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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05-12 제19과축복의 비결 (4) 말라기 3:8~10
읽을말씀 : 말라기 3:8~10  |  외울말씀 : 말라기 3:10 | 참고 말씀: 마태복음 6:21
교육목표 : 모든 물질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1. 십일조의 중요성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모든 산업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해 벌어들인 수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여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므로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그중 십분의 일만 구별하여 드리라 하셨는데 그런데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 찬양, 충성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을 생명에 비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마 6:21).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축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받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초신자의 경우는 구원받더라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힘들게 하려고 십일조라는 규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해 ‘정말 그럴까?’ 의심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금으로 나온 교회의 재정은 영혼 구원과 직결된 일에 쓰입니다. 즉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들의 급여, 선교비, 각종 행사비, 성전 유지비, 구제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총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인데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총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도 포함합니다. 음식 대접이나 선물도 수입에 포함해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또한 감사예물 등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명목으로 헌금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입이 생기는 즉시 십일조를 떼어 놓으면, 돈이 없어서 못 드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 등 기타 헌금은 주관 받는 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개인별로 땅과 집과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공동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자녀들도 세뱃돈이나 용돈, 생일 선물 등 수입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비나 학용품 등과 같이 정해진 용도로 받는 것은 자녀의 수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십일조는 떼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는 적어도 한 달 간격으로 계수해야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생기는 그때그때 드리거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는 것이 좋지요. 농사를 짓는 경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몇 달 간격으로, 또는 일 년 단위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정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출이 바로 자신의 수입이 되므로 이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3. 온전한 헌물을 드리려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헌물이란, 십일조 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참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형편이 어려워서 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적은 것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도 상한 것, 흠 있는 것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 드릴 때는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드리는 ‘예물’에 흠이 없어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 채로, 또는 형제와 불목하면서 드리는 예물 또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나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담을 헐고 나서, 이웃 간에도 화평을 이룬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예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돈, 오물이 묻은 경우는 깨끗한 돈으로 바꾸어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준비하였다가 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헌물을 드림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릴 것은 감사헌금으로, 건축헌금으로 드릴 것은 건축헌금으로 정확하게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 임의로 구제나 찬조로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건축헌금은 여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됩니다.
   헌물은 반드시 단에 올려 안수받아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드린 헌금에 주의 종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인 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드린 손길에 온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십일조란 무엇일까요?
   
   2. 헌물이란 무엇일까요?
   
   3.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한다.
   ② 십일조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이다.
   ③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④ 100만 원의 월급에서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를 공제한 80만 원에 대한 십일조만 하면 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과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한다.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 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이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는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5-07 지옥 (12) - 이재록 목사 마태복음 27:22~26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성령 훼방 등 중한 죄를 범한 이들이 받게 되는 3단계 형벌을 아랫음부에서 받고 있는 ‘빌라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으로서 이스라엘 지역을 다스리는 책임자였지요.
   당시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처형할 권한이 없어서 예수님을 처형하려면 지배국인 로마법의 승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즉 빌라도의 허락이 필요했지요. 유대인들이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끌고 와 고소한 이유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예수님을 살리고자 했지요.
   그러나 큰 물결처럼 몰려온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거세게 요구하자 민란이 일어날까 봐 두려웠습니다. 자기가 다스리는 지역에 민란이 일어나면 황제 앞에서 문책당해야 하고, 자칫하면 모든 권세와 명예를 잃을 수 있기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지요.
   이처럼 죄 없으신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함으로써 빌라도는 스스로 사망의 길을 택했고 자신이 받을 형벌을 정하고 만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한 대로(마 27:26), 빌라도의 군병들에게 맡겨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온몸에 채찍질 당하셨고, 이를 허락한 빌라도 역시 아랫음부에서 지옥 사자들에게 채찍질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이 땅에서 이름이 불릴 때마다 지옥 사자들에게 채찍 맞는 빌라도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내리쳤던 채찍은 긴 가죽끈 끝에 쇳덩어리나 뼛조각을 매단 흉기입니다. 포악하고 무자비한 로마 군병이 이 채찍을 한 번 휘두르면 가죽끈이 온몸을 휘감으며 살을 찢습니다. 채찍 끝에 달린 쇳덩어리가 살점 깊숙이 파고들지요. 채찍을 다시 잡아채면 채찍 끈에 살점이 묻어납니다.
   아랫음부의 빌라도 역시 이와 비슷한 채찍으로 맞고 있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이 땅의 사람들이 빌라도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지옥 사자가 채찍을 휘두른다는 점입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예배나 기도회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을 하면 빌라도는 채찍에 맞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름을 부르면 채찍질의 속도가 정신없이 빨라지고 강도도 점점 더 세집니다. 이때 주변의 지옥 사자들이 고문을 지원하러 몰려들지요. 이미 찢어질 대로 찢어져서 너덜너덜하고 피투성이가 된 몸임에도 빌라도를 에워싼 지옥 사자들은 서로 경쟁하듯 채찍을 휘두릅니다. 살점이 떨어지다 못해 허옇게 뼈가 드러나고 나중에는 뼛속까지 채찍이 파고들어 채찍 끈에 골수까지 묻어나지요.
   채찍이 자기 몸을 후려칠 때마다 빌라도는 “제발 내 이름을 부르지 마소서. 그때마다 내가 괴로움을 당하나이다.” 애원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애원할 수도, 고통을 호소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한(눅 23:23~24) 그 혀가 저주받아 뽑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지옥에서는 고문에 의해 몸이 손상돼도 곧 재생되기 마련인데 빌라도의 혀는 재생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로 저주의 상징이지요.
   그의 이름은 저주받은 자의 대명사로 마지막 ‘대 심판의 그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불릴 것입니다. 그때마다 빌라도는 지옥 사자들에게 채찍질 당해야 하고, 그 고통은 점점 더 깊어만 갈 뿐입니다.
   
