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정기 예배

제목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  [요일 3:21-22]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7.21
하나님께 인정받고 축복받으며 늘 응답의 역사를 체험했던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으로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던 사람들은 하나님께 중심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모습은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20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해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성실히 일해 아내와 자녀도 얻고 소유도 풍성해져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얍복강을 사이에 두고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지요. 강 건너에, 형 에서가 야곱을 잡기 위해 사백 인을 이끌고 있으니, 앞으로도 갈 수 없고, 뒤로는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불편해하니 물러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야곱은 비로소 자신의 교만과 깨지지 않은 자아를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하나님께 맡기고 그 마음을 움직여야만 이 어려움이 해결될 것을 깨달았지요. 그리하여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간절한 중심의 기도를 하여 마침내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형 에서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므로 20년 동안 쌓인 미움도 눈 녹듯 사라지고 감격의 눈물로 화해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간절한 중심의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엘리야 선지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상 숭배가 극심하던 아합 왕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던 우상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인과 겨루게 됩니다. 갈멜산에서 나무로 단을 쌓고 각 신에게 기도해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임을 인정하자는 것이었지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섬기는 신에게 불을 내려 달라고 종일 외쳤고 나중에는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기도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을 내려 응답하시므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지요.
또한 3년 반 동안 계속되는 가뭄 중 큰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도 엘리야의 기도에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땅에 꿇어 엎드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그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지요(왕상 18:42). 간절히 기도하니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이 와서 얼굴이 저절로 무릎 사이에 들어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큰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지라도 엘리야가 믿고 구하지 않았다면 큰비가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겔 36:36~37). 그러므로 중심의 기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이 지속해야 할 대화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귀를 기울이시며 응답해 주시는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므로 자녀 된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기도는 전능자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고 여는 열쇠요, 무엇이든지 가능케 하며 넘치게 얻을 수 있는 축복의 문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하나님께 여쭙고 결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사무엘상 23장 1~2절에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했지요. 동족이 적군에 침략받으니 곧장 가서 공격할 것 같은데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므로 아무리 위급한 상황일지라도 먼저 여쭙고 일을 행한 것입니다.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니 하나님께서는 늘 다윗과 함께하시고 역사하셨지요.
우리도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좇아 행할 때는 만사가 형통합니다. 내 마음대로 결정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고 내 능력만으로 해야 하니 어려움이 많고 부작용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어떤 성도들은 하나님께 맡겨 기도한다면서 자기 생각에 맞추어 기도하고 자기 뜻대로 행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쉬지 않고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고 원망하기도 하지요. 이는 자기 뜻대로 기도하고 자기 원대로, 자기 능력대로 일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생각과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성령의 주관을 받으며 하나님 뜻을 좇아 순종해 가면 형통하게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성령께서 주관하셔도 분별을 못 할 때는 ‘진리인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안 하실까?’ 하며 성령을 의지하므로 답을 얻어 행하시면 되겠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될 뿐 아니라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능히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 뜻대로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기도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기도로 그 사역을 준비하셨고, 공생애 기간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기도하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는데 하물며 우리 피조물이 기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받았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의로운 사람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마음을 가졌던 사람들은 욕을 받되 욕하지 않았고, 죽일 수 있으되 죽이지 않았으며, 오직 진리를 좇아 자신을 낮추어 선과 진리대로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윗은 자신을 시기하여 쫓아다니는 사울 왕에 의해 여러 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정작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 어떤 해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사울 왕을 죽이려는 부하들을 말리고 옷자락만 베어 자신의 선한 의도를 나타내었고, 그 옷자락을 벤 것만으로도 마음 아파하는 선한 중심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 왕이 전쟁에 패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슬퍼하며 그를 위해 노래를 짓고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울었지요.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유가 많아져서 조카 롯과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윗사람이었음에도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의 선택권을 양보했지요.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섬김의 마음과 누구와도 다투지 않으며 화평을 좇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뿐 아니라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가신 318인을 데리고 가서 목숨 걸고 롯을 구하였지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하여 사랑의 간구를 하는 모습 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로운 모습입니다(행 7:59~60).
이렇게 의로운 선진들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지요. 스데반은 권능을 행했고,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범사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된다면 해결 받지 못할 문제가 없고 축복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확실하게 감당하는 사람

다윗은 어렸을 때도 자신에게 맡겨진 아비의 양 떼를,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또한 적국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을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하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이라는 블레셋 장수를 무서워하여 누구 하나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을 보러 싸움터에 왔다가 이 상황을 알게 되었지요. 이방인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다윗은 사울 왕에게 가서 자기가 나서겠다고 말하지만 사울 왕은 그가 소년이므로 만류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을 모욕한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했지요.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고백을 하면서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담대하게 골리앗을 향해 나갑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믿음을 보시고 함께하시니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면서 거인 골리앗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고 이스라엘이 결국 승리하게 되었지요.
다윗이 목숨을 다해 양을 돌보며 위험에서 지키고, 그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지언정 백성들의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출 32:32). 즉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는, 곧 생명 다한 사명 감당이었지요.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고백할 만큼 넘치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서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는 등 핍박과 무수한 고난을 겪었지만 자기 생명보다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찬양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므로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이루셨고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뜻과 섭리를 확실히 다 이루셨기에 당당하게 “다 이루었다.” 고백하실 수 있었지요(요 19:30).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도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길 원하시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계 2: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대로 살면서 생명 다해 충성하여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때로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어려운 일이 닥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으니 기쁨과 감사함으로 힘차게 충성할 수 있습니다(롬 8:18). 그리하여 맡은 바 사명을 확실히 감당한 후 주님처럼 “다 이루었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되 사도 바울, 모세 선지자, 스데반 집사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고 깊어지면서 사명 감당하는 것과 그냥 감당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깊은 충성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의로움, 또 중심 다한 불같은 기도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2024-07-18 오후 4:47:53 Posted
2024-07-26 오후 3:28:09 Updated

다음 글 욥기 강해 (92) 이전글
이전 글 창세기 강해 (21) 다음글
이전 페이지 인쇄하기 글자크게 글자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