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4
제7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1)
로마서 8:5~8
읽을말씀 : 로마서 8:5~8 | 외울말씀 : 로마서 8:7 l 참고 말씀: 신명기 25:17~19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