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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35) 창조 셋째 날(2) [창 1:11-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5.28
창세기 강해 서른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창조 셋째 날의 역사 중 바다와 땅을 만드신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시간 이어서 창조 셋째 날에 식물(植物)을 창조하신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질서를 좇아 순서대로 하셨습니다. 영혼육의 관점에서 천지 만물의 차원을 분류하면 다음과 같지요.

먼저, 호흡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무차원, 즉, 돌, 흙, 바위와 같은 것들입니다. 다음으로, 호흡은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은 1차원입니다. 동물처럼 호흡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지만 영이 없고 혼만 있는 것은 2차원이구요. 호흡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며 영혼육으로 구성된 사람은 3차원입니다. 또한 영의 세계에 속한 영적인 존재들은 모두 4차원이지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설명해 주신 영혼육의 관점에서 본 차원의 분류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 역사를 베푸실 때 가장 먼저 4차원인 영의 세계를 조성하셨습니다. 곧, 천사와 그룹을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때가 이르매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에 본격적인 창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인간 경작의 터전인 지구를 다지시고 지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6일 창조 기간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차원이 낮은 것부터 창조를 하셨습니다.

창조 첫째 날에는 무차원인 지구의 땅을 다지셨지요. 셋째 날에도 무차원에 속한 것들로 이뤄진 바다와 육지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1차원에 속한 식물들이 나게 하셨지요. 창조 다섯째 날과 여섯째 날에는 2차원에 속한 새들과 물고기들과 뭍의 짐승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3차원인 사람을 창조하셨구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차원이 낮은 것부터 순서대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날과 넷째 날 만은 순서가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1차원인 식물은 셋째 날에, 무차원인 해, 달, 별들은 넷째 날에 창조됐습니다. 둘 중 차원이 더 높은 식물이 해, 달, 별들 보다 먼저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이 가진 지식으로는 식물은 반드시 햇빛이 있어야 살 수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해보다 식물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또한 이때 육지에는 식물에게 필요한 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지요. 바다에는 물이 있지만 아직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육지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해보다 식물이 먼저 창조됐다는 것을 육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은 참이요, 진리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해보다 식물을 먼저 창조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해를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식물을 만드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식물을 먼저 만드시고 나중에 해를 만드셨지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천지 만물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음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천국에는 해가 없지만 꽃과 나무들이 아름다운 색채를 띠며 향기를 풍기고 열매를 맺지요.

요한계시록 21장 23절에 보면, 천국에는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모든 공간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취고 그 빛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살아갑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6일 창조 동안, 해보다 식물을 먼저 창조하심으로써 천하 만물을 붙드는 근본적인 능력은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풀 한포기가 싹을 내어 자랄 수 있음도 들풀 하나가 꽃 한 송이를 피울 수 있음도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초월합니다. 육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끼지 못하고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만들어서 생물의 기원을 설명하려 하지요.

진화론자들은 원시 지구에서 우연히 간단한 유기물이 합성됐고 또 이 유기물들의 우연한 합성으로 원시 세포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또 원시 세포의 일부분은 우연히 식물 세포로 진화했고 또 다른 일부분은 우연히 동물 세포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지요.
처음에 생물이 자연 상태에서 자연히 발생했다는 이 이론은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됐다"고 주장하며 실험으로 입증된 결과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랬을 것이다"라고 추정하는 것이 바로 진화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본문 11~12절을 보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땅에서 풀과 채소와 나무가 각기 종류대로 나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씨를 먼저 만드시고 거기서 싹이 트고 자라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땅에서 식물들이 그냥 나왔던 것입니다.
땅 속으로는 뿌리가 생겼고 땅 위로는 줄기가 자라고 잎이 나며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지요. 과일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보통 수년이 걸립니다. 그러나 창조 셋째 날에는 순간에 그 모든 일이 이뤄졌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성경의 또 다른 곳에도 그 기록이 나오지요.

