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3-12-08 제49과신뢰 마태복음 16:16
읽을말씀 : 마태복음 16:16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6:16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2:13
교육목표 :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쳐 나감으로 주님에 대한 신뢰가 더 깊어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16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다가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당시 바리새인이나 악한 사람들은 선만 행하시고 권능을 베푸시는 예수님께 “미혹하는 자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 지폈다.” 하며 악한 말로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악한 자들의 말을 전한 것이 아니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선한 말만 전해 드리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또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당당히 고백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시며 베드로가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했기에 하나님께서 깨우쳐 주심을 알려 주십니다. 베드로처럼 주님과 온전한 신뢰 관계를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범사에 자기 기준에 맞춰 판단하고 유익을 좇아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 기준이 맞을 리가 없지요. 옳은 일을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고 선한 일을 악하다고 오해하면서도 자기 생각이 틀린 줄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호감을 느끼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인사를 잘 받아 주지 않고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에게 기분 나쁜 일이 있나? 오해하나? 아주 무례한 사람이네….’ 하면서 상대를 좋게 여겼던 마음이 순식간에 변합니다. 이는 자기 마음이 간사하고 변개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옆에서 누군가 그렇지 않을 거라고 권면해도 “내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척하면 척이야.” 하며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지요.
   성경에도 보면 자신의 악으로 선한 일을 비난하다가 저주받은 다윗 왕의 첫째 부인 미갈이 나옵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올 때 너무 기뻐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미갈은 왕이 품위 없이 천한 행동을 한다며 비난했지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까이 두게 되었으니, 다윗은 너무 기뻐서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었던 것입니다. 만일 미갈의 마음이 선했다면 다윗과 함께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갈은 자기 악함과 교만 속에 다윗이 행한 선을 악이라고 판단 정죄하므로 저주를 받고 말았지요.
   예수님 당시에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선한 사역을 악하게만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 이하를 보면 18년 동안 귀신 들려 꼬부라진 채로 살던 여인을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이를 본 회당장은 율법을 잘 안다고 하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하지요.
   회당장은 하나님 권능이 나타났다는 것도,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것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만일 회당장 자신이 치료받았다면 안식일을 범했다고 싫어했을까요? 그만큼 사랑과 선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 의와 틀에 맞춰 판단 정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했던 것입니다.
   주님과 온전한 신뢰를 이루려면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려야 합니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라는 말씀처럼(고전 2:13) 영의 생각을 해야 영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선하다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악을 발견하여 철저히 깨뜨려 버리고 영의 생각만 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야 합니다
   
   악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버리는 만큼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우칠 수 있지요. 성령은 내 마음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마음을 더럽히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를 보면,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가진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구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냉정하게 대합니다. 그런데도 여인은 전혀 서운해하지 않고 더욱 자신을 낮추며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하게 끝까지 매달리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칭찬하시며 즉시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이 장면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사랑도 없으시네.”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선과 사랑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저렇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 선한 마음으로 궁구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만일 여인이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예수님께 서운함을 품을 수도 있고 낙심해 응답받기를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응답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변함없이 선한 고백으로 매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게 하셔서 응답받을 만한 공의의 분량을 채우게 하신 것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분별하는 사람은 이러한 예수님의 의도를 성령으로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도 깊이가 서로 다릅니다. 성령의 역사를 좀 더 밝히 받는다면 예수님의 뜻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지요. 곧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이미 아셨기에 이러한 사례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깨우침을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기대대로 응답받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무슨 대단한 모욕을 받은 것도 아닌데 조금만 마음 상하는 일을 겪으면 변개해 버리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도 참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기 위해 이 여인의 겸비한 고백을 끌어내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한 마음으로 궁구하면 예수님의 마음과 뜻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 선하신 뜻을 깨우쳐 나가는 만큼 예수님에 대한 신뢰도 더 깊어지지요. 가령 당회장님께서 어떤 분을 칭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분의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칭찬을 통해 더 힘을 받고 열심히 달려가기를 원해서이지요. 또한 그보다 더 깊은 이유는 목자로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양 떼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부족함이 부족함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고 믿고 온전히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면 당회장님 편에서는 그분을 위해 믿음과 사랑의 고백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심어드리는 것이지요.
   성령의 역사를 받아 가는 분들은 사소한 일 하나에서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나갑니다. 그럴수록 신뢰와 사랑이 더해지며 “나도 그 사랑을 의지하여 영의 깊은 차원으로 곧 들어가리라.”는 고백이 저절로 우러나오게 되지요.
   
