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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공과
2024-08-02 제31과요나단의 선(善) 사무엘상 19:4~5
읽을말씀 : 사무엘상 19:4~5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9:4 | 참고 말씀: 사무엘상 18:1, 사무엘하 1:26
교육목표 : 사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죄짓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한 요나단의 선에 대해 알아본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맏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왕으로 세우겠다고 약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다윗과 요나단은 적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을 원수처럼 여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생명같이 사랑했고 그 사랑함이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습니다(삼상 18:1 ; 삼하 1:26). 이것은 다윗의 선함을 알아볼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요나단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의 아름다운 선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1. 사울 왕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은 요나단
   
   다윗은 원래 양치는 목동이었으나 이방 족속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믿음으로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이스라엘에서 유명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나라를 구한 다윗을 처음에는 매우 기뻐하여 군대의 장으로 삼았지만, 이들을 환영하러 나온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하자 다윗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사울 왕의 시기심은 심해져 다윗을 죽이려고 무리하게 전쟁에 내보내기도 하고 그의 집까지 군사를 보내 죽이려고도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의 범죄를 묵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상 19장 4~5절에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라고 간청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인지요.
   
   
   2.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한 요나단
   
   1) 사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선
   만약 여러분이 요나단과 같은 입장이라면 사울 왕과 다윗 중에 누구 편을 들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사울 왕은 요나단의 아버지요, 한 나라의 왕이니 사울 왕의 말을 거역하고 친구 다윗을 옹호하는 것은 육적으로는 불효이자 불충이 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이미 하나님의 싫어하신 바가 되었고 다윗이 다음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 뜻임을 알았습니다.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하나님 뜻을 사심 없이 받아들여 다윗을 도왔지요.
   예수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 요한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보며 어떠한 마음이었을까요?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이라면 자신의 명예와 영광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의 선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기를 원한다.”고 하지만, 막상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일을 이뤄 가는 두 사람이 있을 때, A라는 사람이 오랫동안 많은 공을 들여 어떠한 일을 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B라는 사람이 그동안 A가 해 놓은 것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이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B가 어떤 자료나 인력, 기술 등의 협조를 A에게 요청한다면 얼마나 기쁨으로 내어줄 수 있을까요?
   요나단이나 세례 요한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설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예나 칭찬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소금처럼 아무 형체 없이 녹을 수 있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이라는 사실입니다.
   
   2) 범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선
   요나단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는 큰 악을 막기 위해 살기등등한 아버지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간청했습니다. 비록 사울이 악할지라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어찌하든 더 큰 악을 행치 않도록 자신이 해를 받을지라도 거듭 간청한 것입니다. 진정한 충신들은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왕이 그릇 행할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라도 왕 앞에 나아가 바른말 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사망의 길로 가는 부모님이나 형제, 자매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요? 여러분이 소속된 부서나 조직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윗사람이 불법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어떻게 하십니까? 정녕 윗분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먼저는 허물을 드러내지 않을 것입니다(잠 17:9).
   그런데 명백한 비진리를 행한 것도 아닌데, 내 의나 생각에 맞지 않는다며 윗분을 임의로 판단하지는 않는지요? 윗분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며 퍼트린다면 이는 마음이 얼마나 선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행위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설령 윗분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길로 갈지라도 윗분의 허물을 거듭 말하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이 더욱 훼방할 거리를 안겨 줄 뿐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말할 건이 아니다.” 하며 물러서서 방관하는 것도 선이 아닙니다. 또한 윗분이니까 말하기 어려워서, 내가 그 말을 꺼냄으로 인해 내게 돌아올 수도 있는 불이익이 두려워서 그냥 묵인하고 있다면 그것도 윗분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도 아니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선일까요?
   먼저는 진리를 아뢰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다만 상대가 질서상 머리 된 분이니 아랫사람으로서 선과 사랑과 섬김의 마음으로 권면한다면 윗분도 마음 상하지 않으면서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로 목사님의 예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원로 목사님께서는 성도님들이 죄를 짓지 않고 진리 가운데 살아가도록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가르치고 말씀을 확증하는 증거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내 할 바를 다 했다.’ 하지 않으셨고, 한 영혼 한 영혼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지요. 또한 실질적인 사랑의 행함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에 맞는 섬김으로 성도들이 죄짓지 않고 더 충만하게 달려가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구제를 통해 막힐 일이라면 구제해서 범죄를 막아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셨지요.
   
