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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3-11-03 제44과믿음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2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즉시 응답받지만 어떤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과의 관계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성경 66권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모두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온전한 믿음은 참마음을 이룬 만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참마음을 이룬 사람의 고백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고백을 하지만 저마다 그 속에 담긴 진실함은 다릅니다. 참마음을 이루어 백 퍼센트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전히 이루지 못해 오십 퍼센트뿐인 진실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를 반밖에 믿지 못하는구나.” 하실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진실함의 정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분량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믿는다.”는 고백과 상대를 신뢰하는 정도가 다른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외출할 때 “얌전히 집 잘 보고 있어라. 엄마는 널 믿는다.” 한다면 엄마가 정말 그 자녀를 믿어서 말한 것일까요?
   참으로 믿는다면 “믿는다.”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몇 시까지 들어올게. 집 잘 보고 있어.” 해도 되지요. 그런데 미덥지 못하니 “믿는다.”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엄마가 깨끗이 청소해 놨으니까 어지럽히지 말고, 엄마 화장품 만지지 말아라. 가스 불은 위험하니까 켜면 안 된다.” 등 염려가 되니 당부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당부하고 외출했으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으니 “지금 뭐하니? 아무 일 없지?” 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평소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자녀에게 “너를 믿는다.” 했다면 자녀를 백 퍼센트 믿는 데서 나온 진실한 고백입니다. 이처럼 얼마나 순종하고 진실한지에 따라 신뢰가 가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미덥지 못한 자녀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백 퍼센트 신뢰하는 자녀가 무엇을 요구한다면 부모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라는 대로 해 줄 것입니다. ‘당연히 필요해서 구하겠지. 허튼 일을 할 아이가 아니니까.’ 하며 자녀에 대한 온전한 신뢰 속에서 구하는 대로 들어 주지요.
   그러나 자녀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요구가 타당할 때라야 비로소 들어 줍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이 적을수록 부모는 자녀의 요구 사항을 몇 차례 확인하고도 들어 주기를 주저하지요. 그래도 자녀가 계속해서 조르고 떼를 쓴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강청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들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미덥지 못한 자녀가 강청하니 마지못해서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진리 가운데 행하여 책망받을 것이 없으므로 구하는 것마다 주실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닌 아브라함
   
   아브라함 선지자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한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롬 4:19~22).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큰 민족이 형성될 것을 말씀하셨지만, 20여 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은 자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99세, 아내 사라가 89세로 이미 잉태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이듬해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을 알려 주셨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하지만, 약속의 말씀을 전혀 의심치 않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듬해에 아들 이삭을 낳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믿음의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어떻게 번제로 드렸을까요?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많은 자손이 나올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를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히 11:17~19).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이삭을 결박해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잡으려 했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창 22:12).
   이처럼 아브라함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순종했으며, 믿음의 시험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인정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당회장님께서 7년간 온갖 질병으로 인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음만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님의 전도로 성전에 가서 단지 무릎을 꿇었을 뿐인데 하나님 능력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받았지요.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에 집 근처 교회에 출석하며 각종 예배는 물론 여기저기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행했습니다.
   당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등 ‘어찌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듣고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니 즉시 끊어 버렸습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해야 한다고 하니 곧바로 드렸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요.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라’ 하는 것은 했고, ‘지키라’ 하는 것은 지켰습니다. ‘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며, ‘버리라’ 하는 것은 버려 나갔지요. 만일 쉽게 버려지지 않으면 금식하며 기도해서라도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날로 더욱 견고해져 어떤 시험이 오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니 어느새 거짓이 없는 참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권능의 종이 되기 위해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시험이 올 때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니 모든 시험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었지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의 역사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성회를 이루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우리도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으며 계명들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변화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이란 무엇일까요?
   
