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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4-07 제14과부활의 의미 요한복음 14: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6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5:20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믿음의 핵심 요소인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지요.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분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 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사하며 많은 성도가 금식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신 줄로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 주일을 앞두고 무덤에 장사 된 예수님의 부활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부활과 영생, 천국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죄인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지요.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한 대로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기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지요.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기에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수명이 다해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들을 ‘죽었다’고 하지 않고, ‘잔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 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한 대로, 장사 된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면서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행하심으로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지요. 주님께서는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됨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주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돌아가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기도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죄인들의 손에 죽게 하셨지요.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이르매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2천여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부활은 ‘참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지요. 십자가를 지실 때는 하나님께 외면당해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겪은 후에는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죄 없이 고난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멀리 떠난 자녀라 할지라도 잊지 못해 손바닥에 새기실 정도로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새기심으로 부활의 기쁨이 샘솟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실까요?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부활체’란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을 말한다. 이 부활체를 입고 성도들은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체를 입으면 부활하신 주님처럼 이 세상에서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으며 숨을 쉬고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4-02 지옥 (9) - 이재록 목사 누가복음 16:22~26
지난 시간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의 아랫음부 형벌을 설명했고, 오늘부터는 성인 나이에 죽은 영혼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구원받지 못하고 성인 나이에 죽은 영혼들이 받는 형벌
   
   성인 나이에 죽어 아랫음부에 간 영혼들이 받는 형벌은 크게 네 단계로 나뉩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영혼들은 마음의 성결을 이룬 정도와 충성한 정도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죄악의 경중에 따라 아랫음부에서 각각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1단계에서 2단계, 3단계, 4단계로 갈수록 형벌의 고통이 더 심해지지요.
   또한 같은 단계 안에도 여러 종류의 형벌이 있습니다. 각자가 심고 행한 대로 갖가지 형벌을 받는데 형벌마다 고통의 강도가 다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각자 죗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은 그나마 가벼운 1, 2단계의 형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생전에 나름대로 선하다 인정받았는데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긍휼함이 베풀어져 양심에 의해 구원이 정해지는 ‘양심 심판’이란 기회가 주어지지요. 그런데 이 양심 심판마저 통과하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이런 영혼이 그나마 가벼운 형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나름 선하게 살았다고 하는 데도 구원받지 못했을까요? 세상에서 아무리 선하다고 인정받았어도 이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보기에 선한 것입니다. 잠언 14장 12절에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했고, 16장 2절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행위를 선, 사랑,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악한 것, 비진리인 것이 많습니다. 더구나 어둠이 짙어질수록 영적인 소경이 많이 생겨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지 못하지요.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참 진리를 분별하지 못해서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어둠 속에 살므로 구원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온 것처럼 ‘주여, 주여’ 하며 하나님은 찾지만, 그 뜻대로 살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둠 가운데 살므로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복음을 듣지 못해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보다 오히려 더 중한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 뜻대로 살지 않은 죄가 절대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눅 12:47~48).
   매우 중한 죄를 범한 영혼들은 3, 4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한 영혼들, 양심에 화인 맞은 영혼들, 성령 거역, 모독, 훼방하며 하나님 나라를 훼방했던 영혼들이 해당하지요. 성경의 인물을 예로 들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을 심히 대적했던 사울 왕이 3단계 형벌에 해당합니다. 또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는 4단계 형벌 중 가장 중한 형벌을 받지요.
   그러면 네 단계 형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죄악의 경중에 따라 나뉘는 네 단계 형벌
   
