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3-06-02 제22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 - 일곱 영 (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 참고 말씀: 잠언 8:17, 출애굽기 20:6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니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지요.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는지를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일 중의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이는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이지요.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요.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므로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이지요.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믿음) → ( ) → (기도) → ( ) → (계명 지킴)→ ( ) → (사랑)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세요.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05-28 지옥 (15) - 이재록 목사 마태복음 12:31~32
지난 시간에 이어 아랫음부 4단계 형벌 중 오늘은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한 영혼들이 받는 형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가룟 유다가 자살했어도 아랫음부에서 형벌 받는 이유
   
   자살한 영혼은 아랫음부에서 형벌 받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돕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아랫음부에 떨어지지요. 즉 귀신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 되고, 7년 환난이 끝날 때까지 이 땅을 떠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는데도 왜 귀신이 되지 않고 이미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고 있는 것일까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가룟 유다에게는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도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너무나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더 중한 형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도는 것도 매우 중한 형벌입니다. 육의 몸을 벗은 영혼이 육의 공간에 머물러 있으면 그 자체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받지요. 차라리 형벌을 받더라도 아랫음부에 있는 것이 낫다고 느낄 정도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아랫음부에서 받는 4단계 형벌의 고통은 귀신이 받는 고통을 초월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채 받는 고통도 고통스럽지만 아랫음부 4단계 공간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습니다. 깊은 차원의 지옥일수록 지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육의 기운’의 밀도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비유 들어 사람이 심해, 곧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온몸이 수압으로 인해 수축합니다. 숨을 쉴 수 없을 뿐 아니라 몸의 혈관이 터져서 신체 곳곳의 구멍으로 피가 흘러나와 결국 죽고 말지요. 이런 것처럼 깊은 차원의 지옥일수록 영혼이 육의 기운에 짓눌리기에 그곳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큰 고통을 받습니다.
   가룟 유다가 형벌 받는 공간도 육의 기운의 밀도가 매우 큰 곳입니다. 따라서 가룟 유다가 귀신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가 받는 형벌의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자살한 죄에 대한 값을 충분히 치르게 됩니다.
   또한 가룟 유다가 자살했어도 예외적으로 아랫음부에 떨어진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아랫음부 4단계의 주인’과 같은 인물로 세워진 것입니다. 여기서 주인이란 ‘대표 격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룟 유다는 아랫음부 4단계 형벌을 받는 무리의 맨 앞에 세워져 끊임없이 형벌을 받습니다. 지옥에 대해 알게 될 후세 사람들이 그의 길을 답습하지 않도록 마치 아랫음부 4단계의 간판과 같이 세워진 것입니다.
   
   
   2. 사울 왕이나 빌라도의 경우
   
   전장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기 칼을 세우고 그 위에 엎드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울 왕은 어느 시점에 아랫음부에 떨어질까요? 그는 귀신이 되어 떠돌다가 천년 왕국 때 아랫음부에 떨어져 3단계 형벌을 받습니다. 그때까지는 자살한 영혼들의 일반적인 경로대로 귀신이 되어 이 땅을 떠돌지요.
   그런데 빌라도는 자살했다는 설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그의 최후에 대해 정확히 알려 주는 문헌이나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초기 기독교 역사를 집필한 유세비우스가 ‘교회사’라는 책에 “짐작하건대 빌라도는 그를 바짝 뒤쫓는 신의 징벌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자신을 심판하는 참화로 떨어졌다”라고 기록한 것을 토대로 자살했다고 추측해 온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유세비우스가 처음에 밝힌 대로 짐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옥 말씀을 통해 빌라도의 자살 여부만큼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빌라도가 이 땅의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채찍에 맞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그가 지금 아랫음부에서 형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즉 그가 자살한 것은 아님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3. 자살하도록 조종하는 원수 마귀 사단
   