   2. 온전한 믿음이란 어떠한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이삭 ② 아브라함 ③ 야곱 ④ 사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해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했고 노년에 축복하려 했으나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주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창 26:2~5)을 축복받아 거부가 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아 버릴 때도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양보함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3-10-29 십자가의 도(12) -가시관을 쓰신 섭리 - 이재록 목사 마가복음 15:16~20
오늘은 십자가의 섭리 중 예수님께서 왜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셔야 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람이 생각을 통해 짓는 죄를 사하시기 위해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영화로운 면류관을 쓰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금이나 보석으로 장식된 영화로운 면류관이 아닌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6~18절에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했지요.
   이스라엘 지역의 가시나무는 아주 길고 단단한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이 가시 줄기로 사람의 머리보다 약간 작은 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눌러 씌웠지요. 그 길고 독한 가시가 예수님의 머리를 파고들면서 살이 찢기는 고통과 함께 예수님의 얼굴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쓰게 하신 것일까요? 이는 사람이 생각을 통해 짓는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비진리가 있기 때문에 진리와 반대되는 비진리의 생각을 하게 되고 악한 감정을 품게 됩니다. 결국은 행위적인 범죄로까지 드러나지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아무리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고 있어도 행함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죄라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마음에 죄를 품는 것이나 생각으로 범죄하는 것도 죄라 하지요.
   “…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했고,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5)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피 흘리신 까닭이 바로 이처럼 사람이 생각으로 짓는 죄까지도 사해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2.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1) 태어나 자라면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을 진리의 지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생각으로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머리에는 지식을 담고 활용할 수 있는 기억장치가 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많은 것이 느낌과 함께 입력되는데, 이것이 바로 지식이지요. 이렇게 입력된 지식이 필요에 따라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태어나 자라면서 입력된 지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성장한 환경이 다르고 배움이 다르며, 같은 환경에서 같은 사람에게 가르침 받았다고 해도 각자가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였는지가 다르지요. 이렇게 지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가치관도 달라지고,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집니다. 같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지식을 떠올려 생각하는 내용도 각각 달라지지요.
   예를 들어, 똑같은 장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싫다. 나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좋다. 아름답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 교양 있는 행동이라 인정되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라고 비난받을 수도 있지요. 이렇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하나님의 진리와 맞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맨 처음 아담이 에덴동산에 살 때 아담에게는 진리의 지식만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만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그 마음에서 진리의 지식이 빠져나가고 대신 비진리의 지식이 채워졌습니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주관해서 하나님 뜻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갑니다. 예를 들어, 동료가 공로를 세워서 많은 사람 앞에서 칭찬받으면 사단은 그 상황에서 비진리를 주관해 악한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저 사람이 혼자 일해서 공을 세운 것이 아닌데 혼자 칭찬받네.’ 불만을 품거나 ‘나도 똑같이 고생하는데 왜 저 사람만 인정받는가.’ 낙심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사단이 그 생각을 주관하지 못하므로 ‘저 사람이 칭찬받으니 좋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 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람이 진리의 지식만 자기 안에 담아 왔다면 진리의 생각만 할 수 있으나, 태어나서부터 비진리의 지식을 쌓으며 살아왔기에 그 비진리가 재생되어 나오는 생각도 비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나서는 먼저 지식을 진리로 바꿔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생각 또한 진리의 생각으로 바뀔 수 있지요.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양식 삼아야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오직 ‘예’와 ‘아멘’으로 말씀을 마음에 받아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지요.
   
