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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2-10-14 제41과달란트 비유 마태복음 25:14~30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4~30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5:21 | 참고 말씀: 누가복음 4:6 ; 로마서 12:3
교육목표 :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귀중함을 깨닫고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크든 작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것도 소중히 감당하지요. 지옥에 가지 않도록 구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귀한 사명을 주셔서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마음 다해 충성하는 것입니다.
   
   
   1.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5장 14절 이하에 성도들이 어떻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말씀하셨지요.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자 종들을 불러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으로 장사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더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장사는커녕 땅에 묻어 두었지요.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합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아서 장사하지 않고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시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타국’은 천국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것을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갔다고 비유한 것입니다. 또 ‘자기 소유’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된 천하 만물과 인생들을 말합니다(요 1:10 ; 히 1:2).
   성경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하 만물과 인생들이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가 되고 말았습니다(눅 4:6). 그런데 하나님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천국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아직 원수 마귀 사단의 소유로 있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되찾아야 합니다. 주님의 소유로 되찾는 것, 바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요 사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님께서 천국에 가실 때 ‘자기 소유를 맡기되 각각 그 재능대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고 했는데 여기서 재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할까요?
   재능에는 육적인 재능과 영적인 재능이 있습니다. 찬양이나 무용 등 특별히 어떤 분야를 잘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기술, 지혜, 학식 등이 육적인 재능입니다. 하지만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영적인 재능입니다. 달란트 비유에 나오는 재능은 영적인 재능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첫째, 각자 믿음의 분량(롬 12:3)에 따라 영혼 구원에 대해 그 뜨거움과 전도의 양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할 수 있어 믿음대로 전도가 이루어지고 영혼이 구원되지만, 믿음이 작은 사람은 담대히 전하지 못하니 그만큼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천국에 대한 소망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천국 소망이 큰 사람은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하여 영혼 구원에 앞장서지만 그렇지 못 한 사람은 세상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고자 하지요.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영혼을 구원하며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와도 감사함으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전도, 봉사, 찬양 등 주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영혼 구원과 직결되므로 충성되게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큼 있느냐에 따라 달란트가 주어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약간 적은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아주 적은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이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의 즐거움에 참예한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즐거움에 참여함을 의미합니다.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고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은 교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는 즐거움에 참여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한 상급과 면류관으로 상이 주어지며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지요.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열심히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자기의 재능 안에서 충성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과 동등하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최선을 다해 감당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4.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어 두었던 종은 주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며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 알았기 때문에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주님을 자기 생각에 맞춰 굳은 사람이라고 오해했지요.
   또한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을 좇아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땅속에 그대로 감춰 두었습니다. 곧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았으니 열매를 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은행에 맡겼으면 이자라도 받았을 텐데 변리도 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그만큼 주인의 소유에 손해를 입힌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열 달란트 가진 자는 사명이 많아 벅찰 것 같지만 그만큼 믿음, 소망, 사랑이 넘치기에 그 이상의 것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종에게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5:30). 이는 자기 사명을 감당치 않고 오히려 손해를 끼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능인 믿음, 소망, 사랑으로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25장 14절에서 어떤 사람은 ( )를 의미하고, 타국은 ( )을 뜻한다.
   
   2. 주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 ), ( ), ( )이라는 영적인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나누어 주셨다.
   
   3. 믿음, 소망, 사랑이 왜 영혼 구원에 필요한 재능이 되는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달란트와 데나리온
   
