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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철야 예배

제목
창세기 강해 (17) 영적인 존재들 (6) [창 1:1]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24.06.21
창세기 강해 열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그룹의 머리인 네 생물에 대해 에스겔 1장을 중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네 생물은 얼굴과 날개가 각각 넷씩 있고,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만을 듣고 그것에 순종하여 움직인다 했지요.
네 생물의 특징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온몸에 눈이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에스겔 10장 12절에 보면 "그 온몸과 등과 손과 날개와 바퀴 곧 네 그룹의 바퀴의 둘레에 다 눈이 가득 하더라"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6절과 요한계시록 4장 8절에도 기록되기를 각각 네 생물의 앞과 뒤와, 날개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다 했지요.
이처럼 네 생물에게 눈이 많은 것은 모든 것을 두루 감찰하는 네 생물의 사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을 최측근에서 호위하기에 항상 주변을 빈틈없이 살펴야 합니다. 또한 네 생물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땅을 두루 살피기도 하지요.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으로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감찰하십니다. 그런데 네 생물은 이 지구뿐만 아니라 온 우주까지도 두루 살핍니다.
온몸에 가득한 눈으로 모든 것의 동태를 파악하지요. 그 어떤 것도 네 생물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영들의 움직임까지도 네 생물은 전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사시에는 즉각 휘하의 그룹들을 움직입니다. 네 생물의 온몸에 눈이 가득함으로 인해 호위와 경계라는 그룹 본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생물은 각각 감찰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한 인자 생물은 각 사람이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는가를 감찰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살핍니다. 마태복음 15장 18절 전반절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입으로 얼마나 범죄하는지를 살피며 또한 그 행실도 살피지요. 한 사람의 말과 행실을 살펴서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는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자 생물은 각 사람이 얼마나 강하고 담대한지를 감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믿음을 얼마나 굳건히 지키며 주의 이름으로 얼마나 담대하게 나아가는지를 측정하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거나 핍박을 받았을 때 거기에 굴복하는지 안하는 지를 봅니다. 또한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처럼 육으로는 이기기 어려운 상황들도 있지요. 이런 경우라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는지 아니면 두려워서 뒤로 물러서는지를 사자 생물은 정확하게 살핍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정확하게 꿰뚫어 보지요.

다음으로 독수리 생물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심비에 잘 새기며 마음에 이루었는가를 감찰합니다. 독수리는 시력이 매우 좋아서 멀리 있는 작은 것도 정확하게 포착하지요. 이처럼 독수리 생물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각 사람의 마음을 살핍니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까지 정확하게 분별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올해 자신이 속한 선교회의 헌신예배 시 주신 말씀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대부분 말씀 주제에 맞는 세부 항목을 두세 가지씩 말씀해 주셨지요. 그 항목의 내용들을 이루기 위해 항상 붙잡고 기도한 분들이라면 지금 이 순간도 첫째, 둘째, 셋째를 술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이루기 위해 그만큼 말씀을 심비에 잘 새겼다는 증거이지요. 또한 이렇게 늘 말씀을 떠올리며 기도한다면 어찌 마음에 온전히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능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송아지 생물은 각 사람의 충성 분야를 감찰합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늘 충성하는지를 살피지요. 자신이 맡은 사명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지를 봅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나 일꾼들의 경우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심방하고 전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반면 사명자로서 해야 하니까 억지로 힘들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체크하지 않아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 곧 예배나 모임에 항상 참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체크를 하고 보고가 되니까 억지로 참석하는 사람도 있지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습관을 들이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지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기 스스로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부단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해야만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마음의 할례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한 결과가 설령 눈에 띠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변함없이 인내하며 기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충성심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다니엘철야 기도에 참석하는 성도들을 살펴보면 마음과 모습이 각양각색입니다. 시작 전에 미리 와서 준비 기도를 하고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시간을 온전히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늘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기도하는 분들이 있지요. 반면 매일 참석은 한다 해도 지각하거나 먼저 나가거나 중간에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바쁘다는 핑계, 피곤하다는 이유로 가끔 빠지는 사람도 있지요. 기도할 때의 마음 자세까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봐도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기도로 자신을 묶고 꾸준히 마음 밭을 개간하는 이 일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할 가장 중요한 충성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충성의 정도는 제각각 다르지요. 송아지 생물은 각 사람의 충성도를 정확하게 감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의 충성과 헌신을 설령 사람들은 몰라준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네 생물을 통해 일곱 영을 통해 또한 수많은 천사들을 통해서도 낱낱이 보고를 받으시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일한 대로 천국의 상급으로 갚아 주시며,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해 주시지요.