   1단계/ 뜨겁게 달군 바위 모래, 끓는 물, 얼음 등 무생물 통해 가해지는 형벌
   어떤 영혼들은 이 세상 사막의 모래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운 모래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모래 위에 서 있는 영혼들은 발을 동동 굴러도 보고, 펄쩍펄쩍 뛰어도 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도 그 뜨거움을 모면할 수가 없지요.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으니 달아날 곳도 없고, 벌겋게 데인 발의 극심한 화기와 통증에 온몸이 진저리 쳐집니다.
   또 어떤 영혼들은 벌겋게 달궈진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서 형벌 받습니다. 그 모습이 석쇠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를 연상하게 하지요. 이뿐 아니라 위에서도 달궈진 바위가 내려와 온몸을 사정없이 짓누릅니다. 바위가 서서히 내려와 몸에 닿으면 으득으득 사지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갈비뼈가 깨지고 몸속의 장기가 터지며 머리의 두개골이 바스러지고 눈알이 튀어나오지요. 결국 뜨거운 바위 위에서 쥐포 또는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구워집니다.
   기절할 수도 없으니 온몸 구석구석에 생생한 고통이 전해지지요. 거기다 멀쩡한 정신으로 이렇게 흉측해진 자기 모습을 보고 그 상태를 느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더구나 이윽고 몸이 원래대로 회복되고, 그러면 형벌도 반복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면할 수 있을까?’ 하고 고뇌하지만,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지요.
   이 외에도 1단계 형벌 장에는 펄펄 끓는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 차디찬 얼음 위에 누워 있는 영혼 등 수많은 영혼에게서 참혹한 소리가 끊임없이, 쉼 없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그나마 가장 가벼운 1단계 형벌입니다.
   
   2단계/ 벌레, 새, 짐승 등 동물에 의해 가해지는 형벌
   이 단계에서는 벌레에게 물리거나 피를 빨리고, 징그러운 짐승이나 새의 형상을 한 것들에게 물리고 찢기고 쪼이는 형벌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한 애굽 왕 바로가 이 단계의 형벌을 받고 있지요. 그가 받는 형벌은 2단계 중에서도 비교적 심한 형벌로 그 고통은 3단계 형벌의 고통에 가깝습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이에 모세가 애굽 왕 바로를 찾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지만 바로는 허락하지 않습니다. 노예로 부리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보낸다면 막대한 손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임합니다. 하수가 피로 변하는가 하면 애굽 전역에 개구리, 이, 파리떼가 들끓기도 하고 악질과 독종이 퍼지기도 하지요. 또 우박의 재앙, 메뚜기의 재앙까지 재앙이란 재앙은 다 임했습니다. 그때마다 바로는 당장의 재앙을 모면하려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겠다 약속하지만, 재앙이 그치면 번번이 약속을 어기지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더 핍박했습니다.
   결국 온 나라 안에 장자가 죽는 재앙이 임해 각 가정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고 바로의 장자까지 죽습니다. 그제야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또다시 마음이 변개하여 군대를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하지요.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홍해 바다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갈라진 바다 사이를 걸어서 홍해를 건넙니다. 이를 뒤쫓던 바로의 군대는 갈라진 바닷물이 다시 합쳐지면서 홍해에 수장되고 말지요.
   
