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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4-09-06 제36과사도 바울의 선(1) 고린도전서 15:9~10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5:9~10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5:10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1:23~27
교육목표 : 한 번 받은 은혜에 변치 않았던 사도 바울의 선을 본받아 마지막 때 성령의 도구로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도 바울은 다소 출신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한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여 옥에 가두며 죽이기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는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세계 선교의 기반을 마련한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지요.
   원수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어 가는 곳마다 권능의 역사를 크게 베풀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감동하게 했던 사도 바울의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택정함을 입은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상대를 누르기 좋아하고, 변론을 즐겨 했던 사람입니다. 더구나 사도행전 22장 3절에 기록된 대로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대단하였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라는 것이 도무지 자기 의에는 맞지 않았고, 그냥 묵인하고 지나칠 수 없었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니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의가 강하지만 한번 옳은 것을 깨우치면 변개치 않는 중심을 지닌 바울에게 은혜의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그가 다메섹이라는 도시에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원정 가던 중에 주님께서 만나 주신 것입니다. 바울의 예전 이름은 사울이었는데 주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며 나타나시지요.
   이 일이 있고 난 뒤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통해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습니다(행 9:22).
   
   
   2.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은 바울의 선(善)
   
   사도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자 마치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귀한 사명을 주신 주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러한 감사의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깊고 진한 감사의 고백이 나왔지요. 사도 바울이 받은 고난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잘 나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마음 중심에서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가 끝없이 더욱 진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서도 서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감사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나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처음 믿은 때부터 지금까지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지만 과연 바울의 고백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산다고 하지만 과연 바울과 같은 고난이 허락될 때 바울처럼 중심에서 감사할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요?
   바울의 고난에 비하면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또는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만일 이러한 마음이 들었던 분에게 바울과 같은 고난이 임한다면 과연 감사의 고백이 나올까요?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난 이후로 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에도 오직 감사의 고백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도 아니요,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서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오히려 기쁨과 감사가 넘쳤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을 때도, 심지어는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참으로 곱고 선했기 때문입니다.
   
   
   3. 범사에 감사한다는 의미
   
   그러면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이루셨는지요?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감사하고 기쁜 일은 물론이요,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 감사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믿음으로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간구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지요. 또한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고난을 받는다 해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함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두고 감사해도 다 갚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세세토록 끔찍한 지옥 불에서 고통받을 뻔했으나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는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했지요. 그러니 믿음의 시련을 통해 더욱 온전케 하심에 감사하고 주님을 인하여 잠시 받는 고난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갚아 주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음으로 중심에서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시며 더욱 큰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항상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마음껏 연단하실 수 있었고, 결국 바울은 대사도로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아니하며, 생명 다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기까지 했던 사도 바울이 회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요? (☞ 힌트 - 다메섹, 주님)
   
   3. 바울과 같은 고난이 허락된다면 중심에서 감사할 수 있나요?
   
   4.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이루셨는지요?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다메섹’이란?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 회심한 곳으로 고대 수리아(아람)의 성읍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4-09-01 십계명(2) - 제2계명 - 이수진 목사 출애굽기 20:4~6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하는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으로 우상숭배를 금하신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 은 등으로 사람의 형상이나 땅 위에 있는 짐승, 곤충, 새, 물속의 어족이나 하늘의 해, 달, 별, 혹은 상상 속의 어떤 것을 형상으로 만들어 경배하며 섬기지요. 이렇게 물질적인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우상에는 생명이 없고, 응답하거나 축복을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지음 받은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며 그 앞에 복을 달라고 빌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입니까? (사 46:6~7)
   형상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부적을 의지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들도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부적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준다고 믿지만, 영안이 열려서 보면 더러운 귀신과 악한 영들이 모여들고 그로 인해 재앙과 환란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우상도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헛된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고자 할까요? 사람에게는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도 우상을 만들어 섬기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모세를 하나님처럼 섬기고 따랐는데, 모세가 계명을 받기 위해 그들과 떨어져 있게 되자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자신들을 인도해 낸 신이라 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으므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 아닌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놓고 경배하거나 기도하고, 혹은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의 형상을 만들어 경배합니다.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은 피조물이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은 진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요, 화가나 조각가의 상상에 불과하므로 이런 것을 놓고 그 앞에 경배하고 기도한다면 이 역시 결과적으로 우상숭배가 되고 말지요.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배척하다 보니 교회 안의 ‘십자가’까지 우상이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믿는 복음의 상징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나무 십자가를 지셨고 보혈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유는 예수님 보혈의 공로와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 십자가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나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이나 예수님의 행적을 표현하기 위한 그림일 뿐 거기에 그려진 예수님을 향해 경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어떤 조각이나 그림으로 예수님을 표현하고 그 앞에 경배하고 기도할 때는 우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모세도 우상을 만들었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사막의 불 뱀에게 물렸을 때의 사건을 말하지요. 수많은 백성이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았는데,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이 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놋 뱀의 형상을 만들게 하신 것은 그 형상을 숭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써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 불 뱀을 본 사람들이 죄로 인한 죽음에서 놓임 받은 것처럼,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던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고 생명을 얻게 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더구나 열왕기하 18장 4절에 오랜 훗날,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척결할 때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곧 놋 조각)이라 일컬었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놋 뱀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들어진 형상이지만, 그것이 결코 우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됨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우상숭배에 담긴 영적인 의미
   
