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4
제40과아브라함의 선(1)
창세기 13:8~9
읽을말씀 : 창세기 13:8~9 | 외울말씀 : 창세기 13:9 | 참고 말씀: 창세기 14: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선이 무엇인지 깨달아 범사에 지혜롭게 행하며 지극한 선을 느끼며 소유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믿음의 선진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도 선(善)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아브라함의 지극한 선을 느끼며 온전히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1. 관용과 양순의 마음을 지닌 아브라함의 선
사람의 마음이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용’이란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양순’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리 안에서 이도 가하고 저도 가한 마음이되, 그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선하고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아브라함은 관용과 양순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취하도록 선택권을 양보하는 행함을 통해 느낄 수 있지요. 하나님 뜻에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올 때 조카 롯도 함께했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함께한 롯도 축복받았습니다. 그런데 둘 다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게 되자 더 이상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말합니다(창 13:8~9). 얼마든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우선권을 포기하면서 롯이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자 롯은 물도 넉넉하고 더 기름진 땅을 택해 떠났습니다. 도리와 은혜를 안다면 삼촌에게 좋은 땅을 돌려야 했겠지만,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 떠났으니, 그 마음 됨이 어떠한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 떠났어도 아브라함은 결코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고, 그의 넉넉한 마음에는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상대에게 주고 또 줄 수 있는 관용의 마음과 이것도 저것도 가하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양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 줄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달라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내어 줄 수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입니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행한 아브라함의 선
아브라함은 본래 마음이 아름답고 고우며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큰 그릇을 금 그릇으로 온전히 나올 수 있도록 친히 연단과 시험을 허락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연단의 시간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함으로 축복받았던 것입니다.
크고 좋은 그릇이요, 정직하고 성실히 행하는 것을 사모하는 아브라함이었기에 모든 일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처리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이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는 낮은 마음이되 하나님 이름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왔을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으며 그 마음에 더하여 정직하고 성실히 행해 나가니 그의 길은 축복의 길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전쟁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이 앞장서 나아가 조카를 구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의 편에 승리를 안겨 주었고 소돔 왕은 사례하고자 전쟁에서 얻은 물품을 취하도록 권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고백합니다(창 14:22~23).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요, 소돔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푼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취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비진리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사람 편에서 자기 유익을 좇아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만 부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정녕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선이 마음에 임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 우선 눈에 보이는 유익을 좇아 행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10절에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했으니 실제로 여러분을 악한 길로 유인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여러분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미혹 받아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취한다고 해도 허물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功)으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도 반드시 정가를 지불했던 것입니다. 바로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의 일이지요. 창세기 23장을 보면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아브라함은 굳이 그에 해당하는 상당한 값을 치르고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취했습니다. 이 또한 조금도 사심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이 가득함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처럼 아브라함이 값을 주고 확실히 자신의 소유를 삼은 일은 선의 지혜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육의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질될 수 있기에 당장은 거저 주겠다 하나 훗날에는 마음이 변하여 다시 땅을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훗날까지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기에 근본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앴던 것입니다. 앞서 소돔 왕이 권하는 전리품을 취하지 않은 것도 선의 지혜 중 하나입니다. 훗날 아브라함이 더 부해졌을 때, 소돔 왕은 그때 자신이 모든 전리품을 아브라함에게 돌렸기 때문에 그가 부해졌다고 말할 수 있기에 소돔 왕의 제의를 단호하게 사양함으로써 조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21장에는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나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책망하면서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양 새끼 일곱을 주면서 우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실히 했습니다. 상대가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내 편에서 먼저 화평을 좇고, 이후에는 다시금 우물로 인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명확한 선을 그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상대의 잘못만 꾸짖고 말았다면 아비멜렉은 진심으로 뉘우치기보다는 할 수 없이 물러나는 것이므로 참된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다시 궁지에 몰리거나 기회가 되면 아비멜렉이 우물을 늑탈할 수도 있기에 피해를 보상해야 할 그에게 오히려 우물 값을 치렀던 것입니다. 이로써 아비멜렉이 마음 중심에서 아브라함에게 굴복하게 되고, 이후로는 우물을 넘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받아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선의 지혜로써 그 결과가 깔끔하고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러니 다툴 일도 없어지고, 화평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어떤 문제의 소지도 없도록 잘 마무리되었지요. 이와 같이 선의 지혜를 소유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도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하나님 섭리를 이룰 수 있으며, 혹 나에게 잘못한 상대라도 선의 지혜로써 행하면 나를 돕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의 지혜는 먼저 자신의 것을 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고 아무런 사심 없이 정직하게 행할 때 임합니다. 야고보서 3장 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했으니 더욱 선을 사모하여 아브라함의 선에 이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 선지자의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담긴 성경 구절을 고르세요.
① 창세기 13:9 ② 출애굽기 32:32 ③ 창세기 12:1 ④ 창세기 22:12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행한 아브라함의 선이 아닌 것은?
① 소돔 왕이 권하는 전리품을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다.
② 자신이 취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은 취했다.
③ 거저 주겠다는 사라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정당하게 값을 치렀다.
④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양 새끼 일곱을 주면서 분쟁의 소지가 없게 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막벨라’ 굴이란?