   성경을 보면 이방의 왕 중에도 선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경배하며 겸비했던 왕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을 열 차례 이상 경험하고도 끝끝내 강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지요. 이에 따라 애굽 온 나라는 피폐해졌고 바로는 장자를 잃었습니다. 군대를 몰살시키는 바람에 병력도 축났지요.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전해 들어도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주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면서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지요. 이렇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면 가정, 일터 등 곳곳에 임하는 각종 재앙을 모면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에는 바로처럼 아랫음부에 떨어져 끔찍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러면 지금 바로는 아랫음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형벌을 받고 있을까요? 그는 더럽고 악취 나는 물웅덩이 속에 갇혀 있습니다. 더러운 물속에 온몸이 푹 잠겨 주변을 둘러보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지요.
   이 웅덩이에는 바로 외에도 비슷한 죄목을 가진 많은 영혼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 권세를 가진 왕이었다 해도 지옥에서는 섬김받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영화로운 자리에 있다가 비참한 지옥에 떨어진 만큼 더 조롱받지요.
   물이 그냥 더럽기만 하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물속에는 뭔가 꾸물꾸물하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구더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몇 배나 큰 희끄무레한 벌레들입니다. 이것들이 물웅덩이 속 영혼들에게 달려들어 눈과 같이 부드럽고 연한 부분부터 갉아 먹기 시작합니다. 눈을 갉아 먹은 벌레는 뇌까지 파고들어 가 뇌를 갉아 먹지요. 조금 후에는 벌레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 대기 시작합니다. 피부를 파고 들어가 신경조직을 갉아 먹고 뱃속으로 파고들어 오장육부를 갉아 먹습니다.
   심지어 날카로운 입으로 뼈까지 갉아 들어가 그 속의 골수를 빨아 먹습니다. 매우 굶주린 듯 격렬한 기세로 온몸을 갉아 댑니다. 살갗부터 갉기 시작해서 서서히 안으로 파고들어 민감한 부위를 갉아 댈 때 그 고통은 어떻게 형용할 수가 없지요. 온몸의 신경을 벌레가 날카로운 입으로 갉아 먹는다면 얼마나 통증이 심하겠습니까? 또 이 벌레들이 몸속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지요. 바로를 비롯해 이 물웅덩이에 갇힌 영혼들은 이런 징그러운 벌레들이 온몸을 갉아 대도 꼼짝할 수가 없습니다. 이 영혼들은 결국 벌레에 온몸을 갉아 먹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말지요.
   그러면 이제 고통이 끝날까요? 아닙니다. 온몸을 먹혀 ‘이제 끝인가 보다.’ 함과 동시에 벌레가 갉아 먹은 부위들이 재생됩니다. 그러면 또다시 벌레가 눈 같은 연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온몸 깊숙이 파고들어 민감한 조직들을 갉아 먹고 온몸을 갉아 먹지요. 이 고통은 심판 후 불지옥에 들어갈 때까지 반복되고 또 반복됩니다.
   
   이 밖에도 사나운 짐승들에게 찢기고 먹히는 등 짐승들에 의한 형벌은 참으로 끔찍합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이 사자나 호랑이, 곰 등 육식 동물에게 공격받거나 잡아먹히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보다 훨씬 강한 이 짐승들은 사람들을 움켜쥐어 뼈를 으스러뜨리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살점을 뜯습니다.
   심히 굶주린 경우,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산 채로 살점과 장기를 뜯어먹고 뼈째 씹어 먹지요. 지옥에서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이 모든 과정을 느껴야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또 이 땅에서도 독사, 전갈, 독거미 등 독벌레에 물리면 치명상을 입습니다. 온몸에 독이 퍼져서 온몸이 퉁퉁 붓고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다가 고통스럽게 죽기도 하지요. 이와 유사하게 갖가지 흉측하고 끔찍한 생물들에게 쉼 없이 고통당하는 것이 바로 2단계 형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옥에 대해 밝히 알려 주시며 죄와 의와 심판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바로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자녀들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심으로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려는 것이지요.
   이제는 사망을 주는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 죄와 어둠의 일을 사랑하지 마시고 이런 아버지 하나님만을 진정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참 자녀로 나와 훗날 새 예루살렘 보좌 곁에서 우리 죄의 짐으로 인해 수고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04-02 욥기강해(41) -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자 - 이수진 목사 욥기 16:10-11
지난 시간에 이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회개하고 돌이킬 때 신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할 수 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격지심 가운데 친구들과 하나님을 오해하는 욥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나를 천대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욥 16:10)
   여기서 무리들이란 욥의 친구들을 가리킵니다. 친구들이 욥 자신을 향하여 입을 벌린다는 것은, 좋은 의미가 아닌 부정적인 표현입니다. 지금까지 친구들의 말이 욥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뇌케 하고 상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자기를 천대한다고 표현한 것도, 그동안 그들이 욥을 공격하고 상처를 주는 엄청난 말들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친구들이 실제로 욥의 뺨을 친 것은 아니었지만, 욥은 친구들의 말을 들을 때 매우 모욕스러웠고 고통이 극에 달했으므로 이에 대해 뺨을 쳤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욥은 현재의 낮아진 위치가 아닌, 옛날 영화로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친구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사랑해 주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우습게 보는 것 같고 괄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지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느낌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예전에 사랑받고 축복받았던 것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현실 속에서 주눅이 들어 있기 때문에, 괜히 하나님이 날카로운 눈으로 보는 것 같고 자기를 찢고 군박하며 이를 가는 것같이 느끼는 것입니다(욥 16:9).
   
