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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 설교

제목
창세기 강해(44) 일곱째날 [창 2:1-3]
설교자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0.08.13
창세기 강해 마흔네 번째 시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 역사를 베푸셨습니다. 지구는 6일 창조 이전에 이미 만들어져서 생명수로 온전히 감싸져 있었지요. 이러한 지구에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창조 첫날 “빛이 있으라” 하시자 창조의 근본의 빛이 지구와 주변을 둘렀지요. 지구는 육의 공간이지만 이 근본의 빛이 둘리면서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게 되었습니다. 또한 근본의 빛이 둘리면서 육의 공간에 질서와 원칙이 세워졌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앞으로 창조될 모든 피조물에 깃들 수 있게 되었지요.

창조 둘째 날에는 지구를 감싸고 있던 생명수가 위, 아래로 나뉘면서 그 사이에 궁창이 생겼습니다. 궁창 아래의 물은 앞으로 바다 등을 이루게 되고, 궁창 위의 물은 대기권의 수증기가 되었습니다. 궁창 위의 물은 또한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로도 유입이 되어 에덴의 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지요.

창조 셋째 날에는 북극에 큰 웅덩이가 생겨서 천하의 물이 그곳으로 모였고, 남극을 중심으로는 뭍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곳으로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실 때 염분이 생겨서 짠맛을 내게 되었지요. 이렇게 셋째 날에는 바다도 하나요, 육지도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셋째 날 뭍에 식물들이 각기 종류대로 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햇빛이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식물이 살 수 있음을 나타내 주셨지요.

창조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별들이란 우리은하에 속한 별들이며 그 외의 수많은 별들은 태초 이전에 우주가 하나였을 때부터 있었지요.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된 후 지구는 육의 법칙대로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지구에는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뤄졌지요.
지구에는 여러 가지 기상 현상이 나타났고 지질 활동도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하나였던 육지가 여러 개로 쪼개졌고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째 날이 되기 전에 이미 지금의 5대양 6대주와 비슷한 기본적인 틀을 갖추게 됩니다.

창조 다섯째 날의 기록에 “여러 바다”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이러한 환경이 갖춰진 상태에서 같은 날 하나님께서 바다에는 물고기를 땅 위의 하늘에는 새를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1절에 보면 다섯째 날에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이날 창조됐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류뿐만 아니라 물속에 사는 모든 생물들이 함께 창조됐다는 뜻이라 했지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수중 식물도 포함되고요.

예를 들면 식물성 플랑크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것은 물 위에 떠서 생활하는 단세포 조류입니다. 이들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서 광합성을 하여 산소를 만들어 냅니다. 플랑크톤 한 개의 크기는 인간의 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이들 전체의 양은 매우 많지요.

이 식물성 플랑크톤이 만들어 내는 산소량은 지구 전체 산소의 50~70%에 이릅니다. 아마존의 숲에서 지구 산소의 20%가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식물성 플랑크톤은 바다 속 대형 산소 공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처음 창조됐을 때에 물고기들이 바로 이 식물성 플랑크톤을 먹이로 삼았습니다. 당시에는 물고기들도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았으므로 이 식물성 플랑크톤이 먹이가 됐지요. 이 플랑크톤은 지금도 많은 물고기들의 먹이로서 에너지 공급원이 되고 있습니다.

창조 여섯째 날에는 육상 동물과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육상 동물은 처음부터 야생 동물과 육축과 땅에 기는 종류 이렇게 세 부류로 창조됐지요. 물론 이때 창조된 종류 중에는 지금은 멸종되어 없는 것도 있고, 그 모습이 처음과는 좀 달라진 종류도 있습니다.

이 땅이 저주를 받은 후 악성, 독성이 강해져서 외형이 변질된 동물들이 있지요. 사람도 화난 얼굴이 평안한 얼굴보다 무섭듯이 동물들도 악성이 강해짐으로 외형이 변형된 종류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하여 이것이 진화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화론에서는 물고기의 일부가 육상 동물로 진화했고, 육상 동물이 새로 진화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모든 물고기와 새와 육상 동물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창조 역사의 하이라이트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창세기 2장 7절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간의 창조 역사를 마치시고 창세기 2장 1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선포하셨습니다.

