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안내
  • 설교요약
  • 구역공과
  • 공지사항
  • 주간성구
구역공과
2024-04-19 제16과온 집에 충성해야 믿음의 5단계 민수기 12:7~8
읽을말씀 : 민수기 12:7~8  |  외울말씀 : 민수기 12:7 | 참고 말씀: 민수기 1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것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그러니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하였습니다(출 12:3, 7).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이란?
   
   충성의 영적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그 이상을 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일꾼으로 불러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을 잘 감당했다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지요. 그런데 삯을 받고 일해도 ‘넘치게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나갈 때는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 있으니 충성의 열매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서 온 집에 충성하려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성령의 열매가 100퍼센트 맺혀야 합니다.
   충성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한쪽에서 아무리 충성한다고 해도 다른 분야에는 좀 소홀하게 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지요.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면서 온 집에 충성하려면 성령의 열매가 모두 맺혀 있어야 합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명을 맡게 됩니다. 그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되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조금은 덜 중요해 보이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모든 과정도, 무수한 영혼의 삶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마음에 다 담고 주관해 가십니다. 믿음의 5단계인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이나 많은 일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 있기에 그 간절한 사랑으로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똑같이 긴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급한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많은 사명 중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수많은 양 떼 중에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과 성실을 다하는 것입니다.
   
   
   2. 온 집에 충성하려면 모세처럼 영으로 품어야
   
   출애굽 당시, 이백만가량이나 되는 수많은 영혼을 모세가 일일이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상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고 있었고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모세에 대해 이르시기를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으로 들어간 만큼 많은 것을 영으로 품을 수가 있고 그럴 때는 아무리 많은 사명도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맡은 양 떼가 오백 명이라면 전부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양 떼나 급한 문제가 있는 양 떼는 자주 돌아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심방하는 양 떼도 있지요.
   그러나 정녕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자주 보지 못하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심방 예배 한번 드리지 못한 영혼이라 해도 마음에는 늘 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필요할 때 마음에 주관해 주셔서 특별히 기도하도록 하시거나 심방하게 하시며 단 한 번을 짧게 만난다 해도 좋은 열매로 나오게 하시지요.
   이는 자신이 게을러서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돌보아 주옵소서” 하는 안타깝고 애절한 기도를 통해 중심의 향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대해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맡으면 다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 자체가 충성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사명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울 것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는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사적인 분야에서도 충성되게 행하여 열매를 내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면 “저 사람은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라고 칭찬할 수 있겠는지요?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이미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제일 좋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후를 따질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이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때는 하나님 앞에서도 정녕 충성된 마음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육적인 충성이거나 일시적인 뜨거움에서 열심 내는 것이기 쉽습니다.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한 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5단계란 어떤 믿음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나요?
   
   3. 민수기 12장 3절, 7절에 기록된 대로 답해 보세요.
   ‘온 집에 충성’에 대한 것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말은 무엇일까요?
   :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 )을 온전히 ( )하되, 맡겨진 직무 이상으로 모든 분야에서 ( ) 감당해 내는 것.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모세’ 선지자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물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고 양자로 삼는다.
   40세 때 동족의 고역과 박해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미디안으로 도망간다. 80세 때 여호와로부터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4-04-14 죽어지는 밀알이 되자(1) - 이수진 목사 요한복음 12:24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죽어질 때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연 속에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롬 1:20). 마음이 조금만 선해도 자연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느끼며 그 은혜를 깨달을 수가 있지요. 그러니 훗날 심판 때 “하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경작의 법칙을 비유로 들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요 12:24). 여기에는 영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비유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으신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또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죽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한 알의 밀이 되어 온전히 죽으신 예수님
   
   하나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분과 알맞은 온도, 공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씨앗 안에서는 변화가 일어나는데, 싹이 나고 뿌리가 나는 생명 활동이 시작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 씨앗이 스스로 죽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죽어짐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고 결국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분명 하나님의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이 원리는 우리의 신앙과도 연결이 됩니다.
   만일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식물로 자라날 수 없고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설령 싹을 틔웠다 해도 씨앗이 완전히 죽어지지 않으면 양분이 부족해 잘 자라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 알의 밀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죽어지셨을까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사 53:4~10)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성취되어 수많은 영혼을 죄인에서 의인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죽으셔야 했습니다. 피조물들의 손에 의해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지만,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철저히 죽어지셨지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거둔다는 확신, 바로 예수님 자신의 죽으심으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을 믿으셨기에 완전한 죽음의 자리에도 기쁨으로 이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한 대로 그 앞에 있는 즐거움, 곧 영원히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으로 인한 즐거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즐거움, 또 예수님 자신도 죽으심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위하여 죽어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이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도 이러한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에 이 땅의 잠시 잠깐의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이라 해도 힘들어하지 않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철저하게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죽어져야 할까요?
   
   
   2. 우리가 죽어져야 할 분야
   
   1) ‘자기 자아’라고 하는 것이 죽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며 비진리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를 통해 배우고 학교와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습니다. 이렇게 쌓인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지요. 각기 다른 부모와 환경, 다른 가르침 속에서 자아를 만들었으니, 사람마다 그 생각과 옳다 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아를 형성한 지식은 진리와 다른 것이 많으며, 교양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다르니 열 사람이 모이면 열 사람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또 나누입니다. 그러니 자기의 옳다 하는 생각, 자기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다 맞다 고집하면 안 됩니다. 내 편에서는 교양이라고 해도 상대편에서는 교양이 아닐 수 있고 내가 볼 때는 이해되지 않지만, 상대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배운 지식과 우리의 생각은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틀린 것, 잘못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자아가 죽어질 수 있을까요?
   
