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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25)  [창 1:3-5]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3.05
창세기 강해 스물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한 영의 세계 중 지옥사자에 대해 보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악한 영의 세계의 머리는 루시퍼이며 그 휘하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즉 타락한 천사와 타락한 그룹이 있지요. 먼저 타락한 천사들은 그 역할에 따라 마귀 또는 지옥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그룹들은 대부분이 용의 사자로 활동하지만 일부는 아랫음부에서 지옥사자도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옥사자 중에는 타락한 천사도 있고, 타락한 그룹도 있지요. 타락한 천사인 지옥사자들 중에서 일부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아랫음부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랫음부에서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감당하지요. 반면에 타락한 그룹인 지옥사자들은 아랫음부에 온 영혼들에게 직접 형벌을 가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랫음부는 형벌의 경중에 따라 네 단계로 나뉘지요. 아랫음부 1단계에서는 무거운 바위나 뜨거운 모래 등 무생물에 의한 형벌이 가해집니다. 아랫음부 2단계에서는 벌레나 짐승 등 생물에 의한 형벌이 가해지지요. 그리고 아랫음부 3, 4단계에서는 지옥사자에 의해 형벌이 가해진다 했습니다. 바로 이 아랫음부 3, 4단계에서 활동하는 지옥사자가 타락한 그룹입니다.
지옥 설교에서도 말씀드리기를 형벌을 가하는 지옥사자의 형상이 돼지와 같은 흉측한 짐승의 모습이라 했지요. 이렇게 짐승의 형상을 한 것은 지옥사자 중에서도 타락한 천사가 아닌 타락한 그룹인 것입니다. 천사가 사람의 형상과 비슷한 것처럼 지옥사자가 된 타락한 천사도 전체적으로 어둡고 칙칙한 사람의 형상이지요. 그렇지만 너무 흉측하고 소름끼치는 형상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타락한 천사인 지옥사자들은 주로 아랫음부 1, 2단계를 관리하거나 아랫음부에 떨어진 영혼들을 죄의 경중에 따라 알맞은 곳에 보내는 등의 업무를 감당하지요. 따라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직접 형벌을 가하는 지옥사자들은 타락한 그룹입니다.
한편 타락한 그룹의 대부분은 용의 사자들이 되었다 했습니다. 이러한 타락한 그룹의 역사에 대해서는 창세기강해 20번에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용의 사자들로 활동하는 타락한 그룹에 의해 사람에게 질병이 오는 경우도 있다 했지요.
그래서 병든 사람의 치료를 위해 기도할 때 영안이 열려 보면, 그 사람의 몸에서 쥐 떼나, 돼지 형상의 짐승이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용은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악한 사람들을 사주하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인신매매나 살인 등 사람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한 흉악범들이 있지요. 이처럼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한 사람의 경우 용의 사자들 곧 타락한 그룹의 사주를 받은 것입니다.
용의 사자들 중에서도 어떤 짐승의 형상을 한 것의 사주를 받느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악의 모양이 다릅니다. 짐승에 따라 포악함과 간사함, 더러움과 추함, 난잡함 등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악한 영의 세계에 대해 이처럼 더 깊고 세세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성도님들도 악한 영의 세계의 체계 중 지옥사자에 대한 부분을 지금 이 설명대로 정립하시면 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명하실 때 육의 공간을 둘렀던 빛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빛은 창조의 근본의 빛이지요.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둘린 육의 공간에는 영의 공간이 덧입혀짐으로 영의 시간의 흐름이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창조될 만물들 사이에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지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모든 피조물에 깃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창조를 믿느냐, 진화를 믿느냐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고 인정하기에 창조주가 계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반면 진화론자들은 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닫지 못하기에 모든 것을 사람의 생각과 지식 안에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을 깊이 연구할수록 사람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탄생에 대해서 명확하게 입증된 진리가 과학계에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여러 가지 가설(假說)만 있을 뿐이지요. 가설이란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어떤 이론 체계에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설정한 가정입니다. 이러한 가설이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찰이나 실험을 통해 이론을 입증하는 증거가 있어야 하지요. 수많은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끊임없이 우주와 지구를 연구했음에도 지구 탄생에 대한 진리는 없고 가설들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지구 탄생에 대한 진리가 분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바로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진리임을 증명하는 증거는 있을까요?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과학이나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조의 역사가 오늘날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 등으로 인해 양 다리의 길이가 5센티 또는 7센티 차이나는 성도들이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는 주의 종이 기도를 해 주자 순식간에 양 다리의 길이가 같아졌습니다. 보통은 짧은 다리가 더 길어져서 양 다리의 길이가 같아졌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신 증거가 오늘날도 이처럼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베푸신 이런 증거들을 우리는 아주 많이 가지고 있지요.
