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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기도 (3)  [요일 5:14]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5.05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의 호흡이요, 응답의 통로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인도받아 갈 수 있지요.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지킴 받고 보호받는 안전지킴이가 되며 어려움을 만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큰 도움이 되는 보험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중요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의 모습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첫째,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며 둘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였지요. 오늘도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셋째, 내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2:42). 이러한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많은 신앙인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기 뜻대로 구하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며 단서를 세우기도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실컷 기도해 놓고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성도들도 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며 결코 믿음의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응답받아 범사에 형통함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대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과 항상 좋은 것만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라면 어떤 결과가 온다고 하더라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지요.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를 드릴 때 누가복음 22장 43절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기록한 것처럼 사자가 와서, 천사가 와서 도와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한다고 하나 실상은 전적으로 맡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들어서 알고 있기에 생각 같아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맡기고 기도할 것 같은데, 막상 힘든 일을 만나게 되니 ‘도저히 안 될 것 같다.’ 하는 의심이 들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염려, 근심이 틈타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니 하늘로서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기 지혜나 방법을 동원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게 되지요. 하지만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라면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결코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이라면 자신이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오직 감사함과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닌 온전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있다 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넷째,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중심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얼굴에 혈관이 터져 땀과 함께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할 때 그 수고와 땀의 소산으로 응답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후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면서 인간 경작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이 땅을 개간하고 그로 인해 소산을 얻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수고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인간 경작이 시작된 후로는 새로운 법칙이 생긴 것입니다. 영적으로 응답받는 법칙 안에도 이렇게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할 때 응답받는다는 것이 원칙이지요.
그런데 중심의 기도를 하려면 무엇보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소리를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의 선진들 역시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 선지자(출 15:25 ; 민 12:13), 사무엘 선지자(삼상 7:9)가 부르짖어 기도했고, 불의 응답을 끌어 내렸던 엘리야 선지자나 물고기 배 속에서 기도했던 요나 선지자도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은 물론 큰 권능을 행했던 베드로 사도나 스데반 집사도 부르짖어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말씀하시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뜻임을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중심의 기도를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요?
물론 묵상기도를 할 때도 중심의 기도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항상 방해하려고 하기에 일반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 이러한 방해로 인해 중심의 기도를 못 하게 됩니다.
중심 다해 기도하지 않으면 사단은 먼저 잡념을 심어 줍니다. 재미있게 본 드라마나 게임, 맛있게 먹은 음식, 기분 나쁜 일이 떠오르며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하는지 잡념에 빠지지요. 또 사단은 염려, 근심, 걱정이 틈타게 합니다.
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피곤입니다. 잡념이 생기고 염려, 근심, 걱정을 하다 보면 기도에 집중할 수 없으니, 기도가 점점 힘들게 되고 자연히 피곤이 찾아오지요. 그러다가 졸음이 밀려와서 잠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기도하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해서 몸이 곤하다고 하더라도 하늘로부터 새 힘이 주어져서 충만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올리면 피곤함도 사라져서 더 건강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되 하나님 뜻대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중심의 향을 올려야 합니다. 마음의 중심을 모아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늘 성령 충만함을 입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다섯째,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응답을 받아 내릴 수 있는 응답의 필수 요건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어서 늘 의심하는 사람에게 응답을 주신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조차도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까?’ 의심하며 우연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응답에 대한 기쁨이나 감사조차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도 없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고 기도한 것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나옵니다. 이처럼 기뻐하고 감사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믿음 있다.” 인정하시며 응답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믿음과 더불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가셔서 생명 다해 기도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는 우리 인생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지요.
11절에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24절에는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영혼들을 위한 사랑의 간구를 하신 것입니다.
이 같은 예수님 사랑의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는 구원받아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랑을 값없이 받고 체험한 우리도 마땅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이웃과 전 세계 무수한 영혼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기도할 때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서 간절히 기도해 주어야 하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기도를 기뻐 받으셔서 여러분을 통해 수많은 영혼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그런데 사랑으로 기도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믿음 생활을 잘하지 못할 때 “세상 다 끊고 예배도 잘 드리고 큰 일꾼 되게 해 주세요”라고 부모가 원하는 것을 기도합니다. 하지만 먼저 자녀의 입장이 되어 “오락 끊을 힘 주시고, 참 가치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세세하게 기도한 후에 부모가 바라는 것을 기도하면 좋지요.
자녀나 남편, 아내를 내 입장에서 내 바람대로 끌어오려고 하면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고 기도한 대로 상대에게 바라게 되니 사이가 불편해지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상대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힘들고 어려운지 등 세세한 것들을 이해해 주면서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기도할 때도 막연히 “이것 버리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것보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버리고자 기도한다면 더욱 신속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죄악을 벗어버림에 있어서 간절해야 하는데,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기도라면 응답받기가 더딥니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것을 간절히 원해야 하지요. 가령, 나를 힘들게 한 상대에게 먼저 손 내밀기는 싫은데 하나님 말씀에 화평하라 하니 기도는 하는데 간절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뜻이 화평이요, 화평할 때 주님의 얼굴을 뵐 수 있다는 믿음과 사랑이 있으면 간절해지지요. 이러한 기도는 성령께서 고집스러운 내 모습이 얼마나 악한지 깨닫게 하시고 더 이해하고 섬길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십니다.
이처럼 의무적으로 하는 기도와 하나님을 사랑해 이루어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는 기도, 또 교회와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는 기도와 그냥 기도 제목에 따라 하는 기도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에 응답의 속도도 다르지만, 상급이 쌓이는 것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변함없는 믿음과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셔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직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는 것 같다고 할지라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며 노력해 나가므로 응답과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24-05-03 오후 2:12:52 Posted
2024-05-17 오후 1:44:3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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