   자아가 죽어지려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힘써 싸워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 하나님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 듣는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립니다. 우리의 마음 문을 여는 만큼 그 진리가 자리 잡게 되는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은 시작되지요. 그동안 자아를 형성한 것과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이때 믿음이 있으면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믿기에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내 감정과 생각이 아닌 진리대로 순종해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죽어지는 것이지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 행함이 발견될 때는 그 즉시 자기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옳지 않은 그것을 벗어내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했습니다. 이는 죄와 싸울 때는 힘써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려줍니다.
   마음의 비진리는 한, 두 번 회개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회개했다고 해서 벗어지는 것이 아니라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벗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죄와 싸워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불세례를 내려 주셔서 죄성을 태워 주시는 등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 속에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들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지요. 몸과 결합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한 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자아, 자기가 죽어질 때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을 영접한 믿음의 1단계에서는 말씀을 들으면서 의심되고 믿어지지 않는 하나님 말씀과 기사와 표적 등에 대해 의심을 물리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몸의 행실, 곧 육체의 일들이 무엇인지 찾고 깨달아 버려야 하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는 육신의 일이 무엇인지 찾고 힘써 버려 나가는 만큼 자아가 죽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그런데 믿음의 반석 이상에 서면 대부분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자기 안에 아직 살아있는 자아를 깨닫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진리로 새롭게 만들어 놓은 자기 의와 틀이 바로 그것이지요.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될 뿐 아니라 껍질도 썩어 없어져 어떤 모양도 남지 않듯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뀔 뿐 아니라 자아라는 틀, 곧 자기 의와 선의 틀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구습을 버린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고후 5:17).
   자기 의와 틀은 세상으로부터 입력돼 나를 만든 구습이기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 나를 진리로 바꿔가야 합니다.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요. 하나님 말씀만이 참이기에 내 경험도, 나를 만든 모든 자아와 틀도 진리로 바꿔야 합니다. 죄가 아닌 육체의 결여라 할지라도 버려 나간다면 온전히 자기를 죽이고 주님으로만 채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속의 악과 비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될 때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믿음이 있기에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채워갑니다. 순종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와 변명으로 자기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을 기준으로 해 생각하고 말하며 행하니 신속히 변화되어 갑니다.
   두 번째 유형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적인 싸움에서 인내하지 못하고 진리를 포기하거나 외면합니다. 자신이 죽어지지 않기에 하나님 말씀이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결국 자기 유익을 좇아 진리를 떠나기도 하지요. 어떤 경우는 하나님 역사를 보았기에 떠나지는 않는다 해도 죽어지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알뿐 순종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구습대로 살고 세상을 짝하며 살아가니 말씀을 듣는 것마다 찔림이 되고 행치는 못하니 기쁨도, 충만함도 없지요. 죄와 싸우지 않으며 죽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나갈 때 날마다 자기가 죽어지며 그 안에 진리만 채워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으며, 이처럼 자기가 죽어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여러분이 천국 소망이 있고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형성한 육신과 자기 의와 틀을 죽여 갈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영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니 죽어지기를 주저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썩어질 육은 온전히 죽이고 선한 영의 마음으로 다시 살아나 아름다운 영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4년 4월 14일 주일)
* 사회: 정진영 목사
개회찬송 31장 1절
성시교독 43번
찬송 502장
기도 이성숙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2:24
찬양 은혜의 단비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죽어지는 밀알이 되자(2)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92장
주일 저녁예배 (2024년 4월 14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조수열 목사
대표기도 조은영 전도사
성경봉독 욥기 28:12~20
특송 서경애 권사
설교 욥기 강해(80) -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4월 17일 수요일 오후 7시)
* 사회: 이풍근 목사
대표기도 성기용 전도사
성경봉독 빌립보서 4:8~9
설교 육체의 결여(8)
이미경 목사
금요 철야예배 (4월 19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서진범 목사
대표기도 최영자 목사
성경봉독 창세기 1:1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창세기 강해(9) - 영의 분리⑥
이재록 원로목사
새벽 예배
인도 임학영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4-04-14 2024년 4월 둘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교회 소식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원로 목사님의 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은」 체코어(799번째), 「영혼육(상)」 네덜란드어(800번째), 「십자가의 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의 공용어인 아프리칸스어(801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좋으신 하나님」 4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4회 라디오 진행자: 임학영 목사

● 원로 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교회 소식

청주 만민교회(담임 박재영 목사) 창립 25주년 기념예배
※ 일시: 4월 21일(주일) 오후 3시, 강사: 이미경 목사


● 교구 소식

여조장연합회 월례회/ 4월 15일(월) 오후 1시 사택예배실(인도: 이미경 목사)

11교구 여장년 연합예배/ 4월 19일(금) 오전 11시 3층 성전(인도: 조은영 전도사)

15교구 북부지성전 이전예배/ 4월 16일(화) 오전 11시 30분(인도: 이미영 목사)
※ 주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158-10 현웅빌딩 6층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해외 지교회 (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4-14
[주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4]
2024-04-15
[월요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6]
2024-04-16
[화요일]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7]
2024-04-17
[수요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2024-04-18
[목요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롬 8:9]
2024-04-19
[금요일]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2]
2024-04-20
[토요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