따라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가설도 이론도 아닌 진리입니다. 이처럼 과학적인 논리로도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맞지요.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창세기 1장 4절 후반절~5절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말씀의 육적인 의미를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자 창조의 근본의 빛이 지구를 둘렀다 했지요. 이렇게 빛이 지구를 두르고 있는 동안을 하나님께서 낮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빛을 거두신 기간은 밤이라 칭하셨지요.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 지구의 운행에 관한 질서와 원칙도 세워졌다 했는데 낮과 밤이 교차하는 것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해, 달, 별이 아직 없는 첫째 날부터 이처럼 지구는 낮과 밤이 구분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지구는 이때 자전을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지금은 해가 뜨면 낮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되지요. 정확히 말하면 지구가 자전을 해서 해와 마주보는 쪽은 낮이고, 해를 보지 못하는 쪽은 밤이 됩니다. 그런데 첫째 날은 해를 기준으로 낮과 밤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 빛을 두르시느냐, 거두시느냐에 따라서 낮과 밤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조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지구가 자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는 말씀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속한 빛의 영역과 루시퍼에게 속한 어둠의 영역을 구분하여 나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밤이 되었을 때 무저갱에 갇혀 있던 루시퍼와 루시퍼가 부리게 될 악한 영들을 풀어 주시지요.
밤은 영적으로 악한 영들이 주관하는 세계를 상징합니다. 육적으로도 낮보다는 밤 시간에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어둠의 속성이 어둠의 영들에 의해 더 잘 발동되지요. 각종 범죄도 낮보다는 밤에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검찰청에서 발표한 2007년 범죄분석 통계 중에서 시간대별 범죄율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4시에서 낮 12시까지가 9.2%, 낮 12시에서 오후 6시까지는 21.2%, 오후 6시에서 다음 날 새벽 4시까지는 47.9%였습니다. 밤 시간대의 범죄율이 단연 높지요.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바로 푸른색 가로등 효과라는 것입니다. 2000년도에 영국 북부의 댈러스고 시(市)는 경관 미화용으로 푸른색 가로등을 처음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설치 이후 뜻밖에도 범죄율이 눈에 띄게 하락한 것입니다. 범죄 발생 건수가 연 1만 건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요.
2005년도에는 일본 나라 현에서 푸른색 가로등을 처음 설치했습니다.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골목길의 가로등을 푸른색으로 바꾸자 신기하게도 범죄율이 0%로 줄었다고 합니다. 그 후 푸른색 가로등을 설치한 지역이 39개로 급격히 늘어났지요. 시마네 현, 히로시마 현, 시즈오카 현 등 전국 지방 자치단체로 파급됐습니다.
우리나라 서울의 강남구에서도 2008년 11월에 일부 지역의 가로등을 푸른색 가로등으로 교체했지요. 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청색은 빛이 널리 퍼지면서 멀리 비추는 특징 등을 갖고 있어 사람을 심리적으로 안정시키고 침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범죄율 감소가 가로등 색 변화만의 효과인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 검토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맑은 하늘의 색깔을 푸른색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에 잠시 소개해 드렸습니다.

지구에는 낮과 밤이 있듯이 인간 경작을 위해서는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영들과 함께 어둠에 속한 악한 영들이 있지요.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빛이 임하면 물러갑니다. 결코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지요. 악한 영들에게 어둠의 세계를 주관하는 권세가 있다 해도 그것을 허락하신 분은 빛이신 하나님입니다.
결국 어둠의 영들은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허락해 준 범주 안에서만 그 권세를 부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경작이 끝나면 악한 영들은 모두 다시 무저갱에 갇히게 되지요.
반면 인간 경작을 다 받은 영혼들이 가서 영원히 사는 천국은 어떻습니까? 계시록 22장 5절에 보면 천국에는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했지요. 천국에는 어둠인 밤이 없고 오직 빛인 낮만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 경작의 무대인 지구에는 낮과 밤이 일대일의 동일한 비율로 있지요. 물론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는 다릅니다. 북반구에서는 6월 21일경 하지에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지요. 하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짧아지고 밤은 점점 길어집니다. 그러다가 12월 22일경 동지가 되면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지요.
동지가 지나면 다시 낮이 점점 길어지고 밤은 점점 짧아집니다. 이처럼 육적으로도 낮과 밤의 길이는 한편으로 치우침이 없고 공평하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롭게 인간 경작을 하시는지를 나타냅니다. 낮과 밤의 비율이 똑같은 것처럼 악한 영들에게도 동일한 조건에서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게 해 주셨지요.

이것은 영으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악한 영들은 물론 육의 밤 시간만이 아니라 낮 시간에도 활동합니다. 여기서 낮과 밤의 비율이 같다고 할 때는 육적인 낮과 밤의 시간이 아닌 영적인 낮과 밤의 시간을 의미함을 알아야 하지요.
