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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34) 창조 셋째 날(1) [창 1:9-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5.21
창세기 강해 서른네 번째 시간입니다.
1961년 4월 12일,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로서 1시간 29분 동안 지구궤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두 마디 말을 남겼지요. 한 마디는 "지구는 푸르다"는 것이었고, 또 한 마디는 "우주 어디에도 신은 없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몇 달 후 구소련의 또 다른 우주비행사 티토프는 지구궤도를 하루 동안 비행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지구 위에 올라가서 몇 바퀴 돌아보았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지요.

1962년 2월 20일에는, 미국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로서 지구궤도를 돌고 온 존 글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우주의 아름다운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지구 위에나 우주 공간에나 과연 하나님은 존재하십니다."
196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우주비행사 세 명을 태운 아폴로 8호 우주선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달 궤도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은 달 표면 71마일 상공에서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꼭 보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했지요. 그 실황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TV와 라디오를 통해 방송됐습니다.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은 달 상공에서 지구에 있는 모든 인류를 향해 특별한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우주비행사들은 창 1장 1~5절을 번갈아 가며 읽었던 것입니다.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 우주선의 비행사로서 인류 최초로 달 위를 걸었습니다. 그는 달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님이 지으신 이 우주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라는 내용의 전문을 지구로 보냈다고 합니다.

1971년 7월 30일은 아폴로 15호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이 달 표면을 월면차로 주행한 날입니다. 제임스 어윈은 말하기를 "나는 우주여행을 하면서 그리고 달을 주행하며, 우주에 가득 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는 우주선이 지구로 귀향할 때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지구를 바라보며 성경의 유명한 한 구절을 반복하여 묵상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었습니다.
제임스 어윈은 그 후 복음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1991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0여 년을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요.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은 "우주 속에 던져진 연약한 인생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었지요.

구소련과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모두가 우주여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구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은 하나님이 없다 했고,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은 대부분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을까요?
우주공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간증하는 미국의 우주비행사에게 어떤 기자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구소련의 우주비행사들은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그러자 미국의 우주비행사는 성경 한 구절을 인용하여 답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있지만 마음이 죄로 얼룩진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깨끗하고 선한 사람이 우주만물에 깃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지요.

오늘은 창조 셋째 날의 역사를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더욱 선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들으시며 그처럼 놀라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창세기 1장 9~10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창조 둘째 날에 물 가운데에 궁창이 생겨서 처음 지구를 덮고 있던 물이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뉘었지요. 그래서 창조 셋째 날의 지구에는 궁창 아래의 물만 남은 상태입니다.

여기에 나온 천하의 물이란 궁창 아래의 물입니다. 당시 지구는 표면이 거의 평평했습니다. 높이 솟은 산이나 깊은 골짜기도 없이 지구 전체가 평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평평한 지구를 궁창 아래의 물이 덮고 있었지요. 참고로 과학자들이 현재 지구상의 모든 물로 평평한 지구 표면을 덮는다면 수심이 얼마나 될까를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해발 약 2,400미터까지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과 창조 둘째 날의 지구 환경이 똑같지는 않지요. 그러나 당시는 지구 표면이 평평했기에 궁창 아래의 물만 있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물로 덮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 셋째 날에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지각 변동이 일어났지요.
어떤 부분은 아래로 들어가고 다른 부분은 위로 솟았습니다. 그러면서 물은 자연히 아래로 깊이 파인 부분 쪽으로 모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때 북극에 거대한 웅덩이처럼 깊이 파인 곳이 생기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북극은 바다로, 남극은 땅으로 되어 있습니다. 북극 부근이 움푹 들어가자, 반작용으로 남극을 중심으로 뭍이 드러난 것입니다. 물에 덮인 부분도 깊이가 다양합니다.

