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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아브라함의 선  [갈 3:6-9, 롬 12:2]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8.11
오늘은 하계 수련회 교육 말씀,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함에 대해 못다 전한 말씀을 이어 전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행함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계 수련회 교육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손에 만진 바도, 확실한 증표도 없는 상태에서 온전히 그 뜻대로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조상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가능한 행함이었지요.


1. 아브라함을 통해 비추어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큰 축복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는데, 아브라함은 많은 시간이 흘러 100세가 되어서 이삭을 낳는 복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축복의 약속으로 주신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어떤 생각이나 이유 없이 그대로 순종하되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지요.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들어 찌르려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그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이삭 대신 준비해 놓은 수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축복을 다시 확인시키시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시지요.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는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뜻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기뻐하십니다. 여기서 순종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할 수 있는 정도만 계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녀들을 기뻐하시고 찾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만 축복의 약속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셨고,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축복해 주시지요.
여기서 선하신 뜻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서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믿고 순종해 행했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따라 순종하면서 기도하면 그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생각과 이론이 동원되어 하나님의 역사가 막혀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과 이론으로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도 마음으로 믿어드렸을 때 하나님의 역사는 여러분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해 바다 위에 지팡이 든 손을 내밀었기에 하나님께서 밤새 동풍을 불어 바다를 가르셨고, 사르밧 과부가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조금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으로 떡을 만들어 공궤하니 하나님께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염려 없이 살 수 있게 하셨던 것이지요. 바로 믿음을 찾으시고 믿음을 보일 때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브라함의 말씀을 통해 비추어본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드린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순종과 행함을 통해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될 수 있었지요.
그러면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해당하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 사랑이 끝까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자기 고향, 자기 족속에게로 가서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종은 혹 여자가 자신을 좇아 가나안 땅으로 따라오지 않으면 이삭을 그 여자가 거하는 땅 하란으로 인도하여 돌아가야 할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하지요.
창세기 24장 7절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7장 8절에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신 언약의 말씀을 신실히 믿었기 때문에 며느리를 택할 때도 예외를 두지 않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셨으면 시간이 지나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믿었기에 이런 말을 종에게 했던 것이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이 하신 말씀을 마음에 지키고 명심하여 믿어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모두 행할 수 있는 믿음과 순종과 행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그 믿음에 따라 순종해 행했으며, 그 말씀을 믿어드리며 행하는 것이 죽는 날까지 변함없었지요.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결정체로 나와졌기에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약 2:23).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행함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제 온전하신 뜻을 행하십시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신 뜻이 없다면 이제부터 행하시되, 행하시면서 온전하신 뜻까지 이루어 가십시오. 한번 믿어드린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 축복의 말씀을 들었고 또 들은 말씀을 행한 그 믿음대로 축복받고 응답받아 나왔을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나간다면, 이제는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고 하나님 언약의 말씀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따라 행했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따라 행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그의 조카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행함을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이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먼저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선에 이르지 못합니다.
반대로 자신을 희생하고 상대를 이해하며 그의 유익을 먼저 구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손해 보고 무시당하며 낮아지는 것 같지요.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기뻐하시며 사랑하시기에 선한 자녀들이 피해를 보고 어렵게 그냥 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3장에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함께 거했는데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니 아브라함 가축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이에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지요.
이때 아브라함은 윗사람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줍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한 것이지요. 이에 롯은 좋은 땅을 선택하여 떠납니다. 하지만 진정 좋은 땅은 하나님께서 복 주셔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람이 거하는 곳입니다.
창세기 13장 14~17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지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 대한 선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양보로 먼저 선택권을 가졌던 롯이 택한 땅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기에는 그 땅이 좋아 보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와 주위의 나라들이 싸움하게 되었고, 소돔과 고모라는 패하여 모든 재물과 양식까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 또한 사로잡히고 그 재물까지 노략질당했지요.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쫓아가 조카 롯을 구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그러면서도 찾아온 물건에 대해서는 하나도 자신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14장 22~23절에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말했지요.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빼앗긴 물건을 찾아옴에 있어서 자신의 유익은 전혀 구하지 않고, 오로지 선의 마음에서 조카 롯을 구하고자 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의 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말씀하시며 소돔과 고모라, 바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사는 성에 죄악이 관영함으로 그 성을 멸하실 것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이때도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을 긍휼히 여겨주실 것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꼭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땅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간구로 그곳에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어내지만, 그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고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때도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한 대로(창 19:29) 롯을 구해 주십니다.
과연 요즘 세상에 내 형제, 친척이라 하더라도 그가 곤경에 처했을 때 목숨까지 걸고 도와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 대해 끝까지 변함없는 선의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냈습니다. 자기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선이 그대로 행함을 통해 변함없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마음과 모습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선한 모습, 선을 행하되 인정받고 칭찬받고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없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 그리고 그 선과 희생이 변함없을 때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말씀하셨지요.
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하나로 결속되는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았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축복이었지요. 우리 성도님들도 아브라함과 같은 중심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같은 복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8-09 오후 10:06:39 Posted
2024-08-22 오후 3:22:38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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