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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열 므나 비유  [눅 19:11-27]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8.04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구원과 관련된 말씀인 ‘열 므나 비유’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11절에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할 때가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육적인 권세를 가진 메시아가 될 것으로 기대했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에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1.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본문 12절에 나오는 ‘귀인’ 곧 귀한 사람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근본 하나님의 본체요 하나님 아들이시기에 세상의 어떤 권세자나 부한 사람들보다 가장 귀하시지요. 또 당시 아직 십자가를 지지 않아 구세주가 되지 않으셨기에 즉 왕위를 받지 않으셨기에 ‘귀인’이라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므나’는 은을 계수하는 단위인데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므나에 비유하셨습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 종들에게 므나를 나눠준 것처럼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이 오셨지요(요 15:26). 열 므나를 열 종에게 나눠줬기에 한 사람이 한 므나씩 똑같이 받은 것처럼 우리 믿는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다른 점입니다. 달란트는 영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기에 사람에 따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을 수 있지만 므나는 성령을 의미하기에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한 므나만 받습니다.
이렇게 은 한 므나를 나눠준 귀인은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먼 나라’란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이지요. 그런데 이 비유와 달리 주님께서는 천국에 가시기 전에 성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 부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여기에도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장사 지낸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셔서 부활을 알리신 후 아버지 계시는 천국에 가셨다가 그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습니다. 장사 돼 사흘 동안은 윗음부에서 전도하셨고(벧전 3:19), 부활하신 후에는 바로 아버지께 가셔서 왕위를 받으시고 다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뵐 수 있었지요(마 16:28). 그러면 이 비유의 말씀에서는 왜 귀인이 므나를 준 다음에 왕위를 가지러 먼 나라로 간다고 표현했을까요?
여기서 ‘왕위’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들의 왕위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시므로 이미 왕위를 얻으셨지만,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 된 이들은 아직 왕위가 회복되지 않았지요. 즉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여전히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우리는 온전히 회복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입니다. 그때 구원받은 이들은 주님의 신부로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데 천국의 왕자, 공주로서 우리의 육체가 부활체로 바뀌었듯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2.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본문 13절에 므나 곧 성령을 주신 주님께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신 데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성령으로 장사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했듯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밭을 사는 것’이 영적인 장사입니다.
‘자기의 소유’라고 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등 마음 안에 있는 육적인 것들, 죄악, 비진리’를 말합니다. 이를 버리는 만큼 좋은 마음 밭을 가지게 되어 무엇을 심든지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마음을 영으로 일군 만큼 천국의 좋은 처소에도 들어갈 수 있지요. 비진리를 팔아 진리의 좋은 마음을 얻어가는, 영의 마음을 이뤄가는 것이 바로 영적인 의미의 장사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가시므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인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죄를 깨닫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기도할 때 죄를 버리고 선을 좇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요 3:6, 16:8 ; 롬 8:26). 그러므로 므나 곧 성령으로 장사한다는 뜻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음의 죄성과 악을 벗어내고 진리로 일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3.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본문 15절부터 보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알고자 하여 부릅니다. 첫 번째 사람이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하자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말하지요. 두 번째 사람은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하자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말합니다.
주인의 반응은 엄연히 달랐지요. 이것도 달란트 비유와 다른 점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이나 두 달란트를 가지고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이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칭찬했습니다. 달란트 곧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최선을 다해서 갑절을 남겼을 때는 동일하게 칭찬한 것입니다.
그런데 열 므나 비유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므나로 장사하여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성령을 받아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 안에 살므로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벗어 버리고 온전히 성결 된 자리에 들어간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말씀하셨지요. ‘열 고을’이라고 하면 땅의 지경을 말하는데 열 므나 남긴 사람 즉 온전히 성결 된 사람이 차지하는 천국의 땅, 바로 ‘3천층’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3천층 안의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요.
그러면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든 사람에게 주어진 ‘다섯 고을’은 어디일까요? 열 므나의 절반밖에 되지 않으니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는 장사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온전히 성결 된 사람의 절반밖에 노력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공의에 따라 다섯 고을이 주어지는데 바로 ‘2천층’을 가리킵니다. 그래도 50% 이상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니 행할 수 있는 믿음 곧 믿음의 3단계, 2천층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합니다.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두었다는 것은 오늘날 같으면 그냥 지갑에 넣어 두었다는 말이지요. 아예 장사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변명하기를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하지요. 이에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합니다. 성령을 받았으되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여전히 행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달란트 비유에서 한 달란트를 가지고만 있었던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여 “게으르다”는 말이 덧붙여 있습니다. 달란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게으른 사람들은 사명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므나를 가지고만 있었던 것은 성령이 죄를 깨닫게 해주셔도 버리지 않고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니 게으르기보다는 악한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주님에 대해서도 오해합니다.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어떤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치셨다.” 말하지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을 철저히 희생시키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악한 사람들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려고는 하지 않고 오히려 악만 더 쌓아가니 이것이 바로 한 므나를 받았으되 장사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4.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본문 23절 이하를 보면 주인이 한 므나를 가지고만 있었던 사람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말하지요. 즉 ‘무릇 있는 자’ 곧 한 므나를 받아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받겠고’, ‘없는 자’ 곧 한 므나를 받았으나 장사하지 않은 사람은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한 므나를 받아 열 므나를 만든 사람, 곧 성령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죄를 온전히 벗어버리므로 성결 된 사람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적인 충성이 있습니다. 그동안도 성령으로 장사를 잘해 성결을 이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성령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감당하기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것입니다. “어찌하면 주님의 기쁨이 될까? 하나님 나라를 더 크게 이룰까?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더욱 열심 내어 달려가지요. 그러니 열 므나를 남겼어도 한 므나를 더 주어 더 많이 남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교를 듣다가 찔림이 되면 마음에 반발이 일어나지요. ‘또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구나!’ 판단하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악함 속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만을 좇아 나간다면 그 사람에게서는 성령이 소멸할 수 있습니다(히 6:4~6).
본문 27절에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말씀합니다. 14절에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노이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지요. 바로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것을 원치 않은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오늘날도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죽임을 당하는 데 바로 영적인 사망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됩니다.
주님의 왕 되심을 원치 않는 사람은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만을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한 므나를 가지고만 있는 사람, 바로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도 진정 주님께서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가 되심을 믿는다 할 수 없습니다(마 7:2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은 저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며 열 므나 이상을 남기기까지 성령으로 열심히 장사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기뻐하심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열 므나는 남겨야 합니다. 적어도 3천층은 들어가야 경작에 합당한 참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주신 사랑에 감사하며 더욱 힘차게 변화되시므로 최소한 열 므나는 남기어 하나님의 큰 기쁨으로 나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8-04 오전 11:45:07 Posted
2024-08-09 오후 1:46:1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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