여기서 ‘천지와 만물’은 육의 공간인 첫째 하늘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 경작을 위해 육의 공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졌다는 뜻이지요. 지구를 하나의 빌딩이라 한다면 그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해와 달과 우리은하의 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6일간의 창조 역사를 통해 인간 경작에 필요한 모든 조건이 갖춰졌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26절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는 35만여 종의 식물과 100만 종이 넘는 동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동식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요. 하나님의 크신 권세와 강한 능력으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뤄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만드신 만물은 천국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있는 것을 기초로 하여 이 땅의 것들을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 만물을 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천국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섬세하신 사랑 그리고 신성과 능력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6일 창조 역사를 마치신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2절에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일곱째 날에 어떻게 안식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보시고 마음이 심히 흡족하셨고 매우 기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웃으셨는데 그 웃음소리가 온 하늘과 온 땅을 진동시킬 정도였지요.

또한 이를 보는 천사들도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하고 영광을 높이 찬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6일 창조의 사역을 마치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실 때의 모습이었지요.

그때 천사들이 하나님께 올린 찬양을 일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에 완전하시고, 온전하시며 아름답고 아름다우신 주(主).
모든 것을 갖고 계시며, 모든 것을 운용하시고 아름다운 빛 자체로 홀로 계셨던 주(主).
모든 것을 이루심을 찬양하리이다.

품으신 뜻대로 깊고 비밀한 것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보이시고
아름다운 만물을 창조하사 창조된 만물을 보시고 심히도 기뻐하시며,
그 마음에 감동을 받으시고 웃으시는 주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리이다.

아름다운 꽃들과 짐승들과 새소리 가운데도 창조주의 마음이 담겼나이다.
흙 하나, 모래 하나, 먼지 하나에까지도 창조주의 뜻하신 바가 담겼나이다.
모든 것을 섭리대로 이루신 주를 찬양하리이다.

정녕 홀로 계시어도 빛나시며 온전하시고 아름다우심에도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를 찬양하리이다.

아름다운 꽃잎 속에 그 뜻을 새기셨고
아름다운 별들과 해와 달 속에 그 의미를 담아 놓으셨네.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시고 그 모든 것이 법칙대로 운행하게 하시었네.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두시어 만물을 지으신 그 손길을 찬양하리이다.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만드신 주를 찬양하리이다.
찬양하리이다.

홀로 계셔서 빛으로 온 우주를 운행하시고
아름다운 소리로 그 넓고 광활한 공간을 울리신 주(主).
섭리와 뜻이 계시어 그 마음을 담아 하나하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찬양하리이다.

아름다운 풀과 아름다운 꽃과 꽃잎 한 장에도, 아름다운 마음을 두셨나이다.
작은 새의 소리에도, 짐승들의 모습 속에도 주의 마음을 담아 놓으셨나이다.
작은 바위 하나에도 주의 뜻을 새겨 놓으셨나이다.

이렇게 이루신 주를 찬양하리이다.
창조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하나님의 뜻하신바 인간 경작을 이루시기 위해
오랫동안 참으시는 그날들이 있기 이전에 이 모든 일들을 행하셨나이다.

이 모든 행하신 일로 인해 즐거워하시며 기뻐하시며 감동 얻으신 주를 찬양하리이다.
창조주의 뜻이 있어 우리가 탄생했으며 이처럼 많은 것들이 탄생하였음이나니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주의 능력이 온전하심을 찬양하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하늘에 친히 내려오셔서 6일 동안 창조 역사를 모두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넷째 하늘로 가신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까지 이 땅에 머무시며 안식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이처럼 기뻐하신 데에는 또 다른 영적인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도 어떤 일을 잘 마쳤을 때 그 결과가 좋으면 그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또한 일을 잘 마친 것에 대한 위로와 보상을 받기도 하지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도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준비가 아름답게 마쳐진 것을 보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안식하시며 마음껏 찬양과 영광을 받으셨지요.

이는 장차 우리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가 다 이뤄진 후이기 때문에 이 일곱째 날에 느끼신 것보다 훨씬 큰 감격과 기쁨을 느끼십니다. 인간 경작을 잘 받아 구원을 얻은 영혼들도 그때에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고요. 각 사람이 이 땅에서 심은 대로, 일한 대로 상급이 주어집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창조 역사를 이루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셨습니다.