민수기 17장 6~8절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매 그 족장들이 각기 종족대로 지팡이 하나씩 그에게 주었으니 그 지팡이 합이 열둘이라 그중에 아론의 지팡이가 있었더라 모세가 그 지팡이들을 증거의 장막 안 여호와 앞에 두었더라 이튿날 모세가 증거의 장막 안에 들어가 본즉 레위 집을 위하여 낸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증거의 장막 안이란 광야 시대에 세운 성막의 지성소이지요. 이 지성소 안은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곳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곳에 나무 지팡이들을 그냥 두었습니다. 즉, 물도 햇빛도 없는 곳에 나무 지팡이들을 놓아 둔 것입니다. 그런데 이튿날에 보니, 유독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려 있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이처럼 기이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로 이때도 아론의 지팡이에만 영의 공간이 덧입혀져서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그렇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식물을 만드실 때에 각각 씨를 갖게 하셨다 했습니다. 씨 속에는 생명이 있어서 대(代)를 이어가며 스스로 번성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식물을 창조하실 때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식물들에게 씨를 가장 효과적으로 퍼트리는 능력까지 넣어 주셨습니다.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방법이 없는 한 씨들도 그 주변에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한군데에 많은 씨가 떨어진다면 그 씨들이 싹을 틔워 자랄 때에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땅이 좁기에 물과 양분을 조금밖에 흡수하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부실하게 자랄 수 있지요. 그래서 식물의 씨앗이 떨어질 때에 할 수만 있다면 각각 멀리 흩어지는 것이 각 개체에 유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점까지 고려하셔서 각 식물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씨앗을 퍼트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민들레를 보십시오. 민들레는 꽃이 지면 그곳에 약 100개의 씨가 맺힙니다. 민들레 씨앗은 동급의 다른 식물들에 비해 비교적 크고 단단하지요. 만일 민들레의 씨앗에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한 송이 민들레가 피었던 곳의 주변에 약 100개의 씨앗이 떨어질 것입니다.
씨앗들은 빽빽하게 모여서 이듬해에 싹이 튼다 해도 자라날 공간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민들레의 씨앗에 특별한 장치를 달아 주셨습니다. 바로 낙하산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를 모든 씨앗에 하나씩 장착해 주셨지요.
민들레 씨앗에 달린 낙하산 장치는 매우 효율적이어서 아주 약한 바람에도 하늘 높이 올라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킬로미터도 이동할 수 있지요. 민들레 외에도 훌륭한 비행 장비를 가진 식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글라이더나 헬리콥터와 같은 장비를 갖춘 식물의 씨앗들도 있지요. 식물들의 이런 비행 장비들은 단순하지만 인간이 만든 비행기구들보다 그 성능은 훨씬 뛰어나다고 합니다.
씨앗의 무게에 따른 날개의 길이와 폭의 비율이 아주 이상적지요. 만일 씨앗의 무게에 비해 날개가 작다면 씨앗은 멀리 날아가지 못하고 그냥 땅으로 추락할 것입니다. 그런데 적당한 거리만큼 날아갈 수 있도록 씨앗마다 균형 있는 날개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의 균형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셨지요. 그래서 비행 설계사들이 오히려 이런 식물들의 비행 기술을 연구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성도님들은 봉숭아 씨를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잘 여문 봉숭아 씨 주머니는 살짝 건드리면 마치 폭발하듯이 터지지요. 그러면 씨앗이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이것도 씨앗이 효율적으로 퍼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됩니다.
어떤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는 새나 짐승의 먹이로 제공됨으로써 멀리 퍼트려집니다. 어떤 동물은 채취한 열매를 한꺼번에 다 먹지 않고 땅속에 묻어두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나름대로 식량을 저장해 두는 것이지요. 이곳저곳 여러 곳에 묻어두는 바람에 그 위치를 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땅속에 심겨진 식물의 씨앗은 그곳에서 싹을 내고 자라게 됩니다. 이를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열매 일부를 동물의 먹이로 제공하면서 동물에게 일을 시킨 것과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동물이 식물의 씨앗을 땅속에 잘 심어 묻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참, 재미있는 공생관계이지요.
이 모든 것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신 분이 바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각각의 식물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씨앗을 퍼트릴 수 있도록 처음부터 이렇게 설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식물에게 주신 또 다른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햇빛과 물과 공기를 이용하여 양분을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를 광합성 작용이라 하지요.
예를 들어 사과나무는 햇빛과 물과 공기를 이용하여 맛있는 사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쌀, 보리, 고구마, 감자, 땅콩 등도 각 식물이 햇빛과 물과 공기를 이용하여 만들어 낸 양분을 저장한 것입니다.

식물은 빛을 받아야 양분을 만들 수 있기에 싹 트는 순간부터 본능적으로 빛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자라는 식물들이 자연히 빛을 향해서 줄기가 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식물에게 있어서 이런 양분을 만드는 공장과 같은 곳은 바로 잎입니다. 식물에게 잎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양분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식물들은 할 수만 있으면 최대한 많은 잎사귀를 만들어 내지요.