   3) 아버지에 대한 도리를 끝까지 다하는 선
   선한 사람들은 누가 악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차라리 눈을 돌려 버리고 싶고 악한 사람 곁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선한 사람은 더욱 큰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요나단은 악한 아버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녀의 도리를 절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아버지 사울 왕을 버리신 것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악인과 함께하는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까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요나단은 결코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 왕과 함께 장렬히 싸우다가 전사하였지요. 이처럼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생사를 함께함으로 도리를 다한 것이 바로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도 도리를 좇아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선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악함을 알았고 아버지가 죄짓지 않도록 여러 차례 간청했습니다. 즉 요나단은 자녀의 입장에서 멸망의 길로 가는 아버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결코 아버지 사울을 동조하거나 사울의 악함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요나단처럼 사심 없이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사랑하는 사람이 범죄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최고의 선을 온전히 이루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과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무엘상 19장 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요나단의 선에 대한 내용입니다.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이라도 의리상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 선이다.
   ② 차기 왕이 될 수 있는 입장인데도 하나님의 뜻을 사심 없이 따랐다.
   ③ 해를 받을지라도 사울 왕이 더 큰 악을 행치 않도록 힘써 막았다.
   ④ 악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자녀 된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블레셋’이란?
   
   함 계통 가슬루힘의 자손이다. 이주자,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블레셋 사람이라 부르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바로 블레셋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 서부의 해안평야 지대의 남부에 자리 잡고 있었던 블레셋인들은 다곤 신, 바알세붑 등 우상을 섬겼던 해양 민족이다.
지난 주 설교요약
2024-07-28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 - 이수진 목사 요한일서 3:21~22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으며 늘 응답의 역사를 체험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으로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 중심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모습은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해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성실히 일해 아내와 자녀도 얻고 소유도 풍성해져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얍복강을 사이에 두고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지요. 강 건너에, 형 에서가 야곱을 잡기 위해 사백 인을 이끌고 있으니,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는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불편해하니 물러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야곱은 비로소 자신의 교만과 깨지지 않은 자아를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 마음을 움직여야만 이 어려움이 해결될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하여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한 중심의 기도를 하여 마침내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형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므로 20년 동안 쌓인 미움도 눈 녹듯 사라지고 감격의 눈물로 화해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간절한 중심의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엘리야 선지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상 숭배가 극심하던 아합 왕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우상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인과 겨루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나무로 단을 쌓고 각 신에게 기도해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을 인정하자는 것이었지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섬기는 신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종일 외쳤고 나중에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을 내려 응답하시므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지요.
   또한 3년 반 동안 계속되는 가뭄 중 큰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도 엘리야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그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지요(왕상 18:42). 간절히 기도하니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이 와서 얼굴이 저절로 무릎 사이에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큰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지라도 엘리야가 믿고 구하지 않았다면 큰비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겔 36:36~37). 그러므로 중심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이 지속해야 할 대화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해 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므로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전능자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고 여는 열쇠요,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며 넘치게 얻을 수 있는 축복의 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여쭙고 결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사무엘상 23장 1~2절에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했지요. 동족이 적군에 침략받으니 곧장 가서 공격할 것 같은데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므로 아무리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먼저 여쭙고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니 하나님께서는 늘 다윗과 함께하시고 역사하셨지요.
   우리도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좇아 행할 때는 만사가 형통합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고 내 능력만으로 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고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께 맡겨 기도한다면서 자기 생각에 맞추어 기도하고 자기 뜻대로 행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쉬지 않고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하기도 하지요. 이는 자기 뜻대로 기도하고 자기 원대로, 자기 능력대로 일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생각과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주관을 받으며 하나님 뜻을 좇아 순종해 가면 형통하게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성령께서 주관하셔도 분별을 못 할 때는 ‘진리인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안 하실까?’ 하며 성령을 의지하므로 답을 얻어 행하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될 뿐 아니라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 뜻대로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기도로 그 사역을 준비하셨고, 공생애 기간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하물며 우리 피조물이 기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받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의로운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욕을 받되 욕하지 않았고, 죽일 수 있으되 죽이지 않았으며, 오직 진리를 좇아 자신을 낮추어 선과 진리대로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은 자신을 시기하여 쫓아다니는 사울 왕에 의해 여러 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정작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어떤 해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울 왕을 죽이려는 부하들을 말리고 옷자락만 베어 자신의 선한 의도를 나타내었고, 그 옷자락을 벤 것만으로도 마음 아파하는 선한 중심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이 전쟁에 패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퍼하며 그를 위해 노래를 짓고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울었지요.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유가 많아져서 조카 롯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윗사람이었음에도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의 선택권을 양보했지요.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섬김의 마음과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화평을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뿐 아니라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가신 318인을 데리고 가서 목숨 걸고 롯을 구하였지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사랑의 간구를 하는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모습입니다(행 7:59~60).
   이렇게 의로운 선진들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지요. 스데반은 권능을 행했고,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된다면 해결 받지 못할 문제가 없고 축복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확실하게 감당하는 사람
   
