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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24)  [창 1:3-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2.19
창세기 강해 스물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증거들과 영의 시간의 흐름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반란을 평정하신 후 인간 경작의 무대가 될 지구를 창조하셨지요. 지구가 처음 창조될 때는 지각과 대기가 불안정한 상태였다 했습니다.
화산 활동 등으로 지각 변동이 계속됐고, 대기 중에서도 다양한 활동이 일어났지요. 이처럼 혼돈하고 공허한 초기 지구의 모습은 육적으로는 지구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이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마음 상태를 반영합니다. 바로 루시퍼의 배신으로 인한 아버지 하나님의 아프고 공허한 마음이 초기 지구의 모습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내 평정을 되찾으시고 본격적으로 천지창조를 계획하셨지요.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를 이 지구로 유입하셨습니다. 왕성한 지각 변동과 대기 활동으로 기초가 잘 다져진 지구를 생명수에 푹 잠기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신 후 이 지구에 친히 내려오셨습니다. 이때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도 내려오셨지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함께 지구를 두루 운행하시면서 지구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조성할지를 살피셨습니다. 이를 2절 후반절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지구를 만드신 후 기초를 다지신 기간과 생명수로 덮으신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지구는 육의 공간인 첫째 하늘에 창조됐지만 당시는 육의 공간 전체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탔다 했습니다. 따라서 영이신 하나님 편에서는 그 기간이 별로 길지 않았지요.
반면 육의 물질로 창조된 지구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흐른 흔적이 남았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이 아닌 수억 년의 시간의 흔적이 지구에 남은 것이지요. 지구의 기초가 다져진 시간도 길었지만 지구가 생명수로 덮였던 시간도 육의 시간의 개념으로는 매우 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은하계 안에서 지구를 가장 먼저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떤 분들은 예전에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맞지 않다 생각할 분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만유인력과 그로 인한 힘의 균형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지구는 우주 공간에는 있던 가스와 먼지들이 모여, 약 45억 년 전에 탄생했다고 말하지요.
이렇게 탄생한 원시 지구의 형성 과정에 대한 과학계의 기존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지구는 작은 천체들이 충돌하고 결합하면서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구 표면은 마그마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수억 년에 걸쳐 지표가 식어 갔습니다. 약 38억 년 전이 되었을 때 지구는 완전히 식었다는 것이지요.

원시 지구에 대한 기존 이론과 다른, 새로운 연구 결과가 미국 UCLA 대학교의 마크 해리슨 교수 연구팀에 의해 2008년 12월 발표됐습니다. 초기 지구의 모습은 마그마 바다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팀은 호주의 30억 년 된 암석 속에서 발견된 지르콘이라는 광물을 분석했는데, 그 지르콘 속에는 42억 년 전에 생성된 미네랄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미네랄이 생성되었던 환경은 온도가 낮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요. 기존 이론처럼 지구가 그 당시 마그마 바다였다면 생성될 수 없는 미네랄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연구팀은 "42억 년 전의 지구는 마그마 바다가 아닌 물로 된 바다가 존재했으며, 물은 43억 년 전부터 있었다"는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은 저명한 학술지 "네이처"에 실렸고, 뉴욕타임스에도 보도됐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지구를 만드셨을 때 기초를 다지신 다음 생명수로 덮으셨다는 말씀을 어느 정도 뒷받침해 주는 연구결과입니다.

만유인력이란 우주상의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지구가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는 것도 지구와 태양과 달과 별들 사이에 작용하는 이 보이지 않는 힘 때문이지요.
만유인력은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면 아직 태양과 다른 행성들이 없을 때에는 지구가 어떻게 우주 공간에 떠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지구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비유를 들면 여기에 무게가 10킬로그램인 바위가 하나 있다고 합시다. 만일 개미가 그것을 들려고 하면 아무리 힘센 개미라도 이 바위를 들어 올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어떻습니까? 성인이라면 대부분이 능히 들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힘이 있으면 들어 올릴 수도 있고, 굴려서 옮길 수도 있으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구 하나 붙들고 계시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지요. 이처럼 만물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미 오래 전에 깊은 영감 가운데 깨닫고 성경에 기록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욥입니다. 욥은 욥기 26장 7절 후반절에 "하나님께서 땅을 공간에 다셨다"고 했지요. 지구가 우주 공간에 떠 있다는 사실은 근대에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이미 수 천 년 전 성경에는 땅이 공간에 달려 있음이 기록되었지요.
욥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순전하게 살았던 사람이므로 깊은 영감 가운데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보면서 영혼의 깊은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은 끝이 있는 것 같은데 하늘은 끝없이 펼쳐져 있기에 하늘이 땅을 사방으로 두르고 있음을 느꼈지요. 하늘이 땅을 감싸고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 결국 땅이 하늘 공중에 달린 것이 그려집니다.
욥은 이렇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은 전능하신 창조주가 계심을 깨닫고 믿습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의 양심이 악으로 더 물들게 됐지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론들과 지식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사람의 능력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지식수준에 맞춰서 창조 역사를 베풀려고 하셨다면 천지창조는 불가능했습니다. 창조 역사는 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하나님의 뛰어난 능력과 지혜로 이뤄졌지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강해 말씀도 세상 지식의 잣대로 분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공의에 합한 하나님의 종을 통해 창조의 권능의 역사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한 창조의 권능의 증거는 우리 제단에도 무수히 많지요.

