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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36) 창조 넷째날(1) [창 1:14-19]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6.04
창세기 강해 서른여섯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부터는 창조 넷째 날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를 천문학적으로 다시 표현하자면 창조 넷째 날에 "우리 은하"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제외한 우리 은하의 모든 천체들을 이 창조 넷째 날에 창조하셨지요. 지구는 6일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이미 만들어 놓으셨다 했습니다.

우리 은하 외에 수많은 은하들은 언제 창조됐을까요? 우주가 대폭발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는 어떤 증거가 있을까요?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또한 지구에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큰 광명인 태양의 빛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왜 굳이 작은 광명인 달도 만드셨을까요? 해와 달과 별이 창조된 후에 지구에는 그 전과 달리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이런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 이 시간부터는 저와 함께 저 광활한 우주로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먼저, 우주가 얼마나 광대한지를 느낄 수 있는 사진 한 장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자료화면- "창백한 푸른 점"이란 사진)
이 사진은 탐사선 보이저 1호가 1990년 6월 명왕성 부근에서 지구를 촬영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 1977년 9월 발사 후, 12년 9개월 만에 이 사진을 보내왔고, 약 33년이 지난 2010년 4월에도 데이터를 보내옴)

여러분은 저 사진 속에서 지구를 찾을 수 있겠는지요? 이 사진의 별칭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합니다.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지구는 희미한 빛을 내는 작은 점에 불과함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은 지구에서 약 64억km 떨어진 거리인 태양계의 가장자리에서 바라본 지구입니다. 태양계는 전 우주 공간에서 지구가 속해 있는 작은 점일 뿐입니다. 겨우 그 작은 점의 가장자리에서 지구를 보았을 뿐인데도 지구가 저렇게 작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양계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은하계가 있지요.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는 지름이 빛의 속도로 약 10만 년을 가야 하는 거리. 즉, 1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이런 은하들이 수십 개 모인 것을 은하군이라고 하며 수백 내지 수천 개 모이면 은하단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런 은하단이 여러 개 모인 것을 초은하단이라고 하지요. 이 정도가 천문학자들이 분류한 우주 공간입니다. 이렇게 말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여러분은 그 넓이가 상상이 되시는지요?

우리 은하만도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가려면 빛의 속도로 약 10만 년을 가야 하는 거리라는데 이 거리도 사실 상상이 잘 안 되지요. 하물며 은하군의 넓이, 은하단의 넓이는 상상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우주 공간은 육의 세계, 곧 첫째 하늘의 일부만을 얘기한 것입니다. 이렇게 광활한 첫째 하늘 외에 또 다른 하늘들이 있지요.

영의 세계에 속한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넷째 하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하늘들을 함께 통치하시고 다스리십니다. 원래는 이 하늘들은 하나였는데 이를 근본의 우주라 한다 했지요.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머금은 빛의 형태로 근본의 우주에 퍼져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시점이 되자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영계의 정점으로 응집하셨지요.

이로 인해 영적인 빛의 강도와 영적인 밀도가 서로 다른 네 개의 우주가 생겼습니다. 영적인 빛의 강도와 밀도는 영계의 정점에 가까운 곳일수록 높으며 정점에서 먼 곳일수록 낮지요. 원래 하나였던 근본의 우주가 총 넷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네 개의 우주를 각각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넷째 하늘이라 하셨지요.

이 중에서 첫째 하늘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인 우주입니다. 앞서 이 첫째 하늘이 넓이가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넓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광활한 첫째 하늘, 즉 육의 세계도 영의 세계의 넓이에 비하면 매우 작다는 사실입니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크기를 확연히 느낄 수 있도록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개미에게 제주도만 한 땅을 주었다고 합시다. 개미는 그 땅이 얼마나 넓은지를 모를 것입니다. 개미가 생각할 수 있다면 그저, 가도 가도 끝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광활하게 느껴지겠지요. 그런데 제주도는 지구 전체 면적 중에서 지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만일 개미에게 지구 전체 면적을 얘기해 준다 해도 개미는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개미는 우리 사람을 비유했습니다. 또한 제주도는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이지요. 지구에서 제주도만큼만 육의 세계이며, 나머지는 전부 영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의 세계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크기 비율이 정확하게 제주도와 지구만큼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크기가 차이 남을 알기 쉽게 비유한 것이지요. 영의 세계에 비하면 매우 작은 육의 세계의 한 지점에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먼저 지구를 창조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 넷째 날이 되자 태양과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위성들을 만드셨지요. 또한 우리 은하계의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우리 은하계 밖에 있는 수많은 별들, 곧 다른 모든 천체들은 언제 만들어졌을까요? 정답은 태초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로 나뉘기 전부터 근본의 우주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었습니다. 텅 빈 드넓은 공간에 근본의 하나님, 곧 소리를 머금은 빛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지요.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태초 이전에 이미 수많은 별들을 만드셔서 근본의 우주 공간에 두셨습니다. 이런 상태의 근본의 우주가 네 개의 하늘들로 나뉜 것입니다. 이때 첫째 하늘이 된 공간에 있던 별들이 바로 우리 은하 밖에 있는 모든 별들이지요. 따라서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넷째 하늘에도 이미 수많은 별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첫째 하늘이 형성될 때부터 무수한 별들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첫째 하늘의 어느 한 지점에 지구와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대폭발로 우주가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대폭발을 주장하는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지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자 우주 공간이 정체된 것이 아니라 계속 팽창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구에서 다른 은하들을 관찰해 보니 다른 은하들이 지구로부터 계속 멀어졌지요. 과학자들은 이 사실을 근거로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현재의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니 과거에도 팽창했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우주는 현재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우주는 마침내 작은 점처럼 작았을 것이다. 그렇게 점처럼 작았던 우주에서 어떤 계기로 대폭발이 일어났고 그 후 계속 팽창하여 오늘날의 우주가 됐다."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빅뱅이론이지요.