한편, 하나님께서는 식물의 잎이나 식물이 만들어낸 열매를 동물의 먹이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곤충으로부터 시작하여 짐승과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식물을 먹이로 삼고 있지요. 대신 식물은 그 개체수가 매우 많기에 동물의 먹이가 되어도 계속 번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물에게는 자기 잎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미모사라는 식물이 있지요. 이 식물은 잎을 살짝 건드리면 작은 잎들이 오므라들어 버리고 더 큰 자극을 주면 아예 밑으로 처져 버립니다. 그래서 꼭 시든 것처럼 보이지요. 예를 들어 메뚜기가 이 잎을 먹으려고 앉으면 잎들이 오므라들어서 메뚜기가 먹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밤에도 그렇게 함으로써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합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시계꽃이라는 식물의 잎은 어떤 나비 애벌레의 좋은 먹이입니다. 이 나비 애벌레는 식성이 너무 좋아서 새순이 나기 바쁘게 갉아 먹어 버립니다. 그래서 나비는 알을 낳을 때에 이미 알이 붙어 있는 잎에는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야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편, 시계꽃 식물의 잎 군데군데에는 나비 알과 같은 모양의 반점이 있습니다.
이 반점을 나비가 보면 이미 그곳에 알이 붙은 것으로 착각하여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식물은 이러한 자기 보호 기능이 있기에 일부가 애벌레의 먹이가 된다 해도 멸종되지 않고 번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이 스스로 필요에 의해 그렇게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뇌도 없고, 혼도 없는 식물들이 어떻게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겠는지요?
저 나비의 알과 같은 모양을 내 잎에 만들어서 나비를 속여야지 식물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식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렇게 되도록 설계하셨고 그러한 본능을 허락해 주셨지요.

만일 진화론자의 주장이 옳다면 짐승들이나 사람들도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진화됐어야 할 것입니다. 광합성 작용에 필요한 햇빛과 물과 공기는 얼마든지 넉넉하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양분을 만드는 능력이 사람에게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지요. 식물들처럼 물만 마시고 햇빛을 받으면서 숨을 쉬고 있으면 양분이 생기니 정말 좋지 않습니까?

끼니를 챙겨먹지 않아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가 생성되니 참으로 간편할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생물이 필요에 의해 편리한 쪽으로 진화됐다면 이렇게 되는 편이 훨씬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식물은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들고, 동물은 식물이 만든 양분을 섭취하도록 설계하셨고,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9~30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창조하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요.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에 공기가 필요하다 했습니다. 동물이 살기 위해서도 공기가 꼭 필요하지요. 그런데 식물이 광합성을 할 때에 공기 중에서 필요한 것과 동물에게 필요한 것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공기가 식물에게 들어가면 광합성 작용으로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가 산소로 바뀌어 나옵니다. 반대로 공기가 동물의 폐로 들어가면 산소가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나오지요.

이처럼 식물과 동물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대기 중에는 산소와 이산화탄소가 항상 일정한 비율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일 동물도 식물처럼 광합성 작용을 한다면 공기 중에 산소는 늘어나고 이산화탄소는 고갈되겠지요.
이산화탄소는 광합성에 필요한 주재료인데 주재료가 없어진다면 모든 생물은 결국 모두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생물들이 균형 있게 함께 살 수 있도록 지혜롭게 모든 것을 감안하여 설계하시고 하나씩 창조하셨습니다.

식물에 담긴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모두 찾아 설명하고자 한다면 매우 많습니다. 그중에서 하나만 더 예로 들면, 꽃들은 어떻게 자신의 개화시기를 알까요? "자, 이제 봄이 됐으니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는 꽃을 피우세요." 하고 누가 알려 줍니까? "다음 차례는 장미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국화와 코스모스는 좀 많이 기다려야 합니다. 가을이 되면 그때에 꽃 피우세요."
누가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 주나요? 설령 누가 말해 준다 해도 식물이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꽃들은 정확하게 자기 때를 알아서 꽃을 피우는 것일까요? 봄꽃은 낮이 밤보다 긴 시기에, 가을꽃은 밤이 낮보다 긴 시기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어떻게 식물들이 밤과 낮의 길이를 측정하고 그에 맞추어 꽃을 피울까요? 참으로 신기하지 않습니까! 알면 알수록 신기한 능력과 지혜가 식물들에게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기한 능력을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각 식물에게 심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은 창조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 식물을 창조하신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창조 셋째 날 만들어진 각종 식물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에 필요한 조건들이 이처럼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좋으셨습니다.

식물들은 하나님께서 창조 섭리에 순응하여 자기 때가 되면 꽃을 피웁니다. 또 때가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또한 식물들은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위로는 햇빛을 향해 자라가고 뿌리는 물을 찾아 뻗어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씨를 하나씩 심어 주셨지요. 이 생명의 씨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깨어날 수 있다 했습니다. 또한 반드시 영적인 물과 영적인 빛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행할 때에만 자랄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님들은 하루 종일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아버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영적인 빛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17장 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든든히 내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거뜬히 통과할 수 있지요. 그래서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결실이 그치지 않는 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5-31 오후 10:18:11 Posted
2010-07-27 오전 10:25:19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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