아브라함이 자신과 가족의 묘지로 삼기 위해 헷사람 에브론 소유의 땅을 은 4백 세겔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막벨라 굴이란 그 땅 안에 있던 동굴의 이름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선이 무엇인지 깨달아 범사에 지혜롭게 행하며 지극한 선을 느끼며 소유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믿음의 선진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도 선(善)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아브라함의 지극한 선을 느끼며 온전히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1. 관용과 양순의 마음을 지닌 아브라함의 선
사람의 마음이 악을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관용’이란 ‘진리가 마음에 풍성하게 임하면서 동시에 진리의 자유함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양순’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진리 안에서 이도 가하고 저도 가한 마음이되, 그중에서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처럼 양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단물만 내는 입술의 열매와 선하고 아름다운 행함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아브라함은 관용과 양순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먼저 좋은 땅을 취하도록 선택권을 양보하는 행함을 통해 느낄 수 있지요. 하나님 뜻에 따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올 때 조카 롯도 함께했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함께한 롯도 축복받았습니다. 그런데 둘 다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게 되자 더 이상 동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말합니다(창 13:8~9). 얼마든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우선권을 포기하면서 롯이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자 롯은 물도 넉넉하고 더 기름진 땅을 택해 떠났습니다. 도리와 은혜를 안다면 삼촌에게 좋은 땅을 돌려야 했겠지만, 한 번도 사양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 떠났으니, 그 마음 됨이 어떠한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해 떠났어도 아브라함은 결코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고, 그의 넉넉한 마음에는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상대에게 주고 또 줄 수 있는 관용의 마음과 이것도 저것도 가하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편을 택할 수 있는 양순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 줄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달라고 해도 기꺼이 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기쁨으로 내어 줄 수 있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입니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행한 아브라함의 선
아브라함은 본래 마음이 아름답고 고우며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큰 그릇을 금 그릇으로 온전히 나올 수 있도록 친히 연단과 시험을 허락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연단의 시간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함으로 축복받았던 것입니다.
크고 좋은 그릇이요, 정직하고 성실히 행하는 것을 사모하는 아브라함이었기에 모든 일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처리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완벽하게 이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중심에서 인정하는 낮은 마음이되 하나님 이름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온전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왔을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으며 그 마음에 더하여 정직하고 성실히 행해 나가니 그의 길은 축복의 길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전쟁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아브라함이 앞장서 나아가 조카를 구해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의 편에 승리를 안겨 주었고 소돔 왕은 사례하고자 전쟁에서 얻은 물품을 취하도록 권했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고백합니다(창 14:22~23).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요, 소돔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푼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취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비진리의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사람 편에서 자기 유익을 좇아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만 부해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정녕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선이 마음에 임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 우선 눈에 보이는 유익을 좇아 행하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언 28장 10절에 “정직한 자를 악한 길로 유인하는 자는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져도 성실한 자는 복을 얻느니라” 했으니 실제로 여러분을 악한 길로 유인하는 사람이 없다 해도 여러분 마음에 욕심이 있으면 미혹 받아 시험에 들고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취한다고 해도 허물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功)으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도 반드시 정가를 지불했던 것입니다. 바로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의 일이지요. 창세기 23장을 보면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 아브라함은 굳이 그에 해당하는 상당한 값을 치르고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취했습니다. 이 또한 조금도 사심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이 가득함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이처럼 아브라함이 값을 주고 확실히 자신의 소유를 삼은 일은 선의 지혜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육의 사람의 마음은 언제든 변질될 수 있기에 당장은 거저 주겠다 하나 훗날에는 마음이 변하여 다시 땅을 돌려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훗날까지 내다보는 지혜가 있었기에 근본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앴던 것입니다. 앞서 소돔 왕이 권하는 전리품을 취하지 않은 것도 선의 지혜 중 하나입니다. 훗날 아브라함이 더 부해졌을 때, 소돔 왕은 그때 자신이 모든 전리품을 아브라함에게 돌렸기 때문에 그가 부해졌다고 말할 수 있기에 소돔 왕의 제의를 단호하게 사양함으로써 조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21장에는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나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책망하면서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양 새끼 일곱을 주면서 우물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실히 했습니다. 상대가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내 편에서 먼저 화평을 좇고, 이후에는 다시금 우물로 인한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명확한 선을 그었던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상대의 잘못만 꾸짖고 말았다면 아비멜렉은 진심으로 뉘우치기보다는 할 수 없이 물러나는 것이므로 참된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또다시 궁지에 몰리거나 기회가 되면 아비멜렉이 우물을 늑탈할 수도 있기에 피해를 보상해야 할 그에게 오히려 우물 값을 치렀던 것입니다. 이로써 아비멜렉이 마음 중심에서 아브라함에게 굴복하게 되고, 이후로는 우물을 넘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인도받아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선의 지혜로써 그 결과가 깔끔하고 완벽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러니 다툴 일도 없어지고, 화평할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 어떤 문제의 소지도 없도록 잘 마무리되었지요. 이와 같이 선의 지혜를 소유하면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도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하나님 섭리를 이룰 수 있으며, 혹 나에게 잘못한 상대라도 선의 지혜로써 행하면 나를 돕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의 지혜는 먼저 자신의 것을 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되고 아무런 사심 없이 정직하게 행할 때 임합니다. 야고보서 3장 17~18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말씀했으니 더욱 선을 사모하여 아브라함의 선에 이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 선지자의 관용과 양순의 마음이 담긴 성경 구절을 고르세요.
① 창세기 13:9 ② 출애굽기 32:32 ③ 창세기 12:1 ④ 창세기 22:12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하게 행한 아브라함의 선이 아닌 것은?
① 소돔 왕이 권하는 전리품을 사사로이 취하지 않았다.
② 자신이 취해도 허물이 되지 않는 것은 취했다.
③ 거저 주겠다는 사라의 매장지인 막벨라 굴을 정당하게 값을 치렀다.
④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보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암양 새끼 일곱을 주면서 분쟁의 소지가 없게 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막벨라’ 굴이란?
아브라함이 자신과 가족의 묘지로 삼기 위해 헷사람 에브론 소유의 땅을 은 4백 세겔을 주고 구입한 것이다.
막벨라 굴이란 그 땅 안에 있던 동굴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