성도 여러분, 네 생물이 감찰하는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로 모아집니다. 마음이 얼마나 영으로, 선으로 변화됐는가이지요. 이는 역(逆)으로 네 생물이 마음의 악의 분량도 측정한다는 뜻이 됩니다. 누가 악하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지를 네 생물은 하나도 빠짐없이 감찰하지요.
인자 생물은 사람들이 입술로 내는 불평불만, 판단, 정죄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살핍니다. 사자 생물은 사람들이 어떤 위협 앞에서 얼마나 간사하고 비겁하게 행하는지도 보지요. 또 송아지 생물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충성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충성일 때는 금방 알아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지는 않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독수리 생물에 의해 바로 걸리게 됩니다. 네 생물의 온몸에 가득한 눈들은 이처럼 두루 감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성도 여러분, 네 생물은 감찰하는 것뿐 아니라 각각 독특한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에 필요한 큰 권세를 가지고 있지요.
먼저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인자 생물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인자 생물은 그룹들을 명하여 움직이게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영의 세계에 있는 그룹의 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네 생물은 그 무수한 그룹들의 머리라 했지요. 네 생물은 각각의 그룹들이 곳곳에서 호위와 경계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지휘합니다. 이때 네 생물 중에서 인자 생물이 입을 열어 명령을 내리지요. 저번 시간에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길을 지키는 일도 그룹들이 한다고 했지요? 바로 그 그룹들도 인자 생물의 입에서 나온 명령을 따라 움직입니다.

다음으로 사자 생물은 재앙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사자는 동물의 왕이라 불리며 사자가 한 번 포효하는 소리만 내어도 다른 동물들은 두려움을 느끼지요. 이처럼 사자 생물이 한 번 입을 열면 이 땅에는 엄청난 재앙이 임합니다. 또한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지요. 따라서 사자 생물은 함부로 아무 때나 입을 열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 중에는 이 사자 생물이 역사한 경우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불의 재앙은 사자 생물이 그 입을 열어서 내린 경우입니다. 창세기 19장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했습니다. 바로 이때 사자 생물의 권세로 유황과 불의 비가 내린 것입니다. 여기서 민수기 16장에는 모세를 대적했던 고라 일당이 심판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민수기 16장 32~33절에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했지요. 땅이 갈라지는 것은 지진과 같은 현상인데 이것도 사자 생물에 의해 일어난 것입니다.
사자 생물은 질병의 재앙도 주관합니다. 역대상 21장 14절에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 했지요. 이처럼 어떤 지역에 갑자기 질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재앙도 사자 생물이 역사한 경우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7년 환난 중 이 땅에 재앙이 임할 때에도 네 생물이 직접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1절에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때에 내가(즉 사도 요한이)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했습니다.
일곱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이 땅에는 심판의 재앙이 임하지요. 요한계시록 15장 7절에는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했습니다. 금대접을 하나씩 이 땅에 쏟을 때에도 엄청난 심판의 재앙이 임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네 생물 중의 하나"라 함은 사자 생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자 생물은 이처럼 재앙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으로 네 생물 중 독수리 생물은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 문이란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로 통하는 문이지요. 첫째 하늘 곳곳에는 둘째 하늘로 통하는 문들이 있습니다. 이 문들을 열고 닫는 권세가 바로 독수리 생물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독수리 생물은 힘찬 날갯짓으로 이 문들을 열거나 닫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다른 생물들은 독수리 생물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생물들도 함께 날갯짓을 하지요.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는 독수리 생물에게 있지만 네 생물이 모두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네 생물의 사명과 역할은 각각 다르지만 하나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비유를 들면 우리 몸의 각 지체는 각각 사명이 다릅니다. 눈은 보고, 입은 먹고 말하며 코는 냄새를 맡고, 귀는 듣는 게 주된 사명이지요.