   
   3. 사랑이 커지는 만큼 신뢰도 커집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도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을 겪은 후에는 그 사랑의 차원이 바뀌었지요. 너무나 사랑하던 스승이 더구나 선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눈앞에서 참혹한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예수님을 지켜드리기는커녕 모른다고 부인했고, 심지어 저주하는 말까지 내고 말았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어떤 책망도 없이 묵묵히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셨지요. 이를 목도한 후 베드로의 사랑은 예전과 달라졌습니다.
   그 사랑이 깊어진 만큼 주님에 대한 신뢰도 커졌습니다. 전에는 어린 여종 앞에서도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살기등등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담대히 복음을 외쳤습니다.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할 때도 그 신뢰에는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지요. ‘정말 주님께서 부활하셨나? 왜 하나님께서 나를 안 지켜 주시지? 내가 왜 이런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뜨거운 사랑과 굳건한 신뢰 속에 영광스러운 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선한 마음을 이룸으로 주님과 하나 되어 신뢰라는 말 자체도 필요 없는 참된 신뢰 관계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주님과 참된 신뢰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둘째,
   셋째, 사랑이 커지는 만큼 신뢰도 커집니다.
   
   2.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매정하게 개 취급하신 이유가 아닌 것은?
   ① 여인에게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게 하셔서 응답받을 만한 공의의 분량을 채우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② 이방 여인은 치료해 주실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③ 응답받지 못하면 쉽게 낙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참믿음이 어떤 것인지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미갈
   
   미갈은 사울 왕의 둘째 딸로 다윗의 첫째 부인이다. 사울 왕은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개를 가져오는 조건으로 다윗에게 미갈과의 결혼을 제안했다(삼상 18:21~25). 이에 다윗은 양피 200개를 가져와 그녀를 아내로 얻는다. 미갈은 다윗성에 법궤가 들어오던 날 기뻐서 춤추는 다윗을 보고 업신여김으로 저주받아 석녀가 되었다(삼하 6:16~23).
지난 주 설교요약
2023-12-03 십자가의 도(16) - 가상칠언② - 이재록 목사 요한복음 19:26~27, 마태복음 27:46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때부터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남기신 일곱 가지 말씀 ‘가상칠언’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가상칠언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6~27)
   