   자살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타인의 생명이든 자신의 생명이든 사람이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자살은 감히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큰 죄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에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셨듯이 살인은 하나님께서 분명히 금하신 것입니다. 이 계명은 십계명 중 하나이지요. 타인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지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도 명백한 살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살은 큰 불효이기 때문에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육의 부모에 대한 불효이기도 하지만 우리 영혼과 육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도 너무나 큰 불효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이렇게 귀한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스스로 끊는다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또한 꼭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살하도록 조종하는 존재는 원수 마귀 사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떤 일로 인해 매우 낙담했거나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 우울한 생각을 불어넣지요. 이때 사단이 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 곧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니 사단의 꾐에 넘어가서는 결코 안 됩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습니다(빌 4:13).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기뻐 춤출 일이지요. 또한 자살의 결말은 자유가 아닙니다. 영원한 슬픔과 더 큰 괴로움이 있는 지옥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실을 가족, 친척, 이웃에게 속히 전해야 합니다. 물론 겉모습만 보아서는 자살이지만 자살이 아닌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4. 성령을 대적하는 행위는 주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알 수 있듯이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는 영원히 사함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성령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우리에게 보내 주신 보혜사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을 대신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이지요. 주님을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십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된 깊은 영의 말씀, 비밀스러운 말씀도 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즉 온전한 구원을 이루도록 바른길로 인도하시지요.
   또한 각종 은사를 주셔서 신령한 것을 맛보게 하십니다. 일례로 방언의 은사를 들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은 그 능력으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천국이 있는 영의 세계를 체험케 하시지요. 또한 하나님 사랑을 깨닫게 하심으로 우리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참된 천국의 시민들로 거듭나게 하시지요. 그러니 이런 성령을 부인한다는 것은 스스로 구원의 길을 벗어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성령을 체험하고도 성령의 역사를 부인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질병을 치료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얻고도 다시 사망의 길로 가지요. 중상모략으로 교회를 훼방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합니다. 이런 성령을 대적하는 행위는 주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니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5. 성령 훼방한 어떤 부부의 형벌
   