   무게와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는 달란트는 성경에서 재능을 나타내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으로 6천 일, 약 16년간 품삯에 해당한다.
   ‘1데나리온’은 로마의 은화로, 군인이나 품꾼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헬라의 은화 1드라크마의 가치를 지녔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2-10-09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8) - 이재록 목사 롬 8:12~16
지난 시간에 이어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우리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지요.
   육신의 생각을 벗어버려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해서 깨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육신의 생각 둘째 단계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지요.
   주님을 갓 영접한 믿음의 1단계에는 기억 장치에 비진리의 지식이 더 많습니다. 마음에 일군 진리의 분량도 적지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고 세상에 있을 때처럼 구습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말씀도 잘 행하지를 못하지요. 아직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육신의 생각인지 분별하지도 못합니다.
   믿음의 2단계는 진리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알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마음에서 벗어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도 많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에 막혀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그러나 믿음의 2단계 수준의 육신의 생각은 설교를 경청해서 듣다 보면 대부분 발견됩니다. 들은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이 더 분명하게 깨우쳐 주시지요.
   같은 믿음의 2단계 안에서도 믿음이 조금 더 성장하면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에 접어듭니다. 말씀을 통해 판단, 정죄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또 판단, 정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상황에 놓이면 여전히 판단, 정죄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먼저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군수군하고 싶은 마음, 미움, 교만 등 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발동하지요.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려고 해도 계속 떠오릅니다. 솟구쳐 오르는 거센 물줄기를 억지로 막아도 물줄기가 여전히 솟아오르는 것처럼 마음의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계속 나오지요.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들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지요. 이 말씀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말씀을 잘 안다고 해서 모두가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는데도 기뻐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염려하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 근심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육의 일들을 염려합니다. 또는 어떤 연단이 올 때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거나 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더디면 낙심하지요. 그런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이 마음에서 기쁨을 몰아낸 것이지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마음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 천국 소망, 위로부터 주시는 평안함이 있지요. 이 기쁨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이 사실을 믿고 항상 기뻐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를 믿지 못하고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삽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요. ‘내가 더 일해야 많이 벌 수 있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하면서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낙심하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면 눈앞의 현실만 보게 되므로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너무 바빠서.’ 또는 ‘온종일 일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기도할 힘이 없다.’ 또 ‘지금 시험 기간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끝나면 그때 열심히 기도해야지.’ 이렇게 핑계를 댑니다. 다 육신의 생각이지요. 기도한다고 해도 중언부언하거나 졸면서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어떻게 주관하실까요?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울려주십니다(눅 22: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신 말씀을 떠올려 주시지요(빌 4:6).
   또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습관을 좇아서 무릎을 꿇고 중심을 모아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땀 흘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어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더 경건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옆 사람이 내 기도를 듣지는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생각하지요.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육신의 생각 속에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육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나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이면 감사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지요. 성도 중에는 주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분들도 있지만 믿음이 성장하면서 점차 문제를 해결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나는 가난하고 건강하지도 않고 가정이 화목하지도 않아서 감사가 당연히 안 나온다.’라고 한다면, 육신의 생각임을 알아야 하고 그 생각 그대로 변함없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감사할 조건이 없어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감사할 수 있도록 역사해 가십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지요. 또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감사하면 감사할 제목이 생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조건도 좋은 조건으로, 불통도 형통으로 바꿔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막 9:23).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했고,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말씀 그대로 순종하면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현실을 바꿔 주십니다. 문제를 해결 받고 응답받는 것이 참으로 쉽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있는 한은 이렇게 응답받는 것이 절대 쉽지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잘 알지만,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때와 다름없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요. 세상 방법을 의지하고, 그러다 안 되면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기뻐하지도, 기도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3.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쉬어져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채워진 비진리가 하루아침에 벗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생각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지요.
   그런데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는 대부분 이 영적인 믿음의 크기가 겨우 구원받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이 믿음을 자기 삶에 온전히 적용할 만큼 믿음이 큰 것은 아니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만큼, 즉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어내는 만큼 이 영적인 믿음이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의 힘’을 체험하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적인 믿음이 자라지요.
   감사하게도 이 제단에서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체험을 하면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지요. 세상에 살면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이 깨어져서 신속하게 영적인 믿음이 자랍니다.
   영적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설령 파도 같은 시련이 와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하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기도하면 아니 될 것도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깨어져 없어졌기 때문에 굳건한 믿음을 불어넣어 주시는 성령의 음성만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마 11:30).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항상 평탄한 길을 걷게 되니 행복하지요. 그러므로 빨리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쉽게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어떤 큰 문제 앞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 문제를 오히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축복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육신이 아닌 영에 거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의 자녀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10-09 욥기강해(26) - 환난은 죄에서 온다 - 이수진 목사 욥기 11:12~20
오늘은 모든 환난의 원인은 죄에 있다는 것과, 우리가 죄에서 돌이켰을 때 어떤 축복이 임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지각이 없는 허망한 사람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욥 11:12)
   지각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아서 깨닫는 능력” 혹은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살아온 과정 속에서 쌓여진 지식으로 양식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각이 바로 서 있으면 허망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지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양식이 되어서 우리를 낳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들나귀 새끼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묶어 놓지 않아서 제멋대로 뛰어다닙니다. 마음대로 다니다가 덫에 걸리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에게 잡아먹히기도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기 때문에 영혼의 주인 되시는 조물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에게 절하는 등 들나귀처럼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반대인 어둠의 일, 비진리를 행하지요. 그러다가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되어 결국은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결코 지각이 없는 들나귀처럼 행동하는 허망한 사람이 되지 말고, 오직 말씀 안에 순종하며 참 신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
   
