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2
제28과선의 단계(1)
로마서 12:2
읽을말씀 : 로마서 12:2 | 외울말씀 : 로마서 1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1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단계를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며 무엇이나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여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선의 기준과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너무나 세찬 육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추하고 악한 육의 흐름을 타지 말고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다, 좋다’ 혹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막연한 기준을, 다시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양심’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이 ‘선하다’, ‘선하지 않다’ 말하지만, 사람의 양심은 결코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자기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양심에는 비진리도 섞여 있으며 지역, 혹은 시대마다 달라지지요. 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산다 해도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어떤 환경, 어떤 부모, 어떤 스승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집니다. 그러니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의 기준으로 삼는 양심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악이며 용서하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마 5:44 ; 롬 12:20).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한 선의 기준이요, 선 자체인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서 온전한 선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 단계를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선의 1, 2단계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2.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여러분을 욕하고 때리는데 같이 욕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또는 나름대로 갖추어진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에 여전히 악이 있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에 들 수 없습니다. 악에 맞대응해 싸우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선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미워하게 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거나 심지어는 더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고 진실한 믿음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눅 18:8).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작은 불빛도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사랑이 식고 더욱 심한 악으로 치닫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선을 행해 나간다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이끌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3.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바로 선의 2단계부터인데,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요, 아예 미움도 불편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이는 바로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상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 일어나지 않는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약혼녀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간음했다고 율법대로 벌을 받게 하거나, 그냥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이처럼 선한 요셉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최소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2단계 마음을 이루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어찌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악을 부추기는 대로 순종하여 악으로 생각하고 악으로 말하며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지킴 받거나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만 이룬다 해도 그 선이 빛으로 역사 되어 자연히 어둠이 물러갑니다.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데,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잘못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많은 분이 제 앞에서 “제 탓입니다. 제가 더 잘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혹 마음 한편에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를 탓하고 책망했다면 이는 결코 선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이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주시며 다음에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직접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책망 듣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혹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거나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지는 않았는지요?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은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 직접 관련된 일인 경우는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하되,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어려움과 곤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선을 사모함으로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선의 (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도 함께 ( )으로 ( )하지 않는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선이라 인정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 ( )단계는 악을 ( )으로 갚지 않으며 ( )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이는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영의 마음이며,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 )의 ( )의 단계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마귀’란?
천사와 정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을 통해 비진리를 사주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단계를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며 무엇이나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여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선의 기준과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너무나 세찬 육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추하고 악한 육의 흐름을 타지 말고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다, 좋다’ 혹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막연한 기준을, 다시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양심’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이 ‘선하다’, ‘선하지 않다’ 말하지만, 사람의 양심은 결코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자기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만들어 냅니다. 따라서 양심에는 비진리도 섞여 있으며 지역, 혹은 시대마다 달라지지요. 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산다 해도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어떤 환경, 어떤 부모, 어떤 스승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집니다. 그러니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의 기준으로 삼는 양심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악이며 용서하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마 5:44 ; 롬 12:20).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한 선의 기준이요, 선 자체인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서 온전한 선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 단계를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선의 1, 2단계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2.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여러분을 욕하고 때리는데 같이 욕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또는 나름대로 갖추어진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에 여전히 악이 있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에 들 수 없습니다. 악에 맞대응해 싸우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선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미워하게 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거나 심지어는 더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고 진실한 믿음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눅 18:8).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작은 불빛도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사랑이 식고 더욱 심한 악으로 치닫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선을 행해 나간다면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이끌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3.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바로 선의 2단계부터인데,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요, 아예 미움도 불편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이는 바로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상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 일어나지 않는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약혼녀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간음했다고 율법대로 벌을 받게 하거나, 그냥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이처럼 선한 요셉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최소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2단계 마음을 이루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어찌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악을 부추기는 대로 순종하여 악으로 생각하고 악으로 말하며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지킴 받거나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만 이룬다 해도 그 선이 빛으로 역사 되어 자연히 어둠이 물러갑니다.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데,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잘못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많은 분이 제 앞에서 “제 탓입니다. 제가 더 잘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혹 마음 한편에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를 탓하고 책망했다면 이는 결코 선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이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주시며 다음에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직접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책망 듣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혹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거나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지는 않았는지요?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은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 직접 관련된 일인 경우는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하되,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신이 져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어려움과 곤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선을 사모함으로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선의 (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도 함께 ( )으로 ( )하지 않는다. 이를 하나님께서는 선이라 인정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 ( )단계는 악을 ( )으로 갚지 않으며 ( )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이는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영의 마음이며,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 )의 ( )의 단계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마귀’란?
천사와 정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을 통해 비진리를 사주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