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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10-13 제41과삼위일체 하나님 마태복음 28:19
읽을말씀 : 마태복음 28:19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8:19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3:13
교육목표 :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을 바로 알아 참믿음을 갖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 분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분명 한 분이지만 동시에 세 분의 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아버지 격인 성부 하나님, 아들 격인 성자 예수님과 보혜사 격인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이기에 ‘성 삼위일체’라고 표현하지요.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스러운 말씀입니다.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는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지각과 상상을 초월해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것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광대한 공간 안에 홀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고,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가장 먼저 공간을 나누셨습니다. 영의 공간과 육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살아갈 육의 공간을 나누신 것입니다. 그 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됩니다.
   성경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 히 5:5), 성령님 역시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요 15:26 ; 갈 4:6). 마치 분신을 만들어 내듯이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을 낳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경작을 위한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근본 하나이지만 인간 경작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며 역할은 다르지만, 마음도, 생각도, 능력도 하나이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질서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 느끼고 원하시는 것을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도 동일하게 느끼고 원하시지요. 역으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기쁨이나 고통을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느끼십니다.
   그런데도 역할에 따라 성품이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으셨지만, 성자 예수님께서는 신성적인 면이 더 강해 신(神)적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집니다. 반면에 성령님께서는 인성(人性)적인 면이 더 강하므로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지만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성품이 구별될 뿐 아니라 뚜렷한 질서 가운데 각각의 역할이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 다음이 성자 예수님이시며, 성령님께서는 그다음이 되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사랑으로 섬기십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한 사역 또한 함께 이루어 가십니다. 각각의 역할을 정확히 감당하심으로 인간의 창조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작의 섭리가 온전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담당하시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1) 구원의 길을 여시는 성자 예수님
   성자 예수님의 역할은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려면 첫째로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며, 셋째로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고,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십자가의 도』 책자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해 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으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셨지요.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셨다면 불순종한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다 지옥에 가야 하므로 인간 경작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실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실 수 있는 성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2) 구원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님
   인간 경작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그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영을 무수히 분리해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본체는 한 곳에 계실지라도 본체와 똑같은 마음과 능력을 가진 영이 무수히 분리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뿐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도 그 영을 분리하시지만, 성령님께서 사역하시는 데는 영으로 분리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이처럼 분리되신 성령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십니다. 성도의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는 개인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또한 부지런히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죄할 때는 애통하시며 회개해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롬 8:26). 이와 함께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과 각종 은사를 주셔서 능히 죄를 버릴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도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3) 인간 경작의 총감독이신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가 되시며, 창조주요 만물의 주관자이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십니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은 질서 가운데 정확히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 세 분이 동시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했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과 물과 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 되어 사역해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하셨고, 사도 바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주고 축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이시며,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신다.
   ( )께서는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 )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신다.
   