   예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에게 그 곁에 선 제자 요한을 가리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말씀하십니다.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어머니여” 하신 것이 아니라 “여자여” 하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6절에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섰다’ 한 것은 제자 요한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이지요.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라 부르신 기록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하여 마리아를 향해 “여자여” 하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동정녀 마리아가 결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며 삼위일체 하나님 중 한 분입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하나님을 낳은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계신 분이지요. 그러므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인 예수님께서 피조물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유전적으로도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잉태될 때는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결합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어나셨을 뿐 잉태될 때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셨지요. 아기가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큐베이터가 아기의 부모가 될 수 없듯이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신 것은 마리아를 위로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고난 겪으시는 것을 보며 마치 칼로 마음을 찌르는 듯한 고통을 받는 마리아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위로하시며 제자 요한을 친아들처럼 의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심으로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섬기도록 당부하셨지요. 그때부터 요한은 동정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며 어머니와 같이 섬겼습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예수님을 낳은 후, 남편인 요셉과 동침하여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자녀들이 아니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며 “네 어머니라”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참된 소속이 어디인지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입니다(빌 3:20).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마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출생 신고를 하는 것처럼 그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되지요. 생명책에 기록된 천국 백성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며 천국 백성의 참된 형제자매는 주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면 분명히 육의 부모가 우리를 낳았는데 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하는 것일까요? 우리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을 낳은 것은 육의 부모이지만 근본적으로 부모의 정자와 난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 계속해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의 조상은 아담이고,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의 몸을 만드시고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지요. 그러니 근본적으로 우리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사람이 결혼해 자녀를 낳는다고는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생명을 잉태할 수가 없습니다. 잉태된 아이에게 영혼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소관이지요. 아무리 유전 공학이 발달한다 해도 사람의 영혼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잉태된 자녀의 성별이나 성품, 외모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너희 아비 마귀”라고 말씀합니다(요 8:44). 세상 사람들은 마귀가 미혹하는 대로 범죄하며 살다가 세상 끝 날에는 지옥 불에 던져지지요. 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성도들은 영원히 천국에서 삽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서로 혈연관계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해도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은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치면 지옥과 천국으로 나뉘어져 그 가는 길이 영원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2장 48~50절에도 예수님께서 “…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셨습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이야말로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참된 가족임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육의 부모, 형제를 사랑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육의 가족을 당연히 사랑하고 섬기되, 다만 이 사랑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적인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가족이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 뜻과 반대되게 행하도록 하는데 가족에게 맞춰 준다면 이는 참된 사랑이 아니라 함께 사망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했습니다. 반드시 진리 안에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들도 함께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하지요. 그래서 영원한 천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진정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상칠언 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예수님께서는 제 삼시, 즉 우리 시간으로 아침 아홉 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막 15:25). 그래서 제 구시가 되었다면 혹독한 고통 속에 피를 흘리시면서 여섯 시간째 매달려 계셨다는 말이지요.
   혹자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신 말씀을 두고 ‘예수님께서 심한 고통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시는가 보다.’ 하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시거나 고통으로 인해 탄식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이미 앞으로 될 일을 다 아셨고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다 아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지요. 그런 예수님께서 더구나 모든 고통이 끝날 때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하나님을 원망하실 리가 없습니다. 이 말씀에는 원망이나 탄식이 아니라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실 때 ‘크게 소리 질러’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소리 지르실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으신 상태였지요. 밤새 끌려다니며 심문을 받으셨고, 심한 채찍질을 당하신 후 몇 차례나 쓰러지시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여섯 시간을 피 흘리며 매달려 계시니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기도 힘든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셔야만 했는지’, ‘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만 했는지’ 모든 사람이 듣고 깨닫기를 원하신 것이지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저주받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으신 상태입니다. 그 이유는 죄인 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스스로 홀로 이 짐을, 죄의 짐을 지신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율법의 저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운명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것이지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천국에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돌아가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의미를 모든 사람이 알기 원하시므로 온 힘을 다해 외치신 것이지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항상 친근하게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이라고 부르다가 믿음이 자라는 만큼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이심이 마음에서 믿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버지”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더 깊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통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호칭도 잘 붙이지 않고 그냥 “아버지”, “아바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너무나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버지이시기에 굳이 “하나님”이라는 말도 잘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과의 사이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가 이뤄진 것이지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대표 기도를 할 때는 믿음이 크고 작은 여러 사람을 대표하는 것이니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항상 깊은 사랑을 나누셨고 기도하실 때도 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유독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바로 저주받은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인류의 모든 저주를 대신 지시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해 죄인이 감히 “아버지”라 부를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을 대신해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말씀하시는 장면에서는 “아버지”라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라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도 않고 하나님의 대적 원수 마귀 사단이 미혹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담대하게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으며, 아버지라 부른다고 해서 응답이 오는 것도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도 “너는 정녕 내 자녀라.” 내 아들이고 딸이라 인정하실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죄인들과 같이 버림받으신 이유를 깨닫게 하시고자 힘을 다해 큰 소리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버리신 줄 아느냐?”, “내가 이처럼 버림받은 것은 바로 너희를 사랑하여 너희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라” 하고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크게 외치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셨건만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이를 알지 못하고 세상과 짝해 사망의 길로 가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를 알아서 구세주로 영접하고 생명을 얻기를 원하심으로 큰 소리로 외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남기신 모든 말씀을 깨닫고 마음에 깊이 새기심으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처소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3년 12월 3일 주일)
* 사회: 주현철 목사
개회찬송 37장 1절
성시교독 36번
찬송 105장
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9:28~30, 누가복음 23:46
찬양 내 영혼 주 찬양하라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십자가의 도(17) - 가상칠언③
당회장님
찬송 만민 찬양 192장
주일 저녁예배 (2023년 12월 3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노영진 목사
대표기도 최영신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24:19~25
특송 손영락 장로
설교 욥기 강해(69) - 선으로 악을 이겨야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12월 6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김영석 목사
대표기도 권순희 지도교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3:16
설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
박형렬 목사
금요 철야예배 (12월 8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박광현 목사없음
대표기도 김상휘 목사
성경봉독 고린도전서 13:4~5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사랑장(14)
당회장님
새벽 예배
인도 정현진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3-12-03 2023년 12월 첫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저서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튀르키예, 북키프로스 국가의 공용어인 튀르키예어(742번째),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간다 국가의 공용어인 루간다어(743번째), 「권능」 필리핀 국가의 공용어인 따갈로그어(744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당회장님의 저서 오디오북이 교보문고 종교부문 11월 4주차 주간 베스트셀러 1위부터 4위까지 올랐습니다. (1위: 고린도전서 강해(하), 2위: 고린도전서 강해(상), 3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4위: 깨어라 이스라엘)

