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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40) 다섯째 날 (2) [창 1:20-2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7.16
창세기 강해 마흔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창조 다섯째 날의 역사를 지난 시간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에 물에는 물고기를, 궁창에는 새를 창조하셨지요.

본문 21절을 보면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이때, 바다뿐만 아니라 민물에도 각종 물고기가 창조됐지요.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이날 함께 창조됐습니다.

예를 들어 딱딱한 껍질을 갖고 있는 조개류, 오징어나 문어와 같은 연체동물, 게나 가재처럼 물속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들, 그리고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수중 식물도 이날에 함께 창조됐지요. 그런데 본문에 굳이 ‘큰 물고기’가 별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큰 물고기란, 무엇일까요? 바로 고래를 비롯하여 말 그대로 크기가 큰 물고기를 가리킵니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고래는 ‘흰수염고래’라고도 불리는 ‘대왕고래’입니다. 이 고래는 몸길이가 최대 33미터, 몸무게가 190톤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고래는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알이 아닌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이며, 아가미 호흡이 아닌 폐호흡을 합니다. 그래서 생물학에서는 고래를 물고기(어류)가 아닌 소, 말, 양과 같은 ‘포유류’로 분류하지요.
생물학에서 말하는 포유류 동물은 여섯째 날에 창조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인 고래’가 다른 물고기들과 같은 날, 즉 다섯째 날에 창조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생겨난 연대를 측정해 본다면 얼마나 오래전부터 있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 하셨지요. 과학자들도 현생의 모든 고래 종류는 약 200만 년 전부터 이미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의 고래가 이미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고래를 보면, 생물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됐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물에 살던 물고기가 진화하여 물과 육지를 오가며 사는 동물이 됐고, 그다음엔 육지에 사는 동물이 됐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고래에 대해서는, 역(逆)으로, 원래 육지에 살던 동물이 반대로 물속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했다고 주장합니다. 육상에서 먹이가 없어 굶주리던 어느 동물이 먹이가 많은 물속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말이지요. 그러면서, 다리의 흔적을 가진 고래 화석을 하나의 근거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화석의 주인공인 동물은 원래 그렇게 생긴 동물일 뿐입니다.

‘물개’와 같은 동물을 한 번 보십시오. 앞쪽에 발같이 생긴 것이 있어서 마치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수중과 육상 동물의 중간단계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수달, 물개, 바다표범 등은 원래 그렇게 창조된 것이지 진화의 중간단계에 있는 동물이 아닙니다. 또한 육상 동물이 수중 동물이 된다는 것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진화 방향과도 반대됩니다.
진화론자들은 작은 지식의 조각들을 가지고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진화론이란 틀에 억지로 짜 맞춥니다. 그래서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며 논리적으로도 모순되는 주장을 하지요.

한 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어찌 물고기가 진화하면서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가 생겨나겠습니까? 그런데 고래에 대해서는 원래 육상 동물이었는데, 다리가 사라지고 다시 지느러미가 생겨났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이상한 일이 무조건 ‘오랜 세월 동안’에는 가능하다고 말하지요. 물고기가 짧은 세월 동안 육지 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신들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주,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서 조금씩 진화하면 물고기들도 육지 동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에는 일어날 수 있다고 억지스럽게 주장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대부분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억측인지를 쉽게 알 수 있지요. 만약 물고기가 육지에서 살 수 있도록 진화하려면 많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만 생긴다고 해서 물고기가 육지에 나와 살 수 있을까요? 물에서 호흡하며 살던 것이 육지에서 호흡하기 위해서는 내부 기관들도 다 함께 변해야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들이 따로따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지느러미가 사라지고 다리는 생겼는데, 호흡은 여전히 아가미로 한다면 육지에서 살지 못하지요. 따라서 몸의 구조 전체가 함께 바뀌어야 합니다. 설령 동시에 변화된다 해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변화되는 중간 과정에 있을 때는 모든 기능이 불완전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진화론자들은 그 불완전한 중간 과정이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됐다고 하지요. 온전한 지느러미도, 온전한 다리도 아닌 중간단계의 불완전한 상태의 동물이 매우 오랜 기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상한 형태의 동물이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동안 종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물과 육지 어디에도 익숙하지 않은 이런 불완전한 상태로는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기 쉬워서 온전한 육지 동물이 되기 전에 멸종될 가능성이 훨씬 크지요.

또한 중간단계의 동물이 매우 오랜 세월동안 존재했다면, 그러한 화석도 많이 발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발견되는 화석들은 대부분이 현존하는 동물들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간혹 진화론자들이 중간단계 화석이라고 제시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이거나 원래 그렇게 생긴 동물의 화석이지요.