이 빅뱅이론이 정립되는 수십 년간 이 분야에서 여러 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만을 본다면 빅뱅이론은 매우 근거가 확실하고 확고부동하게 정립된 이론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빅뱅이론은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이 이론이 처음 거론된 후 계속 수정돼 왔고, 앞으로도 관측 결과에 따라서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결코 사람이 설명할 수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은 빅뱅이론이 대폭발 최초의 순간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빅뱅이론은 최초의 대폭발부터가 아니라 대폭발이 있은 후 어느 정도 지난 다음부터 설명이 시작되는 이론이라는 말이지요.

다시 말해서 대폭발의 여파에 대해서는 수학과 물리학을 총동원하면 나름대로 이론적인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빅뱅이론이 진짜 옳다면 대폭발의 여파가 아니라 대폭발의 순간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학자도 바로 대폭발의 순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분야는 앞으로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설명할 수 없는 분야임을 과학자들도 인정하고 있지요. 육의 지식으로는 거기까지밖에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육의 이론으로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지요. 과학적인 관찰 기록에 의하면 우주가 팽창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은 왜 그럴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첫째 하늘의 우주를 정체된 공간이 아니요, 팽창하는 공간으로 창조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 육의 공간이 팽창함으로 인해 정화 작용이 일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도 지구라는 큰 그릇에 고인 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부패할 수 있는데, 바닷물이 부패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먼저는 바닷물에 들어 있는 염분 때문이지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밀물과 썰물로 바닷물이 늘 움직이므로 부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첫째 하늘도 정체되면 안 되고 계속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합니다. 통풍이 잘 안 되는 공간에 오랫동안 있으면 공기가 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요?
모든 하늘들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첫째 하늘은 비교적 좁은 공간입니다. 그래서 공간이 계속 팽창하게 하심으로 스스로 정화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이 첫째 하늘은 닫히게 되지요.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첫째 하늘의 공간을 가리키지요.
인간 경작이 마쳐지고, 대심판까지 끝나면 첫째 하늘은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첫째 하늘, 곧 육의 공간도 근본의 우주에서 나뉜 공간이기에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하늘로 통하는 문을 닫아두실 뿐입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에 보면 하늘의 궁창이란 표현이 여러 번 나옵니다.
하늘의 궁창에 광명 곧 해와 달이 있게 하셨고, 또 하나님이 별들을 만드시고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셨다 했지요. 그냥 하늘이나 궁창이라 하지 않으시고 왜 굳이 하늘의 궁창이라 하신 것일까요?

해와 달과 별들이 지구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 먼 곳에 있음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이야 과학이 발달하여 해와 달과 별들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를 알지요. 그러나 옛날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들이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 해와 달의 크기는 얼마나 다른지 몰랐지요. 따라서 그냥 하늘이나 궁창이라고만 하면 해와 달과 별들이 그저 가까운 하늘 위에 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궁창에 있다 표현해 주심으로써 가까운 하늘이 아닌 좀 다른 공간에 위치해 있음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의 궁창이란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그 너머의 우주 공간을 나타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성경에 단어 하나라도 정확한 의미를 담아 기록해 주셨지요. 또 한 가지 주목해 볼 단어가 있습니다.

해와 달의 크기에 대한 표현이지요. 해를 큰 광명이라 했고, 달을 작은 광명이라 했습니다. 지구에서 해와 달을 바라보면 둘의 크기가 거의 같아 보입니다. 보름달이 밝게 뜰 때에는 달이 해보다 크게 보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아직 지식이 부족한 어린아이에게 해와 달 중에 어떤 것이 더 크겠냐고 묻는다면 그 어린아이는 아마 눈에 보이는 대로 답을 할 것입니다.