   남편에게 미혹 받아 함께 하나님을 대적한 여인은 아랫음부에 떨어지자, 참혹한 형벌을 받으며 남편을 원망하고 저주합니다. 둘 다 악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내는 혼자 성령을 훼방하며 하나님을 대적할 만한 그릇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육적인 정 때문에 남편의 악행에 동조해 함께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지요.
   이렇게 성령을 훼방한 부부는 짝이 되어 함께 형벌을 받습니다. 펄펄 끓는 액체가 담긴 큰 항아리에 번갈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항아리 안에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정체불명의 더러운 액체가 담겨 있습니다. 항아리 밑에 끊임없이 불을 때기 때문에 액체는 펄펄 끓고 있지요.
   항아리 안에 들어가 이 액체 속에 잠기면 살갗이 두꺼비 등살처럼 부르트고 물집이 잡힙니다. 안구가 튀어나오는 등, 얼굴과 온몸이 흉물스럽게 변하지요. 뜨거움에 몸이 뒤틀리고 역한 냄새에 숨이 막혀옵니다. 어찌하든 그 고통을 면해 보려고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다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지요.
   그러면 머리 위에서 커다란 발이 내려와 머리를 사정없이 짓눌러 다시 항아리 속에 집어넣습니다. 이 발은 부부를 고문하는 지옥 사자의 발입니다. 발바닥에는 쇠꼬챙이 같은 못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지요. 이 발에 밟혀 상처투성이가 되어 다시 항아리 속으로, 곧 숨 막히는 뜨거움과 악취 속으로 밀려들어 갑니다. 그러나 잠시 후면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다시 수면 밖으로 나오고, 그러면 발에 밟혀서 다시 물속으로 밀려들어 가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지요.
   그런데 이 형벌은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당하기 때문에 남편이 항아리에 들어가면 아내는 밖에서 이 참상을 봅니다. 아내가 형벌을 당하면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지켜보지요. 처음에는 상대가 형벌 받는 모습을 보고 심히 마음 아파하며 꺼내달라고 애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애원이 사라집니다. 상대가 오래 고통받을수록 자기가 고통받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이후 부부는 상대가 항아리 속에서 허우적대며 온몸이 터지도록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를 그대로 두라고 아우성칩니다. 항아리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은 이런 배우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대에 대한 증오를 키우지요.
   아내는 그래도 남편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주를 배신하기까지 남편과 함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적인 사랑의 결과는 함께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 받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원망하면 남편은 오히려 아내보다 더 큰 소리로 욕합니다. 자기 악행에 동조한 아내를 원망하고 저주를 퍼붓지요. 이 땅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고통이 극심하니 이제는 나 대신 상대가 고통받기를 원하지요. 이 추악한 모습이 바로 썩어질 육의 실상이요 지옥의 실상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부부였던 사실을 저주하며 상대방을 항아리 속에 더 오래 두라고 간청할 때 지옥 사자들은 매우 기뻐하며, 마치 재미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지켜봅니다. 그러고는 흥을 더 돋우려고 항아리 아래 불을 더 뜨겁게 지피지요.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면 이전보다 더 세게 머리를 밟아 버립니다. 항아리 속의 액체가 더 뜨거워져서 부글부글 끓어오를수록 부부는 입으로 더 독한 저주를 쏟아내고, 지옥 사자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지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랫음부에서 형벌 받는 영혼들이 악을 발하면 지옥 사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도 사람이 악을 행하면 악한 영들이 기뻐하지요. 그러므로 영계의 법칙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고백을 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보여 드립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선과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자체가 악한 영의 세력을 이기는 능력과 권세가 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더 이상 송사할 수 없으므로 시험 환난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어떤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오직 진리로 생각하며 믿음으로 행하여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5월 28일 주일) 성령강림주일
* 사회: 조수열 목사
개회찬송 21장 1절
성시교독 63번
찬송 175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사도행전 2:1~4
찬양 만복의 근원 하나님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성령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81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5월 28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박광현 목사
대표기도 류순주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19:8~16
특송 윤권능 형제
설교 욥기 강해(49) - 육과 영의 가치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5월 3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차난영 권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13
설교 사랑(1)
장성식 목사
금요 철야예배 (6월 2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혁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김상휘 목사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19~21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77)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장정미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05-28 2023년 5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은」 리투아니아어와 콩고 링갈라어어가 전자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만민뉴스 한국어(994호), 영어(744호), 중국어(618호), 우르두어(105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5월 은사집회」에 치료하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은사집회를 인도해 주신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님께 감사드리며 은사집회를 통해 치료받거나 응답받으신 성도님들은 해당 교구장, 지도교사 또는 교회 홈페이지와 모바일앱에 간증 접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 5월 은사집회와 2023년 7가지 기도제목을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를 인도해 주신 만민기도원 원장님께 감사드리며 동참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작정 다니엘 철야 마지막 날로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준비찬양은 오후 8시 40분부터입니다.

● 「2023 만민찬양제」를 개최합니다. 만민과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릴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참가대상: 본 교회, 국내 지교회 학생 이상(솔로, 듀엣, 중창)
※ 영상 제출: 5월 28일(주일)까지 / e-메일(brchurch@hanmail.net)
영상 제출 시 이름, 소속, 연락처를 기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 문의: 기획실 김영철 집사(☎ 02-818-7233)

● 총회에 납부할 세례인 부담금(1인당 3천원)을 6월 11일(주일)까지 각 교구장(남·여선교회) 및 지도교사(학생 이상)에게 납부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23년 6월 추천도서는 「멈추지 않는다」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사랑만민교회(담임 김혜경 목사) 창립 14주년 기념예배 및 장로장립/
※ 6월 4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서진범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이계숙 권사, 김영주 자매(21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6-02
[주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2024-06-03
[월요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6]
2024-06-04
[화요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2024-06-05
[수요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6]
2024-06-06
[목요일]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히 10:23]
2024-06-07
[금요일]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히 10:24]
2024-06-08
[토요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