   만일 여러분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갑자기 직장을 잃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합시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은근히 나를 괄시하는 것 같고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상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스스로 자격지심 가운데 상대를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며, 오해하고 판단하여 고통 속에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다른 예로, 직장에서 같이 평사원으로 있던 동료가 어느 날 승진을 했다고 합시다. 나는 아직도 말단인데 동료는 먼저 승진을 해서 부럽기도 하고 왠지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그런데 승진한 동료가 왠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힘이 빠지고 일할 의욕까지 상실하지요.
   또 학생들의 경우, 친구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는데 자신은 재수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어떠합니까? 친구는 예전과 동일하게 나를 대하는데, 내 느낌 가운데 친구가 왠지 나를 얕보는 것 같아서 친구를 멀리한다면 이 또한 나의 판단이며 자격지심이지요.
   이처럼 부부간이나 친구 간에, 또 이웃 간에도 내 느낌 속에서 판단하며 오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일꾼이 인정받고 칭찬받으니 나는 힘들고 지칩니다. 자신과 비교하며 ‘저 사람은 물질도 있고 학식도 있으니 인정받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하며 스스로 힘을 잃습니다. 더 나아가 칭찬받은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것같이 느껴져서 불편합니다. 모두 내 악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지요.
   
   
   2. 문제의 원인을 잘못 찾아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
   
   욥은 비참해진 현실로 인해, 자신의 악으로 인해 하나님을 오해하니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안에서 문제의 원인을 잘못 찾아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판단 정죄, 수군거림으로 시험거리를 만드니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불편해하고 싫어합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애매히 욕을 받으니 선으로 잘 참아야지’ 생각한다면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문제 해결을 받을 수 없지요.
   또 자기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하여 문제가 생겼는데도, “하나님이 나에게 큰 축복을 주시려고 연단하시는 것이다”라고 착각하며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탓,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 경우처럼, 축복 주시기 위해 시험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살았는데도 시험이 왔다면,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
   그러나 본인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환난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연단인 양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진정한 축복을 주기 위해 연단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시며 악인의 손에 던지셨구나”(욥 16:11)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건치도 않고 악한 친구들에게 붙여 괴롭게 하신다고 말하는데, 이 또한 문제의 원인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경건치 않은 자에게 붙이신 일도 없고, 악인의 손에 던진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신 것은 욥의 소유물과 악창뿐입니다. 이렇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신 뒤로는 하나님께서 손을 떼고 지켜보고만 계시는 상황이지요.
   하나님께서 욥을 괴롭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연단을 통해 욥의 감추어진 악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이를 계기로 욥이 악을 벗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니 욥을 연단하신 것입니다.
   욥은 선진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듣기만 했지 하나님을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연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면 이제는 머리로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과, 직접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을 체험함으로써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큰 차이가 있음을알아야 합니다.
   욥이 만일 이러한 시험을 겪지 않았다면 예전에 살아갔던 대로 육적인 복은 받았을 것입니다. 그의 행함을 보면,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번제를 드리며 이웃에게 덕과 선을 베푸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밝히 알고 죄를 발견하여 싸워 버려 나감으로 성결되는 영적인 축복은 받을 수 없지요.
   욥은 시험을 겪은 후 죄성을 발견하고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써 진정한 축복을 받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이 땅에서도 더 큰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시험이나 연단을 빨리 끝내려면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셨을 때, 이 시험이 빨리 끝나느냐 계속되느냐, 연단을 크게 받을 것이냐 작게 받을 것이냐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선하고 악한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악이 많이 있다면 시험이 왔을 때 그 악을 드러내게 되니 시험이 오래 가고 연단이 길어집니다. 반대로 마음이 선하여 내가 어떤 형편에 있다 하더라도 믿음을 내보이고 기뻐하며 기도하고, 감사하며 변치 않는 충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고 축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많은 성도들이 시험이나 연단 중에 참 믿음을 내보이지 못하고 원망 불평하며 미워하고 다투는 등 악을 발하기도 합니다. 