   다윗은 어렸을 때도 자신에게 맡겨진 아비의 양 떼를,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또한 적국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이라는 블레셋 장수를 무서워하여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보러 싸움터에 왔다가 이 상황을 알게 되었지요.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다윗은 사울 왕에게 가서 자기가 나서겠다고 말하지만 사울 왕은 그가 소년이므로 만류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을 모욕한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했지요.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고백을 하면서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담대하게 골리앗을 향해 나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보시고 함께하시니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면서 거인 골리앗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고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하게 되었지요.
   다윗이 목숨을 다해 양을 돌보며 위험에서 지키고, 그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언정 백성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출 32:32). 즉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는, 곧 생명 다한 사명 감당이었지요.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고백할 만큼 넘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는 등 핍박과 무수한 고난을 겪었지만 자기 생명보다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찬양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므로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이루셨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뜻과 섭리를 확실히 다 이루셨기에 당당하게 “다 이루었다.” 고백하실 수 있었지요(요 19:30).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도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길 원하시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계 2: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서 생명 다해 충성하여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때로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어려운 일이 닥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으니 기쁨과 감사함으로 힘차게 충성할 수 있습니다(롬 8:18). 그리하여 맡은 바 사명을 확실히 감당한 후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되 사도 바울, 모세 선지자, 스데반 집사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고 깊어지면서 사명 감당하는 것과 그냥 감당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깊은 충성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의로움, 또 중심 다한 불같은 기도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금주 예배 안내
주일 대예배 (2024년 7월 28일 주일) 개척기념주일
* 사회: 이미경 목사
개회찬송 46장 1절
성시교독 27번
찬송 383장
기도 최종태 장로
성경봉독 로마서 5:3~4
찬양 기다림2
임마누엘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당회장 이수진 목사
찬송 만민 찬양 75장
주일 저녁예배 (2024년 7월 28일 주일 오후 3시)
* 사회: 임학영 목사
대표기도 이미영 목사
성경봉독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특송 콜롬비아 만민교회 하늘영광팀
설교 하나님의 뜻
당회장 이수진 목사
수요 예배 (7월 31일 수요일 오후 7시)
만민하계수련회 관계로 수요 예배는 없습니다.
금요 철야예배 (8월 2일 금요일 오후 11시)
* 사회: 주현철 목사
대표기도 강영식 목사
성경봉독 마태복음 16:13~18
찬양 샬롬성가대 · 닛시오케스트라
설교 더욱 든든한 성도가 되는 성숙
문신현 목사(예수교연합성결회 아프리카 총회장)
새벽 예배
인도 이성숙 목사
시간 매일 오전 5시(토요일은 제외)
장소 3층 성전
온라인헌금 안내(예금주 : 만민중앙교회)
우리은행 1005-501-353157
국민은행 547801-04-030598
신한은행 140-008-226641
농협 064-01-184095
기업은행 318-039172-04-031
SC제일은행 353-20-488363
하나은행 118-890064-10004
※ 입금 시 송금자명에 반드시
이름+동명번호+헌금의종류 기재를 부탁드립니다.
(예 : 홍길동1감사, 홍길동1십일조)
알려드리는 말씀
2024-07-28 2024년 7월 넷째주 교회 공지
본 교회에 새로 나오셔서 등록해 주신 분들과 인터넷으로 등록하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당회장님 동정