육적인 낮과 밤의 비율이 같다는 것은 악한 영들이 인간 경작을 위해 하나님과 겨루는 조건이 동일함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인간 경작의 환경을 조금도 하나님 편에 유리하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육으로 낮과 밤이 치우침 없듯이 영적으로도 조금도 치우침이 없는 공평한 환경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루시퍼와 악한 영들은 자신들은 불리한 입장에서 하나님과 겨루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낮과 밤을 정확하게 구분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영적으로도 빛과 어둠은 결코 함께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 후반절에도 말씀하시기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함께할 수 없으며, 선과 악이 함께할 수 없지요.
영적인 의미의 빛은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속성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진리, 선, 사랑 등이 빛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의미에서 어둠이란 악한 영에게 속한 모든 속성이지요. 불법, 비진리, 죄, 악 등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자유 의지 가운데 빛이나 어둠을 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20~21절에 보니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했지요.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빛이 아닌 어둠의 길을 가게 되고, 반대로 선이 있으면 빛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사람들이 어둠의 길로 가도록 조종하지요. 세상에 속한 비진리의 것들을 이용하여 죄를 짓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단호하게 세상 미혹을 물리치고 진리를 좇아서 빛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이 아닌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방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 라, 지키라, 버리라" 이렇게 말씀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지켜 행하는 것이 곧 어둠을 벗고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하지 말라" 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미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시기, 질투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이렇게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하면 그것이 바로 어둠에 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으면 빛에 거하는 것이 되구요.
또 "버리라" 하신 것이 있습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죄를 버리라", "혈기를 버리라", "욕심을 버리라" 이렇게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이것도 어둠에 거하는 것입니다.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릴 때 빛에 거하게 되구요.
성경에는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섬기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충성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라" 바로 이런 말씀대로 행하고 지키는 것 이러한 모든 것이 빛에 거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라", "지키라"는 것을 하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어둠에 거하는 것이지요.

성도님들은 빛과 어둠 중에서 어느 편에 더 많이 거하고 계십니까? 에베소서 5장 8절에는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에 잘 나온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여전히 어둠에 속한 사람임을 알아야 하지요. 사람이 어둠에 속할 때는 어둠의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둠에 속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주하고 조종할 수 있지요. 그래서 그들로 죄를 짓게 하고, 죄의 대가로 시험, 환난, 재앙을 겪게 합니다. 어떻게든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게 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들지요. 그리고 결국은 구원받지 못하게 하여 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어둠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란 말씀처럼 죄를 지으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것이 영계의 법이지요.
여기서 영적인 사망이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둠 즉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항상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지요.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빛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을 지켜 주셨고, 풀무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도 지켜 주셨지요.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었기 때문에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게 온전히 지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체험을 우리 성도님들도 많이 하시지요. 예를 들어 교통사고로 인해 차는 폐차시킬 정도로 망가졌지만 그 안에 탔던 우리 성도는 하나도 다치지 않은 것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성도가 사망에 이르는 죄만 짓지 않았다면 비록 자신의 실수로 사고가 났다 해도 이렇게 지킴을 받습니다.
온전히 주일을 성수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은 그만큼 빛 가운데 살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므로 어둠이 역사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빛으로 둘러주시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지요.

또한 빛 가운데 거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항상 좋은 것을 주십니다. 성경에서 약속하신 각종 축복을 풍성하게 내려 주시지요. 야고보서 1장 17절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죄를 짓는 사람에게 시험 환난을 가져다 줄 수 있듯이, 하나님은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에게 각양 좋은 은사와 선물을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 중의 복은 영혼이 잘되는 복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에게 얼마든지 많은 복을 주실 수 있으되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이처럼 복도 받을 수 있고, 지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과 어둠 중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지혜로운 성도라면 빛을 택해서 빛으로 나아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빛을 택해야 하며 빛을 택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하나님과 사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과 사귐이 생명과 같지요.
육으로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늘 만나서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볼 수 없다면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심히도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지 않겠는지요.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지요.
그런데 요한일서 1장 6~7절에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하나님과 진실한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알기에 차마 어둠에 눈을 돌릴 수가 없지요. 어둠의 일을 행하거나 어둠을 택할 일은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이제 더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갖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은 창조 첫째 날 하나님께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역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구의 낮과 밤의 비율이 같듯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역사에서 악한 영들에게 대등한 조건을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빛을 주관하시듯이 악한 영들은 어둠을 주관할 수 있는 권세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거할 처소까지 마련해 주십니다. 바로 창조 첫째 날 밤이 끝나고 둘째 날이 되면서 그렇게 해 주셨지요. 악한 영들이 머무는 처소는 어디 있으며, 창조 둘째 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빛과 어둠 중에서 항상 빛을 택하시고 빛 가운데 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3-08 오후 10:56:34 Posted
2018-02-21 오후 2:46: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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