당시는 북극의 중심이 가장 깊었으며, 남극 쪽으로 갈수록 얕았지요. 이랬던 초기 지구의 표면은 이후 수차례 지각 변동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참고로 지금은 가장 깊은 곳은 태평양에 있으며, 만천삼십사 미터(11,034m)라고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의 높이(8,844미터)보다 더 깊은 곳이 바다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바다의 평균 깊이는 3,800미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을 북극 쪽으로 모으시고 이 물을 바다라 칭하셨습니다. 그리고 뭍은 땅이라 칭하셨지요. 당시는 이처럼 바다도 하나였고 땅 곧, 대륙도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5대양 6대주로 나뉘어 있지요. [5대양 :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북극해, 남극해, 6대주 :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베게너라는 과학자도 지구상 여섯 대륙은 원래 하나의 덩어리였는데 서서히 분리되어 이동했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이를 대륙 이동설이라 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대륙이 실제 움직일 수 있다는 증거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발전한 이론이 나왔는데, 그것은 움직이는 대륙을 판이라 정의 한 판 구조론입니다. 판 구조론을 이해하기 위해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북극에는 거대한 빙하가 물위에 떠 있지요. 빙하가 너무나 크고 넓기에 마치 눈 덮인 대지처럼 보입니다. 그 큰 빙하가 몇 조각으로 나뉜다면 빙하 밑에 흐르는 물의 흐름에 따라 빙하 조각들은 움직이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판 구조론은 지구상의 대륙판들도 지구 내부의 맨틀이라는 층 위에 떠 있기에, 맨틀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거대한 빙하가 서로 부딪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충격으로 인해 두 빙하의 일부가 깨지는 등 큰 타격을 받겠지요? 이처럼, 지구상의 판들의 움직임으로 인한 상호작용 때문에 화산 활동이나 지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일본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는 일본이 세 개의 판(태평양판, 유라시아판, 필리핀판)이 모이는 부분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1월의 아이티 지진도 두 개의 판(북미판과 카리브판)의 경계 부분에서 발생했습니다. 또한 지난 2월 27일의 칠레 지진도 두 개의 판이 충돌하면서 발생했지요.

칠레는 남아메리카대륙의 서쪽 해안선에 길게 위치한 나라입니다. 태평양판의 소판인 나즈카판이 남아메리카판과 충돌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남아메리카판은 매년 서쪽(태평양쪽)으로 8센티씩 이동하는데, 이 과정에서 두 판의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은 지표면이 여러 개의 판으로 나눠져 있지만, 창조 셋째 날에는 바다도 하나요, 육지도 하나였습니다.
땅은 모두 하나로 붙어 있었고, 물도 한곳에 모여 있었지요. 이것이 이후에 지각 변동을 통해 여러 대륙과 여러 바다로 나뉜 것입니다.

원래 지구를 덮었던 물은 생명수라 했습니다. 그리고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겼고, 궁창 아래의 물이 한데 모여 바다가 됐다 했지요. 그러면 생명수가 바닷물이 된 것이니 지구를 덮었던 생명수도 짰을까요? 아닙니다. 생명수는 짜지 않습니다.
그러면 바닷물은 언제 짜졌을까요? 하나님께서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셨을 때, 지금과 같은 성분의 바닷물이 된 것입니다. 즉, 염분을 함유하게 하셨고, 이 염분 때문에 짠 맛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이처럼 짜게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바닷물이 썩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상식적으로, 흐르는 물은 썩지 않지만, 고인 물은 시간이 지나면 썩지요. 그릇에 물을 오랫동안 담아두면 물은 자연히 썩게 됩니다. 바닷물도 지구라는 큰 그릇에 담긴 고인 물입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 바닷물도 썩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은 잘 썩지 않습니다. 염분이 부패를 막아 주지요.

강물은 흐르는 물이므로 염분이 필요치 않지만, 바닷물은 고인 물이므로 염분을 함유시켜 짜게 만드신 것입니다. 또한 바다에는 육지의 많은 물이 밀려오는데 그중에는 오염된 물이 많습니다. 만약 바닷물에 염분이 없다면 육지에서 흘러들어 온 물로 인해 바다는 오염된 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런데 바닷물에는 염분이 있기 때문에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 와도 정화가 되지요.