또한 발은 걷고, 손은 물건을 잡는 등 각 지체마다 사명이 다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물을 마시고 싶다면 한 지체만 일하는 것이 아니지요. 동시에 여러 지체가 함께 일해야 합니다. 먼저 눈은 물이 어디 있나 찾습니다. 발은 몸을 움직여 물 있는 곳으로 가며 손은 물을 컵에 부어 입으로 가져가고 입은 물을 마십니다. 이처럼 각 지체마다 사명이 다르지만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네 생물도 각각 역할이 다르지만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둘째 하늘 문이 열릴까요? 성경의 예로는 노아의 홍수 때 둘째 하늘이 열렸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이때 에덴의 깊은 샘들이 터지고 그곳의 물이 이 지구로 쏟아졌는데 그때 둘째 하늘의 문이 열렸지요. 또한 홍수가 끝나고 물이 줄어들 때도 둘째 하늘의 문을 통해 지구를 덮었던 물이 에덴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이런 경우 독수리 생물이 주도적으로 하늘의 문을 열고 닫았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둘째 하늘로부터 구름이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그때도 독수리 생물이 둘째 하늘의 문을 열어 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송아지 생물에게는 첫째 하늘의 천기와 기후를 주관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름을 모으거나 흩는 일 비‧ 눈‧ 우박이 내리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일, 태풍을 일으키거나 소멸시키는 일, 천둥 번개가 치게 하는 일 등을 송아지 생물이 주관할 수가 있지요.
이 땅의 날씨와 기후는 원래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연의 법칙대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키면서 동시에 환경을 심하게 오염시킴으로 인해 자연의 법칙들을 깨뜨리고 말았지요. 그 결과 세계 도처에 이상 기후가 나타나고 가뭄, 홍수, 태풍 등으로 인해 자연재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흐름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더욱 심각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재해도 송아지 생물이 움직이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 송아지 생물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합당한 공의가 형성되어야 하지요. 이를테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의인이 선한 목적으로 기후의 조절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송아지 생물을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기후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건이 공의에 맞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지난 27년간 본 교회 창립 기념 주일에는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창립 기념 주일에는 우리 성도뿐만 아니라 내빈들이 많이 오시고, 야외 행사도 있지요. 그래서 매년 창립 기념 주일이 가까워지면 좋은 날씨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2007년도에는 창립 기념 주일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나왔습니다. 당시엔 10월 7일이 창립 기념 주일이었는데 10월 5일 금요일부터 일기 예보에서 일요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것이라 했지요. 심지어 전날인 10월 6일 일기 예보에서는 "내일은 전국에 50-60밀리미터의 다소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여러분이 자료 화면을 보시면 알 수 있듯이 대만 부근에 태풍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제 15호 크로사란 태풍으로 크기는 중형급이지만 강도는 금요일 밤 9시만 해도 매우 강 수준이었지요. 그리고 이 태풍의 예상 이동 경로는 대만에서 북북동 쪽이었습니다. 이는 태풍이 우리나라 쪽으로 더 가까이 올 것이란 뜻이지요. 그래서 기상청에서는 주일에는 전국에 다소 많은 비가 내린다고 예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2007년 10월 7일 창립 기념 주일의 날씨는 어땠습니까? 비가 내리지 않음은 물론 하늘에서 구름도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화창한 날씨였지요.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요? 10월 7일 기상 사진을 보시면 우리나라 하늘에는 구름이 없습니다. 특히 본 교회가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위쪽과 아래쪽엔 구름이 많은 반면 가운데에는 구름이 없지요. 이것이 바로 송아지 생물의 역사입니다.
태풍의 강도도 창립주일 오전 10시에는 중의 수준으로 줄어들었지요. 만일 송아지 생물이 역사하지 않았다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일기 예보대로 창립 기념 주일에 비가 많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네 생물에게 명하여 비가 오지 않도록 해 주신 것입니다.
천기와 기후의 조절에 관해 간증할 사례는 이 밖에도 굉장히 많지요. 여름 한낮에 야외 행사를 할 때면 순간에 사방에서 구름이 몰려와서 행사장에 그늘이 생기는 일도 늘 있었고, 2001년 필리핀 성회 시에는 두 개의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하나는 소멸되고 하나는 경로를 바꿨지요. 그래서 우리는 계획대로 야외에서 성회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천기와 기후를 주관하는 권세가 네 생물 중 송아지 생물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까지 여섯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 만드신 영적인 존재들 곧 천사와 그룹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영의 세계에는 천사와 그룹 외에도 악한 영들도 있지요. 악한 영들도 인간 경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므로 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았다면 이들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꼭두각시 인형극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무대만 보면 마치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형의 팔과 다리 등이 줄에 연결돼 있고 사람이 그 인형을 조종합니다. 이렇게 인형이 자신을 조종하는 사람과 줄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이 세상도 영의 세계와 연결돼 있지요. 그러므로 영의 세계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영의 세계를 아는 만큼 영적인 힘과 권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강해 말씀을 그때그때 여러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권세와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6-20 오후 4:38:55 Posted
2024-06-28 오전 10:21:4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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