예를 들어 시신경이 죽어서 볼 수 없던 사람이 하나님의 종의 기도를 받고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과학이나 의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 앞에 그저 "기적이다"라고 말할 뿐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의 기도를 들으시고 시신경을 재창조 해 주셨음을 믿습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공의에 합한 사람들을 통해서 창조 역사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증거를 보고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처럼 창조의 역사가 확실히 따르는 하나님의 종이 증거하는 이 창세기 말씀이 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창조 첫째 날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문 3~4절 전반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이 빛은 과연 어떤 빛일까요?
당시는 해가 없었으니 햇빛은 당연히 아니겠지요? 그러면 무슨 빛일까요? 이 빛은 바로 창조의 근본의 빛입니다. 창세기 첫시간에 근본의 하나님은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근본의 우주에 퍼져 계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이르자 이 근본의 빛이 영계의 정점으로 응집했지요. 그리고 세 개의 빛으로 분리하신 후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근본의 빛 자체가 하나님이십니다. 이 근본의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그대로 담겨 있지요.

또한 근본의 빛이 머금고 있던 근본의 소리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근본의 소리를 발하시자 발하신 그 소리 곧 말씀대로 됐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명하셨습니다. 즉 근본의 소리를 발하셨지요. 그러자 근본의 빛이 지구를 포함하는 일정한 육의 공간을 둘렀습니다. 여기서 일정한 육의 공간이란 6일 창조의 역사가 이뤄지는 지구와 태양계와 우리 은하계까지입니다.
이렇게 일정한 육의 공간을 두른 근본의 빛의 주된 작용이 창조였기에 이를 창조의 근본의 빛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먼저 앞으로 창조 역사를 베푸실 영역을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두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창조의 근본의 소리를 발하여 천하 만물을 순서대로 창조해 가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창조 첫째 날 왜 이처럼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육의 공간을 두르셨을까요?

첫째, 육의 공간에 영의 공간을 입혀서 영의 시간의 흐름 가운데 창조 역사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영의 시간의 흐름은 육의 시간의 흐름보다 훨씬 빠르다 했습니다. 그런데 창조 첫째 날부터 육의 세계는 육의 시간의 흐름을 탔다 했지요. 지금 우리가 느끼는 하루 24시간의 개념이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육의 공간 가운데서 창조 역사를 베푸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근본의 빛으로 둘러 영의 공간을 입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만큼은 영의 시간의 흐름을 적용받았지요. 육의 시간으로는 수십, 수백 년 걸릴 일도 근본의 빛으로 둘러진 영의 공간 안에서는 단 하루 안에 다 이뤄질 수 있습니다.

또한 창조의 근본의 빛 안에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가 있습니다, 근본의 빛이 둘린 공간에서는 이 육의 법칙이 아닌 영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근본의 빛으로 가득한 넷째 하늘에서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으시는 대로 되는 것이 법칙이지요.
무에서 유가 창조되기도 하고, 어떤 하나의 물질이 고체, 액체, 기체로 자유롭게 변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육의 공간도 근본의 빛으로 둘려 영의 공간이 입혀지면 영의 공간의 법칙대로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도님들의 간증 중에서 이런 사례가 많이 있었습니다. "암 덩어리가 기도를 받은 후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는데 기도를 받은 후에는 통증이 즉시 사라지고 완전히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육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지요.

육의 법칙으로는 암은 대부분 수술해서 제거해야 없어집니다. 복막염도 어떤 방법으로든 장기를 모두 씻어내야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사람이 공의에 합당하게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영의 공간을 입혀 주십니다.
근본의 빛으로 둘린 영의 공간에서는 없던 것도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고, 필요 없는 것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니 순식간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부러진 뼈가 신속하게 다시 붙고, 죽은 신경이 살아나며, 퇴화된 조직이 정상이 되는 치료 역사들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근본의 빛이 그 부분을 두름으로써 영의 공간이 형성되어 그 속에서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지요.