   “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욥 11:13~14)
   여기서 ‘주를 향하여 손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항복을 선언한다는 것입니다. 회개 찬송 중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라는 가사처럼 ‘내가 옳다’ 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이지요. 즉 그동안 빗나갔던 마음을 돌이켜 바로 정하여 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마음의 죄악을 버리라 하지 않고 손의 죄악을 버리라고 한 것일까요? 구약 시대는 행위적인 구원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에는 사람의 힘만으로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마음에는 죄가 있어도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행함으로 나타날 때 죄라 인정되지요.
   그런데 마음에 있는 것들이 결국 손,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도적질을 하고, 마음에 교만이 있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지요. 마음에 미움이 있기 때문에 손으로 사람을 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소발이 욥에게 손의 죄악을 버리라고 한 것은, 결국 마음의 죄악을 돌이키라는 말이지요.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은,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곳에서 불의를 제하여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즉 마음과 생각,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분야에서 죄악을 사라지게 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회개할 때 죄악을 중심에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토설합니다. 그것이 참 회개라면 이제 죄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혈기내고 다투던 사람이 짜증을 버리고 다툼을 그쳐야 합니다. 불평하며 서운해하던 생각을 자신의 악이라 인정하고 이제는 감사의 조건을 찾아 고백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단지 회개한 상황만 모면하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생각 모든 삶에서 그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회개, 변화입니다.
   
   
   3. 죄악을 버릴 때 임하는 축복
   
   “그리하면 네가 정녕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욥 11:15~16)
   ‘흠 없는 얼굴을 든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얼굴을 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죄가 있으면 불안하고 곤고하며,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지요. 또 진리를 깊이 알아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우리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단계가 오면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반대로 죄악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고 아무리 열심히 부르짖어도 어떤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사 59:1~3).
   그러나 욥의 경우는 큰 죄가 있어서 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단을 통해 마음의 죄악을 깨달아 버리고 더욱 온전한 축복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소발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알지 못했기에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오해하고 있지요.
   
   소발은 욥에게, “네가(환난을)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라 했는데, 이는 죄에서 돌이키면 곧 환난을 잊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면 그 물을 다시 움켜 쥘 수 없습니다. 새로운 물이 계속하여 흘러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월의 흐름을 말하지요.
   만일 여러분이 질병에 걸렸다거나 가정과 일터에 문제가 생겼다 해도 세월이 흘러 그 환난이 지나가면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어려움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좋은 시간이 왔다면 오히려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즐거워지며 감사의 마음이 들지요. 연단의 시간도 당시는 막막해 보여도 믿음으로 행군할 때 눈물이 기쁨으로, 한숨이 웃음소리로 바뀌며 하나님께서 위로와 평안으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네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으리니… 네가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겠고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리리라”(욥 11:17~19)
   마음의 죄악은 하나님의 말씀인 빛이 들어왔을 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들어오니 마음의 죄악을 버릴 수 있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도 불의를 몰아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생명의 날이 대낮보다 밝다’는 것은 생명의 빛이 들어옴으로 세상과 짝해 살았던 어두운 과거는 지나가고 이제는 진리와 짝하며 대낮과 같이 밝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어두움이 있다 할지라도 아침과 같이 된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생명의 빛이 들어오면 아직 시험 환난이 남아 있고 어둠이 있다 할지라도 곧 아침과 같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아침이란 새로운 날, 새 소망,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소망이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시험 환난이 떠나니 새 힘을 받아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어두움에서 나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납니다(고후 5:17). 원수 마귀 사단의 손에서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사망에서 영생으로, 질병의 늪에서 건강한 삶으로 옮겨지고, 얽히고설킨 문제가 떠나니 참된 평안을 얻게 되지요.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기 때문에 새 아침을 맞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네가 소망이 있으므로 든든하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새 날을 맞이하니 든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시험 환난 속에 괴로워하며 살았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되어 새로워지니 소망도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안에서 문제 해결을 받고 새 소망이 새겼으니 더욱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게 됩니다. 영적으로 보면 굳건히 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반석에 서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두루 살펴보며 안전히 쉬리니’ 했는데, 이 의미는 죄악을 버림으로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서 모든 불의가 떠나면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천군 천사로, 성령의 불담으로 지켜 주시기에 마음의 쉼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변화되면 결국 상대와 환경을 주관하던 어두움이 떠나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동서남북을 둘러보아도 시험 환난은 나와 상관이 없고 항상 평안하게 되지요.
   누워도 두렵게 할 자가 없다는 것은, 진리 안에 굳건히 서면 원수 마귀가 역사할 수 없기에 두 발을 쭉 뻗고 잠을 잘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품 안에서 평안하고 안전한 삶을 누리는 것입니다(시 4:8).
   ‘첨’이란 문자적으로는 아첨이라는 말과 같으며, 여기서는 “호의”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네게 첨을 드린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욥에게 호의를 베풀며 은혜를 구한다” 즉 존경과 사랑, 물질 등 많은 것들을 공급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죄에서 떠나 진리 가운데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3. 악한 자의 소망은 끊어지고
   