   영적인 의미로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꼭 불상 앞에서, 혹은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님이나 남편, 아내, 혹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 또한 영적으로 우상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지요.
   이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진리 안에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께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진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해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줘야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녕 자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고 자녀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원수 마귀로부터 지켜줄 수 없으나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주 안에서 사랑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자녀를 지켜주십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육의 사랑을 합니다. 사랑한다면서 다투기도 하고 결국 사랑이 변질되어 남남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랑할 때는 진정한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내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않으며 절대 변질되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때라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 하시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 지식을 더 사랑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면 이것도 영적으로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해 주일조차 온전히 지키지 않고, 명예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계명을 어기지요. 이렇게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어긴다거나 세상과 타협하여 진리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영적인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 운동선수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므로 우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님 중 연기나 운동을 잘하는 분들을 좋아하고 그 재능을 동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재능을 존중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세상 것들을 사모하고 늘 마음에 품으므로 이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이 외에도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좋아하는 인형이나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 있어서 거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것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언가가 영적으로 우상이 되며, 우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과의 관계나 모든 상황에서 진리와 영을 좇아가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라면 차단할 수 있는 지혜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
   
   출애굽기 20장 5절 후반 절과 6절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순종하는 사람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 하실 때, 이 질투는 사람이 하는 질투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사람이 하는 질투는 육의 속성에서 비롯되므로 추하고 더러우며 상대에게 해를 입히게 됩니다. 사랑의 질투가 아닌 미움의 질투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랑의 질투를 하실까요? 만약 성도가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사람을 외면하시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그를 주관하도록 내주십니다. 공의의 법칙에 의해 범죄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주셔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때 각종 시험 환란, 재앙을 당하게 되어 그는 마음이 가난해져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죄로 인해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영생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참사랑의 표현이지요.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질투하지 않으셔서 범죄한 그를 외면하시지도 않고 무조건 용서하며 내버려두신다면, 그는 잘못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계속 범죄해 결국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이시며 사랑하는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지요. 그런데도 사람이 마땅히 섬기고 공경해야 할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며 숭배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왕이신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 보응을 받게 되는데, 그 죄가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지요. 불치, 난치병이나 불구자, 정신 이상자, 귀신 들린 사람, 자살하는 사람 등이 나오고, 물질의 어려움과 환란이 계속 임합니다. 이런 재앙들이 4대에 걸쳐 임하게 된다면 그 집안은 완전히 몰락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요.
   하나님께서 재앙을 4대에 이른다고 단정하지 않으시고 3, 4대에 이른다고 여지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긍휼의 표현입니다.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 해도 그 자손 중에서 완전히 멸절당하기 전에 회개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긍휼을 입으므로 그 재앙이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쉽지 않고, 주님을 영접한다 해도 그 조상들과 마치 영적인 끈으로 묶인 것과 같아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 송사하며 어찌하든 다시 사망으로 끌고 가려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끝까지 겸비한 마음으로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자신의 악을 버려 나가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킴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대까지, 곧 영원히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재앙은 3, 4대에 이르나 축복은 천대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을 볼 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는 일도 없으시므로 자자손손, 천대까지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4년 9월 1일 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32장 1절
성시교독 21번
찬송 204장
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출애굽기 20:7
찬양 주 날 인도하네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계명(3) - 제3계명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149장
주일 저녁예배 (2024년 9월 1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곽윤진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33:19~26
특송 윤권능 형제
설교 욥기 강해(96) - 자기 자신을 알자⑤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9월 4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황미경 전도사
성경봉독 전도서 12:13~14
설교 사람의 본분(2)
장성식 목사
금요 철야예배 (9월 6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형렬 목사
대표기도 채윤석 장로
성경봉독 창세기 1:6~8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26) - 창조 둘째 날①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최영신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4-09-01 2024년 9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르비아어(859번째), 「권능」 크로아티아어(860번째), 「천국(하)」 케냐 국가의 공용어인 스와힐리어(861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9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회 안내실 앞과 구로 지성전에 비치되었으니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은 활용바랍니다.

● 「9월 은사집회」가 9월 27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님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접수는 9월 2일(월) ~ 9월 8일(주일)까지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제23회 말씀퀴즈대회 본선 및 결선이 오늘 저녁예배 후 오후 6시에 GCN스튜디오에서 현장으로 진행됩니다. 인터넷 생방송으로 시청하실 수 있으며, 인터넷 응원 접속하시는 분들에게는 추첨을 통해 경품을 드립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응원 바랍니다.

●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역 교회 집회 및 목회자 만남을 위해 출장이 있습니다.
※ 출장자: 손영락 장로
※ 출장기간: 9월 4일(수) ~ 9월 13일(금)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24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24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영 목사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김유현2 자매(3청년/ 4교구 이현자 권사의 자녀)
※ 9월 7일(토) 오후 5시 구로구 신도림동 692 디큐브시티 「더세인트 41층 파노라마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꽃꽂이부(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9-01
[주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 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2024-09-02
[월요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2024-09-03
[화요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1]
2024-09-04
[수요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2024-09-05
[목요일]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 21:22]
2024-09-06
[금요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전 4:20]
2024-09-07
[토요일]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