   2)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지식과 경험에 맞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그 뜻과 반대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생각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 이 육신의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이지요.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함으로 예수님께 책망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장차 하나님 섭리 가운데 십자가 지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그리마옵소서” 한 것입니다. 그는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던 것이지요.
   육신의 생각 속에서 들으면 선하고 의로운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지요. 하나님 뜻과 반대로 생각하도록 육신의 생각을 주는 것이 바로 사단의 역사임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육의 사람 입장에서는 지혜롭고 선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지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하나님과 상관없으며, 이를 깨뜨려야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지요.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의 지식과 생각을 초월하며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사람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면 무한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뢰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역사해 주십니다. 문제는 사람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함으로 하나님만 의뢰하지 못하고 사람의 지혜와 방법을 동원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의 이론과 지식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하며 순종치 못하게 하는 생각들이 다 육신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수없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모두가 하나님과 원수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씀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주님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이제까지 옳다고 생각해 온 지식도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다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진리의 생각이 되고, 하나님 뜻에 맞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3)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생각으로 짓는 죄를 버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마음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한 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하지요.
   마음에 악이 있고 세상을 좇는 속성들이 가득할 때는 아무리 진리의 생각을 하려고 해도 육신의 생각들이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육신의 정욕이 있으면 세상 정욕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좇아 취하고 누리기를 원하지요. 육신의 정욕이 있기 때문에 육체의 일들을 행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갈 5:19~21).
   안목의 정욕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입니다. 사람들은 안목의 정욕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세상적이고 정욕적인 것들을 추구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려는 속성입니다. 이로 인해 높아지고 인정받고자 하며 명예와 권세 등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마음에서부터 이러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리면 생각할 때도 육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3.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면류관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써 주셨기에 우리는 장차 천국에 가서 좋은 면류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면류관은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여기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주님을 영접해 진리를 들음으로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지요.
   베드로전서 5장 4절에 나오는 ‘영광의 면류관’은 죄를 싸워 버리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는 ‘생명의 면류관’이 나오는데, 하나님을 사랑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성결된 사람에게 주어지지요.
   사도 바울처럼 온전히 성결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들은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나오는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4절에는 천국의 장로들이 쓰는 ‘금 면류관’이 기록돼 있는데, 천국의 장로들이란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인정하시는 장로들로서 온전히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하며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성결되었는가, 얼마나 충성했는가에 따라서 각기 다른 면류관을 주십니다. 특히 ‘의의 면류관’이나 ‘금 면류관’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인정받는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이들은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고통스러운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셨을 뿐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는 이처럼 좋은 면류관들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벗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고 순종치 못하게 가로막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리므로 영의 생각, 선한 생각만 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하여 하루빨리 신부단장을 이뤄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가장 영화로운 면류관을 받아 쓰고서 세세토록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10월 29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1장
성시교독 39번
찬송 204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9:23~24, 이사야 53:5~6
찬양 주와 함께 가리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자가의 도(13) - 십자가의 처형①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33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10월 29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차경숙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23:4~7
특송 안미영 권사
설교 욥기 강해(65)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1월 1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풍근 목사
대표기도 곽윤진 전도사
성경봉독 누가복음 7:31~32, 히브리서 4:15
설교 소통과 공감(2)
조수열 목사
금요 철야예배 (11월 3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김상휘 목사없음
대표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
찬양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사랑장(10)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류순주 전도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10-29 2023년 10월 다섯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천국(상)」 스와힐리어(727번째), 「믿음의 분량」 스와힐리어(728번째), 「사랑은 율법의 완성」 스와힐리어(729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의 저서 오디오북이 교보문고 종교부문 10월 3주차 주간베스트셀러 1위에서 3위까지 차지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강해(하)>는 1위를 기록했고, <고린도전서 강해(상)>은 2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3위에 올랐습니다.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만민뉴스 불어(143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고, 힌디어(52호) 신문을 인도 현지에서 인쇄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은사집회, 2023년 기도제목 나는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가?" 를 위한 작정 다니엘 철야가 11월 6일(월)~26일(주일)까지 만민기도원 이복님 원장님의 인도로 진행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 추수감사절(11월 19일)을 맞이하여 학습식 및 세례식을 실시합니다.
오늘은 대예배 후 오후 2시 3층 성전에서 세례문답이 있습니다.
문답 내용을 잘 숙지하시고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학습식: 11월 5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세례식: 11월 12일(주일) 오후 2시, 3층 성전

● 전 직원 조회 및 법정 의무교육이 10월 30일(월) 오전 10시에 3층 성전에서 있습니다.
※ 대상: 주의 종, 레위직원
※ 교육 후 레위직원들은 성전 대청소가 있습니다.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대구 열린문만민교회(담임 김영래 목사) 창립예배
※ 일시: 10월 29일(주일) 오후 3시 30분
※ 강사: 조대희 목사
※ 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로 11길 5

목포만민교회 창립 27주년 기념예배
※ 일시: 10월 29일(주일) 오후 3시 30분
※ 강사: 박형렬 목사

대전만민교회(담임 박흥영 목사) 창립 32주년 기념예배 및 취임예배
※ 일시: 11월 5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영 목사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1대대 4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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