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5
제43과엘리야의 선(2)
누가복음 1:17
읽을말씀 : 누가복음 1:17 | 외울말씀 : 누가복음 1:17 | 참고 말씀: 말라기 4:5~6
교육목표 :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가 어떻게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하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엘리야는 심히 겸비한 마음을 가졌고, 자기 의가 없어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선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연단을 통해 강하고 담대한 면모를 갖추게 된 후에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지요. 그리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후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는 구약시대의 엘리야가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으로 왔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엘리야가 어떻게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었을까요?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의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의 선
엘리야 선지자는 이 땅에서 사역을 이룰 때 늘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또한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밝히 깨닫기 위해 노력했지요. 유약한 성품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고,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내려 주셔서 엘리야의 심령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심히도 유약한 성품이었던 자신을 큰 권능으로 입혀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순종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그 사랑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온전히 나타났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는 자신의 성품을 핑계 대며 슬그머니 뒤로 빠집니다. 혹여 자신은 그렇지 않은지,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뜨거우면 성품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육으로 심히 유약한 성품을 지녔지만, 혈혈단신으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에게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하자고 아합왕에게 제안까지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담대히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인 아비들의 믿음으로 태초부터 계신 이, 곧 근본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지요.
엘리야는 이 땅에 있을 때도 하나님에 대해 깊이 깨우칠 뿐 아니라, 심히 사모했습니다. 하물며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친히 뵈었을 때 그 마음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을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고 정립했을 뿐 아니라,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자 하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종국에는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엘리야는 주를 향한 사모함이 불붙는 것 같아 하나님께 “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다시 이 땅에 보내 주의 길을 예비케 하는 큰 사명을 주시지요.
2.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한 엘리야의 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과 그가 어떤 사명을 감당할 것까지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했습니다. 말라기 4장 5~6절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했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다시 태어난 일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오직 엘리야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산 채로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잉태된 지 6개월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할 사람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보내 주셨지요. 이때 엘리야의 영 자체가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태아는 부모의 기(氣)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선하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잉태한 태아에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요 1:6).
성경 곳곳에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4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 곧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말씀해 주셨지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홀연히 변화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하고 여쭈었지요(마 17:10).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답변하시지요(마 17:11~12). 그리고 이어지는 13절에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아무 흠도 점도 없으신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영을 이뤄 산 채로 들림 받은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어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택함 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엘리야가 주를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 가운데 “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다시 이 땅에 내려가라 하셨을 때 기꺼이 “아멘” 하며 순종했지요. 엘리야는 주님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주를 향한 사랑이 불붙는 것 같아 주를 위해 이 죄악의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을 지극한 선으로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주님을 만나 첫사랑이 뜨거울 때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고백을 변함없이 행함으로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모든 말과 행함에서도 그 사랑이 배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너무도 순전하셔서 “누구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고 길에서 그 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하신 예수님도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엄히 책망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을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하나님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주변 사람이나 환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게 되고 어찌하든 그 뜻을 이뤄 드리고자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선을 통해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겠습니다. 더구나 엘리야 시대와는 달리 우리는 성령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힘주시는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선의 단계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왔음을 뒷받침해 주는 말씀이 아닌 것은?
① 누가복음 1:17 ② 누가복음 3:4
③ 마태복음 17:11~13 ④ 데살로니가전서 5:16~18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할 사람이 잉태될 때 그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영이 아닌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보내 주셨다.
② 엘리야는 주님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주를 향한 사랑이 불붙는 것 같아 이 죄악의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다.
③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잉태하면 5개월째에 영을 보내 주신다.
④ 엘리야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알신’이란?
가나안 및 수리아에서 섬겼던 남성신으로 주(lord) 혹은 소유자라는 뜻이다. 땅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신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정착 초기부터 바알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
교육목표 :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가 어떻게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하게 되었는지 알아본다.
엘리야는 심히 겸비한 마음을 가졌고, 자기 의가 없어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선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연단을 통해 강하고 담대한 면모를 갖추게 된 후에는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지요. 그리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한 후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 곳곳에는 구약시대의 엘리야가 신약시대에 세례 요한으로 왔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엘리야가 어떻게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할 수 있었을까요?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의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의 선
엘리야 선지자는 이 땅에서 사역을 이룰 때 늘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또한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밝히 깨닫기 위해 노력했지요. 유약한 성품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고,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내려 주셔서 엘리야의 심령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심히도 유약한 성품이었던 자신을 큰 권능으로 입혀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순종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그 사랑이 행함과 진실함으로 온전히 나타났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는 자신의 성품을 핑계 대며 슬그머니 뒤로 빠집니다. 혹여 자신은 그렇지 않은지,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진실하게 사랑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뜨거우면 성품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엘리야는 육으로 심히 유약한 성품을 지녔지만, 혈혈단신으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에게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하자고 아합왕에게 제안까지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담대히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인 아비들의 믿음으로 태초부터 계신 이, 곧 근본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지요.
엘리야는 이 땅에 있을 때도 하나님에 대해 깊이 깨우칠 뿐 아니라, 심히 사모했습니다. 하물며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친히 뵈었을 때 그 마음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을까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더 밝히 깨닫고 정립했을 뿐 아니라, 성자, 성령 하나님의 사명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자 하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낮고 천한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종국에는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엘리야는 주를 향한 사모함이 불붙는 것 같아 하나님께 “주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다시 이 땅에 보내 주의 길을 예비케 하는 큰 사명을 주시지요.
2.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한 엘리야의 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과 그가 어떤 사명을 감당할 것까지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사야 40장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했습니다. 말라기 4장 5~6절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했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다시 태어난 일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 오직 엘리야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산 채로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사람이 잉태된 지 6개월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할 사람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보내 주셨지요. 이때 엘리야의 영 자체가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또한 태아는 부모의 기(氣)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선하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잉태한 태아에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요 1:6).
성경 곳곳에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4절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 곧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말씀해 주셨지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홀연히 변화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하고 여쭈었지요(마 17:10).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답변하시지요(마 17:11~12). 그리고 이어지는 13절에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아무 흠도 점도 없으신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영을 이뤄 산 채로 들림 받은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어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택함 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엘리야가 주를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 가운데 “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다시 이 땅에 내려가라 하셨을 때 기꺼이 “아멘” 하며 순종했지요. 엘리야는 주님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주를 향한 사랑이 불붙는 것 같아 주를 위해 이 죄악의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을 지극한 선으로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처음 주님을 만나 첫사랑이 뜨거울 때는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고백을 변함없이 행함으로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모든 말과 행함에서도 그 사랑이 배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너무도 순전하셔서 “누구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고 길에서 그 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하신 예수님도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엄히 책망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을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하나님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주변 사람이나 환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게 되고 어찌하든 그 뜻을 이뤄 드리고자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선을 통해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겠습니다. 더구나 엘리야 시대와는 달리 우리는 성령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힘주시는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선의 단계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왔음을 뒷받침해 주는 말씀이 아닌 것은?
① 누가복음 1:17 ② 누가복음 3:4
③ 마태복음 17:11~13 ④ 데살로니가전서 5:16~18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길을 예비할 사람이 잉태될 때 그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영이 아닌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보내 주셨다.
② 엘리야는 주님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주를 향한 사랑이 불붙는 것 같아 이 죄악의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다.
③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잉태하면 5개월째에 영을 보내 주신다.
④ 엘리야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알신’이란?
가나안 및 수리아에서 섬겼던 남성신으로 주(lord) 혹은 소유자라는 뜻이다. 땅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신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정착 초기부터 바알 신앙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