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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6.09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안식, 곧 세상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평안을 얻는 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수고한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에서의 삶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재물을 쌓기 위해, 명예와 권력, 그리고 지식을 얻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해도 평안하고 행복하며 바라는 것을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원하는 대로 재물을 많이 모았어도 욕심이 있고 자족할 줄 모르니 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쌓아도 지식은 또 끝이 없지요. 이렇게 참 만족도 없이 지쳐 허덕이면서 탐욕과 이기심 속에서 싸워나가는 모습이 바로 수고하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데, 그때는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수고를 했다 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쌓은 것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전 1:2~3, 14). 그러나 주 안에서 한 수고는 이 땅에서뿐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시기 때문에 결코 손해 가는 것이 아니요, 진정 가치 있는 삶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무거운 짐 진 자들아’ 했는데 사람들은 과연 어떤 짐을 지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많은 짐을 지고 가는데, 이것은 삶을 살아가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의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고, 학생들은 장래에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짐을 지게 되지요. 직장인으로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짐이 있고, 때에 따라 승진에 대한 짐도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은 더 좋은 기록을 세워야 한다는 짐이 있고, 유명한 연예인이라 해도 그 인기를 유지해야 하고 더 많은 인기를 얻어야 한다는 짐을 지고 있지요.
이처럼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이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모두가 짐을 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나름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고 가는 짐에는 이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것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짐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이웃이나 친척, 동료나 상사 등으로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져야 하는 짐이 있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를 부양하거나 섬길 최소한의 의무를 갖게 되지요.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짐들을 지며 결국은 생존경쟁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짐 중에서도 가장 중하고 무거운 짐이 있으니 바로 죄의 짐입니다. 이 죄로 인해서 질병이 오고 재앙이 임합니다. 인생의 갖가지 문제들을 만나게 되지요. 무엇보다 결국은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빠져 세세토록 고통을 받게 되니 이 죄로 인해 지는 짐보다 더 무거운 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크고 작은 고난과 문제 가운데 살기 때문에 실상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끼지 못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죄의 대가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니 너무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죄에 대해서 이미 그 마음이 무뎌져 있기 때문에 죄를 짓고도 마음에 짐으로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은 이 죄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잘 압니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서도, 그 누구도 벗겨줄 수 없는 이 죄의 짐을 주님께서는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한없는 사랑으로서 이미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빛 가운데 행하면 죄 사함을 받아 무거운 죄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멍에란 밭을 갈 때 말이나 소의 목에 얹고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는 산 모양(∧)으로 구부러진 나무로 된 기구를 말합니다. 이 기구로 밭을 갈면 돌멩이가 빠져나가고 굳은 땅이 부드러워지므로 옥토로 개간할 수 있지요. 이렇게 개간한 밭에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고 꽃이 피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가면 우리의 마음 밭이 갈리어 점차 옥토가 되고 거기에 하나님의 씨, 곧 말씀을 심으므로 영생이라는 열매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멍에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내 뜻, 내게 좋은 것이 없으셨고 오직 먹으나 마시나 입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죽기까지 충성하셨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셨고, 천국 복음과 구원의 도를 가르치시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셨으며,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흉악한 귀신 들린 사람을 해방하셨지요. 먹지 못하시고 주무시지도 못하면서 영혼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셨으며, 마침내는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한 삶을 사셨습니다.
마치 주인의 뜻에 따라 멍에를 메고 묵묵히 밭을 가는 소의 모습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가 져야 할 그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주님의 멍에를 지기 위해서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온유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서 영적으로는 사랑과 덕을 함께 지닌 것을 말하지요. 그래서 온유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평안함과 쉼을 주셨지요.
겸손은 교만하거나 들레지 않으므로 상대를 높이고 자신은 낮추는 것입니다. 누구를 판단 정죄하거나 허물을 드러내지 않지요. 설령 상대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났어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그 처지와 상황을 최대한 이해하려 합니다. 결국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은 주님의 사랑 안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을 이뤄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되어서 주님을 닮아가는 만큼 주님의 멍에를 멜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는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께 배울 수 있을까요? 먼저는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지요(요 14:26, 16:13).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갔던 사람들을 통해 더욱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 중 사도 바울은 자신을 통해 주님의 삶을 본받을 수 있도록 권유하지요(고전 11:1 ; 빌 3:17).

본문 29절 끝부분에는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닮으며 그 멍에를 메고 주님을 닮아 가면 우리 마음이 쉼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쉼’이란 육적인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쉼, 곧 영혼의 평안과 안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말씀인 진리를 알아감에 따라 육적인 마음의 고통과 짐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뜻하지요.
예를 들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근심, 걱정, 염려로 가득 찼던 마음이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므로 평안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칠 줄 모르는 탐심에 따라 살아가거나 시기, 질투, 미움, 다툼 등 죄악 속에 살아가지 않으니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지요.
다만 평안한 가운데 성실함으로 최선을 다한 후에 결과는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영광 돌릴 수 있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니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과 직장의 문제, 혹은 질병이나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은 그 짐을 자신들이 지기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한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설령 아직은 연단 중에 있어서 당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여전히 그 마음에 평안함이 있지요. 곧 모든 응답을 받으리라는 믿음이 있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적인 비진리가 벗어지고 하나님 말씀이 임하는 만큼 마음에 쉼을 얻어간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니 평안과 기쁨 가운데 마음에 쉼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함께 하시는 증거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3.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30)

이렇게 쉼을 얻을 수 있는 까닭이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멍에는 사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이면서 낮고 천한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오신 것이나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고치시며 십자가를 지신 모든 섬김과 희생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주님의 마음에는 사랑 자체가 온전히 이뤄졌기에, 이 고난의 길도 싫다 하지 않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진정 알고 믿는다면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요, 오히려 기쁨과 감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져야 할 예수님의 짐이 가벼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짐은 우리가 영생과 축복을 얻기 위해서 져야 할 짐으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죄를 버리고 거룩하게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짐이지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부흥시키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져야 하는 짐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수고가 싫어서 예수 믿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짐이 가볍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이 짐을 여러분 혼자 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져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하고, 여러 가지로 인내해야 하므로 예수님께서는 이 짐이 무게가 전혀 없다 하신 것이 아니라, 가볍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가 져야 할 주님의 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달아서 그 사랑의 마음으로 자원해 간다면 결코 이 짐이 무거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에 속한 수고와 무거운 짐은 주님 앞에 다 내려놓으시고, 대신 기쁨으로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감사함으로 주님의 짐을 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세세토록 영화롭고 존귀한 새 예루살렘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6-07 오후 1:34:55 Posted
2024-06-23 오후 2:52:5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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