영안이 열려서 보면 모든 것이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이뤄짐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의 담이 있거나 응답받을 준비가 아직 부족한 사람에게는 빛이 갔다가도 몸속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지요. 그 사람의 겉에서만 돌다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반면 죄의 담도 없고, 응답받기에 합당한 사람에게는 빛이 몸속으로 "쏙" 들어가서 아픈 부위로 정확하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치료가 되지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였던 그 빛의 역사를 여러분은 오늘날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니 될 것이 없고, 무엇이든지 가능하되 이전보다 더 신속하게 될 수 있음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육의 공간에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지구는 더 이상 혼돈하지 않고 모든 것이 정돈되어 안정된 것입니다. 그리고 운행의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지요.
예를 들면 지구는 하루에 한 번 자전하고, 1년에 한 번 공전한다 이런 원칙이 세워진 것입니다. 지구뿐만 아니라 앞으로 창조될 태양과 달과 다른 행성들 그리고 무수한 별들 사이의 질서와 원칙도 이 첫째 날에 세워졌습니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물론이고 무수한 별들도 일정한 궤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궤도를 한 바퀴 도는 주기도 각기 일정하게 정해져 있지요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있다 해도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정해진 질서와 원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런 우주 공간의 해, 달, 별들뿐만 아니라 지구의 안에도 자연의 법칙이 있습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은 0도 이하에서 얼고, 100도에서 끓는다. 계절의 순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이러한 육의 공간에 필요한 모든 원칙이 바로 첫째 날에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근본의 빛 안에서 앞으로 만드실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와 원칙을 이처럼 미리 정하신 것이지요.
이것은 욥기 38장 5절 말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깨우쳐 주시려고 "누가 그 도량(度量)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準繩)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물으셨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와 원칙을 세우셨음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도량이란 길이와 부피이며 준승은 평면의 경사를 계산하기 위해 치는 먹줄이나 기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도량을 정하시고 준승을 띄웠다"는 것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원칙을 정하셨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창조 첫째 날에 근본의 빛으로 두르심으로써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와 원칙을 정하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모든 피조물에 깃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중에는 죽은 생명체도 살리며, 잘 자라게 하는 것도 포함돼 있지요. 예를 들어 흙에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고 자라납니다. 이것은 씨앗이 저절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흙이 했을까요? 아니면 물이나 햇빛이 했을까요?
자연의 법칙상 씨앗이 싹을 틔우려면 적절한 흙과 수분과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흙이나 물이나 햇빛이 원래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흙과 물과 햇빛, 이런 모든 피조물에 깃들어 있기 때문에 생명이 싹 틀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날 육의 공간을 두르셨던 근본의 빛은 이 세상이 점차 죄로 물듦에 따라 서서히 옅어 지다가 노아의 홍수 때 대부분이 걷히게 되지요. 그러나 피조물 안에 깃들었던 빛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모든 생명체를 붙드는 기본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세상의 과학자들도 태초의 빛이라고 불리는 빛을 발견했습니다. 이 빛은 우주를 채우고 있는 빛의 한 형태인데 이것은 우주의 모든 방향에 대해서 거의 같은 강도로 나타나지요. 또 어떤 별이나 은하, 천체와도 전혀 관련이 없는 빛입니다.
이 빛은 과학자인 펜지어스와 윌슨에 의해 1960년대 중반에 발견이 되었습니다. 이 두 명의 과학자들은 초기 인공위성인 에코 위성을 추적하기 위한 안테나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테나에 상당히 큰 잡음이 지속적으로 잡히자 이에 관심을 갖고 깊이 연구를 했지요. 이 잡음은 안테나의 방향에 관계없이 똑같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잡음의 근원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잡음의 근원은 우주 저 너머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안테나의 방향에 관계없이 같은 크기의 잡음이 지속적으로 잡혔다는 것은 전 우주 공간에 특정한 빛이 고르게 퍼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빛을 천체 물리학에서는 우주배경복사라고 합니다. 이 과학자들은 이 빛을 발견한 공로로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과학자들이 창세기 말씀을 듣고 연구했다면 노벨상을 타기까지 18년이나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창조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근본의 소리를 발하셨을 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조의 근본의 빛이 앞으로 창조 역사가 베풀어질 육의 공간을 두르게 되었다 했지요.
다음 시간에는 창조 첫째 날의 역사 중 낮과 밤이 공의롭게 구분되는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4절 전반절에 보면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그 빛으로 인해 창조 역사가 베풀어질 수 있고, 모든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기 때문이지요.
고린도전서 14장 33절에 보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시면서도 먼저 질서와 원칙을 세우시고 그것을 스스로도 존중하셨지요. 창조주시면서도 질서를 지키심으로 피조물들과 화평을 이루신 것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안에는 이처럼 항상 화평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화평이 깨졌다면 그것은 누군가가 질서를 어기는 어둠의 일을 행한 결과이지요.
성도님들은 항상 영육간의 질서를 좇아 빛 가운데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보기에 참 좋구나!" 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그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흡족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2-22 오후 10:38:36 Posted
2012-03-24 오전 3:29:0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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