6천 년 동안 인간 경작이 이뤄진 후에도 천 년 동안은 이 땅에 안식의 시간이 도래하지요. 지구의 모든 환경이 처음 창조됐을 때처럼 새롭게 회복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심히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셨던 모습으로 회복되지요.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함께 천 년을 행복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천 년이 차면 대심판이 이뤄지고 영원한 처소인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처럼 원하셨던 참 자녀들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 이 땅에서 안식하시며 훗날 천년왕국의 때를 바라보셨습니다. 오랜 기다림 후 얻게 될 믿음의 자녀들과 함께할 그날을 그리며 마음에 행복이 가득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 이를 때에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집과 상급들을 자녀들에게 나눠 주실 것을 생각하시며 기쁨으로 충만하셨지요.

아버지 하나님은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동하십니다. 또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을 갖고 계셔서 자녀들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시지요. 자녀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 주고 싶고 필요한 것은 가장 좋은 것으로 넘치게 공급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으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이뤄야 하기에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고 천지창조를 이루셨습니다. 6일의 창조 역사를 통해 인간 경작의 터전이 마련됐으니 이것으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심히 기쁘고 즐거워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2장 3절에 보니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도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안식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천지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이고요.

이사야 56장 2절에 보면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에스겔 20장 20절에는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로 삼겠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믿는 최소한의 믿음의 표현임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설교해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의 핵심은 창조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중심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뿐만 아니라 모임을 갖거나 봉사를 해도 안식일에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지요. 이렇게 온전한 마음과 거룩한 행실로 안식일을 잘 지킨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복이 반드시 임합니다.

창조 일곱째 날, 곧 안식일은 일주일 중 토요일이었습니다. 창조 첫째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달력에도 보면 대부분이 일주일 중 첫째 날은 일요일로 돼 있고 마지막 일곱째 날은 토요일로 돼 있지요.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는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요.

그러면 언제부터 일요일이 안식일이 되었으며 그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창조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지구를 창조의 근본의 빛으로 두르셨습니다. 이것은 빛 자체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우주 만물 가운데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선포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했습니다. 이 참 빛은 바로 하나님의 본체로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마태복음 12장 8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참 빛이신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창조 첫째 날에 빛이 있었듯이 한 주간의 첫째 날인 일요일 곧 주일은 바로 참 빛이신 주님께서 온 세상에 비취신 날이지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날입니다. 사망과 고통의 흑암 속에 살던 영혼들에게 생명의 참 빛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날로부터 우리는 부활의 소망을 얻었고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주님의 날, 주일’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게 되었지요.

창세기 1장 3절에 “빛이 있으라”는 말씀과 마태복음 12장 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신 말씀은 서로 짝을 이룹니다.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이유를 영적으로 설명해 주지요.

하나님께서는 일요일이 안식일이 될 것을 이미 구약에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레위기 23장 10~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했습니다. 여기서 안식일은 토요일이기에 안식일 이튿날은 바로 토요일의 다음 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또한 이날 드리는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이란 영적으로 하나님의 어린양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요. 또한 곡물 첫 이삭도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우리는 참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인생들에게도 부활의 소망과 영생이 주어졌지요.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 부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구별되어 안식을 누리게 되었지요.

이 땅에서의 안식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천국이라는 영원하고 온전한 안식처를 예비하셨지요. 우리는 영적 부활 외에 또 한 번의 부활을 통해 영원하고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우리의 몸도 영원히 썩지 않는 몸으로 변하여 공중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육적 부활입니다. 영적 부활과 육적 부활을 한 후에는 영원히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성도들은 영혼의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일요일은 바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참 안식을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날을 ‘주일’이라고 칭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 역사를 이루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함을 말씀드렸지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행위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행함으로 했느냐, 안 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요. 바로 ‘어떤 마음으로 안식일을 지키는가’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한 핵심은 그날에 안식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라 했지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 하나님의 마음, 그 마음을 느낌으로 모든 것에 감사하며 무엇을 하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 후반절에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성도님이라면 단지 주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날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 곧 영적인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후에 천국에 이를 때에 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최고의 안식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8-16 오후 9:29:16 Posted
2010-08-23 오후 2:48:33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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