   “그러나 악한 자는 눈이 어두워서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하리니 그의 소망은 기운이 끊침이리라”(욥 11:20)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악한 사람은 영적인 눈이 어두우니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며 진리를 안다 하지만 지켜 행하지 않으니 여전히 영적으로는 소경과 같지요. 그러니 이런 이들은 잘 보이지 않아 도망할 곳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한다는 것일까요? 사망의 늪에서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도망해야 합니다. 시험 환난이 아니라 빛으로 도망가야 하는데 영적인 눈이 어두워지면 도망할 길을 찾지 못합니다. 나의 죄악으로 어려움이 왔는데 인정하지 않고 환경 탓, 누구 탓하니 문제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매는 것이지요.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고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자연히 영안이 어두워짐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도망할 길을 찾지 못하니 악한 자의 소망은 기운이 끊어지고 말지요. 악한 자는 악을 계속 쌓아가니 종국에는 더 나갈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며 기운이 끊어지므로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각종 사고와 질병, 재앙과 환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앞일을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건강 검진을 수시로 하며 보험과 투자 등으로 여러 대비책을 세우지만 그것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인생의 가장 완벽한 재앙 대비책은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잠언 1:33에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 말씀한 대로,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환난이 떠나고, 두려움 없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함으로 항상 평안하고 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2년 10월 9일 주일) 창립기념주일
* 사회: 조대희 목사
개회찬송 246장 1절
성시교독 41번
찬송 245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이사야 60:1~3
찬양 놀라운 사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사랑하시는 제단 - 하늘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61장
주일 저녁예배 (2022년 10월 9일 주일 오후 3시) 창립 40주년 기념예배
* 사회: 조혁희 목사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이사야 60:1, 사무엘상 17:47
특송 김진희 권사 | 2부 창립 40주년 기념 특집 영상 상영
설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0월 12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석규 목사
대표기도 정규원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5:10
설교 은혜를 입은 사람
이미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14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형렬 목사창립 40주년 특집 만민매거진 2편 상영
대표기도 조수열 목사
성경봉독 마가복음 16:15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장정연 목사(콜롬비아·페루만민교회 담임)
새벽 예배
인도 추후 공지 시까지 새벽예배는 모이지 않습니다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2-10-09 2022년 10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나의 삶 나의 신앙1」이 핀란드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창립 40주년 기념 특집으로 만민뉴스 한글(978호) 신문을 발행하였고, 영어(728호), 중국어(602호), 스페인어(296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오늘은 교회 창립 4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올해는 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예배 및 다채로운 축하 행사가 10월 9일(주일), 10월 16일(주일) 2주간 진행됩니다.
창립 40주년을 맞기까지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주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1)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2022 만민찬양제」가 오늘 오후 1시 10분부터 GCN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께서 함께 응원해 주시고 마음에 진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인기상 투표에 참가하시는 성도님들은 추첨하여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 또는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창립기념예배가 저녁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의 설교로 있습니다. 2부에는 창립 40주년 기념 특집 영상이 상영됩니다.

3) 10월 14일(금) 창립전야예배가 있으며 창립 40주년 특집 만민매거진 2편이 상영됩니다.

4) 10월 16일(주일) 창립기념예배 및 축하 행사가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오후 3시에 있습니다.
1부 예배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2부 축하공연 (예능위원회 주관)
3부 성도님들이 직접 참여하는 다양한 부스행사

※ 10월 16일(주일) 대예배는 오전 10시와 11시 30분에 있으며, 각 가정에서 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창립 40주년 기념행사 안내를 위해 모바일과 교회 홈페이지를 개설하였습니다.
성도님들께 SNS를 통해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부천실내체육관 좌석 안내 및 주차, 오시는 길 등 자세한 사항은 모바일과 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 교회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4행시 공모전을 실시합니다.
※ 응모기간: 9월 26일(월) ~ 10월 9일(주일), 응모자격: 만민중앙교회 성도(지교회 포함)
※ 공모 제시어: 「당회장님」, 「만민교회」, 「창립축하」 중 택일하여 50자 이내로 작성
※ 응모방법: 모바일 및 교회 홈페이지 공모전 사이트에서 접수
※ 시상: 1, 2, 3등(시상금 수여), 입선작 모두에게 케익 쿠폰 증정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강민건 성도(1가나안) ·정성은 자매(3청년/ 8교구 정택수 장로 ? 최성숙 전도사의 자녀)/
10월 15일(토) 오후 5시, 「웨스턴베니비스 영등포점 그랜드볼룸 2F」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임수진 집사 가족(중구 3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미화부, 시설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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