● 7월 29일(월) ~ 31일(수)까지 「2024 만민하계수련회」 교육 및 은사집회, 캠프파이어를 인도하십니다.

● 교회 개척 42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여 당회장님의 찬양 영상 "주품에"와 "FOR YOU ARE GREAT" 두 곡을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에 저녁예배 후 업로드 합니다.

● 당회장님의 신앙칼럼이 「기독선교신문」, 「서울뉴스통신」 등에 정기 게재되고 있습니다.


● 교회 소식

● 원로목사님의 저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슬로바키아어(844번째), 「영혼육(하)」 태국어(845번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것은」 콩고 국가의 공용어인 링갈라어(846번째)가 종이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 만민뉴스 영어(765호), 불어(147호) 신문을 온라인으로 발행하였습니다.
(만민뉴스 홈페이지 www.manminnews.com)

● 오늘은 교회 개척 42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개척 42주년을 맞기까지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주님 안에서 행복한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 변함없으신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2024 만민하계수련회」가 7월 29일(월) ~ 31일(수)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 리조트에서 있습니다.
※ 차량광고: 각 지역에서 전체(남·여장년, 가나안, 청년, 빛소금, 학생, 아동 등) 월요일 9시부터 지역별로 출발하므로 출발 시간을 지역장님에게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월요일, 화요일 당일자 출발은 오후 3시 30분에 신림선 보라매공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출발합니다.
월요일, 화요일 당일자 귀가는 교육 및 행사 후 출발했던 차량을 탑승하시면 됩니다.

● 해외 선교사 및 성도님들이 만민하계수련회 참석차 입국하여 함께하고 계십니다. 성도님들은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 「2024 만민찬양제」가 오늘 대예배 후 오후 1시 30분에 GCN방송으로 방영됩니다.
성도님들께서 함께 응원해 주시고, 마음에 진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인기상 투표에 참가하시는 성도님들을 추첨하여 소정의 선물을 증정합니다.
오늘 저녁예배 시 만민찬양제 시상식이 있습니다.

● 금주 수요예배는 만민하계수련회 관계로 없습니다.
새벽예배는 7월 29일(월) ~ 31일(수)까지 없습니다. 다니엘철야는 7월 28일(주일) ~ 31일(수)까지 없으며 7월 29일(월) 환자랜선기도회도 없습니다.

● 영적 성장 프로젝트 「2024년 2차 전 성도 성경읽기」를 진행합니다.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 기간: 8월 1일(목) ~ 11월 30일(토)까지 (4개월 간)

●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행복한 신앙생활을 위해 만민라디오 「좋으신 하나님」19회가 만민중앙교회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늘 저녁예배 후 업로드 됩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청취 바랍니다.
※ 19회 라디오 진행자: 이미경 목사

● 8월 추천도서는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입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우림북 홈페이지 www.urimbooks.com)

● 원로목사님의 저서를(주보 맨 뒷장 참고) 교보문고, 영풍문고, 북스리브로,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등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자책(e-book) 및 오디오북으로 발간하여 주요 인터넷 서점에서도 판매합니다.
성도님들의 신앙 성장과 전도 및 문서 선교를 위해 널리 활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감사드립니다.

강단헌화/ 1대대 4교구(꽃꽂이 봉사: 예배국 꽃꽂이부, 시설관리국)
주간 성경구절
2024-07-28
[주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2024-07-29
[월요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6]
2024-07-30
[화요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13]
2024-07-31
[수요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2024-08-01
[목요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2]
2024-08-02
[금요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7]
2024-08-03
[토요일]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