   
   2. 유대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빌라도의 죄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줄 때 물을 가져와 손을 씻으면서 유대인들을 향해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하고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을 죽이기에 급급했던 유대인들은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했고, 그 고백대로 보응 받아 그들의 역사는 민족적인 수난의 연속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40년이 채 못 되어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이때 무수한 유대인이 학살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세계 각처로 뿔뿔이 흩어졌지요. 어딜 가든 차별대우와 박해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는 많은 유대인이 학살되었지요. 이처럼 죄 없으신 예수님의 피를 흘린 대가가 얼마나 참혹한지 역사가 증명하며, 영계의 법칙에 따라 입술의 악한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전적으로 유대인들의 책임이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책임도 크지만 그렇다고 빌라도가 무죄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리 유대인들의 청원이 거셌다 해도 빌라도가 끝까지 정의를 따랐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빌라도가 아무리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떠넘긴들, 자신은 무죄하다고 결백을 주장한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사형을 언도한 죄가 사라질 리는 만무합니다.
   
   
   3. 모면할 여러 기회가 있었음에도 예수님께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 빌라도
   
   빌라도에게는 범죄에 가담하지 않고 그 상황을 모면할 기회들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뵈면서 그는 예수님께 아무 죄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총독으로서 유대 지방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많은 염탐꾼을 곳곳에 심어 놓았지요. 그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사와 표적에 대해 들었고, 예수님의 설교 내용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기에 예수님을 불러 대화도 해 보았지요.
   이런 정황들은 빌라도가 로마 황제에게 예수님에 대해 보고한 공문서 ‘빌라도 보고서’에 기록돼 있고, 빌라도는 자기 입으로 예수님은 결코 사형에 처할 죄인이 아님을 시인했습니다(눅 23:14~15).
   