● 만민뉴스 한국어(1007호), 영어(755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당회장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계신문인 복음신문에 케냐 나이로비 만민교회 창립 23주년 기념예배 및 아프리카 지역 총회장(문신현 목사) 임명 수여식 기사가 게재 되었습니다.

● 성탄 점등식이 12월 8일(금) 오후 8시 사택 정원에서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유튜브 생방송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KT지니TV로 오후 10시 30분에 재방송됩니다.

● 2024년도 총회에 기도로 준비하여 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기관 총회 일자 및 장소는 주보 18페이지를 참고 바랍니다.
「총회 시 선출할 일꾼의 자격」
1) 기도하는 사람
2) 온전한 주일을 지키는 사람
3) 온전한 십일조를 하는 사람
4)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사람
5) 희생과 순종하며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
6) 사랑과 덕이 있는 사람
7) 리더쉽(지도력)이 있는 사람
8) 겸손한 사람

● 2024년 학생주일학교 교사를 오늘까지 모집합니다.
※ 대상: 청년·가나안 선교회, 남·여 장년
※ 문의: 정현진 목사(☎ 010-2412-7527), 장복남 권사(☎ 010-9279-7716)

● 당회장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천안만민교회(담임 정철수 목사) 창립 35주년 기념예배
※ 일시: 12월 10일(주일) 오후 3시
※ 강사: 이미경 목사

● 교구 소식

1대대 송년모임/ 12월 7일(목) 오전 11시 사택예배실(인도: 이미경 목사)


● 기관 소식

가나안선교회연합회
2024 정기총회/ 저녁예배 후 오후 5시 사택예배실


●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김민호9 집사(3청년/ 8교구, 남선교회 총연합회장 김진홍2 장로·1-5여 윤경희2 권사의 자녀), 김주연15 집사(3청년/ 16교구, 2-1남 김길호2 집사·2-1여 이승희20 권사의 자녀)
※ 12월 9일(토) 낮 12시 10분 관악구 남부순환로 1440 「그레이스파티 7층 단독홀」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3대대 17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자료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