된 것을 알면서도 세상을 버리지 못하여 헛되고 헛된 것을 취해 나가는 사람이지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안다 하면서 지옥 가는 행함을 하고 있다면 어찌 믿음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약 2:14, 약 2:19~20). 더더욱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무수히 보았는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허망한 사람인 것입니다.
   둘째로,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교회와 주의 종들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부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며, 헛된 것을 잡았기 때문에 결국 사망의 길로 가게 되지요.
   셋째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억지를 부리거나 악을 발하는 사람입니다. “악을 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악을 발하니 허망한 자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으며, 베드로전서 1:15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하고 온전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결코 허망한 사람이 아닌, 아름답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0월 2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53장 1절
성시교독 46번
찬송 88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로마서 8:12~16
찬양 주님 앞에 설 때에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8)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1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0월 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문신현 목사
대표기도 김영순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1:12~20
특송 미국 월드성결센터 대표 마크 바잘레프 목사
설교 욥기 강해(26) - 환난은 죄에서 온다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0월 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진영 목사
대표기도 황미경 전도사
성경봉독 로마서 12:2
설교 선한 자녀
임학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장성식 목사「창립 40주년 특집 만민매거진 1편」상영
대표기도 서진범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13:11~18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52)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10-02 2022년 10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가 노르웨이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말레이시아어(11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9월 은사집회에 치료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은사집회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은사집회를 통해 치료받거나 응답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모바일앱)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9월 19일(월)~10월2일(일) 까지 치료와 응답을 위한 성령 충만 다니엘 철야를 인도해 주신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께 감사드리며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성령 충만 다니엘 철야 마지막 날로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생방송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시작합니다.

● 올해는 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예배 및 다채로운 축하 행사가 10월 9일(주일), 10월 16일(주일) 2주간 진행됩니다.
※ 10월 9일(주일) 오후 1시 10분에 창립 40주년 기념 만민찬양제가 생방송으로 있습니다.
※ 10월 9일(주일) 창립기념예배가 저녁예배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의 설교로 있습니다. 2부에는 창립 40주년 기념 특집 영상이 상영됩니다.
※ 10월 7일(금)과 14일(금) 창립전야예배가 있으며 창립 40주년 특집 만민매거진 상영이 1편과 2편이 있습니다.
※ 10월 16일(주일) 창립기념예배 및 축하 행사가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오후 3시에 있습니다.
1부 예배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2부 축하공연 (예능위원회 주관)
3부 성도님들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부스행사

●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4행시 공모전을 실시합니다.
※ 응모기간: 9월 26일(월) ~ 10월 9일(주일) 응모자격: 만민중앙교회 성도(지교회 포함)
※ 공모 제시어: 「당회장님」, 「만민교회」, 「창립축하」 중 택일하여 50자 이내로 작성
※ 응모방법: 모바일 및 교회 홈페이지 공모전 사이트에서 접수
※ 시상: 1, 2, 3등(시상금 수여), 입선작 모두에게 케익 쿠폰 증정

● 콜롬비아 만민교회 장정연 목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입국합니다.
※ 체류 기간: 10월 5일(수)~10월 20일(목)

● 10월 추천도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춘천만민성결교회(담임 강영식 목사) 창립 22주년 기념예배
※ 일시: 10월 3일(월)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특송: 서승원 집사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김기찬(3청년/ 14교구 이은숙46 집사의 아들)/ 10월 8일(토) 오후 3시 30분
「더채플앳논현 5층 라메르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서미경 권사 가족(2대대 14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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