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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예배

제목
화목  [고후 5:18-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9.15
추석을 맞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한 삶의 비결 중 화목을 이루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화목’이란 ‘뜻이 맞고 정다움’이라는 의미입니다. 늘 대하는 사람들과 뜻이 잘 맞아서 항상 정답게 살아갈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참으로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목에도 순서가 있어서 이 순서의 의미를 깨닫고 지켜 행할 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우리 영혼의 아버지인 하나님과 화목

우리가 가장 먼저 화목을 이루어야 하는 대상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 이유는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자녀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시고 영의 지식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면서부터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죄의 길로 빠져들었지요. 죄인이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마귀의 자녀로서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므로 종국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처럼 영원한 사망으로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하나님 뜻을 거슬러 범죄 했을지라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셨지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죄를 대속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화목하시기 위해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철저히 희생시키셨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그의 죄를 모두 사해 주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고후 5:18 ; 갈 4:6).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놀라운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다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지으면 다시금 하나님과 화목이 깨어지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를 받으니, 하나님께 구하여도 응답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렘 5:25).
그러나 받은바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말씀인 빛 가운데 행하면 아버지 하나님과 화목함 가운데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마 7:11 ; 요일 3:21~22). 죄로 인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면 담대히 구할 수 없으니 응답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도 없지만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2. 모든 사람과 화목

고린도후서 5장 18절 후반절 ~ 19절에 “…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는 것은 아직도 죄 가운데 행함으로 사망으로 가며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은 사람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하고 말씀하셨지요(살전 5:13).
사람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로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옳다고 주장하는 자기 생각은 진리에 비추어보면 맞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은 “용서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 “섬기는 자가 되어라” 하는데 이러한 말씀은 행치 않으면서 여전히 자기 뜻만 고집하는 것이지요.
자기 뜻, 자기 의를 내세우지 않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있는 곳은 화목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화목한 가정 이루기를 원하시기에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부는 서로 사랑하며 형제간에 우애할 것 등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도 ‘가화만사성’이라 하여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진리 안에서 모든 것에 화목할 때 기도의 응답도 오며 좋은 일도 임하게 되지요.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여 가정의 화목이 얼마나 값진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화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부간에 화목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화목할 수 있고 자녀들이 부모를 보고 배움으로써 형제 자매간에도 화목해 가족 모두가 화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화목을 이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부부간에 화목을 이루는 것도 어렵지 않지요. 에베소서 5장 28절에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고, 베드로전서 3장 1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했습니다. 이 말씀만 각각 이룬다 해도 화목하지 못할 부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으로서 자기 말씀은 행치 않으면서 아내에게만 순복하라고 하고, 아내도 자기가 행할 말씀은 순종하지 않으면서 남편에게 바라기만 하니 화평이 깨어져서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남편이든 아내이든 진리의 말씀대로 자기를 낮추고 먼저 섬기는 자가 된다면 이내 화목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자신을 먼저 낮추는 것이 육적으로는 자존심 상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더 큰 그릇이 되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된 예화를 말씀드릴 때 여러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선의 지혜를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화 1) 어느 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편과 다퉜습니다. 여왕은 일과를 마치고 저녁때야 귀가했고 방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방문이 잠겨서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남편이 기분이 상해서 안에서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 감정이 상한 여왕은 “나, 대영제국 여왕 엘리자베스는 그대에게 문을 열 것을 명령하노라.” 했습니다. 그런데도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요.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내 자신을 깨달아 이번에는 낮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여보,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에요. 밖이 추운데 문 좀 열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시험 들어 힘들어하고 첫사랑을 잃어 식어버린 성도나 꺼져가는 심지와 같이 악을 발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더욱 믿음이 어린 상대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것은 가르치고 명령하는 말과 자세가 아니라 나를 낮추어 상대를 섬기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 주는 따뜻한 마음과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섬김만이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지요.
진리 안에서 이처럼 자신을 낮출 수 있는 사람이 정녕 영으로 앞선 사람입니다. 상대가 자신에게 악으로 나온다고 자신도 악으로 대한다면 아무리 신앙 경륜이 길다 해도 영적인 수준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예화 2)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부싸움을 했는데 할머니가 화가 나서 말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자 할아버지에게 밥상은 차려 주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다가 할아버지가 식사를 마쳐가자 말없이 물만 떠다 놓았지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한마디도 말을 안 하니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에도 할머니는 말없이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불현듯 일어나서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서랍도 뒤지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는 척했지요. 점점 더 옷장 속에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을 꺼내놓으며 방안을 어지럽히자, 할머니는 궁금함을 견디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는데 이제야 찾았네.”라고 대답했지요.
화목을 이루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합니다.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조금만 더 상대를 배려해 주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지지요. 그런데 내가 살아 있음으로 인해 ‘그 조금’ 자신을 낮추는 일이 힘들고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 오해를 낳고 자존심 때문에 터놓고 얘기하지도 않으며 그러다가 안 좋은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진리를 아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존심을 지키며 내가 살려고 하기보다는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 것이 영으로 살아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뜻에 따라 온전히 죽으셨을 때 부활의 영광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화 3) 너무도 불행한 가정생활을 비관하여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이 부인은 “하나님! 너무 힘들어요. 빨리 천국에 가고 싶어요!”라고 기도했지요.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을 이해한다. 네 소원을 들어줄 테니 그전에 내 말대로 몇 가지를 할 수 있겠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부인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먼저 네 집 안이 지저분한 것 같은데 네가 죽은 후 ‘참 살림을 잘했다’는 말을 듣도록 3일 동안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여라.” 하셨지요. 3일 동안 열심히 청소하고 나자, 집 안은 이전과 아주 다른 새집처럼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아이들이 맘에 걸리지 않니? 네가 죽은 후 아이들이 ‘엄마가 우리를 정말 사랑했다’고 느끼도록 앞으로 3일 동안엔 아이들에게 최대한 사랑을 주렴.” 하셨습니다. 이에 3일 동안 아이들을 최대한 사랑으로 품어주고 정성스럽게 요리도 만들어 주었지요.
이렇게 3일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네가 남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고 힘들었던 것을 안다. 그렇지만 네 장례식 때 남편이 너를 ‘참 좋은 아내였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마지막 3일 동안 남편을 최대한 섬겨 보렴.” 하셨습니다. 부인은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남편을 진심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3일이 지나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천국으로 가자! 그런데 그 전에 네 집을 한번 돌아보려무나.” 말씀하셨지요. 집을 돌아보니 깨끗한 집에서 오랜만에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고 남편도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내 집이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그대로 살고 싶어졌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도 “네가 가고 싶어 했던 천국을 지난 9일 동안 여기에 만들었구나.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형편과 처지에 있든지 진리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죽이고 진심으로 상대를 섬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셔서 반드시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원수라도 화목하게 해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칭송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하나님 말씀은 참되고 거짓이 없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신 말씀을 반드시 실행하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목이라는 이 행복한 삶의 비결을 터득하셔서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가시며 장차 천국에서도 가장 행복한 새 예루살렘에 꼭 이르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9-12 오후 4:37:07 Posted
2024-09-20 오후 1:58:3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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