이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연단을 통해 변화되기까지 참고, 참고 또 참아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부족하여 넘어질 때도 있고 시험들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너는 죄 있다”라고 바로 심판하신다면 과연 구원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진리 가운데 살아가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때 성령께서도 자꾸 마음을 두드리시며 진리로 이끄시니 혹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곤고함이 찾아오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순종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이고, 이러한 연단을 통해서 더 정금같이 나오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연단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서 범사에 진리로 분별하며,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지 말고 자기에게서 찾아서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므로 원망과 오해가 끝이 없습니다.
   처음에 친구들이 욥에게 권면했을 때 욥이 “그래, 너희들의 말이 옳다. 시험 환난이 온 것은 분명히 나에게 원인이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들의 말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의 잘못을 발견하겠다.”라고 대답했다면 친구들이 욥을 그처럼 공박했겠습니까? 욥이 스스로 의롭다 하며 친구들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대적해 나가니 친구들이 감정이 나서 욥을 공격하게 된 것이지요.
   만일 욥이 친구들의 권면을 받아들였다면 친구들은 욥을 더 사랑하고 위로해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욥을 친구들 손에 붙이신 것이 아니라 욥이 악 속에서 스스로 그 자리에 빠져 들어갔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의 말에 감정을 담아 대항하니 욥이 점점 마음 문을 닫게 되었지요. 결국 욥과 친구들은 서로의 악함 속에 서로가 빠져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욥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키려 했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깨우치고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능력을 주셨을 것입니다. 욥의 온몸이 악창으로 엉망이 되었다 해도 하나님은 순간에 치료해 주시고 축복으로 역사해 주셨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원인을 상대에게 돌리지 말고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킬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만나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신속히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의 고백,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4월 2일 주일) 고난주간
* 사회: 주현철 목사
개회찬송 147장 1절
성시교독 60번
찬송 138장
기도 조대희 목사
성경봉독 이사야 53:5
찬양 정결하게 하는 샘이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주는 그리스도(1)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59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4월 2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이영인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6:12~15
특송 바이올린 듀오
설교 욥기 강해(42) - 자기 뿔을 버리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4월 5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이형진 피택장로
성경봉독 히브리서 10:22
설교 축복의 지름길 - 변개하지 않는 마음
황금란 목사
금요 철야예배 (4월 7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정진영 목사없음
대표기도 문태규 목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2:5~8
찬양 연합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주는 그리스도(2)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권영남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4-02 2023년 4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권능」이 아르메니아어와 에스토니아어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만민뉴스 한국어(990호), 영어(740호), 중국어(61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시사뉴스」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시며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다음 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2023년 부활절 행사가 4월 9일(주일)에 있습니다.
※ 대예배 및 성찬예식: 오전 11시 30분
설교 및 성찬예식 집례: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 부활절 기념예배 및 부활절 공연: 오후 3시
설교: 이미경 목사(교역자회 회장)

● 부활절을 맞이하여 학습식이 오늘 대예배 후 오후 2시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교구 소식

중국대교구 일꾼 월례회/ 4월 2일(주일) 저녁예배 후 사택예배실(인도: 황금란 대교구장)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지교회(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4-07
[주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4:25]
2024-04-08
[월요일]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3]
2024-04-09
[화요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2024-04-10
[수요일]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5]
2024-04-11
[목요일]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시 121:6]
2024-04-12
[금요일]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7]
2024-04-13
[토요일]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시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