이는 과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만일 해와 달의 밝기가 다름을 나타내고자 했다면, 해는 밝은 광명이고 달은 조금 밝은 광명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해는 큰 광명이라, 달은 작은 광명이라 표현해 주셨습니다.
해와 달의 밝기뿐만 아니라 크기도 다름을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정확하게 표현해 주신 것입니다.

해는 달보다 얼마나 더 클까요? 부피를 계산해 보면 해는 지구의 약 130만 배이며, 달은 지구의 약 50분의 1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해는 달의 약 6500만 배 크기이지요. 해와 달의 크기는 이처럼 차이가 나는데, 해보다 달이 지구와 훨씬 가깝기 때문에 둘의 크기가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전반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창조 넷째 날 해와 달을 만드심으로 주야, 곧 낮과 밤을 나뉘게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창조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습니다. 따라서 이미 창조 첫째 날부터 낮과 밤이 나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을 만드신 후 주야를 나뉘게 하라고 다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 하실 때에 하나님의 근본의 빛이 지구를 둘렀지요. 이렇게 빛이 지구를 두르는 낮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낮 시간의 길이만큼 빛을 거두시고, 그 시간은 어둠의 세력에게 내어주셨지요.

창조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근본의 빛으로 지구를 두르시는 시간이 낮이요, 거두시는 시간이 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3일 동안은 지구가 자전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도 낮과 밤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창조 넷째 날에 해와 달, 별들을 만드신 후부터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구가 자전을 해서 해를 마주보는 쪽은 낮이 되고 해를 등지는 쪽은 밤이 되었지요. 지구의 낮과 밤이 이제 자동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낮과 밤이 바뀌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셨다면, 이제 해와 달과 별들이 주관하게 하신 것이지요.

이를 비유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로봇이 하나 있는데 이 로봇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사람이 로봇의 팔을 올려줘야 팔이 올라가고 발을 일일이 옮겨줘야 움직일 수 있지요. 로봇의 주인이 원하는 대로 로봇을 움직여 줘야 로봇이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 로봇 안에 태엽 장치를 해서 태엽만 감아 주면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아도 설계대로 로봇이 스스로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 셋째 날까지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들려서 우주 공간에 떠 있을 수 있었고, 밤과 낮도 하나님에 의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넷째 날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되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에 의해 자동으로 운행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한 가지 비유를 더 들면 시계에는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있습니다. 시계에 약이 없어도, 여러분이 초침을 잡고 1초에 한 칸씩 진행 시키면 분침과 시침도 함께 움직입니다. 이렇게 해도 시계는 돌아가지요. 그런데 시계에 약을 넣으면 시계 바늘들이 자동으로 움직이며 시간을 가리켜 줍니다.

창조 첫째 날에서 셋째 날까지는 하나님께서 친히 시계 바늘을 움직이셨다면, 창조 넷째 날부터는 시계 바늘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된 것과 같습니다. 시계를 뜯어보면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바늘들을 움직여서 정확한 시간을 가리켜 주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구와 해와 달과 별들이 조화를 이루며 자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하셨습니다. 각각의 크기와 서로 간의 거리 그리고 서로 밀고 당기는 힘의 세기 등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창조하셨지요. 해와 달의 크기가 지금보다 조금만 크거나 작아도 지구에는 생명체가 살 수 없습니다. 서로 간의 거리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멀거나 가까워도 마찬가지지요.

대폭발의 여파로 해와 달과 별들이 우연히 그 크기가 됐고, 그 위치에 있다는 말이 오히려 더 허무맹랑하게 느껴집니다. 고도의 지혜와 지식을 가진 창조주가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했고 만드셨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창조의 증거들은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들에게 주신 각각의 사명에 대해서도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은 창조 넷째 날의 역사를 일부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는 첫째 하늘인 육의 우주 공간 가운데서 너무도 작은 행성에 불과하다 했지요. 바닷가에 무수한 모래알들 가운데서 모래 한 알에 비할까 말까 할 정도입니다.
첫째 하늘 안에서만도 이런데 영의 세계 전체 크기에 비한다면 그 존재를 논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의 광대함을 안다면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게 됩니다.

시편 8편 3~4절에 시편 기자는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고백했지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광대한 우주에서 티끌만 한 지구에 사는 인생들을 늘 생각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의 권고를 하십니다. 그 광활한 우주의 무수한 천체들 가운데서 유독 지구를 주목하고 계시지요.

왜 그러시는 것일까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이 지구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경작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자녀들, 하나님과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영원히 함께 살아갈 참 자녀들이 바로 이 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펼치신 창조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마음으로 깊이 느끼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6-07 오후 10:54:45 Posted
2011-06-22 오후 2:55:02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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