예를 들어, 인간의 진화론적 조상들이라고 진화론자들이 제안했던 화석들 중에는 오류가 있었거나 날조된 화석도 있었습니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진 라마피테쿠스라는 화석은 현대 오랑우탄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지요. 여기서 더 진화했다는 필트다운인의 화석은 현대 원숭이턱뼈와 인간두개골임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하셨기에 진화의 중간단계 화석은 발견될 수가 없지요. 육상 동물이 고래로 진화된 것도 아니고 물고기가 육상 동물로 진화된 것도 아닙니다. 물고기는 각 종류대로 다섯째 날에, 육상 동물도 각 종류대로 여섯째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섯째 날에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했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원시 육상 동물이 조류 즉, 새로 진화됐다고 주장합니다.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육상 동물이 진화하여 새가 되는 과정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먼저 앞다리는 새의 날개가 되어야 하고 뒷다리도 새의 다리로 변해야 합니다. 또한 몸의 구조와 내부 기관들도 하늘을 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하지요. 피부에는 온통 깃털이 나야 하구요. 만일 육지에 살던 어떤 동물에게 갑자기 날개가 생긴다 해서 그 동물이 당장 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유를 들면, 강한 엔진을 가진 좋은 자동차 한 대가 있다고 합시다. 만일 이 자동차의 양쪽에 날개를 단다면 이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는 결코 하늘을 날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날 수 있기 위해서는 비행기나 헬리콥터와 같은 모양과 구조로 바뀌어야 하지요. 자동차를 대충 개조한다고 해서 비행기가 될 수 없듯이 육상 동물이 새로 진화할 수도 없지요.

우리가 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새는 하늘을 날 수 있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새의 신체 구조상의 형태와 특징 그리고 새가 가지고 있는 본능 등 지극히 세밀한 부분까지도 하늘을 날기에 적합하게 창조됐지요. 새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각기 처한 환경에서 잘 살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능력은 피조물이 스스로 가질 수 없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것입니다.

욥기 12장 7~9절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한 것이지요.

만약 동물들이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모두 창조주 하나님의 손이 자신들을 만드셨다고 분명하게 설명해 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동물들도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데,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찾지 않고, 믿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런데, 사람들도 어떤 동물이나 식물들이 아주 독특하고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인정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모방하여 첨단 기술에 응용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학문을 생체모방공학이라고 합니다.

그 몇 가지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상어 비늘의 원리를 이용한 전신 수영복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상어 종류 중에는 바다 속에서 시속 80km 속도로 헤엄치는 것도 있지요. 이렇게 빨리 헤엄치는 상어의 비늘에는 마찰 저항을 줄여 주는 장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어 비늘의 원리를 응용하여 만든 전신 수영복은 일반 수영복보다 저항이 10~15%가 줄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물속에서 앞으로 나가기가 더 쉬워졌다는 뜻이지요.

이 전신 수영복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이 수영에 걸린 33개 금메달 중 25개를 땄다고 합니다. 수영 경기는 0.01초를 다투는 경기인데, 10~15% 저항을 덜 받는 전신 수영복의 위력이 톡톡히 발휘된 것이지요. 이 상어 비늘의 원리를 응용한 기술은 수영복뿐만 아니라 자동차, 비행기, 잠수함 등 공기나 물의 저항을 받는 운송 수단에도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예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홍합과 전복도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홍합은 강력한 접착단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닷물 속에서도 바위에 단단하게 붙어 있을 수 있지요. 홍합이 가진 접착단백질은 지금까지 사람이 만든 어떤 접착제보다 강하면서도 유연합니다. 사람의 힘줄과 비교하면 다섯 배나 질기면서 열여섯 배나 잘 늘어난다고 합니다.
홍합의 접착단백질은 천연물이기 때문에 인체에 사용해도 안전하여 찢어진 피부나 부러진 뼈를 접합할 수 있는 의료용 접착제로 활용할 수 있지요. 이 접착제는 물속에서도 강하기에 선박이나 군함을 제조하는데 매우 용이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복 껍질은 굉장히 단단합니다. 그것은 전복 껍질이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러한 전복 껍질의 구조를 응용하면 매우 단단한 물체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은 전복 껍질의 구조를 응용하여 탱크의 철갑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거미줄은 약해 보이지만,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다섯 배나 강합니다. 거미줄의 두께가 1밀리가 되면 성인 한 명을 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거미줄은 실크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나일론보다 질기며, 신축성도 뛰어나지요. 공기는 잘 통하되 수분은 침투하지 못하는 특성도 갖고 있어서 방탄복, 낙하산 등을 만드는 데에 응용됩니다.

