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목표 : 양선보다 더 깊은 차원의 긍휼의 마음을 이루어 자신의 삶 속에서도 능히 베풀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긍휼의 사전적 의미는 '가엾게 여긴다, 불쌍하게 생각한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긍휼은 '누가 범죄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할 때, 중심에서 용서하고 기도해 주며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마음'이지요. 이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양선의 마음과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 깊은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선은 '악이 전혀 없으며 오직 선만을 추구하는 마음이지요. 이런 양선의 마음이 행함으로 나타나되,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더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 긍휼입니다.
1. 한없는 용서의 긍휼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한다.'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양선의 마음이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생명을 주는, 더한 사랑으로 나타나는 '용서의 긍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즉시 징벌하지 않고, 어찌하든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해하고 용서하기보다는 같이 미워하고 다투며 상대의 허물을 들춰내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주님은 참고 기다리며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어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살지 못한다 해도, 즉시 그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아직 온전치 못하여 범죄하는 사람이라 해도, 어찌하든 성령으로 깨우치고 진리 가운데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인내하며 인도하시는 주님의 마음이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이미 아셨는데도,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사랑하시며,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팔자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가룟 유다의 마음 안에 욕심을 버리고 변화되기를 기다리시며 깨우쳐 주셨지요.
이러한 용서의 긍휼은 하나님의 마음이시기도 합니다. 죄로 인해 무서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모든 물과 피를 흘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면서도 또 다시 죄를 짓는지요.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즉시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용서의 긍휼로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려 주십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 않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마음 중심으로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셨습니까? 혹여 아직도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주변에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용서할 수 있는데, 저 사람만은 용서 못하겠다.' 하지는 않았는지요? 누군가에게 '서운함'과 '한'을 쌓아 두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을 담은 징계의 긍휼
'징계'는 용서와 반대되는 말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징계의 긍휼은 미움이나 정죄함이 아닌, 사랑으로 하는 징계이기에 상대가 변화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징계의 긍휼 역시 하나님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말씀했고, 8절에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징계를 통해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징계가 없다면 구원받은 후에도 다시 '세상이 좋다'며 어둠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수 마귀에게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계시지 않고, 징계를 통해 돌이킬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가령, 자녀가 나쁜 짓을 때 아이를 바로잡는다고 처음부터 무조건 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 행동이 나쁜 것인지 알려 주고, 자녀가 중심에서 뉘우치도록 부드럽게 타이르지요. 그러나 자녀가 말로만 회개하고 계속하여 범죄한다면 부모님은 마음이 아프더라도 징계의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더 이상 빗나가지 않도록 징계를 통해서라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같은 징계라도 사랑이 없으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웃집 아이가 물건을 훔쳤을 때, 아이가 중심에서 용서를 빈다면 선한 사람은 긍휼이 여겨 용서해 줍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혔다며 혈기를 내고, 아이를 책망하거나 심지어 용서를 빌어도 처벌을 요구하지요. 또한 처벌하지 않는다 해도 잘못을 전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이러한 징계는 미움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긍휼이 아닐뿐더러, 결코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비록 상대가 잘못을 범했다 해도 그 사람의 입장과 장래를 생각하여 사랑으로 징계할 때라야, 징계의 긍휼에 속하지요.
성경에는 믿음의 형제가 범죄했을 경우, 진리로 권고하고 징계하는 과정이 나옵니다(마 18:15~17).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주변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에게 사랑으로 권면하여 돌이키게 해야 합니다. 만일 권면을 듣지 않으면 그 사람이 속한 모임의 윗분에게 말하여 돌이키게 해야지요.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교회에 알려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과 같이 여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대로 하시되, 어떤 범죄라 할지라도 사람을 판단 정죄해서는 결코 안 되겠습니다. 사랑의 긍휼을 베풀어야 우리도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의 긍휼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긍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5~16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혹자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나도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어렵다고 무턱대고 구제하는 것은 가하지 않습니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요. 이 외에도 긍휼을 믿음의 형제뿐 아니라, 세상 사람에게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4. 긍휼히 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
그렇다면 긍휼히 여기는 사람에게 어떠한 복이 임할까요?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는 마태복음 5장 7절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대로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설령 자신을 힘들게 하고 피해를 입힌 사람이라 해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면, 자신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거나 실수로라도 상대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는 부요하고 강건한 축복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건하게 바꾸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이 여기는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축복이지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긍휼의 영적인 의미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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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구제를 하면 안 된다.
② 진리 안에 합당한지 살펴서 구제를 해야 한다.
③ 세상 사람들에게는 긍휼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④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했을 때 징계를 통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복음 18:22)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합니까?라고 여쭐 때 예수님이 하신 답변이다. 이는 단순히 490번 용서해 주라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로 용서해 주라는 뜻이다. '7'은 완전수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하셨으니, 완전한 용서 즉 무한대의 용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