   예수님께서는 심문받으시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빌라도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어떻게든 깨우쳐 주려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33~34절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자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말씀하셨지요. 이에 빌라도는 당황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해 듣고 또 직접 만나보고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왕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영적 위엄을 느꼈지요.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질문한 것은 유대인들의 고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질문이었지요. 예수님께서 이런 빌라도의 마음을 아시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시니 당황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도 빌라도를 한 영혼으로 바라보시고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때라도 빌라도가 예수님의 마음을 느꼈다면, 적어도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면 더 이상 죄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빌라도에게 주신 기회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빌라도가 십자가 처형을 언도하기 바로 전날 밤에 빌라도의 아내는 예수님에 대한 꿈을 꿉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여하지 말라고 남편인 빌라도에게 간곡히 부탁하지요. 물론 빌라도도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거친 유대 군중과 교활한 지도자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2절에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했지요.
   이 말에 빌라도는 흔들립니다. 나름대로 옳은 길을 택하려 해 보았지만 결국 자신이 수세에 몰리니 죄에 가담하는 편을 택하고 말았지요. 자신의 지위와 생명을 위협받자 곧 마음이 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그 상황을 모면할 기회들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끝끝내 그 기회들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 처형을 언도했고, 그 대가로 지옥에서 지금도 참혹한 채찍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라도는 단 한 순간의 실수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빌라도의 마음 안에는 이미 악과 불의가 많이 쌓여 있었지요. 자기 유익을 따라 변개하는 간사한 마음, 무엇이 옳은지 알고도 옳지 않은 일을 행하는 불의한 마음, 비겁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미 마음에 가득한 악과 불의가 긴박한 상황 속에서 죄로 열매 맺은 것뿐입니다. 무죄한 사람,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큰 죄로 열매 맺었지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빌라도와 같이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불의를 행함에 있어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이 살고자 남을 모함하고 죽이려 합니다. 결코 작은 죄가 아닌데도 ‘이 정도쯤이야.’ 하지요. 세상이 워낙 죄악으로 관영해 양심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마치 빌라도가 손을 씻으며 자신의 비겁한 행동을 유대인들의 탓으로 돌린 것처럼 “저 사람 때문에, 상황과 조건 때문에 그랬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내 탓이 아니다.” 하지요. 그러나 그 어떤 경우라도 악행에 대한 책임을 결코 남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일이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그러므로 작은 욕심, 사심, 변개하는 마음, 비겁한 마음 등 비진리의 마음이 발견되면 그것을 작다고 그냥 넘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군중 중에는 바로 며칠 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환호하며 예수님을 자기 왕으로 맞았던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치료받은 사람, 생명의 말씀을 들은 사람, 기사와 표적을 목도한 이들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죄인으로서 빌라도의 관정에 서신 예수님을 보자 많은 이가 돌변했습니다. 보고 듣고 체험한 증거가 있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오직 선만 행하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유익, 자기 생각에 맞지 않자 배신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한 대로 마음의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자라면 결국 사망을 낳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죄성까지 다 뽑아내셔서 어떤 환경을 만나든 항상 옳은 것, 선한 것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짙은 어둠과 죄악으로 물들어 죄의 유혹도 그만큼 강해집니다. 이런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지요. 참으로 의로운 마음을 이뤄서 항상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5월 7일 주일) 어린이주일
* 사회: 이미경 목사
개회찬송 31장 1절
성시교독 71번
찬송 300장
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사무엘상 15:22~23
찬양 놀라워라 주의 사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지옥(13)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92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5월 7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서덕분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8:8~13
특송 서경애 권사
설교 욥기 강해(46) - 스스로 올무를 만들지 말자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5월 10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풍근 목사
대표기도 조은영 전도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22:37~40
설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임학영 목사
금요 철야예배 (5월 12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강승표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10~1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75)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현진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5-07 2023년 5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은」 스페인어와 네덜란드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만민뉴스 말레이시아어(24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만민뉴스 992호가 디지털 신문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5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기획실과 교회 안내실 앞, 사택예배실에 비치되어 있으니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은 활용바랍니다.

● 아동주일학교 주최로 어린이주일 온라인예배가 오늘 오후 1시에 있으며, 아동 성령충만기도회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 인도로 오후 1시 30분에 사택예배실에서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회는 유튜브로 생방송됩니다.

● 5월 은사집회가 5월 26일 금요 철야예배 시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 인도로 있습니다.
환자접수는 5월 8일(월)~14일(주일)까지 받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5월 은사집회와 2023년 7가지 기도제목을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5월 8일(월)~28일(주일) 까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 시작합니다.

● 예수교연합성결회 아프리카 총회장이며 케냐 나이로비 만민교회 담임이신 정명호 목사님과 윤인숙 사모가 업무차 입국하였습니다.
※ 체류 기간: 5월 2일(화)~10일(수)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마산만민교회(담임 이성칠 목사) 창립 42주년 기념예배/ 5월 14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 성령충만기도회/ 5월 13일(토) 오후 8시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아동주일학교 지도교사, 부장, 교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5-12
[주일]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살전 3:12]
2024-05-13
[월요일]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 3:13]
2024-05-14
[화요일]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 23:3]
2024-05-15
[수요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출 32:33]
2024-05-16
[목요일]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 18:10]
2024-05-17
[금요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1]
2024-05-18
[토요일]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