생체모방공학에 있어서 대표적 연구 대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친근한 잠자리입니다. 원래 잠자리는 맨손으로 잡기 힘듭니다. 앉아 있는 잠자리를 사람이 잡으려고 하면 재빠르게 날아가 버리지요. 잠자리는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도 순간 시속 50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이 기능을 전투기에 적용하기 위해 활발히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잠자리는 여러 측면에서 놀라운 비행 능력을 가졌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잠자리는 앞뒤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고, 1초에 무려 40회나 날갯짓을 합니다. 만일 사람이 팔을 이렇게 많이 사용한다면 팔과 몸통이 만나는 어깨 부분에 심하게 무리가 갈 것입니다. 잠자리는 평생 동안 무수히 날갯짓을 해도 괜찮도록 몸통과 날개가 연결되는 부분에 “레실린”이라는 고무단백질이 있습니다. 잠자리에 있는 이 고무단백질은 그 탄력성이 매우 우수하기에 과학자들은 이를 모방하여 인공 레실린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자리의 중요기관은 액체로 둘러싸여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자리가 최고속도로 비행하며 자기 몸무게의 30배나 되는 힘을 받을 때도 내부기관들을 보호할 수 있지요. 이 원리를 모방해 전투조종사의 새로운 비행복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고요. 또 잠자리는 날고 있는 먹잇감을 아래에서 접근해 마지막 순간 다리를 뻗어 낚아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먹이를 잡는 확률은 97%이지요. 미국에서는 잠자리가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이 신경체계를 연구해 비행체의 새로운 유도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잠자리는 눈도 참으로 신기하게 생겼습니다. 잠자리에게는 최대 약 2만8천 개의 낱눈이 모인 겹눈 한 쌍이 있습니다. 겹눈이란,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는 수많은 낱눈들이 모여서 이뤄진 눈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낱눈의 모양이 전부 정육각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첫째 하늘인, 이 육의 공간에서는 숫자 6이 ‘완전한 상태’를 의미한다 했지요. 또한 도형 중 육각형이 가장 안정적이고 균형적이라 했습니다. 잠자리 외에도 육각형 낱눈이 모인 겹눈을 가진 곤충들이 더 있기는 합니다. 꿀벌, 나비, 개미 등도 육각형 낱눈을 수백 혹은 수천 개씩 가지고 있지요. 그런데 잠자리가 가진 낱눈의 수가 곤충들 가운데 가장 많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잠자리는 머리를 돌리지 않고도 위, 아래, 앞, 뒤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는 20미터 떨어진 것도 볼 수 있으며, 최고 37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물체의 움직임도 간파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 잠자리 눈의 원리를 응용하여 360도 시야를 갖는 광학 카메라 렌즈를 개발했지요.
이것이 상용화 되면, 인체 내부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내시경이나 공간상의 미세한 움직임을 360도로 촬영하는 카메라도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잠자리가 가진 놀라운 능력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2009년 7월 14일 BBC뉴스는, 잠자리가 곤충 중에서 마라톤 챔피언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이는 잠자리가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라는 의미이지요. 그전까지, 곤충 세계의 마라톤 챔피언은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7천Km를 왕복하는 ‘모나크나비’였습니다.
몰디브의 한 생물학자가 10여 년간 연구한 결과, 잠자리가 훨씬 더 먼 거리를 이동함을 알게 됐지요. 잠자리는 인도에서 아프리카까지 1만4천 내지 1만8천Km에 이르는 먼 길을 해마다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이 왕복 경로를 한 차례 완주하기까지는 모나크나비와 마찬가지로 4세대가 걸렸고요. 그런데 잠자리의 그 이동경로 중에는 800Km의 바다가 포함되어 있지요. 이는 잠자리가 최소한 800Km 거리를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날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잠자리가 바다를 건너서 그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성도님들은 올 여름에도 잠자리를 많이 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자리에게 부여해 주신 이 놀라운 능력들을 떠올려보면서 은혜가 더해지시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 여섯째 날의 창조 역사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바다의 물고기와 새들을 창조하셨으며, 결코 진화가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동식물이 갖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사람들이 연구하고 모방하여 첨단 기술에 응용하는 예들을 몇 가지 말씀드렸지요.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동식물이 갖고 있는 그런 뛰어난 능력만 보고도 창조주가 계심을 인정하고 믿을 것입니다. 진화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연구하는 자신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음 6장 26절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새들도 이렇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얼마나 더 귀히 여기시겠는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다만 사랑과 공의가 조화를 이뤄야 하므로 우리 편에서 아버지께 믿음으로 구해야 하지요.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이에 대해 마태복음 7장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입니다. 믿음의 자녀들, 사랑스런 자녀들에게 무엇이든 주고 또 주기 원하시며, 넘치도록 안겨 주기 원하시는 분이지요.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아버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항상 “내게 능력 주시는 아버지가 계시오니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나이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정적인 현실만 보고 믿음이 약해지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날마다 믿음이 더욱 견고하여져서 항상 응답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7-19 오후 10:54:43 Posted
2010-07-27 오후 2:45:27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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