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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십계명 (2) 제2계명 [출 20:4-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8.25
하나님의 자녀라면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하는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으로 우상숭배를 금하신 내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 은 등으로 사람의 형상이나 땅 위에 있는 짐승, 곤충, 새, 물속의 어족이나 하늘의 해, 달, 별, 혹은 상상 속의 어떤 것을 형상으로 만들어 경배하며 섬기지요. 이렇게 물질적인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우상에는 생명이 없고, 응답하거나 축복을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지음 받은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섬기며 그 앞에 복을 달라고 빌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운 일입니까? (사 46:6~7)
형상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부적을 의지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위들도 우상숭배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부적이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준다고 믿지만, 영안이 열려서 보면 더러운 귀신과 악한 영들이 모여들고 그로 인해 재앙과 환란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우상도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준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헛된 우상을 만들고 경배하고자 할까요? 사람에게는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도 우상을 만들어 섬기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모세를 하나님처럼 섬기고 따랐는데, 모세가 계명을 받기 위해 그들과 떨어져 있게 되자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자신들을 인도해 낸 신이라 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도 볼 수 없고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으므로 어떤 형상을 만들어 하나님이라 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우상 아닌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을 놓고 경배하거나 기도하고, 혹은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의 형상을 만들어 경배합니다. 동정녀 마리아나 믿음의 선진들은 피조물이요, 경배의 대상이 아닙니다. 또 예수님의 그림이나 형상은 진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요, 화가나 조각가의 상상에 불과하므로 이런 것을 놓고 그 앞에 경배하고 기도한다면 이 역시 결과적으로 우상숭배가 되고 말지요.
어떤 사람들은 우상을 배척하다 보니 교회 안의 ‘십자가’까지 우상이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믿는 복음의 상징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나무 십자가를 지셨고 보혈의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에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이유는 예수님 보혈의 공로와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러니 십자가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나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이나 예수님의 행적을 표현하기 위한 그림일 뿐 거기에 그려진 예수님을 향해 경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나 어떤 조각이나 그림으로 예수님을 표현하고 그 앞에 경배하고 기도할 때는 우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모세도 우상을 만들었다.”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수기 21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다가 사막의 불 뱀에게 물렸을 때의 사건을 말하지요. 수많은 백성이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갈 때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았는데, 불 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이 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놋 뱀의 형상을 만들게 하신 것은 그 형상을 숭배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로써 주신 것이지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 불 뱀을 본 사람들이 죄로 인한 죽음에서 놓임 받은 것처럼,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던 영혼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영접할 때 구원받고 생명을 얻게 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더구나 열왕기하 18장 4절에 오랜 훗날, 히스기야 왕이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척결할 때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곧 놋 조각)이라 일컬었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놋 뱀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만들어진 형상이지만, 그것이 결코 우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됨을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우상숭배에 담긴 영적인 의미

영적인 의미로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꼭 불상 앞에서, 혹은 제사상 앞에서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님이나 남편, 아내, 혹은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 또한 영적으로 우상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될 수 있지요.
이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진리 안에서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께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로 인해 진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해 우상을 섬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가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줘야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녕 자녀를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하고 자녀도 하나님 안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원수 마귀로부터 지켜줄 수 없으나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주 안에서 사랑할 때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 자녀를 지켜주십니다.
부부 사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육의 사랑을 합니다. 사랑한다면서 다투기도 하고 결국 사랑이 변질되어 남남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사랑할 때는 진정한 영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내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않으며 절대 변질되지 않는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할 때라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 하시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명예, 지식을 더 사랑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면 이것도 영적으로 우상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해 주일조차 온전히 지키지 않고, 명예와 권세를 지키기 위해 계명을 어기지요. 이렇게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어긴다거나 세상과 타협하여 진리 가운데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영적인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 운동선수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므로 우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도님 중 연기나 운동을 잘하는 분들을 좋아하고 그 재능을 동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활동하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재능을 존중하고 좋아할 수 있지만, 세상 것들을 사모하고 늘 마음에 품으므로 이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다면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이 외에도 어린아이들에게 너무 좋아하는 인형이나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 있어서 거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것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 무언가가 영적으로 우상이 되며, 우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사람과의 관계나 모든 상황에서 진리와 영을 좇아가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라면 차단할 수 있는 지혜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

출애굽기 20장 5절 후반 절과 6절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순종하는 사람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질투하신다’ 하실 때, 이 질투는 사람이 하는 질투와는 의미가 다릅니다. 사람이 하는 질투는 육의 속성에서 비롯되므로 추하고 더러우며 상대에게 해를 입히게 됩니다. 사랑의 질투가 아닌 미움의 질투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랑의 질투를 하실까요? 만약 성도가 우상을 섬기게 되면 그 사람을 외면하시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그를 주관하도록 내주십니다. 공의의 법칙에 의해 범죄한 사람을 사단에게 내주셔야만 하는 것이지요. 이때 각종 시험 환란, 재앙을 당하게 되어 그는 마음이 가난해져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는 것은 자녀들이 죄로 인해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영생의 길로 가도록 인도해 주시는 참사랑의 표현이지요.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질투하지 않으셔서 범죄한 그를 외면하시지도 않고 무조건 용서하며 내버려두신다면, 그는 잘못을 돌이키지 못하므로 계속 범죄해 결국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 아버지이시며 사랑하는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지요. 그런데도 사람이 마땅히 섬기고 공경해야 할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며 숭배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고 왕이신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그 보응을 받게 되는데, 그 죄가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3, 4대까지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가정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지요. 불치, 난치병이나 불구자, 정신 이상자, 귀신 들린 사람, 자살하는 사람 등이 나오고, 물질의 어려움과 환란이 계속 임합니다. 이런 재앙들이 4대에 걸쳐 임하게 된다면 그 집안은 완전히 몰락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지요.
하나님께서 재앙을 4대에 이른다고 단정하지 않으시고 3, 4대에 이른다고 여지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 긍휼의 표현입니다. 조상이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다 해도 그 자손 중에서 완전히 멸절당하기 전에 회개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긍휼을 입으므로 그 재앙이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도 쉽지 않고, 주님을 영접한다 해도 그 조상들과 마치 영적인 끈으로 묶인 것과 같아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 송사하며 어찌하든 다시 사망으로 끌고 가려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끝까지 겸비한 마음으로 조상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자신의 악을 버려 나가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킴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대까지, 곧 영원히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재앙은 3, 4대에 이르나 축복은 천대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을 볼 때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는 일도 없으시므로 자자손손, 천대까지 약속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8-22 오후 3:21:05 Posted
2024-08-30 오후 2:14:4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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