   2. 성자 예수님께서는 ( ) 면이 더 강해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지지만, 성령님께서는 ( ) 면이 강하며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신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을 분리하시는 성자 예수님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께서도 영을 분리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의 본체가 모든 장소마다 일일이 갈 수 없으므로 분리된 주님의 영이 곳곳에 임하신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10-08 십자가의 도(10) -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 이재록 목사 누가복음 2:1~7
오늘은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시고,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사신 섭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짐승과 다름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는 남편인 요셉과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당시 베들레헴에는 사관이 모두 차서 묵을 방이 없었기에 마리아는 한 사관의 짐승 우리에서 해산하게 되었지요. 강보에 싸인 예수님을 마땅히 뉠 곳이 없어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뉘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셨을까요?
   전도서 3장 18절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시험해 보시니 짐승과 다름이 없더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의 악함을 생각하면 짐승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자나 표범 같은 맹수들도 배가 고프거나 자신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가 아니면 불필요한 살상은 잘 하지 않습니다. 짐승 중에도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토록 상대를 배신하지 않고, 새끼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기도 하지요. 집에서 기르는 개는 자기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주인을 위해 생명을 바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사람이 자기 욕심을 더 채우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여자와 어린아이, 병자들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가족이나 이웃 간에도 참사랑을 찾아보기 어렵지요. 이혼율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물질의 욕심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에, 형제간에도 서로 싸우고 고소하며, 심지어 죽이기도 합니다.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배신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도 허다하지요. 사람이 사람을 돈으로 사고팔며 심지어 자녀까지 팔아넘기기도 합니다. 어린 학생들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일들을 행하지요.
   이 밖에도 뉴스를 보면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사건들을 끊임없이 보도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짐승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이 죽고 혼과 육으로만 살아가니 혼과 육으로만 지어진 짐승과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지요. 점점 마음이 죄악으로 물들어 갈수록 세상 정욕과 자기 욕심에 따라 온갖 죄를 지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악에 물들어 짐승같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반드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야 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51절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몸이 양식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말씀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셨지요. 예수님을 통해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되찾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2. 짐승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 참 생명을 얻으려면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했고,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고, “버리라” 하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경외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명령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은 말씀대로 행치 않는 사람들도 많지요.
   또 성경 말씀대로 행하라고 하면, “그 무수한 명령을 어떻게 다 지킵니까? 그러려면 신앙 생활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힘들게 하시려고 이러한 말씀들을 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들도 자녀들에게 “열심히 공부해라.”,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 “깨끗하게 씻어라.” 등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자녀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공부하기 힘드니까 놀기만 해라.”, “청소하려면 귀찮으니까 지저분하게 살아라.” 이렇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정말 자녀를 사랑한다면 사람의 본분을 다하여 사람답게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들도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 하시는 것들은 시험 환난을 겪지 않기 위함이요,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함이지요. “행하라” 하시는 것들을 행할 때 축복받고 응답받으며 천국에 갈 수 있으므로 행하라 하시는 것입니다.
   육의 자녀들도 부모를 사랑하고 신뢰하면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위해 너무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3. 우리에게 부요의 축복을 주시고자 가난한 삶을 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시며 창조주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했고, 3장 35절에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했지요.
   이처럼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거칠고 척박한 땅에 오셔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습니다. 태어나실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평생 가난한 삶을 사셨지요.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말씀처럼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료하시기 위해 일정한 거처도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셨습니다. 때로는 주리고 목마르면서, 쉬지도 못하시면서 말씀을 전하셨지요.
   예수님께서 부유하게 살 능력이 없으셔서 이렇게 가난하게 사셨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고, 떡 다섯 개와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고도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채워지는 기적을 베푸셨지요. 베드로가 예수님 명대로 고기 잡아 입을 여니 그 속에서 돈이 나왔습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굳이 이 땅에서 가난한 삶을 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부유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을 대신 겪어 주심으로 우리에게는 부요의 축복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처음부터 가난의 고통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 살 때는 모든 것이 풍성했고 땅이 풍성한 과실을 내므로 그 과실을 그냥 따 먹기만 하면 되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후로는 사람과 함께 만물도 저주받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므로 땀 흘려 경작해야 식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류가 가난을 겪는 까닭은 아담의 범죄로 인한 저주 때문이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친히 가난을 겪으심으로 사람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고 우리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4. 믿음으로 심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육 간의 축복 임해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믿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주기를 원하십니다(마 7:7~11). 그런데 무조건 “아버지, 축복 주세요.” 기도한다고 해서 축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단서가 있지요.
   예를 들어,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는데,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잃었던 하나님 형상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신명기 28장 2절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꾸어 줄지라도 꾸지 않으며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한다’고 약속하셨지요.
   또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심지 않고 거두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 법칙을 어기려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는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농부가 백 평의 옥토를 가졌다 해도 열 평만큼만 씨를 뿌렸다면 그 이상은 거둘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큰 사람이라 해도 많이 심었을 때라야 많이 거두며 조금밖에 심지 않았다면 적게 거두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심는 것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갑절 이상을 주시고 영혼이 잘되는 만큼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갚아 주시지요. 같은 것을 심었다 해도 즉시 거두게 하실 때보다 오래 기다렸다가 거두게 하실 때는 그 축복이 더욱 크게 돌아옵니다.
   여기서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둔다는 말은 단지 그 액수나 분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물질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중심의 향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헌금을 두 렙돈 드렸을 때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오랜 가뭄 속에서 마지막 남은 양식인 약간의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 선지자에게 공궤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과부와 그 아들에게 양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물론 물질로 심었다고 해서 물질로만 갚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물질로 주시지 않아도 영혼이 잘되게 하시는 축복이 참된 축복이지요.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구제를 많이 했던 고넬료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온 가족이 구원받는 은총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선행과 구제를 쌓았던 도르가는 죽었다가 기도 받고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사람의 본분을 되찾고 가난을 대속하신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시므로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10월 8일 주일) 창립기념주일
* 사회: 이미경 목사
개회찬송 246장 1절
성시교독 23번
찬송 245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요한일서 4:16
찬양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연합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아버지 하나님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61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10월 8일 주일 오후 3시) 창립 41주년 기념예배 및 축하공연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김진홍 장로
성경봉독 요한계시록 21:10~11
특송
설교 새 예루살렘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0월 1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정규원 목사
대표기도 이형진 장로
성경봉독 빌립보서 4:8~9
설교 육체의 결여(6)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10월 13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조대희 목사없음
대표기도 서진범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사랑장(7)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규원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10-08 2023년 10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루마니아어(718번째),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말레이시아어(719번째), 「치료하는 여호와」 라트비아어(720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의 저서 오디오북이 교보문고 종교부문 9월 월간베스트셀러 1위에서 6위까지 차지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강해(상)」은 1위를 기록했고, 「고린도전서 강해(하)」는 2위, 「지혜의 샘」은 3위, 「깨어라 이스라엘」은 4위에 올랐습니다.
「치료하는 여호와」는 5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6위에 올랐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창립 41주년 기념 특집으로 만민뉴스 한국어(1003호) 신문을 발행하였고, 영어(751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교회 전도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10월호가 발간되었습니다. 교회 안내실 및 사택 예배실에 비치되어 있으니 성도님들께서는 전도에 많은 활용 바랍니다.

● 오늘은 교회 창립 41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창립 41주년을 맞기까지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주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 창립 41주년 기념예배 및 축하공연: 오후 3시

● 10월 8일(주일) ~ 9일(월)까지 다니엘 철야가 없습니다.
10월 9일(월) 환자 랜선기도회는 연휴 관계로 없습니다.

● 성도님들이 보다 쉽고 편리하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GCN방송 홈페이지와 모바일 사이트를 개편하였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이용 바랍니다.
※ 홈페이지 주소 http://www.gcntv.org, 모바일 사이트 주소 http://m.gcntv.org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밀양만민교회(담임 문태규 목사) 창립 36주년 기념예배 및 헌당예배
※ 일시: 10월 15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 기관 소식

여선교회 총연합회
기관장단 월례회/ 10월 14일(토) 오후 2시 사택예배실
※ 말씀 및 기도회: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중국1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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