하나님께서 바닷물을 짜게 하신
둘째 이유는 인간 생활에 많은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바닷물에서 얻어지는 소금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지요. 보통, 널리 알려진 소금의 용도는 음식의 간을 맞추거나 식품을 저장하기 위해 절이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소금의 용도는 무려 1,400여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식품으로 이용하는 소금의 양은 전체 소비량 가운데서 극히 일부이지요. 소금을 화학적으로 분리해서 얻은 원료인 나트륨과 염소를 이용하여 다양한 화학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유리, 비누, 종이, 플라스틱, 살충제, 세척제, 표백제, 유약, 부동액, 비료와 농약, 각종 의약품과 인조 섬유 등 소금은 인간 생활에 매우 유익한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소금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체내에서 생명 유지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혈액 속에는 0.9%의 염분이 함유되어 여러 가지 작용을 한다고 하지요. 체액이 적절한 상태가 되게 조절하며, 소화액의 성분도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금을 적절하게 먹지 않으면 단기적으로는 식욕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전신 무력 · 권태 · 피로 · 정신불안 등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땀을 한꺼번에 많이 흘렸을 때 현기증이 나거나 의식이 혼탁해지는 것도 체내에서 염분량이 갑자기 줄었기 때문이지요.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해도 몸에 해롭지만, 적절한 소금 섭취는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소금이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성분임을 아시고 바닷물에 녹여 주셨습니다.

창조 셋째 날 바다와 땅이 만들어졌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셋째 날의 창조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요.
본문 11~12절에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각종 식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10절 후반절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은 무엇이 좋았다는 말씀일까요?
먼저는, 인간 경작을 위한 환경이 하나하나 형성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바다도 땅도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뭉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셨지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마음도, 뜻도, 생각도 하나이듯이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음이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요, 주님과 하나, 성령님과 하나 되기를 바라시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 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며 심히도 즐거워하시고 좋아하십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이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내주하신 성령과 하나 됐을 때는 기쁘고 즐겁지요.

요한일서 5장 7절에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은 진리이므로 우리도 진리로 생각하고 진리를 말하며 행할 때에 성령과 하나가 될 수 있지요.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안에 내주하신 성령께서 기뻐하시면 성령과 하나 된 여러분의 마음에도 그 기쁨이 그대로 전달되지요. 말로 다 표현 못할 기쁨,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이 마음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께서 원하시는 뜻과 반대로 생각하거나 행한다면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지지요.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과 하나가 안 되고, 분리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분리됐다 해서, 성령이 당장 여러분의 마음에서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비진리를 행하면 성령께서는 탄식하시고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마음에서 답답함과 곤고함을 느끼게 되지요. 이럴 때 빨리 깨닫고 돌이켜서 성령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분리된 상태에서 계속 성령의 뜻을 거슬러 나간다면, 결국 성령이 그에게서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성령과 하나 되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 되고 서로 간에도 하나 될 수 있기를 기도하셨지요.

요한복음 17장 21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하셨지요.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다 하나가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서로 간에도 항상 하나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비진리가 아니라면 질서를 좇아 순종함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내 뜻이 아무리 옳고 좋아 보여도 하나 됨을 위해서라면 내 뜻을 꺾고 접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 됨을 위해서라면, 내가 먼저 숙이고, 내가 먼저 저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시간에는 창조 셋째 날의 역사 중 바다와 땅을 만드신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창조 셋째 날의 역사 중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이 땅에서 나오는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풀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다른 곳으로 스스로 옮겨 갈 수 없습니다. 이런 풀과 같은 존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능력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능력은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에게도 결코 주어지지 않은 능력이지요. 식물들에게 허락하신 그 능력이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누가복음 12장 27~28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과 모든 창조 역사를 함께 이루셨지요. 그래서 이 땅에 내려 오셔서 인생들과 함께 지내실 때에 만물에 깃든 아버지의 사랑과 그 신성을 누구보다 밝히 깨달으셨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도 작은 풀 한 포기에서도 하나님의 신성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도 깊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는 말씀대로, 여러분 자신을 향한 사랑이 들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걸작이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강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위대하심은 물론 여러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꼭 깊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께 더 큰 사랑을 받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5-24 오후 5:40:48 Posted
2010-07-27 오전 10:25:1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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